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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노트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애숙 옮김 / 삼천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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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안에는 무엇이 있나요?

 

히로시마 노트의 무게는 굉장하다. 무덤덤하게 써 내려간 오에 겐자부로의 글자 하나하나에는 인간의 위엄이라는 무게가 실려 있다. 저승사자의 명부에 적힌 것 마냥 사람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접할 때마다 섬찟섬찟 놀라게 된다. 내 이름이 적혀 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상상은 하기조차 싫다. 내 안의 히로시마 인간은 이 노트를 직시하라고 명하고, 내 안의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이 노트를 한시라도 빨리 잊으라고 명했다.

 

잊는다는 것. 고통을 잊는 것과 참는 것은 다르다. 고통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유흥에 빠지고, 마약을 한다. 고통을 참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보다 냉정하고 철저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고통 받을 수 있으며,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고통 받을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불쑥 찾아올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고통은 평등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고통을 망각할 것인가, 품고 갈 것인가가 된다.

 

인간은 인간이라고 해서 무조건 존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성’, ‘휴머니즘’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인간에 대한 단어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인간은 바로 고통을 품고 살아가며 '지나치게 절망하지도 희망을 품지도 않는 현실적인 인간‘이다. 세상 속에 떨어진 피조물에서 인간성을 지닌 ’정통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고통에 대해 인내하는 것이다. 고통을 인내하는 그 도덕관념에 바탕에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 비참하고 억울한 현실일지라도 현실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은 현실에 속한 자신과 또 타인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현실 속에 존재하며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 보편적인 인간,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의 인간이라는 인식은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타자의 아픔에 공감함으로써 자기 치유는 시작되고 고통은 참아낼 수 있는 것이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그 아픔에 대한 책임의식 역시 느낄 수 있다. 히로시마 노트를 읽으며 그들의 고통에 인간적인 존경심을 느끼고 한 편으로는 책임감마저 느낄 수 있는 것은 내 안에도 히로시마 인간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사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나몰라라한다는 것은 나 역시 고통으로부터, 현실의 부당함으로부터 도망가려는 것이며 이는 곧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침묵할 권리는 히로시마 사람들에게만 있다. 그들의 외부에 있는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침묵할 권리가 없다. 적어도 ‘모럴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라면.


* 이때 즈음 나의 가치관이 확립되었었다. 인간이라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선 안 된다 라는. 오에 겐자부로가 히로시마 노트를 통해 보여준 '모럴리스트'는 바로 그런 인간이다. 담백한 문체 하나하나에 실려 있는 무게감이 엄청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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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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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흉한 로맹 가리씨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음흉하다고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음흉하다. 그런 의미에서 로맹 가리는 음흉하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 속에 숨어 수 많은 평론가와 독자들을 물 먹인 그에게서 관음증적인(?) 취미를 엿볼 수 있다. ‘로랭 가리는 절대 이런 작품을 쓸 수 없다!’고 외쳤던 평론가들을 바라보며 그는 속으로 얼마나 코웃음을 쳤을까. 익명성의 맛을 1975년에 깨우쳤다니 그는 진정으로 21세기형 인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시대에 벌써부터 아바타를 창조해낼 정도로 미래지향적이었던 그가 수 십년 후에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았다면 무릎을 치며 통탄했을 것이다. 젠장, 좀만 더 늦게 태어날 걸!하고.

 

한 편으로는 에밀 아자르라는 분신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절박함이 이해가 간다. 자아 정체성이란 자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자아가 존재하려면 동시에 타자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나 하나만 있었다면 아마 나는 그 세상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타자가 존재함과 동시에 경계가 그어지고, 자아 정체성은 만들어 진다. 타자가 바라보는 나가 자아 정체성에 포함되는 것이다. 로맹 가리는 평론가들이 만들어 내는 자신의 정체성이 상당히 맘에 들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잘못 이해되는 연애 편지 마냥 자신의 의도한 바를 파악해 내지 못하고 엉뚱하게 읽혀지는 소설들이 불쌍했을까? 그는 로맹 가리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되는 소설을 쓰기 위해 에밀 아자르라는 분신을 만들게 된다. 아무래도 대중과 소통하는 위치에 있을수록 자아와 타자가 만들어 내는 정체성 간의 괴리는 심해지는 것 같다. 아이유 사건만 봐도 그렇다. 아이유는 대중이 만들어낸 순수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녀라는 정체성에 얽매인 나머지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픈 자신의 정체성은 숨겨야만 했다. “에이, 아이유가 그럴 리가 없어!” 에이, 로맹 가리가 저런 작품을 어떻게 써?”는 상당히 비슷하지 않은가.

 

에밀 아자르가 사실은 로맹 가리라고 밝혀졌을 때 아마 사람들은 아이유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삼촌팬들 마냥 분노했을 것이다. 미친 것 아니냐며 손가락질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 앞장에 나와 있듯,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 (이건 딴 얘긴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이유를 응원한다. 인생 쓴 맛을 충분히 보았을 테니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고 앞으로 자신의 욕구에 솔직해지고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아무튼, ‘자기 앞의 생도 경계선 밖으로 내팽겨쳐진 미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미친 소년인 모모의 말에 비난을 던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모모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를 동정하기도 하고 그에게 감탄하기도 했다. 왜냐면 모모에게는 그 세계가 바로 정상이고, 창녀들에게서 아이를 빼앗고 동포애라는 구실로 다른 민족에게 테러를 가하고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며 인간을 고문시키는 그 세계가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있고 교육을 받으며 국가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모모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모모는 불행하다고 하지만, 그 불행은 아마도 이 세상을 너무나 많이 알기 때문에 생긴 불행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진정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그 경계선 안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내모는 것이 진짜 정상이고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존엄해야 하고, 소중해야 하고, 존중 받아야 하고, 어쩌구 저쩌구..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63p) 그냥 생은 그 자체로 생이다. 굳이 나누고 분류하고 정의하고 비교함으로써 불행과 행복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쓰면서 가장 재밌었던 에세이. 막판에 가서는 흥분하기까지 했다. 저때 접했던 책이나 영화, 뉴스들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거기에 자극받아서 맞아, 사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습이나 규칙은 전부 인위적이고 허구적인 것에 지나지 않아! 라고 혼자 속으로 분노했었다. 그 뜨거운 김이 에세이에도 나타났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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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폐범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9
앙드레 지드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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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소설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베르나르라는 소년이 가출을 결심하고 있다. 그에 대해서는 여타 설명도 없고, 그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 역시 짐작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어째서 그가 양부로부터 사랑을 못 느꼈는지, 어쩌다 그의 어머니는 사생아를 낳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렇게 사건은 난데없이 시작되고 자기 스스로 굴러간다. 소설 등장인물들의 개별성이나 특별함을 나타내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갑작스런 서술자의 등장도 당황스럽다. 실컷 이야기에 빠져들 즈음, 서술자는 독자의 귀를 잡아당기며 나타나, "이건 소설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주저리주저리 간섭을 늘어놓는 서술자의 존재와 '독자'라는 단어의 언급에 독자는 자신이 인생의 단막극을 지켜보는 관객이 된 기분을 느낀다. 완전히 소설에 몰입하지 못하고 소설이 던지는 의문에 놀라고 고민하게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독자는 거대한 과제를 직면하게 된다. 이 소설의 서술자는 대체 누구인가? 에두아르가 구상 중인 위폐범이라는 소설이 바로 이 위폐범들이라면, 서술자는 에두아르인가? 하지만 소설에 나와 있듯 에두아르는 서술자를 '대변하는'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역시 창조된 인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서술자가 창조한 위폐범들 안의 창조된 에두아르가, 또 다른 위폐범들을 창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위폐범들 안에는 또 다른 에두아르와 또 다른 위폐범들이 존재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서술자 역시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위폐범들 안에 존재하는 독자적인 상상체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추리해 나가다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의 그 말씀이 바로 소설의 서술자의 시초가 될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의문들은 독자가 독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하며 소설을 다시금 재구성하게 만든다.

 

내가 생각한 '위폐범들'의 의미는, 속고 속이는 행위로 나타날 수 있는 비극에 대한 경고이다. 544p에 달하는 소설 중에서 정작 위폐가 등장하고 위폐를 통용하는 과정은 그리 비중이 크지 않다. 세 꼬마들이 경찰로부터 경고를 받고 위폐를 사용하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에도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 어째서? 바로 그 꼬마들이 지니고 있던 욕망, 남을 속이며 얻는 희열에 대한 욕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은 보리스의 죽음에서 이야기를 끝낸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병'을 지니고 있던 가엾은 소년 보리스는 이 모든 속이고 속이는 위선적인 행위를 상징하는 관념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관념의 종말을 의미하는 한 발의 총성은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진실을 거부하는 모든 욕망에 대한 경고로 울려 퍼진다. 이 외에도, 소설 속에서 가장 사적이고 가장 진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일기가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이 조금은 뜬금없이 일장 연설 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들은 보다 진실에 가까워질 것을 요구하는 소설의 장치들이라고 생각한다.

 

주저리주저리 말했지만, 이 역시 나의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인 인간과 사회의 양태를 독자에게 보이며, 자기 나름대로 소설의 의미를 재구성해보게끔 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이 소설은 독자가 없으면 완성될 수 없는, 독자마저 하나의 주인공으로 상정하는 그야말로 진짜 소설인 것이다. 작가 위화는 천 만명이 읽으면 그 소설은 천 만가지의 소설이 되며, 작가마저도 그 소설의 독자가 되어 또 다른 소설을 만들어낸다고 하였다. 앙드레 지드가 자신의 유일한 '소설'이라 칭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 가장 인상 깊었던 책 임에도 불구하고, 에세이로 쓰는 순간 내가 책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시켜 버린 것 같아 찜찜했던 기분이 들었었다. 자세히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산으로 가는 듯한..그만큼 치밀하게 독서를 하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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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사용법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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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012년 10월 15일이고, 저녁 7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다. 시험공부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는 어서 빨리 과제를 와이섹에 제출하는 것을 마친 상태여야 한다. 그녀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과 딸리는 필력때문에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컴퓨터 화면의 창 안에는 로그오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여주는 청색의 작은 네모들이 몇 개 남아있지 않다. 타자를 두들기는 손가락은 초조함에 자꾸만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그녀는 연세 맨투맨에 편한 스키니진을 입고 있으며, 운동화를 신은 발 역시 멈추지 않고 달달 떨리고 있다. 그녀는 아마도 지금 자기 자신을 묘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녀는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묘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대체 이 소설의 화자는 누구인가? 발렌인 것 같은데 발렌의 죽음 옆에 놓여져 있던 배치도는 소설의 미칠 듯한 섬세함과 치밀함과는 너무나도 대비되게 단순 명료하다. 혹시 발렌이 그 건물에서 누구보다 오래 살았다는 것은, 아주아주 먼 옛날부터 살고 있던 존재로 죽지 않는 불사신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래서 개개인의 사소한 비밀들, 과거들, 조상의 이야기들까지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책의 마지막에 발렌은 죽지만, 소설의 마지막 역시 끝나며 의미심장한 글귀를 남긴다. 그녀는 여기서 확인을 하기 위해 책 658쪽을 핀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거주하러 오지 않을지 모르는 어느 건물의 단면을 스케치한 것이었다.' 발렌의 죽음과 함께 이 건물 역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의심한다. 하지만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지금은 2012년 10월 15일이고, 조금 있으면 저녁 7시가 될 것이다. 그녀는 배가 몹시 고프다. 저녁을 먹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서 이 과제를 올리고 상록샘으로 달려가 커피와 밥을 사 먹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러기 위해선 두 번째 의문을 풀어야 한다. 윙클레가 이루고자 했던 복수는 무엇인가? 처음에 그녀는 단순히 윙클레가 무시무시한 자신의 창조물인 퍼즐로 바틀부스를 괴롭히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틀부스의 죽음으로 ‘지금’의 이야기가 끝나면서, ‘진행 중’인 윙클레의 복수는 바틀부스를 향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어지는 에필로그가 충격적이었다. 난데없이 발렌의 죽음이 등장하며, 그 죽음의 이유에 명확하게 ‘옛 제자의 죽음’이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혹시 윙클레는 발렌과 그의 죽은 아내 마르그리트 사이에 있었던 묘한 애정관계를 눈치 챘던 것이 아닐까? 그의 복수는 바틀부스의 죽음을 통한 발렌의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의심한다.

 

지금은 2012년 10월 15일이고, 저녁 7시가 조금 지났다. 그녀는 완벽히 소설을 패러디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한다. 아마도 이것이 그녀가 위대한 소설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녀의 친구 한 명이 그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도서관을 나간다. 그녀는 여전히 남아 타자를 두들긴다. 그녀에게 있어서 현재는 멈춰진 것이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소설 속의 이야기는 멈춰진 어느 한 순간을 그리고 있다. 이는 이미 사건은 종결되었고, 화자가 그 사건의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하나의 그림일까, 소설일까, 혹은 누군가의 기억일까? 그녀는 아마도 이것이 누군가의 기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소설, 영화처럼 기억 역시 남는다. 사람이 사라지고 건물이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바틀부스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설령 '무'로 돌렸다 해도 그에 관련된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 역시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쪽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기억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일정한 규칙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새기고 있지만 항상 기억은 불완전하다. 완벽한 쪽글이라는 개념에 그녀의 쪽글을 일치시키고 싶지만 어딘가 빗나가는 기억과 규칙으로 그녀의 쪽글은 하나의 개체로만 남는다. 오늘도 그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 싶다. 쪽글이 완성된 지금 그녀의 앞에는 그녀가 원했던 x의 쪽글이 아닌 w의 쪽글이 나타나 있다.

 

 

* 초록색 외계인 빛(외계인 조르주 페렉) 표지를 벗기면 하얗고 몽실몽실한 껍데기가 등장한다. 베개로 쓰지도 못할 저도로 토실토실한 인생 사용법은 저걸 들고 다니는 내내 내 어깨를 고문했더랬다.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 소설이 이런 식으로 쓰일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준.. 페렉 아저씨 표정만큼이나 알쏭달쏭한 소설. 내 에세이도 덩달아 알쏭달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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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 일본 메이지시대 말기 도쿄의 대학생을 그린 청춘 교양소설 문학사상 세계문학
나쓰메 소세키 지음, 허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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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스트레이 쉽과 감춰진 스트레이 쉽

많은 사람들에게는 첫사랑에 대한 막연한 낭만이 있다. 특히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 첫사랑의 주인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미화되어 자신의 청춘의 상징이 되기까지 한다. 처음 느껴 보는 감정에 설레 말도 제대로 못 걸고 실수만 잔뜩 하고 상대방의 눈빛, 손짓 하나하나에 민감해지고.. 그야 말로 가련한 스트레이 쉽이 되어 그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나의 진심과 상대방의 진심 사이를 죽어라 오락가락 하는 것이다.

 

산시로가 스트레이 쉽이라는 것은 머리 좋은 미네코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자아가 형성됐던 고향의 품을 떠나 완전히 타지인 도쿄에 동 떨어져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산시로는 다 자란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머니로부터 잔소리 가득한 편지를 받는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거기에 첫눈에 반한 차가운 도시 여자 미네코는 그런 산시로를 안심시켜주기는 커녕 혼란의 소용돌이로 아주 밀어 넣는다. 그놈의 호소에 가득찬 관능적인 눈동자가 뭐고, 기분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쌍커플이 뭐길래! 그 외에도, 부모님이 연락하라고 알려준 노노미야는 미네코와 미묘한 기류를 형성하며 질투의 대상이 되어 버렸고, 밥을 사주겠다며 건들건들 다가온 요지로는 산시로의 하숙비를 날려 먹고 철학을 콧구멍으로 내뿜는 히로타 선생은 다 자란 스트레이 쉽 같으니 모두가 똑똑하고 잘나 보이는 도쿄 한 복판에서 산시로는 그저 헤맬 뿐이다.

 

그렇다면 미네코는 왜 자기 스스로 역시 스트레이 쉽으로 표현했을까? 소설은 산시로의 시점을 절대적으로 반영한다. 가끔가다 이게 산시로 생각인지 전지적 작가 시점인지 헷갈릴 때 마저 있다. 그 정도로 독자인 우리는 산시로에 관해서라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의 흐름까지 잡아낼 수 있지만 미네코에 관련해서는 주위 인물들과의 대화, 추측만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미네코가 보낸 엽서에 답장도 못 하는 산시로의 시점에서 무슨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겠는가.

 

다만 확실한 것은, 미네코 역시 자신이 누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어떻고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는 것이다. 미네코야말로 자신을 혼란에서 구해 줄 누군가를, 혹은 자신의 불안의 근거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여의고, 격동하는 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녀는 히로타 선생이나 요지로, 노노미야와는 달리 세상과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마저 없다. 똑똑한 여성임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따로 직업을 갖지 않고 집안일을 주 업무로 하는 여성이어야 했던 것이다. 미네코는 자신이 주체적이며,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근거를 원했을 것이다. 아마도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즉 자신을 필요로 하는 남성들 사이에 있는 것이 그녀에게는 많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산시로의 맹목적인 순수한 애정은 미네코에게도 특별한 것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스치듯 두 번뿐이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산시로를 기억하는 점, 하라구치의 부탁으로 모델을 설 때 굳이 부채를 든 점, 요지로에게 돈을 주지 않고 산시로가 직접 받으러 오게 한 점 등은 그녀와 산시로 사이의 묘한 인연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산시로의 ‘그저 당신을 보러 왔다’라는 진심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그동안 받은 애정에 보답하지 못함을 진심으로 사과하는 듯한 모습은 미네코가 감춰왔던 약한 면모를 산시로 앞에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불안함을 대변하듯, 모든 것을 갖춘 오가와라는 남자와 결혼한 미네코. 거칠어 보이지만 여성적인 면모를 지닌 미네코는 위악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려 했지만, 산시로에 의해 무장해제된 그녀는 역시 스트레이 쉽이었다.

 

 

* 역시 수업 때 쓴 에세이. 사실 다른 학우분의 에세이를 읽고 영감을 받아서 쓴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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