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과 어려운 일
1
사랑에 쏟아 넣는 감정과 시간을 비용이라 하고 거두어들이는 기쁨과 행복을 효용이라고 하면, 사실 사랑의 한계비용은 체증하고 한계효용은 체감하기 때문에, 열심히 사랑하다 보면 사랑 속에 나를 더 갈아 넣는 일이 하나도 좋을 게 없는 지점이 반드시 찾아온다. 이런 건 연애 두어 번이면 싫어도 체득되는 난도 낮은 지식이라서, 한 번쯤 과잉투자로 망해 보면 다음엔 절대 똑같은 짓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아, 우리는 왜 늘 지나치고 나서야 내가 좀 지나쳤음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세상없이 사랑하다 보니 함께 있으면 시간이 막 꿀처럼 물처럼 녹아내리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정이 있어 하루에 카톡 몇 줄, 목소리 한 번 주고받으면 그게 다이고, 정작 만나서 함께 시간이든 몸이든 녹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인 상황이라고 가정해도, 그 사람 없는 시간을 때우는 일이 사실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좋은 책, 볼만한 영화, 재밌는 드라마는 밥만 먹고 그것들만 봐도 다 못 볼 만큼 콸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볍게 달릴만한 천변이나 공원에 언제 어디서나 접근할 수가 있고, 배워두면 폼날 것 같은 이 나라 저 나라 말들이 그것들을 배울만한 괜찮은 여건들까지 갖춘 채로 잔뜩잔뜩 있다. 우리가 돈이 없지 입맛이 없냐, 지도위엔 맛집들이 밤하늘 별들마냥 꽝꽝 박혀 있고, 거기를 나와 함께 가 우아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뒤집어 줄 좋은 친구들도 이렇게 많은데!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이 많아서 궁금한 것도 많은 청춘에게, 뜨문뜨문 만나는 사랑의 뜨문과 뜨문 사이에 꼭히 다른 사랑을 몰래/대놓고 집어넣어 빈자리를 따갑게 메울 필요는 없는 셈이다. 하루 한 번의 통화,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배부르게 먹었으나 배부르지 않은 마음을 쥐고 돌아가면서도 투정하지 않고 씩씩하게 일상을 해치우는 일은 생각해보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
어려운 건 사실 이런 일들이었다.
- 열두 시간을 공부하고 지쳐 돌아와도 밥을 안칠 때 쌀 씻는 횟수를 줄이지 않는 일.
- 다녀오면 하기로 마음먹었던 청소와 빨래를 미루지 않는 일.
- 반찬을 반찬통 채로 식탁에 올리지 않고 저마다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 상 차리는 일.
- 열 번을 씹고 삼키던 반찬을 다섯 번 만에 넘기지 않는 일.
- 식사를 마치면 곧바로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는 일.
- 쓰레기 배출을 다음 기회에 양보하지 않는 일.
- 샤워를 하며, 오늘 내가 합당한 요구라고 굳게 믿으며 던졌던 말이 실은 하나의 투정일 뿐이었고, 침해당했다고 생각한 자존감의 실체라는 것도 실은 나는 이렇게 외로운데 너는 왜 충분히 외로워 보이지 않느냐는 졸렬한 손익계산이 그럴듯한 가면을 쓴 꼴일 뿐이었으며, 나는 늘 내가 같은 크기로 되돌려주기는커녕 감당하기조차 벅찬 큰 사랑을 아주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처럼 뻔뻔하게 챙겨 먹고 있었다는 사실들을 인정하는 일.
- 다음 날 볼 책들을 가방에 미리 넣어놓는 일.
--- 읽은 ---



진격의 독학자들 / 인문학협동조합 : 129 ~ 259
안 느끼한 산문집 / 강이슬 : 121 ~ 239
돈의 인문학 / 김찬호 : 184 ~ 271
--- 읽는 ---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 김수헌, 이재홍 : ~ 212
경제 읽어주는 남자 / 김광석 : ~ 105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권김현영 : 50 ~ 103
우리는 폴리아모리라 한다 / 심기용, 정윤아 : ~ 68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주네요 / 허재삼 : 82 ~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