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정말아무것도쓸거리가안생기는시멘트빛인생이여
1
초라한 내 자신에 화가 난다. 그런데 그 화를 다른 사람에게 낸다. 최선을 다해 나를 망치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인 걸 뻔히 알면서, 누군가 나를 망치고 있다며 스스로에게 건네는 거짓말을 덜컥 믿어버린다.
2
간간이 부는 바람이 실어나르는 새소리가 아침 하늘을 가득 채웠고 옥상에서 내려다본 태평동은 초여름 아래서 끝없이 태평하다. 가끔 남쪽 소식이 궁금할 때가 있는데 바라보면 커다란 산이 가로놓여 있어서 그런가, 남쪽으로부터 도착하는 것은 늘 정적과 침묵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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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더라 이 선명한 출근 길
3
같이 사는 녀석은 장맛비처럼 콧물을 흘리는 중인데 대충 휴지를 말아서 콧구멍에 쑤셔놓았다. syo의 전화에는 우리 구 28번째 확진자의 동선과 함께 최초 발현 증상이 ‘콧물’이라고 기록된 메시지가 와 있다.
가끔 생각하는데, 저놈과 함께 살며 다정함을 유지하려고 힘쓰는 일은 굉장한 정신수양이 된다. 집에서도 단련을 이어나갈 수 있다니, 복지 업무 담당자로서 저런 워킹 호러블을 옆에 끼고 있다는 것은 거대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와행복해미치겠네?
4
여름은 처음이 아니지만 회사에 다니는 것은 거의 처음이고, 여름에 회사에 다니는 것은 조금 더 처음이고, 여름에 회사에 다니는 아저씨가 된 것은 완전 처음이라서, 요즘 제일 큰 화두는 바로 ‘냄새’다.
1L에 만 원도 안 하는 저렴이 바디클렌져 바디로션을 내다버리고 mL당 125원은 줘야 하는 녀석으로 바꾸어보았다. 신발장 옆에 신발탈취제를 비치했고 혹시 몰라 휴대용도 하나 구매하여 스틱향수와 함께 가방에 넣어 다닌다. 여름에는 아무래도 쿨한 향이라기에, 널리 쓰이지만 그리 비싸지 않고 쿨하게 생긴 향수를 하나 주문했고, 땀 냄새를 향수로 덮는 것은 또 다른 대형참사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땀냄새 제거 아이템을 따로 하나 샀다. 다이소에서 산 섬유 탈취제는 내다 버리고 있어 보이는 놈을 하나 갖췄으며, 집에서 아저씨 냄새가 날지도 ‘몰라서’(아저씨 냄새 나는 집에 사는 아저씨들은 아저씨 냄새를 맡지 못하는 아저씨들입니다. 이건 과학입니다.) 디퓨저 4개를 들여와서 급한 불을 껐다.
사실 세상 모르겠고 나 하나만 챙기자고 들면, 그냥 내 코밑에 슥 바를 고체 향수 하나면 땡인데.
자본주의 참 무섭지, 도무지 중간이 없다. 안 하든가, 하려면 부위별로 디테일하게 마련된 상품들을 다 갖추든가, 둘 중 하나의 길을 골라야 한다. 냄새나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다가 온갖 냄새를 이고 다니는 인간이 된다. 저 냄새 다 바르고 다니면 그게 사람이냐 화학무기냐.
어쨌거나 마음의 가벼움과 지갑의 가벼움이 비례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무거움입니다. 이건 과학입니다.
--- 읽은 ---
48. 시장, 세상을 균형 있게 보는 눈 / 김재수 : 91 ~ 192
『자본』에 관한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자본』은 자본주의 ㅈ까라 그러라는 책이 아니고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하고도 심오한 분석이 담긴 책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알기 위해서 아직도(+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뭐 이런 식의 변론이었다. 좋은 이야기인데, 마찬가지로 주류경제학이며 신자유주의적 학풍이며 이런 것들이 아무리 엿 같고 똥 같고 똥으로 만든 엿이나 엿으로 만든 똥 같은 사람이더라도,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정치와 경제는 발과 발톱같은 존재라서(누가 발이고 누가 발톱일까), 경제학 책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 그게 싫다거나 나랑 안 맞는다거나 해서 대충 읽고 집어던지면 아무 데도 가지 못하니까. 그야말로 “균형 있게 보는 눈”은 한 권의 책으로 갖춰지는 게 아니라 이 책 저 책 다 보는데서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49. 사회성이 고민입니다 / 장대익 : ~ 191
장대익 선생님의 책을 싫어하지는 않는데, 읽을 때는 그렇군 그렇군 하며 읽는데, 희한하게 읽고 나면 늘 내가 뭘 읽은 건지 잘 모르게 된다.
50.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이현우 : 219 ~ 350
요즘 로쟈 선생님의 수업은 어떨까. 직접 들어본 게 5년쯤 되었으니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다를까. 그때 syo가 들은 수업은 러시아 문학하고 노벨상 수상 작품 수업이었는데, 그때 잠깐이지만, 어쩌면 저 사람은 모든 수업이 가능하겠다, 모든 걸 수업으로 가능케 하는 깊이와 폭의 적절 지점을 찾아내는 데는 도가 트셨겠다,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얼핏 난다.
51. 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 것들 / 전김해 : ~174
어른이 되고 나서 동화는 아이들의 것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그냥 읽는 동화책들을 읽기 위해 어른에게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아이처럼’ 읽거나, ‘아이 때와는 다르게’ 읽거나 하는 그런 기술. syo는 모든 글을 syo처럼 읽는 고집쟁이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책이 뜻밖에 쉬운 반면 어떤 쉬운 책은 지나치게 어렵기도 하다. 호불호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52. 흑인 페미니즘 사상 / 패트리샤 힐 콜린스 : 399 ~ 520
말할 수 없이 좋은 책이다. 모두에게 저마다의 것이 있고, 그것을 가져오거나 닮을 수는 있어도 같을 수는 없다. 동의와 공감의 선언을 넘어서, 배워야 하고 훔쳐야 한다.
그렇지만, 올해 읽은 여성주의 책들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다는 모 회원님의 말씀을 syo가 싫어합니다……. 여러 가지 외적 상황이 겹친 탓이 크겠지만, 굉장히 느리고 고되게 읽히는 책이었다. 빌리 홀리데이가 남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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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처음인데요 / 마쓰바라 다카히코 : ~ 137
맨 얼라이브 / 토머스 페이지 맥긴 : 57 ~ 152
남자의 자리 / 아니 에르노 : ~ 67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정희진 : 92 ~ 169
스피노자 / 스티븐 내들러 : 82 ~ 234
다시, 자본을 읽자 / 고병권 : ~ 84
미치게 친절한 철학 / 안상헌 : 141 ~ 310
보라색 히비스커스 / 치마난다 응고지 아디치에 : ~ 116
예술의 사생활 / 노승림 : ~ 177
시작의 기술 / 게리 비숍 : ~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