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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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나 창문을 열어라. 자, 고기와 생선 요리도 하고, 가장 큰 거북이들을 사고, 외지인들을 오라 해서 구석에 자리를 펴도록 하고, 장미나무에 오줌을 싸도록 하고, 먹고 싶을 때마다 식탁에 앉도록 하고, 트림도 맘대로 하게 하고, 하고 싶은 얘기들도 맘대로 하게 하고, 사방에 신발로 진흙을 묻히게 하고, 우리와 더불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 그게 바로 쓰러져가는 집을 활기있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니까.-195쪽

하지만, 그가 고향 마을에 돌아갈 때는, 그 상자 셋을 가져가려는 그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는데, 그는 상자들을 화물칸으로 보내려는 기차 차장에게 카르타고 말로 마구 욕설을 퍼부어대 결국 자신과 함께 객차에 싣는 데 성공했다. "인간이 일등칸에 타고 문학을 화물칸에 싣게 된다면, 이 세상은 개떡같이 끝장나고 말 거야" 그때 그가 말했었다. 그것이 그에게서 들었던 마지막 말이었다. -292쪽

자기 자신의 향수와 다른 사람들의 향수의 창에 찔려 있던 그는 죽은 장미나무에 엉겨붙어 있는 거미집의 뻔뻔스러움과 독보리풀의 집요함, 그리고 이월 새벽빛 속에 있는 공기의 인내심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아기를 보았다. 아이는 전체적으로 벙벙하게 부풀러올라 있고, 피부는 바싹 마른 가죽 같은 시체로 변해 있었는데, 세상의 모든 개미떼들이 다 모여들어 아이의 시체를 마당에 있는 돌투성이 샛길을 통해 어렵사리 개미 소굴로 끌어가고 있었다.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302쪽

겨울밤이면 벽난로에서 수프가 끓고 있는 사이, 마꼰도에서 고향의 겨울날 벽난로 위에서 끓고 있던 수프와 커피 장수가 커피 사라 외치는 소리와 봄에 잠시 날아들던 종달새를 그리워했듯이, 책가게 뒷방의 더위와 먼지를 뒤집어쓴 아몬드나무들에 쨍쨍 내리쬐던 햇살과 낮잠 시간에 졸면서 듣던 열차의 기적소리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했다. 두 개의 겨울처럼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두 종류의 향수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의 그 뛰어난 비현실 감각을 상실했고, 마침내, 모두에게 마꼰도를 버릴 것을, 이 세계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자신이 가르쳐주었던 것을 모두 잊을 것을, 호라티우스에게 똥을 싸버릴 것을, 그리고 어느 곳에 있든지 과거는 거짓이고, 추억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고, 지난 봄은 다시 찾을 수 없고, 아무리 격정적이고 집요한 사랑도 어찌 되었든 잠시의 진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것을 권고하고 말았다.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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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구판절판


아무 데도 가지 못할 거라고 말했어. 내가 대학을 가고난 후에는 말이야. 내 말 똑똑히 들어봐. 그땐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우린 여행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겠지. 알고 지내던 사람들한테 전화로 작별 인사를 하고, 호텔에 들어 가면 그림 엽서를 보내야 할 거야. 난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택시나 메디슨 가의 버스를 타고 출근하겠지. 신문을 읽거나, 온종일 브리지나 하겠지. 그게 아니면, 극장에 가서 시시하기 짝이 없는 단편 영화나, 예고편, 영화 뉴스 같은 걸 보게 될 거야. 영화 뉴스라. 그게 또 대단한 거지. 언제나 경마를 보여주거나, 어떤 귀부인이 배 위에서 병을 깨뜨리는 모습이라든가, 침팬지가 팬티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 같은 것만 보여주니 ㅁ라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넌 하나도 모르고 있어.-179쪽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248쪽

하지만 피비는 내 뒤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난 혼자 휴대품 보관함에 가서 가방을 맡겼다. 그때까지 그애는 가만히 보도 위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다가가자 몸을 옆으로 돌아서 버렸다. 그런 짓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아이였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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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요 JD. 뭐해.

-책 읽어.

-뭔데 뭔데?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아 그거. 나 좋아해. 근데 존 레논 암살자가 체포 당시 이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 때문인지 암살자와 범죄자들의 애독서라는 얘기가 있어. 좀 웃겨. 콜필드는 누구를 죽일 사람이 아닌데.

-콜필드 좀 귀여운 듯?

-난 그 부분이 제일 좋아. 콜필드가, 예쁜 여자친구 샐리를 찾아 가서 자기랑 도망치자고 하는 부분. 그러다 결국 샐리를 울리지. 정말 콜필드스러워. 여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여자 없이는 못 살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저지르고, 자기가 이 세상과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고칠 생각이 없어.

-동생 피비를 찾아가는 것도 재밌어. 피비가 너무 귀여워.

-너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군.

-지금 너 말고 피비가 침대 위에 앉아 있다면 좋을 텐데.

-나, 콜필드가 피비 사주려고 샀던 음반 진짜로 있는 음반인 줄 알았어. 나도 들어보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안 나오는 거야.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나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어떤 사람이 친절히 써 놨더라. 가공의 음반이라고. 더 멋있지 않아?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피비와 콜필드만 들을 수 있는 음반인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의『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도 비슷한 게 나오는데. 가공의 작가 데릭 하트필드.

-그러고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도, J.D. 샐린저도 『위대한 개츠비』의 팬이네?

-나도.

-은근슬쩍 끼지마.

-진짜야.

-ㅇㅋ

-ㅇㅇ

-피츠제럴드의 표현력은 어마어마한 거 같아. 너무 요란하지도, 너무 건조하지도 않아. 개츠비의 분홍 정장은 정말 끝내줘. 개츠비의 성격이 딱 보이지 않아? 난 이 정도도 소화해 낼 수 있지. 이 정장도 어마어마하게 비싸다고. 데이지 나 좀 봐봐. 톰은 이런 거 못 입어.

-그런데 데이지한테는 오히려 역효과지.

-응. 옥스퍼드 출신은 분홍 정장을 안 입으니까.

-닉이 데이지를 만나러 처음 갔을 때 장면 기억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열기구처럼 두둥실 떠 있다가, 톰이 창문을 닫으니까 소파 위로 내려 앉았다는 그 장면. 나 진짜 감탄했잖아.

-웨딩케이크같은 천장도.

-돈의 냄새. 킁킁.

-난 처음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를 읽고 나서였어. 거기 주인공이 『위대한 개츠비』를 사랑하거든. 웃긴 게 뭔지 알아? 『상실의 시대』읽은지가 너무 오래돼서 지금은 주인공이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했다는 것만 기억이 나.

-다시 읽으면 되겠네.

-지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걸작선을 읽고 있지롱. 『해변의 카프카』나 『상실의 시대』는 좀..뭐라고 하지 그로테스크한게 있었는데 이 단편걸작선이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좀더 산뜻한 느낌이라 좋아.

-책을 느낌으로 읽으면 안 되지. 넌 너무 책을 술술 읽는 경향이 있어. 씹어 먹을 듯이 달려들란 말야. 검은 게 글자요, 하얀 게 바탕이니~하며 눈동자만 굴리지 말고. 그 한 단어 쓰는 데 얼마나 깊은 고뇌가 있었겠어. 한 문장이라도 버릴 게 없는 게 소설이야. 책 읽기 좋은 날씨니 계절이니 하는 것도 우스워. 가을이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라구? 오죽 책을 열심히 안 읽으면 계절 정해서, 분위기 따라서 읽을까. 다 끼워 맞추기 마련이지. 봄,여름,겨울은 뭐 안 좋은 계절인가?

-글쎄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책 읽기 좋은 분위기는 있지 않아? 책이 가득 꽂혀 있는 도서관, 좋은 노래를 틀어 놓는 창문이 아주 큰 카페, 따뜻한 내 방 이불 속 등등. 지하철 안도 좋고. 아,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중에 '택시를 탄 남자'라는 단편이 있어. 거기서 어떤 여자가, 주인공한테 '택시를 탄 남자'라는 제목의 그림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 그 그림 속 남자는 택시에 갇혀 어디론가 '이동' 중이란 말야. 근데 나도 지하철 안에 갇혀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거든. 잠깐만, 뭐라고 하냐면..여깄다.

너무나도 오랬동안 그 <택시를 탄 남자>를 바라보았던 탓에, 그는 어느 틈엔가 제게 있어서 분신 같은 존재가 되었어요. 그는 제 심정을 이해했던 거에요. 저 역시 그의 심정을 이해했고요. 저는 그의 슬픔을 이해했어요. 그는 '범용'이라는 이름의 택시 속에 갇혀 있었던 거죠. 그는 거기서부터 빠져 나올 수가 없었던 거에요. 영원히 말이죠. 진정한 영원 말입니다. 범용함이 그를 거기에 있게 하고, 그리고 범용한 배경의 우리 속에 가두었던 거지요. 슬픈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나는 지하철을 탄 여자였던 셈이지. 순간 나와 그 여자와 택시를 탄 남자 사이에 sympathy가 형성되는 것만 같았어. 앞으로 지하철에서 책 많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얘기가 센 감이 있지만 뭐 괜찮네.

-애초에 우리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시작했지.

-『호밀밭의 파수꾼』과 『단편걸작선』은 비슷한 점이 많아. 정신없는 스토리 전개도 그렇고 정신없는 주인공들도 그렇고.

-너무 거칠게 묶어버리는데?

-굳이 좀 더 표현하자면, 콜필드는 굉장히 불안정하지. 일단 성인도 아닌데 퇴학까지 당했어. 돈도 없고. 나이, 직책, 돈 이 세가지가 다 없단 말이야. 그런데 무작정 돌아다니지. 술도 마시고, 피아노 연주도 듣고, 창녀를 사기도 하고. 당연히 잘 될리가 없지. 근데 웃긴 건, 만약 콜필드가 성인이고, 직책이 있고, 돈도 있었다면 이 소설은 굉장히 재미 없었을 거야. 바꿔말하면 '완전함'이라든지 '안정' 자체가 참 웃기고 따분하단 거지. 왜 모두들 완전해지려고 하는 거지? 아이들을 봐. 콜필드가 말했듯, 아이들의 일기장은 정말 끝내줘. 언제 읽어도 재밌지. 하다못해 내 어렸을 적 일기장도 재밌어. 아이들은 언제든 호밀밭에서 뛰쳐 나가고 호밀밭을 파괴하려해. 어른이 되면 그 누구도 그러지 않아. 호밀밭의 파수꾼에게 어른은 필요 없어. 아이들만이 그의 관심 대상이지. 콜필드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거야. 불안정함을 일부러 유지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그와 같아. 다들 어딘가 불안해 하고, 어떻게 보면 철이 없어. 여자 26명이랑 자고 진득한 연애를 못하는 사람도 있고, 빵가게를 습격했다가 나중에 아내와 햄버거 가게를 습격하기도 하고, 남편이 레더호젠을 입은 모습을 상상하고 정이 떨어져서 이혼하기도 해. 그런데 그 미성숙함과 불안정함이 소설을 탄생시켜.

-그렇게 치면 『위대한 개츠비』도 마찬가지네. 개츠비도, 톰도, 데이지도 미성숙하고 불안정하지. 그리고 다들 또라이야. 데이지는 예쁘게 생겨서는 아름다운 영국제 셔츠만 보면 눈물을 흘리는 병이 있었지.

-개츠비는 핑크색 정장을 입고.

-콜필드는 사냥용 빨간 캡모자를 썼어.

-너는?

-너랑 이러고 있지.

 

2013년 추운 겨울 집 안에서, 곰돌이 JD와 함께. J.D.샐린저의 사망일이 다가오는 기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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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어리다. 말랑말랑하고, 물컹물컹하고, 어딘가 설 익었다. '어리다'는 것과 나이는 상관이 없다. 온전한 하나의 개체가 되는데에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불안정하고 여기저기 잘 휩쓸리고 단단하게 여물지 못한, 너무나 두서없고 솜털 같아서 언제든지 폭풍 한 가운데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런 자아를 가지고 있다. 단단한 껍질을 지니지 못한다는 건 참 힘들다. 외부의 충격을 온 몸으로 흡수해 눈물로 짜내게 되니까. 물론, 충격의 근원지에는 약간의 반작용만 가해질 뿐이다. 게다가 껍질 없이 무한정 팽창한 솜사탕 같은 자아는 필히 어딘가 툭 튀어 나온 고리에 긁혀나가게 되어 있어, 항상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바심을 내야 한다.

 

최근 들어 또 조심성 없이 세상을 다 담아내겠다고 몽실몽실하게 피어오르던 내 자아가 불 꺼진 열기구마냥 급격히 쪼그라든 일이 있었다. 자아의 팽창은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바람, 적당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 즉 온실처럼 외부와의 차단이 되어 온전히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그 안에 틀어 박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조건인 것이다. 나는 온실 바깥으로 나갔다가, 책과 영화에서만 접하던 섬칫한 냉기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어김없이 온실 안으로 돌아와 '힐링'을 바라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내가 내 뿌리로 실제 대지 위에 자리 잡아 양분을 빨아 들이며 실제의 하늘을 향해 뻗어나갈 일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내 힘과 피와 땀을 들여 내 안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기생수처럼 살고 싶지는 않기에 벌레같은 나의 몸뚱아리를 느끼고 좌절했다. 이럴 때는 달콤한 케이크도, 뜨뜻한 말 한마디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처럼 그것들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실감할 때도 없다.

 

그러다 보니 책도 안 읽게 되더라. 억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타인의 아픔과 기쁨에 공감하고 싶은데 나의 이런 면이 타인에게는 사자의 눈에 잡힌 어리버리한 얼룩말로 보이니 말이다. 혹은 오통통하게 살이 오른 육질이 부드러운 돼지. 약육강식이 전제되어 있는 사회에서 아무런 칼도, 방패도 없이 내미는 손은 그대로 잘려 나가 금가락지만 빼내고 개밥으로 던져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아니 애초에 사회는 어떤 사람들이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도 뱃속에 칼을 숨겨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회의가 들어, 그동안 나에게 감명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배를 따뜻하게 지폈던 책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도 읽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손에 집은 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었다.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는 친구가 추천했던 책이라서 읽고 싶었던 와중에 시간이 남아 잠깐 들렸던 신촌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얼핏 안을 살펴보니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고양이로소이다』, 『산시로』, 『그 후』에 비교했을 때 분량이 적고 내용도 가벼웠다. 쉬어 가는 시트콤 느낌이랄까. 그렇게 머리를 식힐 겸 읽기 시작해서 정말 이틀 밤 만에 후딱 읽어 냈다. 게다가 표지와 속지가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는 산뜻한 디자인이라서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최근들어 삽화가 들어 있는 책을 읽은 것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민음사판 뿐이라서 약간 어색한 기분까지 들 정도 였다. 삽화가 있고 없고는 참 차이가 크다. 상상력을 제한하는 삽화는 잘못된 삽화다. 읽는 사람이 끄적거리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최근에는 책에 밑줄을 긋는 것도 나중에 그 부분을 다시 읽을 때 누가 옆에서 스포일러 하는 기분이라 되도록이면 긋지 않으려고 한다.) 그 이미지에 상상이 달라붙어 버리면 그 책에서 내가 어떤 부분을 좋아했고, 싫어했고와 상관없이 그 이미지로 책에 대한 기억이 구축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중고로 사들인 책의 삽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해석의 여지를 풍부히 남겨두는 편이라서 좋았던 것 같다. 너무 알록달록하긴 했지만 나름 시트콤같은 느낌과도 어울렸으니 뭐.

 

 

 

 

게다가 무려, 이 책의 삽화가께서 지인분께 선물하신 책이었다:) 이런 우연이! 안 그래도 글씨체가 참 예쁘다란 생각을 했는데 참 신기했다. 중고책의 매력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정말 의도치 않게 타인의 삶과 교차하는 느낌! 내가 삽화를 그린 책을 지인에게 선물하는 기분을 잠시나마 느껴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선물 받은 책을 중고로 내놔야 했던 사정이 무엇일까 아쉽기도 하고.

 

튼 내가 만난 나쓰메 소세키의 4번째 소설은 참 신선했다. 무엇보다, 주인공 도련님이 겪는 좌충우돌의 세상사가 내가 앞으로 겪어나가야 할 세상의 풍파같아서 참 절절히 와닿았다. 나처럼 속터지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어린' 도련님은 정직함과 예의가 있다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도련님을 인정해주고 비웃지 않는 것은 기요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도련님은 말 그대로 '도련님'이다. 이 도련님에 담긴 뉘앙스의 잔인함이란. 이 단어 하나로 순식간에 한 사람의 인격이 가치 절하되고 그 사람의 미래 마저 비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소설 내용이 웃기긴 한데 마음껏 웃지는 못하고 웃다가 자꾸만 한 숨 푹..쉬고 그랬다. 도련님이 너무 나랑 비슷해서. 나 역시, 속은 텅텅 비었으면서 겉만그럴듯하게 포장해 자신을 내세우고 남들에게 손해를 입히면서까지 자신의 안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고고하게 고개 빳빳이 들고 진흙탕에 같이 나뒹굴지 않으려다가 나도 도련님처럼 호되게 당했버렸던 것이다. 기요나, 센바람, 끝물 호박 선생같은 사람은 많지가 않다. 정말이다. 딸랑이처럼, 빨간 셔츠처럼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괴롭히고 만만하게 봐서 안 그래도 소수의 '도련님'같은 사람들을 음지로 내몰거나 자기들처럼 바꿔버린다. 어렸을 때 죽어라 들려 주는 콩쥐팥쥐 이야기나, 왕자와 거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대체 누구 좋으라고 만든 건지 모르겠다. 모두가 약아지면 안 되니까 나같은 애처럼 물러터진 애 몇 명을 '도련님'으로 키워 나중에 뜯어 먹겠다는 음모가 아닐까.

 

1906년에 씌인 소설인데 세상 사는 모습은 참 똑같다. 그러고 보면 나쓰메 소세키는 정말 놀라운 작가다. 얼마 전에 읽은 『그 후』만 해도 분위기가 얼마나 어두웠는데. 시뻘건 색은 자꾸 등장하고 어디서 진득한 백합향은 자꾸 나고 비도 오고. 『산시로』나 『그 후』에서는 주인공이 화자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주인공의 관점에서 소설이 진행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같은 경우는 고양이가 화자이고, 『도련님』도 도련님이 화자. 즉, 각 소설에는 주인공의 생각, 말투, 행동, 사상 등이 모조리 싹싹 담겨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 거대한 우주를 지금 무려 4번이나 창조해낸 것이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도련님』의 분위기가 비슷하고, 『산시로』와 『그 후』의 분위기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 비슷하다는 것도 붉은 계통과 푸른 색 계통끼리 비슷하다는 거지, 그 안에서도 천차만별로 다양한 매력이 있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구상과 고민과 노력 끝에 하나의 소설을 탄생시키는 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이다. 분만의 고통 저리가라! 이렇게 슈퍼 우량아를 매 번 낳으려면 10개월은 택도 없고 낳고 나서 산후 조리는 두 배로 해야 할 게 분명하다.

 

재밌었다. 도련님이 저렇게 깨지고 멍들고 모욕 당해도 끝끝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내게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니라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나한테 누가 아가씨라고 놀려도 그래, 나 아가씨 맞다. 그러는 넌 뭔데? 하고 그 사람에게도 제멋대로인 별명을 갖다 붙일 수 있을 만한 자신감. 혹은 깡다구. 고마운 나쓰메 소세키 아저씨다, 과연.

 

  참 산뜻한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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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언니, Aimee Mann의 목소리가 대거 실린 영화 Magnolia의 오스트. 요상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솔로' 아티스트 중에는 여성이 많다. Aimee mann, 꼴까닥 넘어갈 거 같은 목소리의 Fiona apple, 내가 담배 한갑을 내리 피고 노래를 해도 이렇게는 안 될거야 rachael yamagata, 폭발하는 청승맞음 박정현, 언니 너무 몽롱해요 이소라, 영원한 여신 김윤아, 인어의 목소리 지선, 잠이 들 것만 같은 잔잔한 심규선, 한국식 허스키 조원선. 중학생 때 갓 pop을 듣기 시작할 무렵에는 그 스모키 화장과 창백한 금발이 어찌나 예뻐 보였는지, Avril Lavigne에게 푸욱 빠졌었다. 게다가 그 무렵의 avirl양은 complicated, st8er boy같은 명곡을 후줄근한 힙합 패션에그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신비로운 소녀였기에 ㅠㅠ. 난 이상하게 노래 잘 하는 남자보다 노래 잘 하는 여자에게 끌리더라. 어쩌면 나는 동성에게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가끔. 


쨌든, Aimee mann 의 노래 중 이 magnolia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바로 'Save me'이다. 


Save me 

You look like
A perfect fit
For a girl in need
Of a tourniquet
But can you, save me
Come on and, save me
If you could, save me
From the ranks of the freaks
Who suspect they could never love anyone

'Cause I can tell 
You know what it's like
The long farewell 
Of the hunger strike 
But can you, save me
Come on and, save me
If you could, save me
From the ranks of the freaks 
Who suspect they could never love anyone

You struck me dumb
Like Radium
Like Peter Pan or Superman
You will come to save me
C'mon and save me
If you could, save me
From the ranks of the freaks
Who suspect they could never love anyone
'Cept the freaks 
Who suspect they could never love anyone
But the freaks 
Who suspect they could never love anyone


C'mon and save me
Why don't you save me
If you could save me
From the ranks of the freaks
Who suspect they could never love anyone
'Cept the freaks 
Except the freaks 
Who suspect they could never love anyone
Except the freaks who could never love anyone


                                                                 
                                                                        



가사 봐. ㅠㅠ. 너무 좋다. 처음에 영화를 보지 않고 이 노래만 들었을 때는 눈물을 뚝뚝 떨어 뜨리고 허겁지겁 가사를 찾아 일기장에 옮겨 적었었다. 나중에 영화를 보며 이 노래를 들었을 땐 또 감회가 새롭더라. 음, 영화를 볼 때는 아무래도 save me 보다 wise up을 들으며 더 울었던 것 같다. 난 원래 스크린 속 주인공이 울면 같이 운다.특히 여자가 울면 더 운다. wise up노래를 주인공들이 떼거지로 따라 부를 때는 그렇게 가슴이 먹먹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런 거다. 서로 치고 받고 미워하고 오해하고 때리고 난리를 쳐도, 서로가 괴물같고 내 자신이 괴물같더라도 결국 우리는 서로를 구원해줄 수 있고 또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고작 한 번의 데이트를 위해, 한 번의 용서를 위해, 한 번의 만남을 위해, 한 번의 인정을 위해 엉뚱한 데서 생 난리를 친다. 그러다 문득 하늘에서 개구리라도 떨어지면, 갑자기 모든 것이 부질 없어 보이고, 사실은 가장 바래 왔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잊혀져 버린 그 '구원'을 향해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참 문제다. 삐진 연인에게 '미안해' 한 마디면 모든 게 해결될 텐데 그 한 마디를 못해서 서로의 잘잘못을 붙들고 끙끙 앓고, '감사합니다' 한 마디면 부모 자식간의 질긴 인연이 다시 굳게 이어질 텐데 그 한 마디를 못해서 서로에게 소리를 지른다. 인생 혼자 사는 거 아닌데, 주위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몽실몽실하게 하루를 보내기에도 부족한데 우리는 갈수록 구원에서 멀어만 진다. 이러다 하늘에서 개구리라도 진짜 떨어져야 정신차리고,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 또 용서를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달려 가려나.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커플용 크리스마스 단골영화인 Love Actually 에서 karen 역으로 나온 emma thompson이 남편에게 하는 말이 있다. Joni Mitchell의 blue 음반(both sides now 였나..?기억이..)을 틀어 놓고, 또 그 양반 노래를 듣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하는 남편에게. 이 사람이 나의 감수성을 되찾아 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약간의 건들건들한 자세와 함께 흥얼거린다. 나에게는 Aimee Mann이 그런 사람이다. 괜히 혼자 질질 눈물 흘리고 싶을 때, 온갖 청승이란 청승은 다 찾아서 방구석에 기어들어가 이불 푹 뒤집어 쓰고 혼자 있고 싶을 때 aimee mann의 목소리는 인생 다 산 언니가 옆에 걸터 앉아 그래, 힘드냐? 하고 토닥여주는 거 같다. 그럼 나는 네..징징..힘들어요.. 거리다가 정신 퍼뜩. 따뜻한 카페라떼나 코코아가 있으면 기운은 120% 회복된다. 


오늘은 딱히 청승을 떨고 싶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지만,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밤을 꼴딱 새고 말아서, 주저리주저리 글이라도 쓰고 싶었다. 참 이상하다. 힘들 때 들었던 노래들을 나중에 힘든 일이 다 지나가고 들으면, '고마운' 기분이 든다. 노래에게 고마운 건지, 이제는 털고 일어난 나에게 고마운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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