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히로시마 노트 ㅣ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애숙 옮김 / 삼천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당신의 안에는 무엇이 있나요?
히로시마 노트의 무게는 굉장하다. 무덤덤하게 써 내려간 오에 겐자부로의 글자 하나하나에는 인간의 위엄이라는 무게가 실려 있다. 저승사자의 명부에 적힌 것 마냥 사람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접할 때마다 섬찟섬찟 놀라게 된다. 내 이름이 적혀 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상상은 하기조차 싫다. 내 안의 히로시마 인간은 이 노트를 직시하라고 명하고, 내 안의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이 노트를 한시라도 빨리 잊으라고 명했다.
잊는다는 것. 고통을 잊는 것과 참는 것은 다르다. 고통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유흥에 빠지고, 마약을 한다. 고통을 참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보다 냉정하고 철저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고통 받을 수 있으며,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고통 받을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불쑥 찾아올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고통은 평등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고통을 망각할 것인가, 품고 갈 것인가가 된다.
인간은 인간이라고 해서 무조건 존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성’, ‘휴머니즘’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인간에 대한 단어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인간은 바로 고통을 품고 살아가며 '지나치게 절망하지도 희망을 품지도 않는 현실적인 인간‘이다. 세상 속에 떨어진 피조물에서 인간성을 지닌 ’정통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고통에 대해 인내하는 것이다. 고통을 인내하는 그 도덕관념에 바탕에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 비참하고 억울한 현실일지라도 현실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은 현실에 속한 자신과 또 타인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현실 속에 존재하며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 보편적인 인간,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의 인간이라는 인식은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타자의 아픔에 공감함으로써 자기 치유는 시작되고 고통은 참아낼 수 있는 것이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그 아픔에 대한 책임의식 역시 느낄 수 있다. 히로시마 노트를 읽으며 그들의 고통에 인간적인 존경심을 느끼고 한 편으로는 책임감마저 느낄 수 있는 것은 내 안에도 히로시마 인간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사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나몰라라한다는 것은 나 역시 고통으로부터, 현실의 부당함으로부터 도망가려는 것이며 이는 곧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침묵할 권리는 히로시마 사람들에게만 있다. 그들의 외부에 있는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침묵할 권리가 없다. 적어도 ‘모럴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라면.
* 이때 즈음 나의 가치관이 확립되었었다. 인간이라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선 안 된다 라는. 오에 겐자부로가 히로시마 노트를 통해 보여준 '모럴리스트'는 바로 그런 인간이다. 담백한 문체 하나하나에 실려 있는 무게감이 엄청 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