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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시작된 이후로 내 삶의 중심은 그대였다. 그대를 생각할 때만 감정이 동요하고 그대와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담겨 있는 영화나 책, 노래를 발견할 때면 온 몸이 울렸다. 죽을 만큼 아파도 보았고 또 그 아픔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도 겪어 보았다. 그렇게 그대라는 존재를 품에 안고 나의 존재는 형성되었다. 그대 덕분에 나의 존재의 경계를 넘어서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나와 같은 이유로 아파했던 사람들에게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그대에게 들려 주고 싶은 노래, 보여 주고 싶은 영화, 읽어 주고 싶은 책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전해지지 못한 채 일기장에 쌓여만 가던 나의 거친 편지들과 함께 이 모든 것들은 체념과 함께 삼켜져 내 안에만 쌓였다. 주위 사람에게라도 쏟아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갑갑한 날에는 친구를 붙잡고 나의 감정을 토로하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감정들은 오히려 왜곡되어 전해졌고, 날 것의 감정들은 타인의 불이해만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입을 다물기 시작하였으며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에 나의 감정을 담아 간접적으로 내 안을 비워내곤 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문학동네의 번역본이고,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번역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크게 와닿았다. 행복한 가정의 기준은 있으나 불행한 가정의 기준은 없다.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면 행복한 가정이다. 행복한 가정하면 떠오르는 흔한 이미지들이 그러하듯이. 이는 행복한 가정이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내부에서 보아야 한다. 불행한 가정이더라도 겉으로는 행복해 보일 수 있다. 외부에 보여지기 꺼려지는 각자의 불행한 문제들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대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남들이 하듯이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하고 남들이 하듯이 선물도 주고 받고 기념일도 챙기며 행복한 티를 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힘든 시간이 더 많았고 불행하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 남들에게는 뻔한 푸념으로 들렸을 지라도 나에겐 너무나 큰 아픔이었고 상처였다. 하지만 자존심에 솔직하게 나의 불행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저 다른 행복한 커플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하면서 나도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안나가 알렉세이를 찾아 전보를 치고 기차에 몸을 싣고 자살까지 결심하게 되는 과정을 보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나는 그녀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폭발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와 그런 그녀로부터 멀어져 가는 알렉세이때문에 더욱 상심하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그런 그녀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격한 감정에 휩쓸린다는 것이, 상황이 악화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았기에 더욱 그녀에게 동정을 느꼈다. 그대가 안나 카레니나의 그 부분을 읽는다면, 나처럼 안나를 동정할까, 혹은 이해하지 못할까. 아마도 그런 그녀의 무분별함에 거부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한다. 불쌍하다고는 느끼겠지만 이해하지는 못하겠지. 그리고 이러한 추측은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그대를 잊는 것이 두려웠다. 그대와 함께 한 시간들 마저 잃어버리게 될까봐. 많이 힘들고 많이 얼룩진 시간들이었지만 그 사이사이에 빛나는 추억들이 있고 그대의 미소, 살내음, 온기가 있기에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버릴 줄 알아야 얻는 것도 있다고, 그대와의 추억을 놓을 때가 된 것 같다. 그대의 흔적은 지워지더라도 그대와 함께 나눴던 감정들은 내 안 어딘가에 남으리라 생각한다. 그 정도에 만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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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갖는 것과 실제로 참여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일이다.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오고, 이제 나의 관심분야를 직업으로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면서 느낀 것은 맞는 인연을 만났다는 기쁨이었다. 책에도 관심이 있었고, 영화에도 관심이 있었고, 마케팅에도 관심이 있었고, 사회공헌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린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우연한 기회에 아쇼카 북토크에도 참여를 하게 되었다. 아쇼카가 뭔지도 모르면서 북토크라는 이유만으로 신청을 했다. 책도 읽지 않았으면서 오랜만에 듣는 책 관련 강의라 기대감을 안고 갔더니, 우연이 사실은 인연이었나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요즘엔 이런 식의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창업과는 영영 거리가 멀 줄 알았건만 어느새 보니 창업에 뛰어들었고, 친환경과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왔는데 친환경 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길을 달랐으나 정상으로 향하는 목표는 같기에 함께 걷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내 생각과는 다른 풍경들을 밟으며 신선한 즐거움도 누리고 있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얼마나 더 성장해야 할 것인지도 알게 되고. 


결국은 모든 것이 변화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삐딱한 사람들, 삐딱한 생각들, 하지만 그렇기에 이룰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다. 우연히 참여한 아쇼카 북토크에서 또다시 확신을 얻었고 계속 나아갈 원동력을 얻었다. 알면 알수록 세상에는 진정성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더 큰 외로움 속에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변화의 시작에 내가 서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 내 본연의 관심사인 '소설'과 아쇼카 북토크를 연결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떻게 보면 취미활동에 지나지 않을 독서라는 행위가 순간 순간마다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되어 반짝하고 빛날 때마다 큰 뿌듯함을 느낀다. "공감의 뿌리"라는 책을 소개하신 김은희씨의 강연 중 다른 사람과 공감을 함으로써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듣자마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났다. 책에서는 공감대신 '동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결국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에서 동정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고통을 차마 차가운 심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고통스러워하는 이와 공감한다는 뜻이다. (중략)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co-sentiment)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 기술을 지칭한다. (중략)

그런데 그는 그녀를 내쫓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녀의 손을 잡고 손끝에 키스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마치 테레자 손가락의 신경이 자신의 뇌에 직접 연결된 듯 그녀가 손톱에서 느끼는 고통을 자신도 느꼈기 떄문이다.


토마스는 테레자에게 동정하였기에 그녀의 아픔을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결국에는 자신의 직업까지 버리며 그녀를 따라 간다. 그로 인해 토마스가 그녀를 비난하였는가? 아니, 오히려 그녀를 더욱 사랑하였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만큼 숭고한 일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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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oxford circus 역에서 내려서 charing cross street 을 쭉 따라 걸으면 헌책방과 책방이 모여 있는 구간과 만나게 된다. 들어가면 천장까지 진열된 책들과 여유로운 분위기의 주인이 아늑한 숨결로 맞이한다. 대개 이런 헌책방은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고, 그 안에 다양한 헌책들이 종류별로 늘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이나 직원은 손님들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고, 손님이 질문을 하면 친절히 답해 주지만 그렇지 않다면 손님의 시간을 존중해준다. 온 책방을 헤집고 다니며 이책 저책 뒤적거려도 된다는 말씀. 그나저나 런던 번화가 한 복판에 이런 멋드러진 헌책방이 모여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관광지 역할도 하고 있었다. 런던 명소에 선정되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헌책방이나 책방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을텐데. 튼 J.D.Salinger의 책을 구매하고 싶었으나 찾지 못하고 Ernest Hemingway의 단편집을 학생할인 포함, 4.5파운드에 입양. (학생할인 받을 수 있냐고 물으니 학생증을 묻지도 않고 쿨하게 그 자리에서 10퍼센트 할인해주었다.) 출판된 날짜를 확인하니 1986년!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인데 여행다닐 때 가방에 넣고 다녔더니 표지 모서리부분이 구겨졌다ㅠㅠ. 원체 칠칠치 못한 성격이라 지금은 집에 모셔놓고 짬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다. 

명작을 원서로 읽는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전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글자가 직격으로 뇌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호흡을 같이한다고나 할까.. 번역서들도 '국문학'이라는 학교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가는 순간이었다. 거기다 헤밍웨이의 단편은 정말 매력적이어서, 아마도 번역판으로 읽었다면 이 매력이 고스란히 전해지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번역판이긴 했지만 그의 다른 소설들을 읽었을 때는 그다지 깊은 감명을 받지 않았는데, 이 단편들은 하나하나가 강렬하다. 구성이 단단하게 짜여 있어 짧은 분량임에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문장이 짧은 편이라서 속도감있게 진행되어 원서를 접한지 얼마 안 된 나도 읽기가 수월하다. 단편에 흥미가 생긴 계기가 되기도 한, 내 소중한 책을 만나게 해준 헌책방, 땡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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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증폭장치

 

내 친구 걔 있잖아. K. 걔가 너 좋대.”

 

Y는 핸드폰 액정을 만지작거리다가 퍼뜩 고개를 들고 친구를 쳐다 보았다. 두근두근. 자그맣게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가 이 소리를 들으면 안 되는데.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입을 열면 두근거리는 소리가 샐 것만 같아 Y는 입을 꾹 다문 채 미소만 살풋 지었다. 하지만 살짝 떨리고 만 입꼬리는 불가항력. 그런 Y를 친구는 재밌다는 듯이 계속 바라보았다. Y는 이내 고개를 돌리며, 손으로 뒷통수를 쓸어 내렸다. 민망하거나 긴장하면 나오는 그녀의 버릇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해야 두근두근하는 이 소리를 조금이나마 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

“K. 저번에 나랑 지하철 입구에서 인사한 애.”

..그래?.”

 

Y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지만 살짝 발그래해진 얼굴을 감추려 시선을 돌린 채였다. 학원이 끝나고, 12시간도 안 되어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피곤에 절어있던 귀가길이었는데 갑자기 빨리 내일 아침이 되어 다시 학원에 오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누구?”라고 반문하긴 했으나 그녀가 K를 모를 리 없었다. 쉬는 시간이나 학원이 끝날 무렵, 복도나 입구에서 자주 마주쳤던 남자 아이였다. 물론 그 아이 말고 마주치는 학생은 수 십 명이지만 유독 그 아이는 Y의 기억에 남았다. 친구와 같은 반이어서 더 자주 보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라도,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츄리닝에 간단한 티 셔츠를 즐겨 입으며 실눈을 뜨고 실실 웃고 다니는 남자아이의 모습은 이상하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K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서 언젠가부터는, 마주칠 때마다 시선이 맞닿았다. 처음에는 우연히,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보다가 거의 스쳐 지나갈 때 즈음해서 슬쩍, 얼굴을 훔쳐보면 얽히는 두 눈동자에 Y는 괜시리 화들짝 놀라 다시 앞을 바라보곤 했다.

 

걔가 인사시켜 달라던데.”

 

Y가 평정을 찾으려 할 때에 친구가 던진 말은 다시 그녀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동그란 원이 심장께에서부터 간질간질하게 올라와 서서히 퍼져 머리를 둥둥, 울렸다. 우연이, 인연으로 변하는 첫 신호가 자그맣게 들리는 듯 했다.  










#I'm back

 

할 일이 없어 늘어져 있다가, 갤러리 사진도 구경하고, 페북에 뭐 올라온 거 없나 확인하고, 그러다가 친구한테 뭐함?” 이라고 카톡을 보냈다가 답장이 없어 심심풀이의 끝이라는 카톡 프로필 사진들을 구경하기에 몰두해 있는데, 정말 우연하게도. 전 남친 K군의 사진도 보게 되었다.

 

“……사진 바꿨네.”

 

Y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사진을 클릭하여 확대해, 멍하니 쳐다보았다. 더 이상 심심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찍어 주었던 사진 속에서 K는 특유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별 거 아님에도 사진 하나 바꾼 것에 Y의 심장은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더 이상 그녀의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K가 이런 식으로 그녀의 시간에 존재의 흔적을 남길 때마다, 그 흔적을 물꼬로 과거는 시간의 경계를 부욱 찢고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오늘처럼 Y가 혼자 집에 가는 길일 때에는 그 파장이 더 크곤 했다. Y는 핸드폰 액정을 끄고 버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의미 없는 불빛과 사람들이 초침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추억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의 만남과 두 번의 헤어짐이 있었다. 첫 번째 헤어짐에는 그리움이라는 핏물이 손 닿는 곳마다, 눈길 향하는 곳마다 뚝뚝 떨어졌고, 그래서 가슴을 움켜 쥐고 울음 섞인 비명을 계속 토해냈다. 절대 익숙해질 거 같지 않던 아픔이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며 사그라들고, 두 번째 헤어짐은 조금의 눈물과 조금의 원망만을 남겼다세 번째 만남은 부재했다. 이제 완전히 을 실감하면서도 Y K가 남기는 흔적 중에 자신을 향한 것이 혹여나 있을까하는 기대마저 접지는 못했다.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이 끝나자 K Y 사이에는 다시 우연만이 남았다. Y K를 카톡에서 지우지 않고, 번호도 남기고, 페북 친구도 끊지 않은 까닭은 그 우연을 어쩌면 기다리기 때문이다. 과거의 추억에서만 만날 수 있는 K와 닿는 방법은 그것 외에는 없음을 Y는 잘 알고 있었다.

 

카톡

 

액정에 불이 들어오며 누군가에게 카톡이 왔다는 신호가 켜졌다. 톱니바퀴가 드르륵, 하고 돌아가더니 추억이 빨리감기되어 순식간에 사라지고 Y의 시선이 액정 위의 시간에 머물렀다. 친구한테서 답장이 이제서야 온 것이다. “치킨 먹음.” 과거가 다시 썰물처럼 밀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랬다. 우연에만 의지해야 할 만큼 두 번의 만남과 두 번의 헤어짐의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벼워졌고, 이제는 고작 치킨에 목을 매는 친구의 메세지가 Y에게는 더욱 현실감이 있게 다가왔다. 피식, 하고 바람빠지는 웃음을 날리고 Y는 답장을 하기 위해 손가락을 화면 위에서 움직였다







*** 


설익음, 풋풋함, 설렘, 아련함.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듣다보면 첫 사랑이, 첫 사랑과 함께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K군과 한창 사귈 때 버스커버스커가 폭풍같이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고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의 보컬은 복고풍 느낌이 많이 나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데 아주 적절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설 익었던 연애가 때도 묻고, 여기저기 구르고 치이면서 닳고 닳자 그 다음부터는 프라이머리의 노래와 더 어울리게 되었다. 프라이머리 가사가 남자 입장에서 쓰인 게 대부분이라, 연애가 과거형이 되고 나서 조금 더 객관성을 가지고 추억을 돌이킬 수 있어졌을 때 아, 걔는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담담하게 많이 들었던 거 같다. 그게 오히려 치유가 많이 되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 혼자 하는 추억 여행이고 나 혼자 하는 음악 감상이라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 당시에는 함께 걸어갔던 시간이지만 이제는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 아이와는 이제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한 때는 그리움이 향하는 곳이 추억 속의 그 아이라는 것을 모르고 현실 속에 그 그리움을 풀으려고 애쓰느라 눈이 눈물에 항상 발갛게 불어 있었다. 지금은 나 혼자 하는 추억 여행이더라도 그 그리움이 나를 아프게 하지는 않는다. 추억에게 부탁해 놓은 그 아이가 가끔 내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가 다시 사라지듯이 그리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듯이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을 어렴풋이나마 알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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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이 시끌시끌하드라. 여기까지 귀가 아프다. 그 쬐꼬만 땅덩어리에서 어쩜 그리두 치고박고 하든지. 시퍼렇게 날이 선 이빨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목덜미의 핏줄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잔혹성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검은 낱말의 조합을 통해 날 것 그대로 전해진다. 무의미한 형태소가 모여 그토록 잔인하고 치졸해질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한반도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북한에 가로막혀 대륙과의 교류가 자유롭지 못해,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섬도 아닌 애매한 땅을 기반으로 반 세기를 넘게 살아 온 사람들은 애매하게 서로를 미워하고 애매하게 서로를 사랑한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것은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처럼 닮았으나 영원히 악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닮았지만 확고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쌓아올려 배를 아프게 만드는 사촌같은 일본,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못난이 강자인 중국. 한반도 안에 갇혀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저들과 섞이지 않겠다는 그 뒤틀린 자긍심이 사람들의 발을 묶어 권태로움을 낳고 배출되지 못한 분노를 고이게 한다. 아우 저것들 꼴보기 싫어. 왜 저거 밖에 안 되는 거야? 이러니 우리나라가 발전을 못하지. 그래도 빨갱이 쪽바리 양키 짱깨 등등보다는 나아. 물론 제일 똑똑하고 정신 머리 박혀있는 건 나! 서로 잘났다고 죽어라 조폭들 마냥 끼리끼리 편 먹고 배신하고 쌈박질하는 걸 보면 2013년 판 갱스 오브 코리아를 보는 것 같다. 이 땅에 두 명의 주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는 패거리들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만큼 섹시하지 않다는 건 함정.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람들이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각자가 신념을 지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실이 있다는 믿음은 인간을 파멸로도 이끌었고 구원으로도 이끌었지만 멈춰있게 하지는 않으니까. 갱스 오브 뉴욕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암스테르담을 필두로 하는 데드래빗 파와 빌 더 부처가 이끄는 원주민 파는 결코 서로에게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그들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념을 포기한다는 것,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소멸을 의미했다. 정과 반이 만나 합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그 끝에는 선고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대상이 그러했고 이념이 그러했다. 개인적으로 매우 생소한 미국역사의 단면이었지만 현실에서든 가상세계에서든 너무도 자주 보아 왔던 극한 갈등의 구도를 통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차갑고 딱딱한 의자 위에 앉아 분필 가루 냄새를 맡으며 넘겼던 책장 속에서는 그 갈등으로 인해 죽어간 사람들이 끊임 없이 나열돼 있었으니까. 칼이든 총이든 펜이든 저마다 무기를 들고 자신의 목숨을 뜯어 내어 적진에 내던지던 그 사람들. 거대한 절대적 진리 앞에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역사를 위해 수 없이 많은 개인이 제물로 바쳐졌다. 죽음으로 다가가는 기분은 어떠했을까. 상대방을 죽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기 때문에 무기를 휘두르는 기분은 어떠할까. 초월한다는 것은 아마 그런 것일 것이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애인, 누군가의 부모로서가 아니라 흐르는 역사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 





하지만 문제는, 그렇다면 그 갈등의 승자는 누구이며 승자를 결정하는 것 역시 무엇인가라는 판단기준. 갱스 오브 뉴욕이 재밌는 이유는 암스테르담의 복수를 보며 사람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때문만이 아니다. 빌 더 부처라는 캐릭터가 보이는 매력이, 그의 정당성이 암스테르담 만큼이나 강렬해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미친놈은 전기의자에 앉혀 지지만 이유 있이 미친놈은 왕좌에 앉는다. 그는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자신만의 신념이 있었고 그 신념은 결코 비논리적이거나 어처구니없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자신의 국가를 지키고 조상의 피땀을 지키고자 하는 그 신념은 충분히 이해가능했고 마땅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암스테르담과 빌 더 부처는 서로를 인정했다. 상대방의 신념과 태도를 높이 샀으나 다만 그들이 처해 있는 시대상에 의해 서로에게 칼을 겨눌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대립하는 두 가치의 우열은 정해져야 했고, 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의 기준이 제시되어야 했다. 갱스 오브 뉴욕에서는 그 해결 방법이 파이브 포인츠에서 행해진 전투(일종의 대장 죽이기..)였고 지금 갱스 오브 코리아에서는 머리 수 싸움인듯 하다. 


어찌보면 상당히 무식하다고 볼 수 있는 무력싸움은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하여 그렇다 치고, 수싸움이야 뭐 민주주의의 토대이니 이거 역시 물고 늘어지고 싶지는 않다. 민주주의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라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테고, 또 인간은 진리를 알아내고 받아들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왜 2013년 현재의 수 싸움이 1840년대때 무력싸움 마냥 사람들이 악에 받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1840년대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혼돈의 시대에서 신념을 위해 무력을 써야만 했다. 오늘은 다르다. 싸움에서 진다 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이 틀렸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생사와 직결되지 않는다. 무엇이 더욱더 진리에 가까운지 충분히 심사숙고해 볼 여건이 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소리만 고래고래 지른다. 내가 제일 잘났다는 그 오만함이 자신의 신념을 아집으로 격하시킨다는 것을 모르고 상대방을 그저 비웃고 찍어 내리기에 바쁘다. 서로가 자신이 진짜라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는 내가 진짜니까,라는 동어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로 진리를 추구하려 한다면, 자신이 옳은 길로 가고 싶다면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언제나 지녀야 하는데 한국의 갱들은 현재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우리끼리 물고 뜯고 싸워 봐야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전투 후 파이브 포인츠에 길게 늘어져 있던 시체가 생각나는 하루다. 이미 전효성양은 일밍아웃되어 그 무더기에 던져졌고.. 더 이상의 큰 소모적 갈등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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