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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노란 빛의 조명이 좋다. 따뜻한 우유의 부드러움 끝에 살짝 씁쓸한 맛이 묻어 나오는 카페라떼도 좋고,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것도 좋다. 기계음 사이로는 재즈 보컬의 굴곡진 목소리가 앞 서거니 뒷 서거니하며 흘러 나온다. 좁고 긴 카페 공간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까지 포함하여 세 명. 모두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은 말하지 않지만, 카운터의 주인 아저씨와 가끔 테이크 아웃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가 침묵의 공간을 잠시 떠돌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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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하게 목욕을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은 다음, 화장도 최소한으로 하고 카페로 나오자 이런 아늑한 분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부다 좋다. 보송보송한 머리며, 좋아하는 향수 냄새며, 선선한 바깥 날씨와 꽃 내음, 따뜻한 커피, 1000원 짜리 쿠키 세개. 시험 기간이라서 내 왼쪽에는 프린트가 한 무더기로 쌓여 있지만 여느 때와 달리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형광펜으로 색칠을 할 일조차 즐겁게 느껴진다! 요새 내내 학교 도서관에만 박혀 있었더니 간만의 여유로움이,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이 참 소중하게 다가 온다. 동네 카페의 매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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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내 가방 안에 고요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까다로운 책이다. 이 아늑한 분위기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손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순간 내 주위 문명을 모두 잿빛으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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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든 속삭임과 평화로움을 한 순간에 무너 뜨려 버리는 큰 목소리가 음료수 세 잔을 주문하고 이어서 네 개의 발소리가 들려 온다. 모두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기란 이렇게 어렵다. 짧았던 아늑함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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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서재의 모습.. 카페같이 편안한 분위기에 커다란 책장.


내 방에는 책들이 항상 쌓여있다. 책꽂이 공간이 부족해 그 위로 가로로, 혹은 책상 위에 겹겹이, 침대 옆에 몇 권, 활용가능한 공간 곳곳에 그들은 무질서하게 놓여 있다. 그렇게 쌓여 있는 책들을 바라보면 거대한 미지의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지인의 추천을 받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을 발견하고, 혹은 서점에 그냥 들어 갔다가 제목이나 책 소개글을 읽고 충동적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구매욕구가 일어나 등등의 이유등으로 입양해 온 책들이다. 저마다의 우주를 안에 품고 조용히 책꽂이에 잠들어 있는 책들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듣고 싶기도 하고, 자꾸만 침묵 속에 내버려 두는 것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광할한 세계로의 발을 디디려고 할 때마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함에 자꾸만 미뤄두게 된다. 그래서 손이 닿지 않는 곳은 계속 멀어져 가고, 새로운 책들은 또다시 유입되어 미지의 세계는 더더욱 커져만 간다. 


이렇게 닥치는 대로 수집해 놓으면 언젠가는 읽으리라고 생각했고,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의 욕심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속으로만 쌓아 놓고 있는 책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나는 나의 할렘을 위하여 매력적인 책들을 나의 서재로 끌어들여 놓고는 내 손에 들어온 이후로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무책임한 술탄과도 같았다. 장시간 책장 속에 방치되어 있던 책들에게 먼지가 쌓인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단 한 번도 나의 손을 타지 못했던 책들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나를 '먼지'를 통하여 나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당분간 책을 사는 것을 그만 두었다. 책이 정말 사고 싶다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책, 나에게 와서 꽃이 될 그런 책만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어떠한 책을 읽고 난 후, 그 책을 읽고 연상되는 물음이나 그 책과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 혹은 같은 주제이지만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책을 그 다음에 선택하는 것이다. 충동적인 구매 욕구가 드는 책들은 사진을 찍어 놓거나 제목을 적어 놓고, 다음에 그 책과 관련된 책이 나타날 때 읽기로 하였다. 최근에는 그래서 읽고 있는 책들이 '양철북' '우울할 땐 니체' '지하생활자의 수기'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이다. 그 전에는 '유니타스 브랜드 매가북'을 읽고 '시뮬라시옹'을 연달아 읽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시뮬라시옹'을 다 읽지 못했군.. 


이렇다 보니 여러 장점이 생겼다. 일단 책 읽는 것에 대한 흥미가 더욱 올라간다. 전에 읽었던 책에서 받았던 느낌이나 생각이 다음 책을 읽는 동안 생각나고 관련된 글귀가 떠오를 때마다 짜릿함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번쩍'하고 머리 속을 밝히는 느낌이다. 두 번쨰로 이해도가 높아진다. 같은 주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더 자세한 설명이 들어간 책을 만나면 전에 모호했던 부분이 안개가 걷히듯 명확해지고, 다음 책을 읽을 때에도 그 책을 미리 읽지 않았더라면 와닿지 않았을 부분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더 잘 기억나기도 한다. 책 지도가 그려지고 책 사이사이에 이정표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는 충동구매를 최대한 자제하게 되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덜 된다. 


단점이라면, 병렬적으로 책을 선택하게 돼서 간혹 중간에 누락되는 책이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자해야 할 것 같다. 여기에 책 두 번씩 읽기라는 목표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정말 완벽할 텐데.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을 연결하여 그 관계를 정리한 포스팅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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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시작된 이후로 내 삶의 중심은 그대였다. 그대를 생각할 때만 감정이 동요하고 그대와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담겨 있는 영화나 책, 노래를 발견할 때면 온 몸이 울렸다. 죽을 만큼 아파도 보았고 또 그 아픔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도 겪어 보았다. 그렇게 그대라는 존재를 품에 안고 나의 존재는 형성되었다. 그대 덕분에 나의 존재의 경계를 넘어서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나와 같은 이유로 아파했던 사람들에게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그대에게 들려 주고 싶은 노래, 보여 주고 싶은 영화, 읽어 주고 싶은 책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전해지지 못한 채 일기장에 쌓여만 가던 나의 거친 편지들과 함께 이 모든 것들은 체념과 함께 삼켜져 내 안에만 쌓였다. 주위 사람에게라도 쏟아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갑갑한 날에는 친구를 붙잡고 나의 감정을 토로하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감정들은 오히려 왜곡되어 전해졌고, 날 것의 감정들은 타인의 불이해만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입을 다물기 시작하였으며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에 나의 감정을 담아 간접적으로 내 안을 비워내곤 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문학동네의 번역본이고,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번역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크게 와닿았다. 행복한 가정의 기준은 있으나 불행한 가정의 기준은 없다.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면 행복한 가정이다. 행복한 가정하면 떠오르는 흔한 이미지들이 그러하듯이. 이는 행복한 가정이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내부에서 보아야 한다. 불행한 가정이더라도 겉으로는 행복해 보일 수 있다. 외부에 보여지기 꺼려지는 각자의 불행한 문제들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대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남들이 하듯이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하고 남들이 하듯이 선물도 주고 받고 기념일도 챙기며 행복한 티를 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힘든 시간이 더 많았고 불행하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 남들에게는 뻔한 푸념으로 들렸을 지라도 나에겐 너무나 큰 아픔이었고 상처였다. 하지만 자존심에 솔직하게 나의 불행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저 다른 행복한 커플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하면서 나도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안나가 알렉세이를 찾아 전보를 치고 기차에 몸을 싣고 자살까지 결심하게 되는 과정을 보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나는 그녀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폭발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와 그런 그녀로부터 멀어져 가는 알렉세이때문에 더욱 상심하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그런 그녀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격한 감정에 휩쓸린다는 것이, 상황이 악화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았기에 더욱 그녀에게 동정을 느꼈다. 그대가 안나 카레니나의 그 부분을 읽는다면, 나처럼 안나를 동정할까, 혹은 이해하지 못할까. 아마도 그런 그녀의 무분별함에 거부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한다. 불쌍하다고는 느끼겠지만 이해하지는 못하겠지. 그리고 이러한 추측은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그대를 잊는 것이 두려웠다. 그대와 함께 한 시간들 마저 잃어버리게 될까봐. 많이 힘들고 많이 얼룩진 시간들이었지만 그 사이사이에 빛나는 추억들이 있고 그대의 미소, 살내음, 온기가 있기에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버릴 줄 알아야 얻는 것도 있다고, 그대와의 추억을 놓을 때가 된 것 같다. 그대의 흔적은 지워지더라도 그대와 함께 나눴던 감정들은 내 안 어딘가에 남으리라 생각한다. 그 정도에 만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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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갖는 것과 실제로 참여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일이다.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오고, 이제 나의 관심분야를 직업으로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면서 느낀 것은 맞는 인연을 만났다는 기쁨이었다. 책에도 관심이 있었고, 영화에도 관심이 있었고, 마케팅에도 관심이 있었고, 사회공헌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린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우연한 기회에 아쇼카 북토크에도 참여를 하게 되었다. 아쇼카가 뭔지도 모르면서 북토크라는 이유만으로 신청을 했다. 책도 읽지 않았으면서 오랜만에 듣는 책 관련 강의라 기대감을 안고 갔더니, 우연이 사실은 인연이었나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요즘엔 이런 식의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창업과는 영영 거리가 멀 줄 알았건만 어느새 보니 창업에 뛰어들었고, 친환경과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왔는데 친환경 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길을 달랐으나 정상으로 향하는 목표는 같기에 함께 걷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내 생각과는 다른 풍경들을 밟으며 신선한 즐거움도 누리고 있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얼마나 더 성장해야 할 것인지도 알게 되고. 


결국은 모든 것이 변화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삐딱한 사람들, 삐딱한 생각들, 하지만 그렇기에 이룰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다. 우연히 참여한 아쇼카 북토크에서 또다시 확신을 얻었고 계속 나아갈 원동력을 얻었다. 알면 알수록 세상에는 진정성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더 큰 외로움 속에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변화의 시작에 내가 서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 내 본연의 관심사인 '소설'과 아쇼카 북토크를 연결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떻게 보면 취미활동에 지나지 않을 독서라는 행위가 순간 순간마다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되어 반짝하고 빛날 때마다 큰 뿌듯함을 느낀다. "공감의 뿌리"라는 책을 소개하신 김은희씨의 강연 중 다른 사람과 공감을 함으로써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듣자마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났다. 책에서는 공감대신 '동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결국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에서 동정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고통을 차마 차가운 심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고통스러워하는 이와 공감한다는 뜻이다. (중략)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co-sentiment)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 기술을 지칭한다. (중략)

그런데 그는 그녀를 내쫓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녀의 손을 잡고 손끝에 키스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마치 테레자 손가락의 신경이 자신의 뇌에 직접 연결된 듯 그녀가 손톱에서 느끼는 고통을 자신도 느꼈기 떄문이다.


토마스는 테레자에게 동정하였기에 그녀의 아픔을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결국에는 자신의 직업까지 버리며 그녀를 따라 간다. 그로 인해 토마스가 그녀를 비난하였는가? 아니, 오히려 그녀를 더욱 사랑하였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만큼 숭고한 일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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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oxford circus 역에서 내려서 charing cross street 을 쭉 따라 걸으면 헌책방과 책방이 모여 있는 구간과 만나게 된다. 들어가면 천장까지 진열된 책들과 여유로운 분위기의 주인이 아늑한 숨결로 맞이한다. 대개 이런 헌책방은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고, 그 안에 다양한 헌책들이 종류별로 늘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이나 직원은 손님들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고, 손님이 질문을 하면 친절히 답해 주지만 그렇지 않다면 손님의 시간을 존중해준다. 온 책방을 헤집고 다니며 이책 저책 뒤적거려도 된다는 말씀. 그나저나 런던 번화가 한 복판에 이런 멋드러진 헌책방이 모여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관광지 역할도 하고 있었다. 런던 명소에 선정되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헌책방이나 책방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을텐데. 튼 J.D.Salinger의 책을 구매하고 싶었으나 찾지 못하고 Ernest Hemingway의 단편집을 학생할인 포함, 4.5파운드에 입양. (학생할인 받을 수 있냐고 물으니 학생증을 묻지도 않고 쿨하게 그 자리에서 10퍼센트 할인해주었다.) 출판된 날짜를 확인하니 1986년!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인데 여행다닐 때 가방에 넣고 다녔더니 표지 모서리부분이 구겨졌다ㅠㅠ. 원체 칠칠치 못한 성격이라 지금은 집에 모셔놓고 짬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다. 

명작을 원서로 읽는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전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글자가 직격으로 뇌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호흡을 같이한다고나 할까.. 번역서들도 '국문학'이라는 학교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가는 순간이었다. 거기다 헤밍웨이의 단편은 정말 매력적이어서, 아마도 번역판으로 읽었다면 이 매력이 고스란히 전해지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번역판이긴 했지만 그의 다른 소설들을 읽었을 때는 그다지 깊은 감명을 받지 않았는데, 이 단편들은 하나하나가 강렬하다. 구성이 단단하게 짜여 있어 짧은 분량임에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문장이 짧은 편이라서 속도감있게 진행되어 원서를 접한지 얼마 안 된 나도 읽기가 수월하다. 단편에 흥미가 생긴 계기가 되기도 한, 내 소중한 책을 만나게 해준 헌책방, 땡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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