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

부드러운 노란 빛의 조명이 좋다. 따뜻한 우유의 부드러움 끝에 살짝 씁쓸한 맛이 묻어 나오는 카페라떼도 좋고,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것도 좋다. 기계음 사이로는 재즈 보컬의 굴곡진 목소리가 앞 서거니 뒷 서거니하며 흘러 나온다. 좁고 긴 카페 공간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까지 포함하여 세 명. 모두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은 말하지 않지만, 카운터의 주인 아저씨와 가끔 테이크 아웃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가 침묵의 공간을 잠시 떠돌다 사라진다. 


-

산뜻하게 목욕을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은 다음, 화장도 최소한으로 하고 카페로 나오자 이런 아늑한 분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부다 좋다. 보송보송한 머리며, 좋아하는 향수 냄새며, 선선한 바깥 날씨와 꽃 내음, 따뜻한 커피, 1000원 짜리 쿠키 세개. 시험 기간이라서 내 왼쪽에는 프린트가 한 무더기로 쌓여 있지만 여느 때와 달리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형광펜으로 색칠을 할 일조차 즐겁게 느껴진다! 요새 내내 학교 도서관에만 박혀 있었더니 간만의 여유로움이,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이 참 소중하게 다가 온다. 동네 카페의 매력이란. 


-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내 가방 안에 고요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까다로운 책이다. 이 아늑한 분위기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손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순간 내 주위 문명을 모두 잿빛으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다) 


-

아, 모든 속삭임과 평화로움을 한 순간에 무너 뜨려 버리는 큰 목소리가 음료수 세 잔을 주문하고 이어서 네 개의 발소리가 들려 온다. 모두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기란 이렇게 어렵다. 짧았던 아늑함이여 안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꿈꾸는 서재의 모습.. 카페같이 편안한 분위기에 커다란 책장.


내 방에는 책들이 항상 쌓여있다. 책꽂이 공간이 부족해 그 위로 가로로, 혹은 책상 위에 겹겹이, 침대 옆에 몇 권, 활용가능한 공간 곳곳에 그들은 무질서하게 놓여 있다. 그렇게 쌓여 있는 책들을 바라보면 거대한 미지의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지인의 추천을 받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을 발견하고, 혹은 서점에 그냥 들어 갔다가 제목이나 책 소개글을 읽고 충동적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구매욕구가 일어나 등등의 이유등으로 입양해 온 책들이다. 저마다의 우주를 안에 품고 조용히 책꽂이에 잠들어 있는 책들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듣고 싶기도 하고, 자꾸만 침묵 속에 내버려 두는 것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광할한 세계로의 발을 디디려고 할 때마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함에 자꾸만 미뤄두게 된다. 그래서 손이 닿지 않는 곳은 계속 멀어져 가고, 새로운 책들은 또다시 유입되어 미지의 세계는 더더욱 커져만 간다. 


이렇게 닥치는 대로 수집해 놓으면 언젠가는 읽으리라고 생각했고,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의 욕심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속으로만 쌓아 놓고 있는 책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나는 나의 할렘을 위하여 매력적인 책들을 나의 서재로 끌어들여 놓고는 내 손에 들어온 이후로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무책임한 술탄과도 같았다. 장시간 책장 속에 방치되어 있던 책들에게 먼지가 쌓인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단 한 번도 나의 손을 타지 못했던 책들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나를 '먼지'를 통하여 나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당분간 책을 사는 것을 그만 두었다. 책이 정말 사고 싶다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책, 나에게 와서 꽃이 될 그런 책만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어떠한 책을 읽고 난 후, 그 책을 읽고 연상되는 물음이나 그 책과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 혹은 같은 주제이지만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책을 그 다음에 선택하는 것이다. 충동적인 구매 욕구가 드는 책들은 사진을 찍어 놓거나 제목을 적어 놓고, 다음에 그 책과 관련된 책이 나타날 때 읽기로 하였다. 최근에는 그래서 읽고 있는 책들이 '양철북' '우울할 땐 니체' '지하생활자의 수기'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이다. 그 전에는 '유니타스 브랜드 매가북'을 읽고 '시뮬라시옹'을 연달아 읽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시뮬라시옹'을 다 읽지 못했군.. 


이렇다 보니 여러 장점이 생겼다. 일단 책 읽는 것에 대한 흥미가 더욱 올라간다. 전에 읽었던 책에서 받았던 느낌이나 생각이 다음 책을 읽는 동안 생각나고 관련된 글귀가 떠오를 때마다 짜릿함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번쩍'하고 머리 속을 밝히는 느낌이다. 두 번쨰로 이해도가 높아진다. 같은 주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더 자세한 설명이 들어간 책을 만나면 전에 모호했던 부분이 안개가 걷히듯 명확해지고, 다음 책을 읽을 때에도 그 책을 미리 읽지 않았더라면 와닿지 않았을 부분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더 잘 기억나기도 한다. 책 지도가 그려지고 책 사이사이에 이정표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는 충동구매를 최대한 자제하게 되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덜 된다. 


단점이라면, 병렬적으로 책을 선택하게 돼서 간혹 중간에 누락되는 책이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자해야 할 것 같다. 여기에 책 두 번씩 읽기라는 목표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정말 완벽할 텐데.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을 연결하여 그 관계를 정리한 포스팅도 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이요 JD. 뭐해.

-책 읽어.

-뭔데 뭔데?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아 그거. 나 좋아해. 근데 존 레논 암살자가 체포 당시 이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 때문인지 암살자와 범죄자들의 애독서라는 얘기가 있어. 좀 웃겨. 콜필드는 누구를 죽일 사람이 아닌데.

-콜필드 좀 귀여운 듯?

-난 그 부분이 제일 좋아. 콜필드가, 예쁜 여자친구 샐리를 찾아 가서 자기랑 도망치자고 하는 부분. 그러다 결국 샐리를 울리지. 정말 콜필드스러워. 여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여자 없이는 못 살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저지르고, 자기가 이 세상과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고칠 생각이 없어.

-동생 피비를 찾아가는 것도 재밌어. 피비가 너무 귀여워.

-너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군.

-지금 너 말고 피비가 침대 위에 앉아 있다면 좋을 텐데.

-나, 콜필드가 피비 사주려고 샀던 음반 진짜로 있는 음반인 줄 알았어. 나도 들어보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안 나오는 거야.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나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어떤 사람이 친절히 써 놨더라. 가공의 음반이라고. 더 멋있지 않아?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피비와 콜필드만 들을 수 있는 음반인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의『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도 비슷한 게 나오는데. 가공의 작가 데릭 하트필드.

-그러고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도, J.D. 샐린저도 『위대한 개츠비』의 팬이네?

-나도.

-은근슬쩍 끼지마.

-진짜야.

-ㅇㅋ

-ㅇㅇ

-피츠제럴드의 표현력은 어마어마한 거 같아. 너무 요란하지도, 너무 건조하지도 않아. 개츠비의 분홍 정장은 정말 끝내줘. 개츠비의 성격이 딱 보이지 않아? 난 이 정도도 소화해 낼 수 있지. 이 정장도 어마어마하게 비싸다고. 데이지 나 좀 봐봐. 톰은 이런 거 못 입어.

-그런데 데이지한테는 오히려 역효과지.

-응. 옥스퍼드 출신은 분홍 정장을 안 입으니까.

-닉이 데이지를 만나러 처음 갔을 때 장면 기억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열기구처럼 두둥실 떠 있다가, 톰이 창문을 닫으니까 소파 위로 내려 앉았다는 그 장면. 나 진짜 감탄했잖아.

-웨딩케이크같은 천장도.

-돈의 냄새. 킁킁.

-난 처음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를 읽고 나서였어. 거기 주인공이 『위대한 개츠비』를 사랑하거든. 웃긴 게 뭔지 알아? 『상실의 시대』읽은지가 너무 오래돼서 지금은 주인공이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했다는 것만 기억이 나.

-다시 읽으면 되겠네.

-지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걸작선을 읽고 있지롱. 『해변의 카프카』나 『상실의 시대』는 좀..뭐라고 하지 그로테스크한게 있었는데 이 단편걸작선이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좀더 산뜻한 느낌이라 좋아.

-책을 느낌으로 읽으면 안 되지. 넌 너무 책을 술술 읽는 경향이 있어. 씹어 먹을 듯이 달려들란 말야. 검은 게 글자요, 하얀 게 바탕이니~하며 눈동자만 굴리지 말고. 그 한 단어 쓰는 데 얼마나 깊은 고뇌가 있었겠어. 한 문장이라도 버릴 게 없는 게 소설이야. 책 읽기 좋은 날씨니 계절이니 하는 것도 우스워. 가을이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라구? 오죽 책을 열심히 안 읽으면 계절 정해서, 분위기 따라서 읽을까. 다 끼워 맞추기 마련이지. 봄,여름,겨울은 뭐 안 좋은 계절인가?

-글쎄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책 읽기 좋은 분위기는 있지 않아? 책이 가득 꽂혀 있는 도서관, 좋은 노래를 틀어 놓는 창문이 아주 큰 카페, 따뜻한 내 방 이불 속 등등. 지하철 안도 좋고. 아,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중에 '택시를 탄 남자'라는 단편이 있어. 거기서 어떤 여자가, 주인공한테 '택시를 탄 남자'라는 제목의 그림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 그 그림 속 남자는 택시에 갇혀 어디론가 '이동' 중이란 말야. 근데 나도 지하철 안에 갇혀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거든. 잠깐만, 뭐라고 하냐면..여깄다.

너무나도 오랬동안 그 <택시를 탄 남자>를 바라보았던 탓에, 그는 어느 틈엔가 제게 있어서 분신 같은 존재가 되었어요. 그는 제 심정을 이해했던 거에요. 저 역시 그의 심정을 이해했고요. 저는 그의 슬픔을 이해했어요. 그는 '범용'이라는 이름의 택시 속에 갇혀 있었던 거죠. 그는 거기서부터 빠져 나올 수가 없었던 거에요. 영원히 말이죠. 진정한 영원 말입니다. 범용함이 그를 거기에 있게 하고, 그리고 범용한 배경의 우리 속에 가두었던 거지요. 슬픈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나는 지하철을 탄 여자였던 셈이지. 순간 나와 그 여자와 택시를 탄 남자 사이에 sympathy가 형성되는 것만 같았어. 앞으로 지하철에서 책 많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얘기가 센 감이 있지만 뭐 괜찮네.

-애초에 우리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시작했지.

-『호밀밭의 파수꾼』과 『단편걸작선』은 비슷한 점이 많아. 정신없는 스토리 전개도 그렇고 정신없는 주인공들도 그렇고.

-너무 거칠게 묶어버리는데?

-굳이 좀 더 표현하자면, 콜필드는 굉장히 불안정하지. 일단 성인도 아닌데 퇴학까지 당했어. 돈도 없고. 나이, 직책, 돈 이 세가지가 다 없단 말이야. 그런데 무작정 돌아다니지. 술도 마시고, 피아노 연주도 듣고, 창녀를 사기도 하고. 당연히 잘 될리가 없지. 근데 웃긴 건, 만약 콜필드가 성인이고, 직책이 있고, 돈도 있었다면 이 소설은 굉장히 재미 없었을 거야. 바꿔말하면 '완전함'이라든지 '안정' 자체가 참 웃기고 따분하단 거지. 왜 모두들 완전해지려고 하는 거지? 아이들을 봐. 콜필드가 말했듯, 아이들의 일기장은 정말 끝내줘. 언제 읽어도 재밌지. 하다못해 내 어렸을 적 일기장도 재밌어. 아이들은 언제든 호밀밭에서 뛰쳐 나가고 호밀밭을 파괴하려해. 어른이 되면 그 누구도 그러지 않아. 호밀밭의 파수꾼에게 어른은 필요 없어. 아이들만이 그의 관심 대상이지. 콜필드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거야. 불안정함을 일부러 유지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그와 같아. 다들 어딘가 불안해 하고, 어떻게 보면 철이 없어. 여자 26명이랑 자고 진득한 연애를 못하는 사람도 있고, 빵가게를 습격했다가 나중에 아내와 햄버거 가게를 습격하기도 하고, 남편이 레더호젠을 입은 모습을 상상하고 정이 떨어져서 이혼하기도 해. 그런데 그 미성숙함과 불안정함이 소설을 탄생시켜.

-그렇게 치면 『위대한 개츠비』도 마찬가지네. 개츠비도, 톰도, 데이지도 미성숙하고 불안정하지. 그리고 다들 또라이야. 데이지는 예쁘게 생겨서는 아름다운 영국제 셔츠만 보면 눈물을 흘리는 병이 있었지.

-개츠비는 핑크색 정장을 입고.

-콜필드는 사냥용 빨간 캡모자를 썼어.

-너는?

-너랑 이러고 있지.

 

2013년 추운 겨울 집 안에서, 곰돌이 JD와 함께. J.D.샐린저의 사망일이 다가오는 기념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참 어리다. 말랑말랑하고, 물컹물컹하고, 어딘가 설 익었다. '어리다'는 것과 나이는 상관이 없다. 온전한 하나의 개체가 되는데에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불안정하고 여기저기 잘 휩쓸리고 단단하게 여물지 못한, 너무나 두서없고 솜털 같아서 언제든지 폭풍 한 가운데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런 자아를 가지고 있다. 단단한 껍질을 지니지 못한다는 건 참 힘들다. 외부의 충격을 온 몸으로 흡수해 눈물로 짜내게 되니까. 물론, 충격의 근원지에는 약간의 반작용만 가해질 뿐이다. 게다가 껍질 없이 무한정 팽창한 솜사탕 같은 자아는 필히 어딘가 툭 튀어 나온 고리에 긁혀나가게 되어 있어, 항상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바심을 내야 한다.

 

최근 들어 또 조심성 없이 세상을 다 담아내겠다고 몽실몽실하게 피어오르던 내 자아가 불 꺼진 열기구마냥 급격히 쪼그라든 일이 있었다. 자아의 팽창은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바람, 적당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 즉 온실처럼 외부와의 차단이 되어 온전히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그 안에 틀어 박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조건인 것이다. 나는 온실 바깥으로 나갔다가, 책과 영화에서만 접하던 섬칫한 냉기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어김없이 온실 안으로 돌아와 '힐링'을 바라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내가 내 뿌리로 실제 대지 위에 자리 잡아 양분을 빨아 들이며 실제의 하늘을 향해 뻗어나갈 일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내 힘과 피와 땀을 들여 내 안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기생수처럼 살고 싶지는 않기에 벌레같은 나의 몸뚱아리를 느끼고 좌절했다. 이럴 때는 달콤한 케이크도, 뜨뜻한 말 한마디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처럼 그것들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실감할 때도 없다.

 

그러다 보니 책도 안 읽게 되더라. 억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타인의 아픔과 기쁨에 공감하고 싶은데 나의 이런 면이 타인에게는 사자의 눈에 잡힌 어리버리한 얼룩말로 보이니 말이다. 혹은 오통통하게 살이 오른 육질이 부드러운 돼지. 약육강식이 전제되어 있는 사회에서 아무런 칼도, 방패도 없이 내미는 손은 그대로 잘려 나가 금가락지만 빼내고 개밥으로 던져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아니 애초에 사회는 어떤 사람들이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도 뱃속에 칼을 숨겨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회의가 들어, 그동안 나에게 감명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배를 따뜻하게 지폈던 책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도 읽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손에 집은 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었다.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는 친구가 추천했던 책이라서 읽고 싶었던 와중에 시간이 남아 잠깐 들렸던 신촌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얼핏 안을 살펴보니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고양이로소이다』, 『산시로』, 『그 후』에 비교했을 때 분량이 적고 내용도 가벼웠다. 쉬어 가는 시트콤 느낌이랄까. 그렇게 머리를 식힐 겸 읽기 시작해서 정말 이틀 밤 만에 후딱 읽어 냈다. 게다가 표지와 속지가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는 산뜻한 디자인이라서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최근들어 삽화가 들어 있는 책을 읽은 것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민음사판 뿐이라서 약간 어색한 기분까지 들 정도 였다. 삽화가 있고 없고는 참 차이가 크다. 상상력을 제한하는 삽화는 잘못된 삽화다. 읽는 사람이 끄적거리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최근에는 책에 밑줄을 긋는 것도 나중에 그 부분을 다시 읽을 때 누가 옆에서 스포일러 하는 기분이라 되도록이면 긋지 않으려고 한다.) 그 이미지에 상상이 달라붙어 버리면 그 책에서 내가 어떤 부분을 좋아했고, 싫어했고와 상관없이 그 이미지로 책에 대한 기억이 구축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중고로 사들인 책의 삽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해석의 여지를 풍부히 남겨두는 편이라서 좋았던 것 같다. 너무 알록달록하긴 했지만 나름 시트콤같은 느낌과도 어울렸으니 뭐.

 

 

 

 

게다가 무려, 이 책의 삽화가께서 지인분께 선물하신 책이었다:) 이런 우연이! 안 그래도 글씨체가 참 예쁘다란 생각을 했는데 참 신기했다. 중고책의 매력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정말 의도치 않게 타인의 삶과 교차하는 느낌! 내가 삽화를 그린 책을 지인에게 선물하는 기분을 잠시나마 느껴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선물 받은 책을 중고로 내놔야 했던 사정이 무엇일까 아쉽기도 하고.

 

튼 내가 만난 나쓰메 소세키의 4번째 소설은 참 신선했다. 무엇보다, 주인공 도련님이 겪는 좌충우돌의 세상사가 내가 앞으로 겪어나가야 할 세상의 풍파같아서 참 절절히 와닿았다. 나처럼 속터지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어린' 도련님은 정직함과 예의가 있다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도련님을 인정해주고 비웃지 않는 것은 기요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도련님은 말 그대로 '도련님'이다. 이 도련님에 담긴 뉘앙스의 잔인함이란. 이 단어 하나로 순식간에 한 사람의 인격이 가치 절하되고 그 사람의 미래 마저 비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소설 내용이 웃기긴 한데 마음껏 웃지는 못하고 웃다가 자꾸만 한 숨 푹..쉬고 그랬다. 도련님이 너무 나랑 비슷해서. 나 역시, 속은 텅텅 비었으면서 겉만그럴듯하게 포장해 자신을 내세우고 남들에게 손해를 입히면서까지 자신의 안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고고하게 고개 빳빳이 들고 진흙탕에 같이 나뒹굴지 않으려다가 나도 도련님처럼 호되게 당했버렸던 것이다. 기요나, 센바람, 끝물 호박 선생같은 사람은 많지가 않다. 정말이다. 딸랑이처럼, 빨간 셔츠처럼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괴롭히고 만만하게 봐서 안 그래도 소수의 '도련님'같은 사람들을 음지로 내몰거나 자기들처럼 바꿔버린다. 어렸을 때 죽어라 들려 주는 콩쥐팥쥐 이야기나, 왕자와 거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대체 누구 좋으라고 만든 건지 모르겠다. 모두가 약아지면 안 되니까 나같은 애처럼 물러터진 애 몇 명을 '도련님'으로 키워 나중에 뜯어 먹겠다는 음모가 아닐까.

 

1906년에 씌인 소설인데 세상 사는 모습은 참 똑같다. 그러고 보면 나쓰메 소세키는 정말 놀라운 작가다. 얼마 전에 읽은 『그 후』만 해도 분위기가 얼마나 어두웠는데. 시뻘건 색은 자꾸 등장하고 어디서 진득한 백합향은 자꾸 나고 비도 오고. 『산시로』나 『그 후』에서는 주인공이 화자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주인공의 관점에서 소설이 진행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같은 경우는 고양이가 화자이고, 『도련님』도 도련님이 화자. 즉, 각 소설에는 주인공의 생각, 말투, 행동, 사상 등이 모조리 싹싹 담겨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 거대한 우주를 지금 무려 4번이나 창조해낸 것이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도련님』의 분위기가 비슷하고, 『산시로』와 『그 후』의 분위기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 비슷하다는 것도 붉은 계통과 푸른 색 계통끼리 비슷하다는 거지, 그 안에서도 천차만별로 다양한 매력이 있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구상과 고민과 노력 끝에 하나의 소설을 탄생시키는 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이다. 분만의 고통 저리가라! 이렇게 슈퍼 우량아를 매 번 낳으려면 10개월은 택도 없고 낳고 나서 산후 조리는 두 배로 해야 할 게 분명하다.

 

재밌었다. 도련님이 저렇게 깨지고 멍들고 모욕 당해도 끝끝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내게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니라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나한테 누가 아가씨라고 놀려도 그래, 나 아가씨 맞다. 그러는 넌 뭔데? 하고 그 사람에게도 제멋대로인 별명을 갖다 붙일 수 있을 만한 자신감. 혹은 깡다구. 고마운 나쓰메 소세키 아저씨다, 과연.

 

  참 산뜻한 표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분이 묘하다. 잠이 안 와서 안 자다 보니 의도치 않게 밤을 새 버렸다. 점점 생활 패턴이 이상해 지고 있다. 이러다가는 나중에 교환학생 가서 시차 적응을 따로 할 필요가 없겠어! 올레! 주위 사람들과 다른 생활 패턴을 산다는 건 조금은 생소한 체험이다. 거기다가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가 흘러 나오니 더해지는 몽환스러운 분위기가 아주 좋다. 특히 Brain Damage라는 곡은 참..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I'll see you on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에서, 어떤 미래를 위해 상대방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일단 지구인은 아니야. 지구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살 수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 고통 때문에? 갈등 때문에?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 희미하게 들려 오는 웃음 소리는 자기 자신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정신 나간 세상에서,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은 오히려 정상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 어쩌다가 심지어 지구에서도 볼 수 없다는 달의 어두운 저 편에서 만나자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인지 나로서는 참 이해가 힘들다. 지구인들의 시선마저도 닿지 않는 그 곳에서만 평화로울 수 있는 사람들. 핑크 플로이드는 그래서 지구인들의 가슴을, 머리를 초월하는 이런 곡을 만들 수 있었나 보다. 카톡마저 잠잠한 이 새벽에, 마치 창문 밖에 바로 달이 커다랗게 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Brain Damage는 참 묘하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나도 아무도 찾지 않는 완전한 고요함. 문득, 저녁에 친구들과 갔던 카페의 카페라떼가 그립다. 나는 카페인을 매일 매일 수혈해 줘야 하는 걸 보니 어쩔 수 없는 지구인임이 분명하다. 보기 좋은 글은 읽기에도 좋다고, 듣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글을 위해! 핑크 플로이드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자켓 사진과 커피 사진을 살포시 첨부.



알라딘 서재에 손가락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을 붙이는 정도는 시간의 길이와 별로 상관이 없는 듯 하다. 페이스북, 카톡, 싸이월드보다 (트위터는 하지 않으니) 더욱 애착이 가는 곳이 바로 이 알라딘 서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아직은 생소한 부분이 더 많다. 긴 글을 쓰는 것이 손에 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자에서 카톡으로의 이동은 전송하는 낱말들의 조합을 점점 더 간단해지고 단순해지게 만들었고, 현재의 상태를 업데이트하라는 페이스북의 메세지창은 그야 말로 지금 현재의 순간적인 상태에 관한 글을 낳게 했다. 그래서, 정성들여 꼼꼼이 써야 하는 '책' 리뷰도 어느 순간부턴가 에이포 용지 한 장을 넘겨 쓰기가 힘들어 진 것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이음새가 거칠고, 시작과 끝이 일관적이지 못하다. 생각나는 대로, 고심을 거치지 않고 지껄이는 것에 익숙해진 바람에. 그래서 많은 부족함을 느낀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난 후에는 반드시 그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확인하는데 그 때마다, 깊은 애정과 고심을 거쳐 탄생한 리뷰들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나의 리뷰를 다시금 확인하고 씁쓸한 마음을 곱씹게 된다. 하아..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ㅠㅠ. 소림사에 멋도 모르고 들어 온 동자승이 고승의 하얀 수염만 봐도 기가 죽는 것 마냥 그렇게 나는 쪼들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나의 독서 여행은 앞 길이 창창하니까. 부족한 만큼, 앞으로 채워나갈 부분이 많다는 것이니까. 긍정적인 마인드로 계속해서 열심히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 겠다. 그렇게 리뷰를 100편 넘게 쓸 때 즈음 되면, 나에게도 단단한 손 끝과 섬세한 이해력이 장착돼있으리라 믿는다. 하핫. 의욕 없이 추욱 처져 있던 나에게 자극을 주는 친구를 만나서 기쁘당. 이상 새벽, 아니 이제는 아침의 어제 일기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