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막 볼 빨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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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작고 노란 초승달들과 한붓그리기로 그린 별 들, 얼핏 보면 돼지 같지만 얼굴을 감싸고 있는 하얀 털과 전체적인 컨셉으로 미루어보건대 아무래도 양이 아닐까 싶은 동물이 잔뜩 그려진, 어느 열대지방 섬마을 밤하늘 색깔 수면바지를 입고 잔다. 그러니까 ‘밤바지’를 입고 자는 셈인데, 착용자에게 따뜻한 밤을 선사해줄 것만 같은 이 밤바지가 의외로 ‘뜨거운’ 성격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구석에 자리한 파이리 인형의 머리 위에 여지없이 던져져 구겨진 밤바지 녀석의 서글픈 자태를 통해 이 뜨거운 녀석과 syo의 하반신이 얼마나 뜨거운 밤을 보냈는지 확인하게 되는 요즘이다. 파이리는 무슨 죄로....... 문제는, 아무리 추궁을 해도 syo의 하반신은 지난 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증언만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에..... 그러니까, 저랑 밤바지가 둘 다 많이 취하기는(잠에) 했거든요..... 침대가 하나 밖에 없어서, 같이 침대에 올라간 것 같긴 한데, 그 뒤로는 필름이 끊겨서 도통 기억이...... 예, 파이리가요? 제가요? 와나, 잠이 웬수지......
더우면 잠결에 바지를 벗는 습관은 이상하고도 위태롭다. 열대야가 이어져 바지를 벗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해열이 되지 않는, 적도 근처 그야말로 하반신 비친화적인 어느 마을의 게스트 하우스 2층 침대 2층에서 잠을 자고 있는 syo를 생각해 보자. 애초에 바지를 벗어던질 것을 예상하고 팬티바람으로 syo는 잠들었는데, 아뿔싸, 예상이란 건 높이가 만만한 뜀틀 같은 법이라 일은 언제나 폴짝폴짝 예상을 잘도 뛰어넘는 법이고, 아아, 저도 모르게 syo는 팬티를 벗어 휙 던진 것인데!
때마침 침대 1층에서는 지금, 꿈에도 그리던 대학 합격증을 쟁취한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 위하여 머나먼 이국땅으로 여행을 떠나온 풋풋한 미국 소년 마이크(19, 애리조나 주)가 고되지만 충만했던 하루를 마치고 누워,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기적같은 선물들을 생각하느라 잠을 설치고 있었다. 며칠 전 받아든 그 선물 같은 합격 소식과, 오늘의 이 선물 같은 풍경과 앞으로의 대학생활이 그의 인생에 가져다 줄 더 큰 선물과, 대학을 마치고 나가면 세상이 그에게 선물해 줄 부귀영화들과,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얼굴 위에 선물처럼 뚝 떨어진 코데즈컴바인 M 사이즈 남성용 드로즈(단독세탁을 권합니다)...... 어쩐지 뜨겁고 어쩐지 꿉꿉한 선물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을 마이크 군이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티벳 불교로 개종을 하였다면 미안하긴 해도 그건 그저 이상한 이야기일 뿐이겠으나,
만약 침대 1층에서 잠들어 있던 사람이 마이크가 아니라 바이킹의 나라에서 온 빅터(33세, 입식타격기 지도자, 좌우명:초전박살)씨인데, 그가 온 마을에서는 입고 있던 팬티를 던지는 것으로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결투를 신청하는 전통이 있었다는 설정이라면? 성난 바이킹 빅터가 아이언피스트를 장착하고 침대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그런데 syo는 자기 생명의 불꽃이 꺼질랑말랑 하는 위급상황이라는 건 꿈에도 모른 채, 심지어 겸손하지 못하고 양 다리를 한껏 벌린 최대한 도발적이고 구역질나는 자세로 드르렁드르렁 코만 골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건 정말 이상하고도 위태로운 이야기가 아닐는지?
실은 syo와 syo의 여친이 등장하는 19금 버전 이야기도 혼자 상상(아침에 잠이 덜 깨 몽롱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었으니 하게 된 상상, 으히히)은 했지만, 그 방면으로는 흔들림 없이 정도와 정량(?)을 지키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관계로, 공상의 현실화 가능성으로 보면 여친과 빅터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근데 나는 지금 왜 울 것만 같지......



나는 아무것도 만지지 않고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길 원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눴고 몇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간직하게 될 시각적 기억은 같은 유의 또 다른 기억들에 더해져 몇 밤, 몇 주, 몇 개월이 지나, 공명하나 선명하지 않은 하나의 실재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A의 서재에서 했던 포옹을 그녀의 방에서 한 것으로 재구성할 수도 있고, 가을에 함께 들었던 음반을 봄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때, 어쩌면 나는 언젠가 그녀가 사정할 때 짓던 표정, 라디오에서 들은 음악을 콧노래로 따라 하던 그녀의 음색, 그녀가 내 것을 빠는 방식과 내 위에 있을 때 그녀의 움직임을 잊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고-이 모든 것들을 사진에 담을 수 없지만-그녀만큼 나 역시, 옷의 정확한 위치와 우리가 겪었던 것들의 확실한 증거를 필름에 새기고자 하는 절대적인 욕구를 느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경찰들이 그렇듯이, 아무것도 만지지도 옮기지도 않고.
_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사진의 용도』
성적 보수주의,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결혼을 중심으로 한 성적 이중기준이 강하게 작동하는 한국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성적으로 끌렸다는 걸 명백하게 공표하는 건 여러 성적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밝히는 여자' 운운하는 평판의 하락부터 성추행과 성폭력, 그리고 몰카까지 다양한 성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요.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성적 보수주의나 성적 자유주의나 남성 중심적이긴 매한가지입니다. 성적 보수주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결혼한 남성이 소유하는 사물로 보는 것이고, 성적 자유주의는 어떤 남성이든 가질 수 있는 사물이라고 보는 거죠. 이 시대 여성들이 이성애 관계에서 갖는 불만은 자신을 사물이 아니라 인격체로 보는 남성이 극히 드물다는 데 있습니다.
_ 김신현경, 『이토록 두려운 사랑』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나는 정자와 난자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그 둘이 어떻게 만나는지는 잘 몰랐다. 내가 추측했던 엄마 아빠의 짝짓기는 각자의 팬티 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슬며시 나와 나비처럼 날아오르면 공중에서 만나 체외수정을 한 뒤 얼렁뚱땅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였는데, 엄마가 설거지를 하며 말했다. "아닌데? 잠지에 고추를 넣고 안에서 정액을 싸야만 임신이 되는 거야~"
엄마 무릎에 얼굴을 묻고 반나절을 울었다. '그 짓을 엄마 아빠가 했다는 거잖아... 할머니 할아버지도 작은엄마 작은아빠도 고모 이모 외숙모 외삼촌도 국어랑 수학 선생님도 마트 아줌마도!'
나는 오열하며 말했다. "그걸 하면 잠지가 너무 아플 것 같아!" "아프기만 하진 않아. 아프고도 좋은 일들이 세상엔 많단다, 마이 베이비..." "엄마 그거는 닭발이 매워서 혀가 아픈데도 계속 먹고 싶은 거랑 비슷한 거야?" "아주 많이 다르진 않아."
_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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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다친 마음이라고 해서 빨리 아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에 다친 마음은 거짓에 다친 마음과 달리 돌아가 의탁할 곳이 없다. 진실에 등을 돌려야 하니까.
_ 김정선,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168쪽
진실에 마음 다친 경험에 대해 써보기로 한다면 백 가지 이야기는 너끈히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것들이 진실을 가르쳤다. 사랑의 옷을 입은 진실이 나를 가르쳤고, 경쟁의 낯을 한 진실이 나를 다그쳤다. 진실에 하도 두들겨 맞다 보니 내 사랑이 과연 사랑이 맞는지 의아하기도 했고 내 꿈이 실은 남의 꿈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거짓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저 ‘현실’이기만 했더라도 덜 아프고 빨리 아물었을 것만 같은 상처들을 길게 앓고 오래 핥아야 했다. 나를 후려치는 것이 다름 아닌 ‘진실’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가장 오래 아프게 했던 어떤 진실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보면서,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그때의 나는 과연 진실을 이겼는가, 밀려났는가, 아니면 모른척했는가 다시 한 번 점검해보면서, 칼을 휘두르며 다가올 다음 번 진실에 내 마음이 또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 훑어보았다. 잠시면 끝날 줄 알았는데, 밤이 왔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빌려 나를 짓이기고 지나갔던 모든 진실의 주인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괜찮다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당신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는 계속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주 만났다가 헤어지며 그리워도 하겠지만 끝내 서로를 다 이해하지는 못할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거듭되는 재회와 헤어짐 속에서도 당신들이 처음 내 마음속에 들어와 헤이, 라고 스스로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그 눈부신 순간에 대한 감각은 잃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떠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차마 가져가지 못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다정함을 주었던 사람이면 마땅히 차지해야 할 오롯한 빛이니까.
_ 김금희,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작가의 말 中
3
책읽기는 분명 놀라운 재미를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책읽기에서 오직 재미만을 느낄 수 있다고 믿고, 또 그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정신적 환상을 추구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니체처럼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경지에 오를 수는 없겠지만, 책읽기가 '고통 없는 재미'만을 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런 책읽기라면 단언컨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책읽기는 재미와 고통을 동시에 줄 것이다. '고통 없는 재미'만을 기대한 독자라면 책읽기에서 '재미있는 고통'을 상상하는 게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다른 차원의 문을 연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설레는 위안이 될 것이다.
_ 김욱, 『책혐시대의 책읽기』, 115쪽
책읽기를 되돌아보고 책읽기를 다짐하는 글들이 연말연시의 알라딘 공간을 밝고 탐스러운 함박눈처럼 채색했다. 사람들은 감사하고, 감사할 줄 알았고, 결심하고, 결심할 줄 알았고, 이루어나감으로써 이루어나갈 줄 알았음을 증명할 것이다. 그야말로 ‘책혐시대’에 우리는 책에 대해, 책을 읽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에 둘러앉아, 어깨 너머로 서로가 읽는 책을 보면서 그 책을 내 마음 속 서재에도 꽂아놓거나, 책 읽는 서로의 얼굴을 읽으며 내 마음에 끄적거려 놓은 뭔가를 부끄러운 듯이 쭈뼛쭈뼛 발표하거나, 읽고 쓰는 이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보상을 약속하지 않은 일들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이 세상에 아직도 남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혼자 읽는 밤 혼자 읽는 방에서 우리가 피할 수 없었던 고통들을 생각하면, 역시 어느 밤 어느 방에서 혼자 그 고통을 지나왔을 친구들이 소중해진다. 어쨌거나 책 읽는 순간은 혼자다. 그렇지만 책을 읽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밤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을 할 때란 비록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지 못해도 자기 안에 그 말을 듣고 제대로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입니다. 자기 안에 자기와는 다른 말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있어 그 사람을 향해 말을 걸 때, 언어는 가장 생기가 넘칩니다. 가장 창조적이 됩니다. 언어를 지어낸다는 것은 내적인 타자와 이루어내는 협동 작업입니다.
_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읽은 ---



김욱, 『책혐시대의 책읽기』
다쿠미 슈사쿠, 『최고의 엔지니어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김한민, 『아무튼, 비건』
--- 읽는 ---






이완배, 『마르크스 씨, 경제 좀 아세요?』
김정선,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사진의 용도』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데니스 C. 라스무센, 『무신론자와 교수』
조지 레이코프, 엘리자베스 웨흘링,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