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만화가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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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기 만화가 강풀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여당에서 상정하려는 법안들이 너무나 문제가 많아 그대로 있을 수 없어 동료 만화가들과 함께 인터넷에 조목조목 문제점을 짚어 주는 만화를 릴레이로 연재하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보통은 선배들이 후배에게 제의를 할 만한 일인데도 스스로들 하겠다고 하니!

그래, 이 일로 나중에 우리가 이 시대에 살아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이희재씨가 아이디어를 내고 내가 그려서 우리는 제목 그림을 하나 보탰다.

지금 연재를 다 끝냈고 인터넷 검색창에 ‘악법 만화’ 혹은 ‘악법릴레이 카툰’으로 치면 볼 수 있다. 다음주에는 책도 나온단다.(에라! 하는 김에 책 선전도 하자)

제목은 <악! 법이라고?>이고, 이매진출판사(02-3141-1917)에서.

넘 이쁘고 자랑스러운 우리 만화가들의 이름은 ….

맨 뒷줄 왼쪽부터 현용민·박철권·김태권, 가운뎃줄 왼쪽부터 윤태호·손문상·주호민·야마꼬·석정현·최호철, 앞줄 왼쪽부터 강풀·곽백수·김용민·최규석이다.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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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지금 '쇼' 하나"


[정희준의 '어퍼컷'] '진보 장사' 하는 '아티스트'들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2-26 오전 7:02:43 
 


가수 쪽을 보면 '진보 장사' 하는 이들이 꽤 있다. '애국 장사' 하던 유승준은 이미 재기불능 수준으로 나가 떨어졌지만 '진보 장사' 가수들은 지금도 꽤 잘 나가고 있다. 그렇다. 애국 장사에 비해 진보 장사가 더 안전(?)한 장사다.

비판적 대중 가수 1호인 서태지는 부모가 싫어하는 모든 음악을 전파하면서 학교, 부모 등 기성세대를 공격하고 조롱했다. 한마디로 근대 한국의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식까지도 재구성한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2000년 컴백하며 닉스와 단 3개월간의 광고 모델료로 8억 원, 프로스펙스와 1년간 15억 원, 그리고 KTF와 (그의 곡 음원을 포함해) 32억 원이라는 초대형 광고 계약을 맺은, 말 그대로 '단군 이래 최고의 상품'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히트곡 하나 없지만 음악보다는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 듯하다. 마침 요즘 그가 '실종' 됐다는 뉴스를 봤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것도 서태지는 '가출'이라 칭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의식 있는 가수'로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윤도현은 광고 모델 수입 총액에서는 서태지에 뒤질지 모르겠으나 더 다채로운(?) 회사들과 광고 계약을 맺었다. 사실 월드컵 이전엔 대중적 인기가 미약했던 그는 2002 월드컵으로 대박을 터뜨린 이후 그의 이미지가 너무 월드컵으로 굳어지자 '월드컵 가수'로 기억되는 것이 거부한다며 모든 관련 행사 참여를 거부했다. 이후 방송 진행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적 발언'을 했는데, 언론을 통해 '인권' 이야기도 하고 '미국' 이야기, '반전' 이야기도 하면서 그의 이미지를 진보로 잡았다. 그러나 매우 '상업스런' 포즈와 목소리로 진보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는 기업 광고에도 나서더니 급기야 2006 월드컵 시즌이 임박하자 다시 재벌기업의 월드컵 광고에 발빠르게 참여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기억력은 유효기간이 채 4년이 안 됐던 것이다.

연예인은 과연 '개인'일 뿐인가

아무래도 대본을 따라야 하는 배우보다 가수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가사를 통해서도 할 수 있고 인기를 얻은 후에 언론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첫째, 자신의 대중적 인기가 활용(?)된, 둘째, '사회적' 발언인 경우라면 연예인 개인이 아닌 공인의 발언이 된다. 당연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는 연예인이 결혼하면서 "팬 여러분~ 저희 열심히 살게요~" 했다가 얼마 후 친구로 남기로 했다며 이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 연예인도 사람이다 보니 말과 행동이 다를 수도 있고 자신의 언행이 불일치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그에 대한 '책임'까지는 따지기 애매하더라도 그로 인한 사회적 비난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대부업이나 아파트 광고 등 최근 연예인의 광고 출연이 문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자신의 돈 벌 권리다, 선택의 자유다, 별 걸 가지고 시비다 하면서 문제 제기 하는 이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면서 억울해 하고, 분해 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광고 찍는 자유가 있는 만큼 팬과 대중도 그 광고를 보고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 연예인들은 가족끼리만 돌려 보려고 그 광고 찍었나? 우리 보라고 찍은 것 아닌가. 우리 보라고 찍은 광고를 우리가 보고 비판 하는데 그 어디에 문제가 있나. 그리고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광고 출연료는 (광고주를 한 번 거칠 뿐) 몽땅 소비자가 지불하는 것이다.

신해철의 '자가당착 퍼포먼스'


▲ 가수 신해철 씨가 최근 한 입시학원 광고 모델로 등장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프레시안
처음엔 만우절인줄 알았다. 신해철이 입시 학원 광고에 등장했다는 뉴스 말이다. 그것도 특목고 전문학원 광고 모델이었다. 평소 한국사회의 입시 정책과 사교육을 가장 격렬하게, 물불과 장소 안 가리고 공격했던 신해철이었다.

그런 그가 그의 별명만큼이나 매우 마왕스러운, 매우 강렬한 표정으로 특목고 입시 학원 광고에 등장했다. 매우 '학원스러운' 문구들과 뒤범벅이 되어 특목고 가는 지름길이 바로 이 학원에 있음을 가르치려 든다. 이것이 과연 블랙코미디인가, 아니면 가상현실인가. 쇼 같기도 한데 신해철은 스스로를 '아티스트'라 칭한다니 그렇다면 '퍼포먼스'인가.

광고에 등장하는 문구다. '독설보다 날카로운 신해철의 입시성공 전략.' 그가 제시하는 결론은 물론 특목고 입시 학원이다. 또 다른 문구다. '도대체 왜, 학습 목표와 학습 방법이 자녀에게 딱 맞는지 확인하지 않습니까.' 이게 대안학교 광고 문구라면 딱 어울리겠다.

한낱(?) 광고가 나를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도 오랜만인 듯하다. 그래도 신해철 정도(?)면 뭔가 있지 않을까? 혹시 우리가 쉽게 알아 챌 수 없는, 그렇지만 결국엔 우리 가슴을 뻥 뚤리게 하는 통렬한 풍자가 숨어 있지나 않을까? 아니었다. 비틀어도 보고, 뒤집어도 봤지만 신해철이 평소 주장했던 주장과 그의 광고 출연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맺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광고 논란이 일자 지난 주 진중권 교수가 알듯 모를듯 신해철을 옹호하는 듯한 글을 어느 게시판에 남기더니 월요일엔 개그맨 박준형이 "광고는 광고일 뿐, 신해철에게 왜 투정하나?"라는 글로 신해철 비판을 나무란다. 그간 꽤 존경해 왔던 진 교수에겐 살짝 실망감이, 박준형에겐 답답함이 느껴진다.

신해철이 권하는 성공 전략은 특목고?

신해철의 특목고 입시 전문 학원 광고 출연은 자기모순이자 경거망동이다. 사실 완전한 헛발질이었다. 자기 꾀에 넘어간 듯하다. 그는 자신의 판단과 소신을 맹신했고 과신했다. '마왕'의 추종자들만큼은 '그 역설적이고 동시에 통렬한 풍자'에 탄복하며 따를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논란이 시작되자 그는 정면으로 맞불을 놓는다. 그 스스로 논란을 키울 정도로 그는 자신만만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광고대박 감사합니다"라는 참으로 얄미운 제목의 글에서 "예상대로 반응이 불을 뿜는다"며 "명박 형님께서 사교육 시장에 에너지를 팍팍 넣어주신 결과, 엉뚱하게도 제가 득템~~~ 각하께서 주신 용돈 잘 쓰겠습니다"라고 썼다.

학원 광고를 찍기로 한 자신의 상업적 판단을 '명박 형님' 탓에 마치 '본의 아니게' 얻게 된 것처럼 포장하는 용감함도 대단하지만 아마도 수억 원에 이를 광고 출연료를 '용돈'이라 칭하는 그의 배포는 참으로 어이없다. 또 나아가 "이번 광고 출연은 평소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의 연장이며, 평소의 내 교육관과 충돌하는 부분이 없다"고 해명했는데 이는 그의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이 자만을 넘어 오만으로, 그리고 자가당착을 넘어 횡설수설로 연결됐음을 보여준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는 것은 그가 광고에 출연해서가 아니다. 박준형처럼 그를 옹호하려는 이들도 잘 알아뒀으면 한다. 신해철 같은 연예인이 광고 출연하는 것은 가수가 콘서트 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가 라면 광고, 아이스크림 광고에 나왔다면 누가 뭐랬을까. 장갑 광고, 샴푸 광고, 선글라스 광고, 화장품 광고 아니면 남성용 블라우스(?) 광고도 어울릴 것이다. 광고 마다할 것 없다.

교육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인가

문제는 그가 이제까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했다는 점인데 특히 그의 발언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교(敎)와 육(育), 즉 '교육'에 관한 것들이었다. 특히 자신이 DJ를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교육'에 대한 일관되고도 격한 발언들을 해왔음에도 광고 한방으로 자신의 이제까지의 발언과 주장들을 우스개로 만들어 버렸다. 신해철은 교육 가지고 그렇게 장난 쳐도 되나. 나아가 그의 광고 행위는 이제까지 신해철의 발언에 동의와 지지를 보낸 대중, 그리고 그를 열렬하게 응원한 청소년들에 대한 배신이다, 배신.

무엇보다 그는 상업자본주의, 특히 그 중에서도 청소년들의 미래를 담보로 가장 저급하고도 비열하게 돈벌이를 하는 입시 학원 상업주의의 품에 안겼다. 그 뿐 아니라 청소년 학대와 소외, 그리고 계급 차별을 조장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병적인 분야의 광고 모델로 등장해서 스스로 학력 차별을 선동한 꼴이다.

신해철은 아이들이 학원 다니느라 고생한다는 것만 알았지 그 이상의 구조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아닌가 싶다. 아니라면 그 자신 명문대를 나온 탓에 세상을 아직 반쪽 밖에 모르는 것일까. 그는 그 학원의 학원비가 얼만지나 알고 광고 찍었을까. 그는 그 학원 건물이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있는 집 자식'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몰랐었나. 평소 입시 교육을 그렇게 비판하면서도 특목고 입시 학원이 우리 사회 계급 재생산과 사회 양극화의 최전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나.


▲ "신해철이 입시 학원 광고에 등장했다는 뉴스 말이다. 그것도 특목고 전문 학원 광고 모델이었다. 평소 한국 사회의 입시 정책과 사교육을 가장 격렬하게, 물불과 장소 안 가리고 공격했던 신해철이었다." ⓒMBC

계급 재생산과 사회 양극화의 선봉에 선 신해철

하나 더. 최근 진행되고 있는 고교 계급의 지각 변동에 신해철은 확실하게 기여했다. 지금은 이른바 명문고교의 전교 1등도 원하는 대학과 학과 입학을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명문대 진학을 보장하는 것은 이제 특목고 뿐이다. 신해철은 이제 명문고 위에 특목고 있다는 사실과 특목고만이 성공의 열쇠라는 공식을 자신의 몸으로 증명한 것이다. 신해철은 결국 차별 사회를 조장하는 교육 계급화, 입시 계급화, 학원 서열화의 선봉에 선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신해철이 비난 받아 마땅한 이유 말이다. 박준형은 조선일보사가 만든다는 대중문화 웹진에 기고한 칼럼에서 "개그는 개그일 뿐인 것처럼 광고는 광고일 뿐"이라며 "투사도, 정치인도, 논객도 아닌 뮤지션 신해철에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했다.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입시 학원은 왜 신해철을 광고 모델로 낙점해 단발광고도 아니고 아마도 수억 원의 거액이 들어갈 1년 계약을 맺었을까. 신해철이 히트곡 제조기라서? 인기 최고의 가수라서? 한류열풍의 주인공이라서?

아니다. 그 학원은 흘러간 대학생밴드 '무한궤도'에서 활동하던 신해철이나, 요즘 활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도 없고, 대중적인 히트곡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중·고생들은 전혀 열광하지 않는 '넥스트'에서 음악 하던 신해철을 원한 게 아니다. 지금 신해철을 비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신해철의 노래 중 히트곡이 뭔지도 모른다.

결국 교육 장사 하려고 교육 비판 했나

신해철이 거액의 광고 모델이 된 이유는 그가 가수라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그가 내뱉었던 사회적 발언들, 특히 우리 사회 왜곡된 입시 교육을 맹공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그 입시 학원은 가수 신해철이 아니라 사회적 발언을 했던 신해철의 정체성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다. 이걸 뒤집어서 이야기해 보겠다. 신해철은 자신의 이제까지의 사회적 발언을 통해 돈을 번 것이다. '교육 팔아' 돈을 번 것이다. 결국은 '교육 장사' 한 것이다.

박준형은 "신해철에게 왜 투정하나"라며 신해철 비판자들을 비판했는데 그게 '투정'으로 비쳤다면 박준형은 자신의 눈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 신해철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예민한 쟁점인 교육 문제 가지고 자신의 이미지를 쌓으며 몸값을 올리다가 이를 일거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 그의 말마따나 '광고 대박'의 행운을 챙겼다. 이는 교육을 자신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는 당연히 비판 뿐 아니라 비난도 마땅하다.

신해철이 얄미운 이유 또 하나가 있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뭐 그런 걸 가지고 시끄럽게 그러느냐 하는데 신해철은 그의 홈페이지 글에 "예상대로 반응이 불을 뿜는다"고 스스로 썼듯 그의 광고가 시끄러워질 줄, 광고 대박으로 연결될 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학원 관계자도 "어느 정도 논란은 예상했지만…"이라고 했다. 학원 측은 학생 수가 늘지도 않았고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죽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결론은? 광고 중단? 천만에! 광고는 계속 나간단다. 그들은 신해철의 자기모순과 언행 불일치로 인해 일어날 논란까지 모두 계산한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지금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신해철은 그 학원 홈페이지에서 "특목고에서 명문대까지 합격의 맞춤전략을 제시한다"며 '2009년 특목고 총 980명 합격'을 손수 내걸고 잔뜩 연출된 표정과 격렬한 몸짓으로 광고에 전력하고 있다.

청소년과 미래와 희망을 배신한 사람

그는 논란이 되자 개인 홈페이지에 "CF 역시 아티스트에겐 표현의 일종"이라면서 "착각하시는 분들은 다음 글을 읽어보세요. 며칠 내로 시간 나면 올리죠"라며 후속 해명글을 예고했다. 그러나 열흘이 넘도록 시간이 나질 않는지 그의 글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사실 그가 같은 글에 "길게 쓰긴 귀찮고…"라고 쓴 것을 보면 할 이야기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좀 귀찮더라도 한번 써 보기 바란다. 길게. 도대체 '아티스트'로서 뭘 '표현' 하려 했는지 말이다.

그는 팬과 대중과 청소년과 희망을 배신했다. 이제 우리 차례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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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2-2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 올만이에요.
제가 올해,... 학생부장을 맡았습니다.
술한잔 사주세요. ㅠㅜ

해콩 2009-02-2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 학교 학생부는 땡 잡았네요... ^^ 학생생활지도부가 되기보다는 학생서비스부.. 정도가 될 듯.. 술은 한 잔이 아니라 여러 잔 사드려야 할 듯. 제 폰 번호 그대로임돠... 연락주셔요. 근데 3월에는 바쁘시지 않으실까? 암튼 여유있으실 때!! 아~ 느티나무님도 함께 뵐까요? 북구에 ㄱㄱ고로 이번에 옮기셨데요~

hook-choi 2009-03-01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난 또 몰랐네... 평소에도 신해철의 오버스러움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이렇게 배신(?)을 때릴 줄이야. 배신이란 말로는 이 더럽고 짱나는 기분을 대신할 수 없을 듯한데... 이제 졸려서 자려고 하는데 또 열받네. 진중권 아저씨는 또 뭐라고 쓴거야? 졸려서 낼 찾아봐야지. 낼 개학인데 교재연구는 안하고 인터넷만 헤매다 자네~ 샘도 잘자.

해콩 2009-03-0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나름 팬이었는데 정말 저런 광고를 찍었단 말야? 싶더라. 그 역시 자본의 원리에 충실한 마왕이었던 셈. 믿을 놈이 없어. 사후 그의 뻗댐에 더 짜증나네, 씁쓸하고. 내일이 드뎌 개학인데 점점 게을러져서 작년 첫시간처럼 수업해야지~ 하며 개학 후로 모든 일을 미루고 인터넷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어. 내일 좀 일찍 등교해서 준비해야지 하면서 ㅋㅋ 자기나 나나 뭐 오십보백보인 듯. 오늘 밤 잘 자고 내일부터 다시 홧팅이야. 수민이 때문에 신경 많이 쓰이겠다.
 

합격자 플래카드와 다산의 「감사론」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대학 동창 중에 중고등학교 교사가 많다. 다른 길을 걷노라 어울릴 기회가 적지만 뜸뜸이나마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얼마 전 대학 다닐 때 순수한 교육적 열정으로 들끓던 친구를 십수년만에 만나 생선회 한 접시를 앞에 놓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만나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 소식을 묻기도 하고, 떠올리자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청춘의 황당한 실수담 등 온갖 얘기로 꽃을 피우다가 화제가 입시 이야기로 번졌다.




“야, 아무개야, 그런데 말이지, 대학 입시 끝나거든 제발 학교 앞에다가 서울대 몇 명 합격이라고 플래카드 좀 붙이지 말아라. 원, 그래서야 쓰겠냐? 학생이 서울대 몇 명 간 것이 학교 자랑거리가 되나? 그거 교육자답지 않다.”




친구의 답은 이랬다. “이 사람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나. 선생님들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학부형들이 몇 명 갔느냐고 물어서 붙여 놓은 거란다. 또 교장 선생님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본인이 기뻐하고 주위에서 축하하면 그만인 일을




특정 대학에 많은 학생을 합격시키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목적인가, 자랑거리인가. 설령 그렇다 치자. 하지만 학교에서 그것을 플래카드에 써서 몇 달이고 광고를 하는 것이야말로 좀 부끄러운 처사가 아닌가.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런 꼴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슨 고시 합격자 발표가 나면, 길거리에 ‘무슨 고등학교(혹은 중학교) 졸업생 아무개’ ‘아무개 씨 아들 누구’가 어떤 고시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리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대학 올해 사법시험 몇 명 합격, 무슨 고시 몇 명 합격, 이런 플래카드는 넝마가 될 때까지 걸려 있다. 물론 개인이 노력해서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기뻐할 일이고, 그 개인을 아는 사람이 축하하면 그만인 일이다. 동네방네 그것을 알려야 할까?




또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내 주위에 그런 시험에 합격한 분들이 더러 있지만, 그들로 인해 그 마을이나 그 학교나 그 이웃이나 그 친척이 무슨 행복해지는 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안면을 통해 무슨 사사로운 부탁을 하여 덕을 보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분들이 차지한 높은 자리가 사적 친분을 통한 부탁을 들어주라고 만든 자리는 아닐 것이다. 요컨대 플래카드의 주인공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것일 뿐이다.




문득 다산이 큰 도둑을 논한 「감사론」이 떠올라




나는 이런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조선시대의 과거 합격자와 다산의 「감사론」이 떠오른다. 「감사론」의 한 부분을 들면 이렇다.




“그 사람은 큰 깃발을 세우고 넓은 일산을 바치고 큰 북을 치고 큰 나팔을 불고 두 필의 말이 끄는 교자를 타고 옥로(玉鷺)를 위에 꽂은 갓을 쓰고 길을 간다. 그를 따르는 사람을 꼽자면, 수종군은 부(府)가 둘이고 사(史)가 둘이며, 서(胥)는 부·사의 수와 같이 하되 둘을 더하고, 병졸은 수십 명, 하인과 종의 무리는 수십 수백 명이다. 여러 현(縣)과 역(驛)에서 나와 인사를 안부를 여쭙고 맞이하는 아전과 병졸이 수십 수백 명이고, 말을 탄 사람이 1백 명, 짐을 실은 말이 1백 필, 고운 옷에 곱게 단장한 부인이 수십 명, 화살 넣은 동개를 지고 말을 타고 앞을 달리는 비장이 둘, 그리고 뒤에 따라가는 비장이 셋이다. 거기에 따르는 역관(驛官)이 하나, 향정관(鄕亭官)으로 말을 타고 따르는 사람이 셋, 인끈을 늘어뜨린 부신(符信) 주머니를 차고 숨소리도 내지 않고 말을 타고 따르는 사람이 네댓, 붉고 흰 차꼬와 항쇄, 족쇄를 싣고 가는 사람이 넷, 횃불을 등에 지고 청사초롱을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수백 명, 손에 채찍을 쥐고 백성들이 앞으로 달려 나와 하소연을 하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여덟이다. 길거리에서 바라보고 한숨을 뿜으며 부러워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다.”




왜 엉뚱하게 플래카드의 이름에서 과거합격자와 감사가 떠오르냐고? 나도 모른다. 나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연상 작용의 복잡한 과정을 어떻게 알겠는가? 혹 「감사론」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면 알 수 있으려나.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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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12-0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어제 강명관 선생님 글 읽었는데요. 참 시원시원하시데요. ^^
근데... 플래카드 붙이든 안 붙이든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 들어가는게 담임으로선 젤인데...
우리반은 아직 합격률이 0/33입니다. ^^
방학때 지부에서 하는 강유원과 책읽기 신청할까 하는데요. 같이 들읍시다.

해콩 2008-12-13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가을 강명관샘 강의를 두 번이나 들었어요. ^^; 강의는 더 시원시원...
강유원 연수 그렇지 않아도 쪼금 땡겼는데 다른 연수랑 이틀이 겹치는 바람에 접었습니다. 사실... 안내된 책 목록을 보고 '앗 뜨거라'한 면도 있구요. 들으시고 좋은 책 추천해주셔요~

방학 때든 언제든 한 번 만나서 진~짜 맛있는 커피 한 잔 홀짝거리면 좋겠어요. 혹시... 시네마테크는 안 오시나요?

글샘 2008-12-16 08:18   좋아요 0 | URL
억, 안내된 책목록이 있었나요?
이론... 큰일났네염. ㅠㅜ
커피는 제가 한 잔 살게요. ㅎㅎ
시네마테크...는 잘 안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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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변증설 /


국가라는 권력기구를 작동시키는 것은 사회의 지배세력이다.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영속화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강제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피지배층의 대뇌에 설치하려고 한다. 뉴라이트가 국사 교과서를 문제 삼고 나오는 것은, 스스로를 한국 사회의 지배자라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1432년 6월9일 집현전은 <삼강행실도>를 엮어 세종에게 올린다. 한 해 전 충·효·열을 실천한 신하와 자식, 아내의 사례를 뽑아 책으로 엮으라는 세종의 명을 따른 것이다. 세종은 책을 서울과 각 지방에 나누어 주어 우부우부(愚夫愚婦)들이 책에 실린 행위를 본받게 하라고 다시 명한다. 이 책은 2년 뒤인 1434년 11월24일 인쇄되어 여러 지방에 보급된다. 하지만 한문으로 쓰인 책이라 백성들은 읽을 수 없었다. 이 책에 그림이 붙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세종은 지방관과 지방의 지식층이 문맹의 백성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 주라고 명했던 것이다. 한데 지방관과 지식층은 열심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도구가 필요했다. 세종은 1443년에 백성을 가르치는 문자, 곧 한글을 만든다. <삼강행실도>는 한글 창제 이후인 성종 때 원본을 3분의 1로 축약한 국문번역본이 나오면서부터 백성들 사이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삼강행실도>는 조악한 느낌이 들 정도로 볼품이 없어 보이지만, 이 책은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또 조선 사람들의 위계적 윤리의 실천지침이 되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즉 지배층이 백성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은 한국 역사상 이 책이 최초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양반 체제는 한글로 된 책을 다양하게 인쇄해 백성들에게 공급하거나, 원하는 백성이면 모두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양반들은 되도록이면 백성을 무식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통치에 필요한 만큼 적은 지식만을 주입하면 그만이었다. 어떤 교육 내용을 어디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은 백성에게 묻지 않았다. 백성들 역시 일방적 교육에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낼 길이 없었다.

모든 국민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된 것은 1948년 이후의 일이다. 모든 국민이 교육을 받게 된 것을 사회 발전의 명백한 증거로 보기도 한다. 모든 국민에게 교육기회의 균등을 보장한다는 의무교육은, 외견상 선량한 의도를 띠고 있지만, 그 이면은 여간 복잡하지 않다. 무엇보다 교육하는 주체인 국가와 교육을 받는 국민의 관계가 권력적이라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학교에 다니지 않을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의무교육 기간은 물론이고, 고등학교와 대학의 경우도 다니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학벌을 따지는 사회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와 대학 진학을 거부하는 것은, 사회에서 도태되기를 자원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이 권력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한층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교과목의 구성과 평가다. 즉 피교육자인 학생은 교과목의 구성과 내용에 대해 어떤 비판도, 항의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영에 능한 신체조건을 갖춘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에게 수영이란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부여하고 평가한다고 상상해 보자. 수영은 후자에게 꼴찌를 담보하는 과목이 될 뿐이다. 결코 공평하지 않다. 교과목의 구성은 바로 이 수영처럼 일방적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비판하거나 항의할 수 없다.




이런 예에서 보듯 근대국가의 교육제도가 갖는 일방적인 과목 구성과 평가는, 피교육자에게는 저항과 비판이 불가능한 일방적 권력 행사가 된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하에 일방적 권력 행사를 통해, 개인의 대뇌를 열고,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강제적으로 설치한다. 조선조의 교육과 근대교육은 이런 점에서 동일한 속성을 갖는다. 즉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들은 백성들을 교육에서 소외시키고, 자신의 지배에 꼭 필요한 만큼의 프로그램을 백성들의 대뇌에 설치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했다면, 현대 국가는 국민 전체에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한다는 구실로, 자신에게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국민의 대뇌에 설치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뉴라이트 세력의 역사 교과서 역시 이 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 세력은 왜 자신들의 역사관을 일반 출판이 아니라 굳이 교과서를 통해 펼치려고 하는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국가 교육의 권력이 갖는 일방적인 강제력 때문이다. 이 강제력을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역사의식을 학생들의 대뇌에 일방적으로 설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교과서가 아닌, 국사 교과서에 집중하는 것인가.

국사는 수학처럼 부동의 진리를 가르치는 과목도, 인간 행위의 준칙에 대해 숙고하는 윤리를 가르치는 과목도 아니다. 국사는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이 행사되는 공간 안의 모든 개인을 세뇌하는 기본 도구다. 개인이 근원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사건을 동일하게 경험했다고 세뇌하거나, 일부 경험하였을 경우 그 경험의 의미를 단일한 것으로 확정하여 세뇌하는 것이다. 그 세뇌를 통해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는 인간 개체, 곧 국민이 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된 국민은, 현실 속에서 차별받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잊고, 자신이 다른 인간 개체들과 동등한 국민이라고 신념하게 된다. 차별성을 은폐하고 동일한 국민으로서의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국사의 목적이다.




 

» 강명관의 고금변증설
 
국가라는 권력기구를 작동시키는 것은 사회의 지배세력이다.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영속화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강제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피지배층의 대뇌에 설치하려고 한다. 뉴라이트가 국사 교과서를 문제 삼고 나오는 것은, 바로 스스로를 한국 사회의 지배자라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방 저 옛날 <삼강행실도>를 엮고 뿌렸던 양반들이 부활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강명관/부산대 교수(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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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k-choi 2008-12-01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들어와 샘이 방금 (퍼)올린 뜨끈한 글을 읽게되니 반가워ㅎ~ 비록 휴직중이고, 평소 사회의식이 남다른 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요즘은 정말 TV만 봐도 화병날만한 일들이 너무 많아. 출근하면 샘이랑 나란히 옆자리에 앉아 짜증내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던 때가 너무 그리워~ 역사교과서 문제를 보면서 내 교과가 아니고, 난 휴직중이니 한발 물러서 있을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 근데 소심하고 수동적인 내가 현장에 있더라도 뭘 어떻게 했을까... 흥분하면서 반대서명에 동참하는 정도였겠지. 한심한 세상만큼 무기력한 내 존재가 한심스러워ㅜㅜ. 이제 KBS도 짜증나서 못보고 MBC만 봐. 오늘 수민이 이유식 만들 한우안심 사러 마트갔더니, 한우코너엔 파리만 날리고 미국산 쇠고기 코너엔 사람들이 득실거리더구만. 잘난 뉴라이트들은 쾌재를 부르며 웰빙음식 사먹으러 갔겠지? 급식에는 미국산 아닌지 잘 살펴봐. 아~ 화! 난! 다!
 

언론인의 양심·시청자만이 두려움의 대상”
[한겨레가 만난 사람]
YTN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 노종면 노조위원장
정치권과 구본홍씨 쓸 수 있는 카드 바닥 드러내
민영화 막기 위해서라도 ‘출근 저지’ 성공시킬 것
 
 
한겨레 이문영 기자
 








 

» 노종면 YTN노조위원장
 
주연과 조연이 바뀌었다. 막둥이 ‘윤택남’(누리꾼들이 붙인 보도전문 채널 <와이티엔>(YTN)의 애칭)이 첫째 ‘고봉순’(<한국방송> KBS)과 둘째 ‘마봉춘’(<문화방송> MBC)의 인기를 넘어섰다.

막둥이의 인기는 16일 오후 감행한 생방송 기습시위로 절정을 이뤘다. ‘공정방송’ 팻말의 생방송 노출은 윤택남네 ‘반항아들’의 겁 없는 ‘애드리브’였다. 생방송(오후 1시 ‘뉴스의 현장’) 두 시간 전에 시위팀이 꾸려진 ‘즉흥 애드리브’였지만, 노조 집행부가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한 ‘계산된 애드리브’이기도 했다. 택남이네 젊은 기자들의 투쟁에 회사는 징계와 고소로 대응했고, 시민은 뜨거운 응원과 지지로 화답했다. 2008년 여름은 와이티엔 창사 15년 만에 맞고 있는 최대 시련의 시기이자 최고 영광의 시기다.

“우리 투쟁은 와이티엔 사장의 ‘기준’을 지켜내려는 싸움이다.”

노종면(40·[사진]) 위원장은 지난 두 달 동안의 구본홍 사장 출근저지 투쟁을 이 한마디로 정의했다. 거창한 기준도 아니다. “보도매체 사장으로서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말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은 노조가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인 구 사장에게 단 하루도 정상 출근을 허용하지 않은 이유가 됐고, 조합원들이 회사의 징계 압박보다 언론인으로서 각자의 양심을 더 두려워하도록 만든 근거가 됐다. 노 위원장은 “조합원 모두가 우리의 투쟁이 옳은지,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두 달을 싸워 왔다”고 밝혔다.

“구본홍씨의 출근을 막으며 우리는 여러 공간에서 그를 만나고 그의 생각을 피부로 접했다. 무능력한 사태해결 방식, 노조 반대에 징계로 대응하는 모습, 인사에서 드러난 사람을 평가하는 시각 등 단지 특보 출신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는 사장이 될 수 없음을 구씨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1990년대를 겪으며, 국민이 지키지 않으면 방송은 정치권력 논공행상의 가장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기까지 서기원 사장 임명 반대를 위해 486명이 연행되고 11명이 구속된 한국방송 노조의 처절한 투쟁이 있었다. 2008년을 겪으며, 한국 사회는 공정방송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란 엄중한 사실을 배우고 있다. 그러기까지 와이티엔 노조의 두 달 넘는 지난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노 위원장은 ‘공정방송 수호의 선봉에 와이티엔이 있다’는 평가가 “힘도 되고 부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와이티엔을 한국방송이나 문화방송과 비교하는 시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케이비에스와 엠비시는 그들이 처한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다”고 했고, “와이티엔도 와이티엔의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현재 와이티엔 노조는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투쟁의 정점이다. 아주 작은 변수에 따라 노조 동력이 한층 불붙을 수도, 찬물을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징계 협박 등 외부의 힘이 우리를 쓰러뜨리진 못했다. 다만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들이 피로감에 지쳐 간다. 투쟁 방식에 대한 노조 내 이견도 있다. 우리의 최대 적은 우리 내부의 이탈이다.”


 

» 노종면 YTN노조위원장
 


노 위원장은 그러나 “조합원들을 무한히 신뢰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구 사장과 타협을 시도하던 전임 지도부가 물러나고 새 지도부가 들어서기까지 노조는 적지 않은 내부 갈등을 겪었다. 구 사장 반대투쟁 그 자체보다 투쟁 이후 상처 치유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우려는 많이 가셨다. 노조원들끼리 익명에 숨어 서로를 비난하는 행위가 사라졌다. 동료에 대한 징계방침이 알려지자 ‘나도 징계하라’는 글이 사내게시판에 잇따라 올라왔고, 17일 인사위원회를 막기 위해 100여명이 떼로 모였다. 힘겨운 싸움이 신뢰를 키웠고, 신뢰는 싸움을 지속하는 자양분이 됐다.

“우리의 싸움이 와이티엔 내·외부 지형을 적지 않게 바꿨다. 무엇보다 노조에 전달되는 정치권의 반응이 다양해졌다. 전엔 노조 투쟁에 대한 반협박조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여권에서도 구본홍 교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정치권도 구본홍씨도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바닥난 셈이다.”

그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주식매각 발언으로 와이티엔 민영화 논의에 불을 지피다 비판받은 점과, 최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와이티엔 노사문제를 빌미로 재승인 불허 근거를 찾으려다 실패한 점에 주목했다. 정치권의 구 사장 ‘외곽지원’도 별로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와이티엔의 민영화 가능성 자체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정권이 민영화를 통해 방송을 장악하고 거대자본과 족벌신문에 방송 진출 길을 열어주려는 시도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걱정스럽다. 와이티엔도 유력한 민영화 대상이다. 민영화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출근저지 투쟁을 잘 끝내야 한다.”

노 위원장은 회사 쪽과의 대화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 뒀다. 그는 “지금이라도 사쪽이 ‘끝장투표’를 통해 사내 민의를 확인하겠다면 노조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끝장투표가 이뤄지려면 사쪽은 조합원 고소와 징계 방침부터 철회하고, 다수가 반대할 땐 구본홍씨가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로 다수가 찬성하면 노조도 구 사장을 인정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본격 파업에 돌입하지 않았으나, 와이티엔은 이미 준파업 상태다. 구 사장의 인사명령에 불복종했고, 각 부서에서 부서장을 제외시킨 채 고참기자 중심으로 방송을 제작하고 있으며, 두 차례의 징계 시도도 무산시켰다. 노 위원장은 “이후 파업 계획을 밝힐 시기가 아니다”라면서도 “방송을 포기하려는 파업이 아니라 방송을 지키기 위한 파업”임을 강조했다.

와이티엔은 두 달 전의 와이티엔이 아니다. 출근저지 투쟁이 끝난 뒤의 와이티엔도 지금의 와이티엔과 다를 것이다. 와이티엔을 향한 외부의 기대 또한 전과 같을 수 없다. 노 위원장은 “우리의 싸움이 끝날 때 와이티엔은 오로지 시청자만을 두려워하는 방송사로 거듭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9월22일, 구 사장 출근저지 투쟁 67일째다. 와이티엔의 역사가 67일째 새롭게 기록되고 있다.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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