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호구
버거킹 맞은편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왠지 syo를 슬슬 피한다. syo의 앞에 걸어가는 사람을 붙잡고 위안부 관련 캠페인에 잠깐만 참여해 달라며 맑디맑게 웃던 노랑 조끼의 여자 분은 syo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친다. syo가 성난 황소는 아닐 텐데요. 며칠 전에는 그 자리에 유니세프 후원자를 모집하는 사람들이 활동 중이었는데, 그 중 한 사람, syo와 마주치자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재빨리 뒤로 감췄다. syo가 배고픈 염소는 아닐 텐데요. syo가 최선을 다하여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도, 그들은 결코 syo에게 호의를 요청하지 않는다. 의도 있어 보일 만큼 천천히 걸어봤지만 그들은 끝내 syo를 발견하지 못한 척 한다. 에이씨, 당신들이 지금 내 얼굴 말고 뭘 안다고 그래! 아이들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나같이 생긴 놈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산 빵은 입에 넣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그래? 아무래도 신림동에 나만 빼놓고 무슨 거대한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반면, 도(를 아십니까)인들은 결코 syo를 놓치는 법이 없다. 하도 잡히다 보니 syo 역시 그들의 바지통만 보고도 도인인지 아닌지 알아챈다. 저 멀리서 그들이 나를 사냥하러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기 시작하면 syo는 그런 생각을 한다. 여긴 잠실야구장이야. 항상 악착같이 추격하지만 결코 추월하지는 못하는 LG 트윈스의 9회 말 공격이 이어지고 있지. 자, 마지막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 깡! 때렸어! 우와! 떴어, 높다, 높아! 어, 멀지 않고 높기만 하네! 안 돼! 잡지 마! 안 돼! 안 돼에에에에! (실제로 이런 상황은 빈번히 일어납니다. LG팬이 된다는 것은 고된 수양의 길을 걷는 일입니다.) 그러고 나면 syo는 제가 가진 이목구비에서 캐낼 수 있는 최대치의 드러운 표정을 장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쯤 되면 마침내 인파를 헤치고 다가와 syo 앞에 마주선 도인들이 말한다. 인상이 정말 좋으세요. 에이씨, 그럴 리가 없잖아! 조상신께 간단한 제사만 지내시면 만사가 형통하실 건데요. 여기까지 듣고 나면 대패 삼겹살집에서 고기 뒤집는 무슬림 같은 표정을 짓고 싶어지지만 이미 난 최선을 다하고 말았으므로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
그렇다면 syo란 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단 말인가. 아이들의 배를 채워줄 여유는 없어 보여도(불쌍) 또 조상신의 배는 기꺼이 채워줄 것처럼(호구) 생겼단 이야긴가? 정말?
사진 한 장 첨부해 이웃들께 감정을 의뢰해 볼까 했지만, 하하, 거울 한 번 힐끗 본 것으로 아주 쉽게 단념할 수 있었다.



정말 구름을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걸까 사람들은 조금쯤 회의주의자일 수도 있겠구나 설령 빙하를 가르는 범선이 난파를 발명했다고 해도 깨진 이마로 얼음을 부술거야 쇄빙선에 올라 항로를 개척할 거야 열차가 달리는 이유를 탈선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사람들은 궤도를 이탈한 별들에게 눈길을 주는 걸 몹시 염려해 평범한 게 좋은 거라고 주술을 멈추지 않지 누군가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를 띄운 오만함이 추락을 발명했다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그럴 수도 있겟다 하지만 모든 이동은 늘 매혹적인 걸 나로부터 멀어져 극점에 다다르는 것으로 나를 발명해야 할까 흐르는 구름을 초대하고 싶은 열망으로
_ 이은규, <나를 발명해야 할까>, 『다정한 호칭』
운동을 하고 살을 뺀다는 것이 외모에 대한 편견에서 도망치는 것인지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인지 자주 헷갈린다. 남의 눈에 들려고 하는 건지 나에게 나를 잘 보이기 위한 건지도 잘 모르겠는 때가 많다. 하긴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도 어차피 타인의 눈을 거치기 마련이다. '내 안에 너 있다'는 대사처럼 타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내 안에 존재한다. 나와 타자의 경계는 명확히 그을 수 없다.
_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고려대생이 "우리에게는 김연아가 있다"라고 자랑했다. 그러자 연대생이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MB가 없다." 우스개지만, 때론 부재가 존재만큼이나 중요할 때가 있다.
_ 김상욱, 『김상욱의 과학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