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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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그동안 책을 하나의 소일거리로 봐 왔던 나의 태도가 부끄러워졌다. 나의 독서 습관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내 뱉은 글들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도피하기 위해 책을 읽었고, 안일해지기 위해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찝찝함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그리고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며 가짜 선비 놀음을 하기 위해 글을 끄적였다. 나는 치열하지 못하다. 뷔페에 가 음식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게걸스레 위에 쑤셔넣듯이 책을 삼켰다. 씹지도 않고 음미하지도 못했다. 누군가에겐 목숨을 걸 만큼 위대한 의식인 읽기와 쓰기가 나에겐 허울만 남은 겉치레, 진실을 외면하는 아편과도 같았다. 나는 0.1%로 살아남은 위대한 노장들을 만나면서 악수를 하고 기념사진만 찍고 떠나는 무례한 손님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명예를 드높이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들을 광대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작가의 냉소적이고 날이 선 문체가 자꾸만 양심을 푹푹 찔러 왔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발가벗겨지는 것 마냥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내가 흥미로워 했던 것들, 심심할 때 하는 것들, 나의 관심사들이 모두 벗겨져 마른 나무 껍질처럼 바스라졌다. 술에 취해 몽롱해 있다가 술이 깨면서 그동안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기분이었다. 그러자 두려워 지더라. 내가 정말 치열하게 고독한 싸움을 해낼 자신이 있는지, 그 광기서린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만약 이 세계가 미쳤다면, 그 세계와 나는 맞서야 한다. 그 말은 내가 지금껏 누려오고 일궈 왔던 세계를 내 손으로 져버려야함을 의미한다. 돈, 직업, 친구, 명예 등 세계의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달콤한 열매를 '가짜'라고 손가락질하며 던져야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신이 없다. 세상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홀로 고독한 싸움을 하는 것이 내게는 정말 문자 그대로 '미친 짓'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윤택하고 안락한 삶에 익숙해진 나는 아무래도 매트릭스의 네오와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어,라고 생각하자 입안에 씁쓸함이 텁텁하게 쌓였다. 그러면서도 아예 책을 덮어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완전히 현실세계에 순응할 뻔뻔함조차 내게 없기 때문이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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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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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라고 생각한 계기가 된 책이다. 사람의 상상력이란 얼마나 위대한지! 완벽히 허구적이고 환상적인 세상 속에서 나는 시공간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 사건들은 어쨌든 '삶'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 이처럼 환상적이고 정말 소설같은 소설을 읽다보면 역설적으로 '보편성'이라는 것에 대해 실감하게 된다.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임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과 공감할 수 있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똑같이 울고 웃고 비슷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비슷한 사상에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작가가 쓴 허구적인 이야기에 내가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같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소설의 테마가 되는 '고독' 역시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에 해당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항상 '소통'을 원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것 역시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관념이 언어를 통해 구체화되고 또 전해져 다시 타자에 의해 해석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와 왜곡이 발생한다. 의도한 바와 달리 떠돌아다니는 낱말들이 나와 타인 사이에 벽을 만들고, 결국에는 그 벽을 기대고 주저 앉아 되뇌이는 것이다. 그래, 인생은 어차피 혼자 사는 거야...... 사람이 그리워서 약속을 잡고 만났다가, 만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권태를 느끼고 차라리 혼자 방에서 책이나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소통의 불완전함에서 오는 '고독'이 항상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 드넓은 우주에 떨어진 작고 유한적인 인간이라는 존재가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운명에 놓여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독함을 느끼기엔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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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단편선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9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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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cott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황금같다. 노래같다. 해가 지기 직전 가장 불타오르는 노을같다. 화려하지만 어딘지 허무하고 그래서 서글픈 느낌마저 든다.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의 단편들을 읽고 있자면 당시의 시대상이 눈 앞에 떠오른다. 세련된 여성들, 진취적인 남성들, 파티와 문화, 유명인사들, 예술가들.. 이들은 모두 화려하고 우아하지만 동시에 사라짐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 곁에 항상 존재한다. 피츠제럴드의 소설에는 광명이 지나간 곳의 허무함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천연의 아름다움이 지니는 잔혹함이나 순수한 젊음의 맹목성에는 어딘가 모르게 죽음과 끝의 냄새가 묻어난다. 


피츠제럴드가 물질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의 소설에는 부에 대한 순전한 찬미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서도, 해외여행에서도, 헤변의 해적에서도 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부를 향한 열망이 곧 삶의 원동력이 되고, 그런 주인공들을 피츠제럴드는 딱히 심판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 강한 열망의 뒤로 펼쳐지는 어두운 그림자 또한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다채롭고 활력으로 꿈틀대는 시대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가 보고 겪은 세계는 그의 내면을 거쳐 글자로 재구성되어 21세기 독자들 앞에 다시 구현된다.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시대상을 보며 나는 문장 사이사이의 매력적인 호흡을 즐긴다. 특정한 주제의식 틀 안에 이 소설들을 우겨넣어 왜곡하고 일부분에만 집중하고 싶지 않다. 작가가 써낸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존재 방식 그 자체였으며, 또한 작가 자신의 존재이자 삶이었다. 그가 바라본 인생이 낱말들 안에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당시 상류층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이 어떠한 잣대에도 의지하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지면, 나는 나의 우주 안에 이들을 집어 넣고 음미하며 삶에 대한 영역을 확장시킨다. 다른 시대에 살면서도 나와 어딘가 닮은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생이란 얼마나 다양한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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