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단편선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9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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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울지 않아요. 절대로 울 수 없어요. 눈물이 그대로 얼어붙으니까요. 여기서는 눈물이 다 언다고요!"-80쪽

"용기, 바로 그거였어요. 삶의 규칙이자 언제나 고수해야 하는 것. 내 안에 거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과거의 내가 우상으로 여겼던 것들이 알고 보니 그 용기에 나도 모르게 반했던 거란 걸 깨달았죠. 나는 인생을 용기와 나머지로 구분하게 되었어요. 용기에는 온갖 종류가 있어요. 얻어맞고 피 흘리면서도 더 달라고 다가오는 투사도 있어요. 난 남자들에게 권투 경기장에 데려다 달라고 했어요. 타락한 여인이 고양이 우리를 지나치면서 그들을 자기 발치의 진흙인 양 바라보았던 거죠. 언제나 좋아하는 대로 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한다. 언제나 좋아하던 대로 살고 내 방식대로 죽는다. 담배 있어요?"-115쪽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한 섬에 남은 두 사람의 이야기도, 더욱이 격리된 곳에서 싹트는 사랑 타령도 아니다. 그보다는 두 사람을 표현하는 이야기이며, 멕시코 만류의 야자나무라는 이 목가적인 분위기는 우연일 따름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존재하고 생식하는 데 만족하며 그러기 위해 투쟁한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해보겠다는, 뻔한 결말의 시도는 운이 있건 없건 간에 극소수에게만 가능한 유보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아디터의 경우에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젊음과 함께 변색될 용기만이 흥미로웠다. -119쪽

키스마인이 한숨을 쉬며 별을 올려다보았다. "대단한 꿈이었어. 입을 거라고는 이 드레스 하나뿐인 데다가 무일푼인 약혼자와 여기 있다니 정말 이상해! 그것도 별빛 아래에서 말이지. 전에는 별이 있다고 인식해 본 적이 없었어. 늘 다른 사람에게 속한 커다란 다이아몬드라고 생각했지. 이제 별이 두려워. 별은 모든 게 꿈이었다고, 내 젊음이 모두 꿈이었다고 느끼게해."
존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 모두의 젊음은 꿈이야. 일종의 화학적인 광기야."
"미친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존이 침울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들었어. 그 이상은 나도 몰라. 어쨌든 일 년 정도는 우리 서로 사랑하자. 그게 우리로서는 유일하게 신처럼 마취될 수 있는 시도이니까. 이 세상에는 다이아몬드들이 있어. 또 다이아몬드와 환멸이라는 시시껄렁한 선물이 있겠지. 음, 그건 마지막에 갖고 무시해 버릴래."
그가 몸을 떨었다. "코트 깃을 올려. 넌 아직 어려서 이 추운 밤에 폐렴에 걸릴 수도 있어. 의식(意識)이라는 것을 처음 만들어낸 자는 큰 죄를 지은 거야. 우리 몇 시간만이라도 다 잊어버리자."
존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다.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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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단편선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9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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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cott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황금같다. 노래같다. 해가 지기 직전 가장 불타오르는 노을같다. 화려하지만 어딘지 허무하고 그래서 서글픈 느낌마저 든다.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의 단편들을 읽고 있자면 당시의 시대상이 눈 앞에 떠오른다. 세련된 여성들, 진취적인 남성들, 파티와 문화, 유명인사들, 예술가들.. 이들은 모두 화려하고 우아하지만 동시에 사라짐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 곁에 항상 존재한다. 피츠제럴드의 소설에는 광명이 지나간 곳의 허무함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천연의 아름다움이 지니는 잔혹함이나 순수한 젊음의 맹목성에는 어딘가 모르게 죽음과 끝의 냄새가 묻어난다. 


피츠제럴드가 물질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의 소설에는 부에 대한 순전한 찬미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서도, 해외여행에서도, 헤변의 해적에서도 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부를 향한 열망이 곧 삶의 원동력이 되고, 그런 주인공들을 피츠제럴드는 딱히 심판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 강한 열망의 뒤로 펼쳐지는 어두운 그림자 또한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다채롭고 활력으로 꿈틀대는 시대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가 보고 겪은 세계는 그의 내면을 거쳐 글자로 재구성되어 21세기 독자들 앞에 다시 구현된다.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시대상을 보며 나는 문장 사이사이의 매력적인 호흡을 즐긴다. 특정한 주제의식 틀 안에 이 소설들을 우겨넣어 왜곡하고 일부분에만 집중하고 싶지 않다. 작가가 써낸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존재 방식 그 자체였으며, 또한 작가 자신의 존재이자 삶이었다. 그가 바라본 인생이 낱말들 안에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당시 상류층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이 어떠한 잣대에도 의지하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지면, 나는 나의 우주 안에 이들을 집어 넣고 음미하며 삶에 대한 영역을 확장시킨다. 다른 시대에 살면서도 나와 어딘가 닮은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생이란 얼마나 다양한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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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많이 고민하고 스스로 생각해서 찾아간 길이라면 그 길이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었더라도 후회하지 않을테니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좋다는 길을 쫄쫄 쫓아다니다보면 이내 회의가 들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가는, 남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 명에게 물어보면 백 명 모두가 다른 답을 주었고 결국 선택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결국에는, 내가 나에게 옳은 길을 선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길을 떠나기 전에 신발끈부터 다시 꼭 묶자는 의미에서. 


*그리고 작은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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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증폭장치

 

내 친구 걔 있잖아. K. 걔가 너 좋대.”

 

Y는 핸드폰 액정을 만지작거리다가 퍼뜩 고개를 들고 친구를 쳐다 보았다. 두근두근. 자그맣게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가 이 소리를 들으면 안 되는데.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입을 열면 두근거리는 소리가 샐 것만 같아 Y는 입을 꾹 다문 채 미소만 살풋 지었다. 하지만 살짝 떨리고 만 입꼬리는 불가항력. 그런 Y를 친구는 재밌다는 듯이 계속 바라보았다. Y는 이내 고개를 돌리며, 손으로 뒷통수를 쓸어 내렸다. 민망하거나 긴장하면 나오는 그녀의 버릇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해야 두근두근하는 이 소리를 조금이나마 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

“K. 저번에 나랑 지하철 입구에서 인사한 애.”

..그래?.”

 

Y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지만 살짝 발그래해진 얼굴을 감추려 시선을 돌린 채였다. 학원이 끝나고, 12시간도 안 되어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피곤에 절어있던 귀가길이었는데 갑자기 빨리 내일 아침이 되어 다시 학원에 오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누구?”라고 반문하긴 했으나 그녀가 K를 모를 리 없었다. 쉬는 시간이나 학원이 끝날 무렵, 복도나 입구에서 자주 마주쳤던 남자 아이였다. 물론 그 아이 말고 마주치는 학생은 수 십 명이지만 유독 그 아이는 Y의 기억에 남았다. 친구와 같은 반이어서 더 자주 보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라도,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츄리닝에 간단한 티 셔츠를 즐겨 입으며 실눈을 뜨고 실실 웃고 다니는 남자아이의 모습은 이상하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K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서 언젠가부터는, 마주칠 때마다 시선이 맞닿았다. 처음에는 우연히,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보다가 거의 스쳐 지나갈 때 즈음해서 슬쩍, 얼굴을 훔쳐보면 얽히는 두 눈동자에 Y는 괜시리 화들짝 놀라 다시 앞을 바라보곤 했다.

 

걔가 인사시켜 달라던데.”

 

Y가 평정을 찾으려 할 때에 친구가 던진 말은 다시 그녀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동그란 원이 심장께에서부터 간질간질하게 올라와 서서히 퍼져 머리를 둥둥, 울렸다. 우연이, 인연으로 변하는 첫 신호가 자그맣게 들리는 듯 했다.  










#I'm back

 

할 일이 없어 늘어져 있다가, 갤러리 사진도 구경하고, 페북에 뭐 올라온 거 없나 확인하고, 그러다가 친구한테 뭐함?” 이라고 카톡을 보냈다가 답장이 없어 심심풀이의 끝이라는 카톡 프로필 사진들을 구경하기에 몰두해 있는데, 정말 우연하게도. 전 남친 K군의 사진도 보게 되었다.

 

“……사진 바꿨네.”

 

Y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사진을 클릭하여 확대해, 멍하니 쳐다보았다. 더 이상 심심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찍어 주었던 사진 속에서 K는 특유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별 거 아님에도 사진 하나 바꾼 것에 Y의 심장은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더 이상 그녀의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K가 이런 식으로 그녀의 시간에 존재의 흔적을 남길 때마다, 그 흔적을 물꼬로 과거는 시간의 경계를 부욱 찢고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오늘처럼 Y가 혼자 집에 가는 길일 때에는 그 파장이 더 크곤 했다. Y는 핸드폰 액정을 끄고 버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의미 없는 불빛과 사람들이 초침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추억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의 만남과 두 번의 헤어짐이 있었다. 첫 번째 헤어짐에는 그리움이라는 핏물이 손 닿는 곳마다, 눈길 향하는 곳마다 뚝뚝 떨어졌고, 그래서 가슴을 움켜 쥐고 울음 섞인 비명을 계속 토해냈다. 절대 익숙해질 거 같지 않던 아픔이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며 사그라들고, 두 번째 헤어짐은 조금의 눈물과 조금의 원망만을 남겼다세 번째 만남은 부재했다. 이제 완전히 을 실감하면서도 Y K가 남기는 흔적 중에 자신을 향한 것이 혹여나 있을까하는 기대마저 접지는 못했다.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이 끝나자 K Y 사이에는 다시 우연만이 남았다. Y K를 카톡에서 지우지 않고, 번호도 남기고, 페북 친구도 끊지 않은 까닭은 그 우연을 어쩌면 기다리기 때문이다. 과거의 추억에서만 만날 수 있는 K와 닿는 방법은 그것 외에는 없음을 Y는 잘 알고 있었다.

 

카톡

 

액정에 불이 들어오며 누군가에게 카톡이 왔다는 신호가 켜졌다. 톱니바퀴가 드르륵, 하고 돌아가더니 추억이 빨리감기되어 순식간에 사라지고 Y의 시선이 액정 위의 시간에 머물렀다. 친구한테서 답장이 이제서야 온 것이다. “치킨 먹음.” 과거가 다시 썰물처럼 밀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랬다. 우연에만 의지해야 할 만큼 두 번의 만남과 두 번의 헤어짐의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벼워졌고, 이제는 고작 치킨에 목을 매는 친구의 메세지가 Y에게는 더욱 현실감이 있게 다가왔다. 피식, 하고 바람빠지는 웃음을 날리고 Y는 답장을 하기 위해 손가락을 화면 위에서 움직였다







*** 


설익음, 풋풋함, 설렘, 아련함.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듣다보면 첫 사랑이, 첫 사랑과 함께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K군과 한창 사귈 때 버스커버스커가 폭풍같이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고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의 보컬은 복고풍 느낌이 많이 나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데 아주 적절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설 익었던 연애가 때도 묻고, 여기저기 구르고 치이면서 닳고 닳자 그 다음부터는 프라이머리의 노래와 더 어울리게 되었다. 프라이머리 가사가 남자 입장에서 쓰인 게 대부분이라, 연애가 과거형이 되고 나서 조금 더 객관성을 가지고 추억을 돌이킬 수 있어졌을 때 아, 걔는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담담하게 많이 들었던 거 같다. 그게 오히려 치유가 많이 되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 혼자 하는 추억 여행이고 나 혼자 하는 음악 감상이라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 당시에는 함께 걸어갔던 시간이지만 이제는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 아이와는 이제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한 때는 그리움이 향하는 곳이 추억 속의 그 아이라는 것을 모르고 현실 속에 그 그리움을 풀으려고 애쓰느라 눈이 눈물에 항상 발갛게 불어 있었다. 지금은 나 혼자 하는 추억 여행이더라도 그 그리움이 나를 아프게 하지는 않는다. 추억에게 부탁해 놓은 그 아이가 가끔 내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가 다시 사라지듯이 그리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듯이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을 어렴풋이나마 알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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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 체게바라 VS 대륙의 붉은 별 마오쩌둥 교양문고 VS 시리즈
김영범 지음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0년 8월
판매중지


떠나는 자는 쓸쓸하고 보이지 않는 미지의 것에 얼마간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 자들이 맛볼 수 없는 생에 대한 경이로움 또한 그들의 것이다.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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