오지 마라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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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만 하면 저절로 다 되던 때가 있었다. 사람도 사랑도 꿈도 즐거움도 모든 것이 내가 얻으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가오던 때가 있었다. 우리에게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런 시절은 끝났다. 이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운도 좋아야 한다. 사랑은 언감생심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것, 꿈은 부끄러운 졸업앨범처럼 버리긴 아쉽지만 사실상 잊고 사는 무언가가 되었다. 즐거운 순간에는 지금 너무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즐거움을 자주 맞닥뜨리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즐거워한다. 숨 쉬는 사람이 들숨과 날숨을 세지 않듯이. 물속에 오래 얼굴을 처박고 있다가 고개를 꺼내면 내가 숨을 쉬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온몸의 세포로 느낄 수밖에 없듯, 요즘 나는 즐거운 순간이 오면 지금 내가 즐겁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낀다. 숨처럼 그냥 오던 모든 것들은 다 죽었다.
그건 온몸을 던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가가긴 해도 닿지는 않기 때문이고, 함께 웃긴 해도 함께 울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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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요즘 살이 빠지고 있다고 썼다. 그러기 무섭게 살빠짐이 멎었다. 오만하면 될 일이 없다. syo가 응원하고 있던 야구팀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승승장구를 하던 중 어느 몹쓸 기자가 ‘피어오르는 우승의 향기’ 줄여서 ‘피우향’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쓴 즉시 7연패하고 중위권으로 추락했다. 매사 입이 문제다. 기대가 앞서도 입은 다물어야 한다. 될 것 같다가도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연기처럼 증발했던 가능성들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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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도 대충 그렇겠지만, 공무원들은 휴가가 겹치면 사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구청은 직원들의 휴가 기간을 큰 틀에서 조율하고자 시도한다. 8월 3일부터 5일까지 휴가 가겠노라 당당하게 써 올렸는데, 어떻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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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인사발령 시즌이고, 관련하여 부서에 업무분장이 새로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작은 업무 하나를 더 떠맡았다. 게다가, 어찌 보면 우리 과에서 가장 중차대하다 할 수 있는 업무, 기초연금 지급 업무를 담당하는 주임님이 전출 예정인데, 전입자가 바로 오는 것이 아닌지라 업무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달 기초연금 지급은 syo가 떠맡았다. 기초연금, 이건 정말 무시무시한 업무다. syo가 하루만 늦장을 부리면 수만 어르신 대군이 죽창을 들고 일어서 구청을 유린할 것이다. 이 와중에, 전체 휴관 중인 경로당이 슬슬 개관의 용트림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하반기는 일 부자, 일 갑부, 일 게이츠, 워크 버핏으로 살아가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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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휴가는 부산을 생각하고 있다. 부산에는 바다와, 좋은 숙소와, 좋은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팔바지와 이소라의「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와 나팔바지를 입고 구슬프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부르는 syo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있어야 하나?
--- 읽은 ---
82. 도시를 걷는 시간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8
걷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걸을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빌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도시를 걷는 일은 누군가에겐 그 자체 최고의 유희일 수 있다.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역사가 조용히 누워 있는 공간이고, 그 공간을 찾아가는 이가 가만히 엎드려 있는 역사를 흔들어 깨울 수 있는 눈과 손을 갖추었다면, 도시를 걷는 시간은 다른 누구보다 도시를 걷는 그 사람에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를 걸어본 자들의 책을 읽고 나서는 반드시 도시를 직접 걸어야 한다. 알게 모르게, 이 도시에는 걷는 데 시간을 쓸만한 곳이 너무도 많다.
83.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이현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
책등에 함께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굳건한 신뢰를 주는 이름의 쌍들이 있다. 이를테면 고병권 선생님과 니체, 백상현 선생님과 라캉, 문성원 선생님과 레비나스, 류동민 선생님과 마르크스 같은. 그리고 지젝 하면 당연한 듯 달라붙는 이름이 있다. 이름에 값한다- 고 평가하고 싶지만 사실 평가할 능력 같은 건 없고, syo는 그냥 믿을 뿐이다.
84. 1cm 다이빙
태수, 문정 지음 / FIKA(피카) / 2020
시도부터 구성까지 이래저래 귀여운 책이다. 딱히 그러려고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쩐지 애잔하고 귀엽다. 잘 됐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 읽는 ---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 박재용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사사키 아타루
스포츠와 여가 / 제임스 설터
이기는 몸 / 이동환
카카오프렌즈 러브 1 / 오쭈, 흑부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 이동진
천문학 아는 척하기 / 제프 베컨, 사라 베컨
파이썬 코딩 도장 / 남재윤
--- 갖춘 ---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