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음흉한 로맹 가리씨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음흉하다고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음흉하다. 그런 의미에서 로맹 가리는 음흉하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 속에 숨어 수 많은 평론가와 독자들을 물 먹인 그에게서 관음증적인(?) 취미를 엿볼 수 있다. ‘로랭 가리는 절대 이런 작품을 쓸 수 없다!’고 외쳤던 평론가들을 바라보며 그는 속으로 얼마나 코웃음을 쳤을까. 익명성의 맛을 1975년에 깨우쳤다니 그는 진정으로 21세기형 인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시대에 벌써부터 아바타를 창조해낼 정도로 미래지향적이었던 그가 수 십년 후에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았다면 무릎을 치며 통탄했을 것이다. 젠장, 좀만 더 늦게 태어날 걸!하고.

 

한 편으로는 에밀 아자르라는 분신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절박함이 이해가 간다. 자아 정체성이란 자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자아가 존재하려면 동시에 타자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나 하나만 있었다면 아마 나는 그 세상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타자가 존재함과 동시에 경계가 그어지고, 자아 정체성은 만들어 진다. 타자가 바라보는 나가 자아 정체성에 포함되는 것이다. 로맹 가리는 평론가들이 만들어 내는 자신의 정체성이 상당히 맘에 들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잘못 이해되는 연애 편지 마냥 자신의 의도한 바를 파악해 내지 못하고 엉뚱하게 읽혀지는 소설들이 불쌍했을까? 그는 로맹 가리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되는 소설을 쓰기 위해 에밀 아자르라는 분신을 만들게 된다. 아무래도 대중과 소통하는 위치에 있을수록 자아와 타자가 만들어 내는 정체성 간의 괴리는 심해지는 것 같다. 아이유 사건만 봐도 그렇다. 아이유는 대중이 만들어낸 순수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녀라는 정체성에 얽매인 나머지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픈 자신의 정체성은 숨겨야만 했다. “에이, 아이유가 그럴 리가 없어!” 에이, 로맹 가리가 저런 작품을 어떻게 써?”는 상당히 비슷하지 않은가.

 

에밀 아자르가 사실은 로맹 가리라고 밝혀졌을 때 아마 사람들은 아이유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삼촌팬들 마냥 분노했을 것이다. 미친 것 아니냐며 손가락질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 앞장에 나와 있듯,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 (이건 딴 얘긴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이유를 응원한다. 인생 쓴 맛을 충분히 보았을 테니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고 앞으로 자신의 욕구에 솔직해지고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아무튼, ‘자기 앞의 생도 경계선 밖으로 내팽겨쳐진 미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미친 소년인 모모의 말에 비난을 던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모모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를 동정하기도 하고 그에게 감탄하기도 했다. 왜냐면 모모에게는 그 세계가 바로 정상이고, 창녀들에게서 아이를 빼앗고 동포애라는 구실로 다른 민족에게 테러를 가하고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며 인간을 고문시키는 그 세계가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있고 교육을 받으며 국가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모모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모모는 불행하다고 하지만, 그 불행은 아마도 이 세상을 너무나 많이 알기 때문에 생긴 불행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진정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그 경계선 안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내모는 것이 진짜 정상이고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존엄해야 하고, 소중해야 하고, 존중 받아야 하고, 어쩌구 저쩌구..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63p) 그냥 생은 그 자체로 생이다. 굳이 나누고 분류하고 정의하고 비교함으로써 불행과 행복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쓰면서 가장 재밌었던 에세이. 막판에 가서는 흥분하기까지 했다. 저때 접했던 책이나 영화, 뉴스들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거기에 자극받아서 맞아, 사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습이나 규칙은 전부 인위적이고 허구적인 것에 지나지 않아! 라고 혼자 속으로 분노했었다. 그 뜨거운 김이 에세이에도 나타났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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