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를 잘못 사서 100북100복 프로젝트의 진행에 무시할 수 없는 장애가 발생하였다. 도대체 니맛도 내맛도 상실한 이 미친 복숭아들은 어디서 온 거지? 신의주? 블라디보스토크? 과채 서랍 속에서 싱글거리는 저 노란 털복숭이들을 다 어이할꼬. 냉장고 손잡이를 움켜쥘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100복은 망조지만 100북의 달성은 안정적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100권 아니라 100톤이라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100권이 가시권 안에 들어오자 이제 슬슬 책 읽기도 지겨워지고 있다. 생산적인 뭔가를 좀 해야 하겠다.


도무지 프라하에 있다간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의타심을 원하는 저 같은 사람을 의타심 속에 가두어두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무실에서 아주 성가시고 참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자주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내심 편합니다. 또 여기에서 저는 제가 필요한 것 이상의 수입을 얻습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누굴 위해서? 저는 봉급의 사다리를 타고 계속 올라가겠지요. 무슨 목적일까요? 이 일은 제게 맞지도 않고, 보상으로 독립성을 가져다 주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이 일을 버리지 않는 것일까요? 제가 사직을 하고 프라하를 떠나는 것은 결코 모험이 아니라 전부를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 프라하를 벗어나면 저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제가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십분 활용하고, 선하고 올바른 일을 한 대가로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과 지속적인 만족을 느끼는 독립적이며 침착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인간이-그건 적지않은 수확일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에 더욱 드실 것입니다.
_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의 엽서』
이탈리아 문법책을 읽어라. 프랑스어 사전을 아무데나 펼쳐 어떤 프랑스 단어라도 읽어라. 이번 달에 우리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가 진정한 질문이다.
_ 존 치버, 『존 치버의 일기』
180818 - 180822 : 22권




1. 파과
: 왜 많이들 괜찮다하는 구병모가 syo는 이리도 별로일까 고민해보았다. 거짓말이다.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답이 나왔으니까. 원인은 문장이다. 중문과 복문의 전면출동으로 인해 호흡이 길어질 대로 길어진 문장들. 심할 경우 네댓개의 문장으로 한 쪽을 먹어버리는 햇님달님 동아줄 같은 문장들. 그래서 왜 그게 맘에 안 드는가 하니, 바로 syo가 그런 문장을 지어내기 때문이다! syo의 좌충우돌 우당탕탕 긴 문장을 읽으실 서재친구님들의 고충이 내 눈동자를 흐려 도저히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더라.....
: 그보다 이야기가 너무 단선적이지 않나?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주인공 할머니 킬러의 배역을 점쳐보는 글들이 많은데, 영화로 만들면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 같다. 단순하다 못해 앙상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의 뼈대가.
2. 춤추는 사신
: 사신은 死神이 아니라 使臣입니다. 사신인줄 알고 책을 열었더니 사신이더라구요.
: 예술이, 언어의 구실이 무엇인지, 나아가 이야기의 자리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익숙하다 못해 식상하기까지 한 현재의 방식으로 계속 구현되어도 좋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했다. 작가라면 한 번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심이 들고 그러는 걸까? 넘겨 짚었나?
3. 섬의 애슐리
: 결국 나는 내가 지켜야 한다. 나의 사랑이, 나의 역사가, 나의 이미지가, 그 모든 나의 것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나를 언제라도 찌르고 베어낼 것이다. 살을 발라가고 뼈를 훔쳐갈 것이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나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나는 나의 편에 서야 한다.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내 대신 다쳐주지 않는다.
4.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 저자가 자신의 독창적인 기법이라도 되는 양 제시하는 '아날로지적 관점'이라는 말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syo의 모자란 독해력으로 미루어보건대, 아날로지적 관점의 효용이라는 게 과거의 유사한 조건, 구도, 환경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분석하고 얻은 교훈을 현재 정세를 헤쳐나가는 데 사용하자는 것인 듯 하다. 그런데 이건 역사라는 물건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쓰임새가 아닌가? 공기처럼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란 말인가? 웬 생색이지? 물론 유사한 역사적 사건들을 병렬적으로 구성해 공통적과 차이점을 명백히 제시한다는 것은 이 책이 지닌 장점일 수 있다. '아날로지적 관점'을 들먹일 게 아니라 '아날로지적 편집'이라고 했으면 적당했을 것 같은데.
: 책 자체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어쩐지 역사를 해독하는 관점도 뭔가 시원시원하고 명쾌하다는 느낌이다. 재미도 있고.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저자에겐 "우국의 라스푸틴"이라는 무시무시한 별칭이 붙어 있다. 개인사도 역사만큼이나 재미있을 것 같은 인물이다.




5. 역사, 권력, 인간
: 젠장, 읽고 바로 뭐라도 끄적여 놨어야 했는데, 귀찮아서 구석에 밀어 놓고는 다른 책 실컷 읽고 나흘 만에 돌아왔더니 뭘 쓰려고 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읽을 때는 되게 재밌네, 되게 알차네, 그랬었는데요. 책이 부족해서 제가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니라, 제가 부족해서 제가 기억을 못하는 겁니다....... 엉엉.
6. 당선, 합격, 계급
: 일단 문학상에 도전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문학상에 도전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문학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저마다 몇 번의 당선, 합격과 대체로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낙선, 불합격을 경험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당락과 합불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계급을 몸에 두르고, 위를 비난하고 아래를 비하하며 꾸역꾸역 영차영차 살기 때문이다.
7.『도련님』의 시대 2
: 나쓰메 소세키와 쌍벽을 이룬다고 하는 모리 오가이는 의외로 풍성하게 번역되어 있지 않다. <무희>라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독일 여인과의 사랑과 혼인약조와 파혼에 관한 이야기가 이 책의 뼈대인데, 곰비임비 핑계대면서도 멋있는 척하기 바쁜 모리보다, 남자의 약조를 믿고 일본에 건너온 앨리스가 사랑을 만들고, 지켜나가고, 정리하는 모든 과정에서 한 오백만 배는 더 멋진 것 같다.
8. 『도련님』의 시대 3
: 다쿠보쿠 이 양반 누군지 잘은 모르겠는데, 찌질함이 유카타를 걸치고 사람행세를 한다면 이 모양 이 짝이겠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남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찌질함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긴 한데, 게중 얘는 단연 노답이다. 눈은 가졌으나 재능은 그 절반밖에 가지지 못해 보들레르가 되다만 인간의 낙오기라고 해도 괜찮겠다.




9. 아무튼, 로드무비
: 영화라고는 1도 모르고, 심지어 여행은 0.5도 모르는 syo에게 언젠가 꼭 찾아서 봐야겠다 싶은 감독 이름 몇 개를 던져주고는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진 책.
10. 열다섯 번의 밤
: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아내는 힘과, 살아낸 인생을 궁굴려 소설을 만들어 내는 힘이 어떻게 서로를 지탱하는 두 개의 발이 되는지, 신유진의 글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렇게 살아낸 삶이나 만들어 낸 글이 위대하거나 거대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살고 또 써야하니까. 사는 힘과 쓰는 힘의 결맞음이 필요하니까. 내 삶을 쓸 작은 용기를 얻는 것, 다른 사람의 삶을 읽는 큰 이유다.
11. 도련님
: 여기까지의 소세키는 풍자작가에 가깝다. 그의 모든 작품 속에 특정한 인간 유형이나 그 인간을 낳은 시대를 비꼬는 혀가 마치 무늬 고운 비단 속에 몰래 넣어둔 바늘처럼 숨어 있긴 하다. 그렇지만 대놓고 붓을 놀려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책은 초기 두 작품으로 땡이다. 그러니까 14권 전작을 다 드실 분들이라면 출간 순서에 따라 읽지 마시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을 적당히 배치하여 웃음을 도모하시기를.
: 안 그럼 머리 빠져요.
12. 공부의 철학
: 뻔한 이야기 되게 폼 잡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부란 기존의 환경에 동조하며 살아온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자기 자신의 파괴다.’ 라는 말은 멋있어 보이긴 해도, 다양한 장르의 책에서 반복적으로 진술되고 있으며, 자체 어디 하나 특별한 구석이 없는 진부한 이야기다.
: 개소리를 하진 않는다. 나쁜 책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책도 절대 아니다. 좋은 식상한 책입니다.




13.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 남자이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벽들을 이미 클리어한 상태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살면서 이게 정말 무너뜨리지 못할 단단한 벽이구나, 하는 느낌은 나보다 20살, 30살 많은 이들과의 대화에서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상대를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같다면, 누가 누구를 먼저 조건 없이 이해해야 이 교착상태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일까. 그리고 먼저 열린 사람의 삶은 실상 어떤 모습일까. 여기 답.
14. 도서 대출 중
: 저자가 읽은 많은 책들이 쭉 이어지는 몇 개의 주제로, 그리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주제를 중심으로 엮여 있다. syo처럼 중구난방으로 읽지 않는다. 삶을 어떤 방향으로 물들이기 위해 읽는다면, 이렇게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용이 아니라 태도를 배울 책이다.
15. 소수는 어떻게 사람을 매혹하는가?
: 『소수는 어떻게 사람을 매혹하는가?』는 어떻게 이토록 사람을 매혹하지 못하는가?
16. 한국사특급 떡국열차
: 숨어 있는 역사로 차려낸 한 그릇 떡국 같은 역사책. 떡국은 가끔 먹는 음식이다.
: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판단하기 미묘한 지점이 꽤 있다.




17. 날씨의 맛
: 소소한 와중에 독특하고 참신하긴 한데, 어쩌자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 읽을 땐 달콤쌉싸름 참 좋은 맛이었던 것 같은데, 읽고 나니 그게 무슨 맛이었는지 설명을 잘 못하겠다. 한 달이 채 못 가 이 책의 내용을 몽땅 잊어버릴 것이다.
18.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통계학
: 이 시리즈는 만화 보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다. 만화작가 센스쟁이.
: 200쪽 남짓, 대부분의 공간이 그림으로 채워져 있는 책이지만, 생각보다 든 게 많다. 만만하게 보고 덤비셨다가 중후반부부터는 땀 좀 납니다.
19. 본격 한중일 세계사
: 굽시니스트의 능청스런 말재간이야 의심할 필요가 없지. 만화로 된 역사책이라고 다 웃긴 건 아닙니다. 근데 얜 웃겨.
20. 이 정도 개념은 알아야 사회를 논하지!
: 이 정도 개념은 알아서 기분이 좋았다. 헤헤.


21.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 기본소득의 필요성이며 가능성이며를 syo는 믿어 의심치 않으나, 이렇게 험난한 세상의 중심에서 기본소득을 외치는 책들은 한 권으로 끝낼 게 아니라 여러 권 읽어서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한 권은 비실거릴 수 있으나 세 권, 다섯 권이 힘을 합치면 이야기는 다르다. 원래 지구를 구하는 일에는 반드시 용사들(혹은 그들이 조종하는 로봇들)의 ‘합체’를 요한다.
: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탱자탱자 놀 거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은 굉장히 다양한 실험 자료를 통해 이미 박살난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읽을 만한 곳이 그 점을 지적하는 부분이었다.
22. 청소년을 위한 성서
: 청소년을 위한다고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청소년에게 언제 한번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 군대에서 구약 2회독, 신약 3회독, 특별히 전도서 7회독을 마쳤다. 신앙도 없이 읽었더니 그때그때 깨달은 바가 있었으나 허공으로 날아간 건지, 핏속으로 스며든 건지, 하여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으로 나사로마냥 죽어 있는 성경의 기억을 무덤에서 걸어 나오게 하려 했는데.....
그나저나, 폭풍이 온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