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빛나래에게 주는 세 번째 편지

유월 편지, 사실 지금까지 깜빡하고 있었다. 기말고사 전에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이런 저런 일들을 정리하다가 ‘아, 편지… -.-;;’하게 된 것이지. 어느새 나도 깜빡녀가 된 모양… 치매…

다음 주부터는 너희들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싶다. 기말고사라는 쇠사슬에 묶일 너희들… 출제라는 사슬에 다시 묶일 나… 자유라굽쇼? 헐~ 슬픈 현실이지만 암튼 정리할 건 정리하자. 


우선, 6월 18일- 우리 세 번째 정기모임! 한 달에 한 번 있는 모임인데 어찌나 빨리 돌아오는지… ㅋㅋ 벌써 내일 모레. 책을 열심히 읽으라고 주문하고 싶은데 지난 주까지 각종 강연 참석에 인터뷰에 바쁘게 뛰어다닌 너희들의 활동분량을 알기에, 그리고 요즘 수행평가나 쪽지시험이 얼마나 많은 줄 알기에 말도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는 내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까지만 너희들을 닦달하기로 결심했다. ^^; 바쁜 김에 확 바쁜 게 낫것지? 암암!!

1. [호모쿵푸스] 다 읽어오기. 독후감들은 쓰고 있는감?  기말고사 끝나고 노트 검사할껴.

2. 인터뷰 때 모둠으로 토론을 한 번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우리가 명색이 ‘독서토론동아리’ 아니겠니. 호호호~ 책 꼼꼼 읽는 것 외에 따로 준비할 것은 없지만 책을 읽으며 다음 주제들에 대해 틈나는 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오시오.


[호모 쿵푸스]의 저자 고미숙씨는 나이와 신분의 관계를 넘어, 학습 장소와 공부 방식을 초월하여 지식을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친구와 도반, 스승과 제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지식의 창발적 네트워크로서 <앎의 코뮌>(배움공동체)을 제안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앎의 코뮌>을 일상생활에 어떻게 만들 수 있으며, 지식의 향연을 즐기는 ‘공부다운 공부’를 하려면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토론해 봅시다.

- 모둠별로 소주제 설정해보기

예)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의 문제점과 극복방안은?

    진정한 의미의 ‘공부’란-공부의 의미 정의하기

    ‘공부의 목적’은 무엇?

    진정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앎의 코뮌’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은 입시제도 하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3. 각자 인터뷰 정리는 잘들 하고 계신가요? 이건 령근이와 수경이와 보연이가 처리할 일이지? 요건 목요일까지 모두 정리 해오세요~ 인터뷰 내용 발표자도 정하시고!!

  그리고 의논할 일!

1. 18일, 이번 모임을 하게 되면 7월 모임을 잡아야하는데 7월 11일엔 밀양 [인문고전교실]에 참석해야 하고, (너희들이 찬성한다면) 7월 말엔 [밀양 연극제] 구경을 갈까 생각 중이거든. 7월 모임을 위한 책까지 봐야한다면 7월도 너무 바쁠 것 같지? 그래서 7월 모임은 [논어,~]로 대체하고 바로 8월에 모임을 가질까 생각하는데 너희들의 의견은?

2.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해마다 7월 말에,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있거든. 이번이 아홉 번째! 연극촌에서 실시하는 세계적인 행사로 주로 연극공연을 싼값에 모시고 있지. 두어 편 관람할까 하는데 이게 참가비가 있어. 8월 19~20일 1박 2일로 실시되는 [인문고전교실]참가비가 1인당 3만원인데 이걸 지출하려니 연극제 참가비가 안 나오네. 그래서 연극관람비 - 두 편에 만 원 정도를 느들 자비로 신청할까 하는데 그래도 연극 보러 가고 싶어? 작년 언니들은 이때 연극 본 경험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음!!

3.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전국 시낭송 축제]에 계획서를 제출해서 덜렁 채택되어 버렸네. 전체 지원금 65만원. 강화정샘이 30만원, 우리 동아리가 35만원을 쓰기로 했다. 근데 계획서에 준한 결과물-UCC, 사진 등을 [문장] 사이트에 올려야 한다는데… --;; 이 행사를 어떻게 진행했으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보자. 너희들이 시켜서 저지른 일이니 너희들 책임도 크다, 알지? 그래도 10월말까지 시간이 있으니 다행이다. 결과물도 10월말까지 제출. ㅠㅠ

4. 7월 4일 토욜 기말고사 치고 나서 같이 영화 보러 가자. 시네마테크에서 상반기 결산으로 아주 좋은 영화들을 저렴한 가격에 모시고 있단다. 영화 제목이랑 내용은 그때 알려줄게.

5. 마지막으로 강연! 6월 24일, 다음 주 수욜 7시에 [부산교육연구소]에서 유명한 시인 도종환님이  강연을 하시네. 주제는 ‘질주하는 사회, 성찰하는 삶’. 그 다음 주가 바로 시험이니까 가고 싶은 사람만 가는 걸로 하자. 강연은 길어야 두 시간 정도. 도종환 시인도 부산엔 여간해서 안 내려오시는 아주 유명한 시인이시거든. 샘도 아직 한 번도 못 뵈었음. …… 제대로 된 공부를 하려면 이런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자주 듣고 내 생각을 다듬는 것도 중요하지. 제대로 된 공부! 이게 바로 이번 모임 우리가 고민해야할 주제잖아?

  요즘 들어 너희들의 식습관이 은근히 걱정된다. 옛날엔 별로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그 표어, 내가 아파보니 그거 참말이더라. 몸 어느 한 구석만 불편해도 그것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감정으로 전이되더라.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되니 허덕거리게 되고 힘들고 짜증내게 되고…. 정신을 잘 다듬으려면 몸에 대한 예의와 책임도 다 해야 한다는 사실!

  몸에 대한 예의와 책임, 별 것 없다. 아침 점심 저녁 제시간에 꼬박꼬박 잘 챙겨먹고, 흰 쌀밥보다는 현미밥으로, 기름으로 볶거나 튀긴 음식 줄이고, 날것이나 살짝 데친 음식들이 좋지.  50번 이상 치아로 꼭꼭 씹어 먹으면 참말로 좋다. 간식은 공장에서 나온 음식은 절대로 피하고 밭에서 따온 과일, 채소 등을 최소한 조리해서 먹는 것이 좋아. 육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섭취해도 되는데 그것도 육지 동물보다는 물에서 사는 놈들이 건강엔 더 좋지. 운동! 매일 규칙적으로 해주면 왕좋다는 건 이미 잘들 아는 사실! 반드시 12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기. 그래야 학교에서 깨어있기 좋거든. 시험 준비 기간에 돌입할 너희들에게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일까? 아니, 이건 습관이야.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밥 챙겨먹는 것도, 꼬박꼬박 운동하는 것도 모두 습관!! 나쁜 습관은 버려야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오늘 내일만 살아갈 인생이 아니라면 오늘부터 바로 실천하세요!!

  나에게도 누군가가 이런 말을 진심으로 무게 있게 해주었다면 지금처럼 안 아프고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텐데… 나를 봐라. 방탕하게 살다가 맨날 아픈 나를! ㅠㅠ

그럼 요번 일주일까지만 바쁘게 살자!! 홧팅이야~~

2009년 6월 16일 화요일. 초여름답지 않게 썰렁한 바람 속에서 강낭콩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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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6-17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탕하게 사셔서가 아니라... 나이를 속이지 못하는 거겠죠. 저도 40이 넘으면서 매년 링거를 몇 대씩 꽂아야 견디는 인간으로 전락해 버렸답니다. ㅎㅎ 뭐, 방탕하게 산댔자, 술 좀 과하게 마신 거밖에 없는데... 요즘엔 술도 못이기겠네요. 정신적으로 건강한게 어떤건지... 요즘 깊게 생각중입니다. ^^ 언제 소주 한 잔 사 주세요.

해콩 2009-06-1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글샘샘이다..!! 너무 오랜만이죠? 지난 10일 서면에서 느티나무샘은 만났는데 말이죠. 매번 만나자, 함보자 이런 이야기만 하다가 서면 도로에서 만나게 되는.. 우리는 그러 운명인가봐요. ㅋㅋㅋ 느티나무님도 함께 만나면 좋은데 말이죠. 언제가 좋으신가요? 저희는 23일 기말 원안 마감이고, 24일은 교육연구소에 도종환님 뵈러가고 싶고... 음~ 25일, 29일, 30일 시간이 있을 것 같아요. 님은 어떠신지요? 바쁘시면 방학 때 뵈도 되구요. ^^ 제 폰번 그대로랍니다. 샘도 그대로이시죠? ^^

2009-06-22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9-06-2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경로로 시국선언에 참여 했답니다. ^^ 이중 삼중으로 참여해되 되는 건가요?

2009-06-24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두빛나래’에게 주는 두 번째 편지

오월도 벌써 중순!
내내 춥다가 갑자기 이렇게 더워지니까 정신이 다 없네. 지구온난화 때문이겠지? --::
중간고사 이후로 우리, 너무 바쁘게 보냈더군.
지난주엔 체험활동을 무려 세 가지나 했네. ㅋㅋㅋ
몇몇 사람-민지와 령근이는 1학기에 목표량-체험활동 10회- 채울 수도 있을 듯!!
암튼 니들 불타오르는 체력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두 달 남짓한 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인데 너희들과 노는 것이 상당히 즐겁도다.
김밥 도시락도 잘 싸오고 (내가 가끔 김밥을 ‘사’가지고 가서 너희들의 지적질을 받았지? 다음부턴 조심하마. 이유는 있지만 암튼.), 시간도 비교적 잘 지키고(너무 빨리 오지 말란 말이다, 이놈들아~), 나 혼자 앞서 가도 꾸역꾸역 잘 따라다니며, 내비둬도 느그끼리 정말 잘 놀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을 접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나 귀찮음이 없어보여서 참말로 이뿌구나. 쪽!앞으로도 이 모습 쭉~ 고고씽하길 바란다. 대입사정관제 등등의 실질적인 도움 외에도 우리들이 함께하는 소중한 이 시간들이 너희들의 삶에 어떤 ‘계기’로 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자, 각설하고... 우리 정기 모임, 13일에 할까 생각했으나 그동안 너희들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할 거라는 깊디 깊은 나의  배려심이 작동해서 한 주 미루기로 했다. 5월 20일 다음 주 수요일. 6시 1층 학습도움실. 이번 모임의 사회자는 김민지양, 서기는 손민지양되겠다. (아참! 김보연양은 지난 모임 기록을 빨랑 정리해주시기 바람.)

이번 책을 읽은 후 발표할 과제는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하나씩 조사+정리해서 친구들에게 10~15분씩 설명(수업)하는 것이다. 아래 사건들 중에서 자신이 발표하고 싶은 내용을 선택해서 알려줘. 같은 내용을 두 사람이 선택했을 경우는 ‘선착순’에 의해, 동시에 찜할 경우에는 공포의 ‘가위바위보’로 결정. 사건개요와 조사하면서 느낀 점 등, 발표 내용은 A4 한 장 정도로 요약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도록 하자. 사진이나 동영상 자료가 있다면 프로젝션 TV를 이용해도 좋아. 이번 과제는 사회자, 서기도 발표해야함!! 너희들이 선택하고 남은 것 하나는 내가 발표하도록 할게.

1. 1945해방과 신탁통치, 4.3 제주항쟁
2. 1960. 4.19 혁명과 1961. 5.16 군사 쿠데타
3. 1970. 11. 13. 전태일 분신
4. 1972. 10. 17. 10월 유신과 인혁당, 남민전 사건
5. 1979. 10.16. 부마항쟁과 10.26. 사태 12.12. 신군부 쿠데타
6. 1980. 5. 18. 광주민주화 운동
7. 1987. 6월 항쟁
8. 1987. 노동자 대투쟁
9. 2002. 미선이 효순이 사건
10. 2008. 촛불항쟁

다들 이번 목욜(16일)까지는 결정해서 알려다오. 자료 조사와 정리를 하려면 시간이 넉넉하지 않거든. 자기가 근현대사샘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길 바래.

그리고 몇 가지 주의사항과 알림사항이다.

1.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 및 체험활동 후 소감은 쓰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김민지 외에 나에게 멜로 보내는 녀석이 왜 아직 없는 거냣? 집에 컴이 없으면 정보샘께 말씀드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컴터실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잖아. 글쓰기를 생활화하면 좋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지?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이 젤 좋은 방법인데 굳은 결심을 해야 할 거구. 힘들면 이틀에 한 번 정도로 써도 되는데 말이다. 동아리 독서노트를 항상 들고다니며 활용하도록 하자.
 

2. 지난 번 보연이에 이어 이번 주 토욜 CA시간에는 민지가 발표하기로 했단다~ 다들 박수 짝짝짝!! 어떤 내용으로 할 건지 기대가 많이 된다. 영화, 책, 노래, 가수.. 무슨 내용이든 상관 없다. 알쥐? 18금 영화도 돼~ 우리끼리 비밀만 유지된다면...ㅋㅋ

3. 5월 23~24일 광주, 혹시 못가는 사람 있냐? 혹시 있으면 샘한테 와서 말해줘. 슬슬 결재를 받아야하거든. 당근 체험활동 인정된다. 1박2일이라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면 샘이 전화해주마. 참가비는 만원. 그리고 이 행사 중에 [청소년이 말하는 5.18]이라고 현장에서 5.18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는데 신청해볼래? 상황극(짧은 연극)을 해도 되고, 노래, 시 낭송 무엇이든지 상관없다네.

4. 5월 27일(수) 19:30에 교육대학교 앞 [공간초록]이라는 장소에서 [촛불은 미래다]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고 하는구나. 작년 촛불집회 때의 시민들의 모습을 찍어서 편집한 것이라는군. 나도 집회 서너 번 참여했었는데…. 너희들이 아는 사람들이 영화에 나올지도 몰라. 흐흐 촛불집회 한 번이라도 갔었다면 그대가 나올 수도 있겠지. [공간초록]은 지난 토욜 조만강 걷기에 함께 하셨던 지율스님께서 마련한 공간인데,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계시지. 나도 아직 한 번도 못 가봐서 이번 기회에 구경 해보고 싶네. 이 영화 보러 갈  사람 있으면 샘이 델꼬 가 줄게. 야자? 물론 째야지.

5. 교무실 앞 게시판에 청소년 축제 ‘반’ 안내문이 붙어있다. 6월 6일 7일, 7월 20~22일 (2박3일)인데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활동들이 있나봐. 관심 있는 사람 나에게 오면 더 자세히 알려주지.
 

6. [전국 시낭송 축제]라는 행사도 있구나. 시낭송 대회에 관한 계획서와 신청서를 작성해서 접수한 후, 시낭송회를 가지고 그걸 UCC로 만들어 해당 홈피에 올리면 돼. 계획서가 채택되면 필요한 경비와 동아리 지원비를 준다네. 너희들이 참여하고 싶다면 신청을 해줄게. 자세한 것은 이번 주 CA시간에 홈피에 올라와 있는 UCC자료들을 보여줄게. 내가 몇 가지 봤는데 우리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더라. 이런 행사에 참여해보면 재미도 있겠지만 자신감이 쑥쑥 자랄 거라서  은근히 욕심이 나는군.

7. 그리고 이어지는 5월과 6월, 아주아주아주 유익한 강연에 대한 정보가 많이 있다. 이건 그때그때 알려주지. 느들이 간다면 샘도 간다.

공부란 머리로 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니, 사실 머리로 하는 공부보다는 온 몸을 움직여 스스로 느끼는 것이 훨씬 더 내 몸과 내 삶에 깊이 와 박힌다는 것. 이런 저런 활동에 참여하면서 항상 즐거워하는 너희들 모습에 감동 먹는 나날이 지금처럼 계속 된다면 없던 힘도 뽈뽈 솟아날 것만 같다.

5월 편지 이상 끝!

2009년 5월 12일 화요일 촐촐히 비 내리는 창가에서 강낭콩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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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8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두빛나래에게 주는 첫 번째 편지

너희들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라서 그런지 조금 설레고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이 생각나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생각들이 삐죽삐죽 머리를 뚫고 나오는 것 같군. ^^;

우선 밀양 다녀온 이야기부터 하자. 모두가 아니라서 좀 섭섭했지만, 지난 주 토요일, 밀양 즐거웠지? 너희들과의 첫나들이, 그것도 기차여행이라 무지 좋았다. 기차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끝끝내 질문 받고 성의 있게 답변하시던 고추장 아저씨의 강연도 멋있었지만, 젤 좋은 건 뭐니뭐니해도 하루 종일 신나하고 즐거워하는 너희들 모습! 앞으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공부건 놀이건 무엇이건 간에 해보기도 전에 겁먹고 두려워하며 쫄지 말자! 일단 부딪혀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은 열심히 ‘해보자’. 행복하게 즐길 수도 있다면 참말 좋겠지. 앞으로 정기모임, 강연, 영화보기 그리고 체험활동 등 여러 가지 경험들이 우리 앞에 펼쳐질텐데 지난 토요일의 그 모습만큼만 신나게 놀자!

밀양 [인문고전교실] 글쓰기 과제는 A4 한 장 정도의 분량으로 4월 10일까지 점필재연구소 홈피에 올려놓으셔들... 나도 들어가서 댓글 달아야지. 글 올리기 전에 먼저 샘한테 살짝 보여주면 글쓰기 지도를 해줄 수도 있음. 글로 멋 부리기보다는 자신이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쓰는 것이 중요함. 간단한 글쓰기 팁 두 가지!! 기본적으로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이 되어야겠지. 그리고 한 문장은 길게 쓰는 것보다는 짧게 짧게 쓰는 것이 읽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단다.

그리고 동아리 관련, 좋은 소식과 섭섭한 소식 두 가지가 있다. 뭐부터 들을? 우선 섭섭한 소식! 6반의 수은이와 (조)민지가 동아리 활동을 접기로 했다. 방과 외 수업을 들을 거라서 동아리 활동과 함께 해나가기 힘들 것 같다는 구나. 4월까지 탈퇴는 받아주기로 했으니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 동아리 인원은 모둠별 활동하기 좋은 딱! 10명이 되었네.^^ 나머지 좋은 소식은? 김민, 손민, 보연이가 동아리 도우미를 하겠다는구나. 샘과 함께 이런 저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게 될테니까 다들 힘, 팍팍 보태주길 바래.

자~ 그럼 알림사항 몇 가지 나간다. 귀 번뜩 열고 들으시오~~

1. 4월 4일, 이번 주 토요일 조국 선생님 강연! 동아리 다함께 처음 듣는 강연이니까 모두들 갔으면 하는 작은(!) 바램. 혹시 못 가시는 분 있으면 토욜 CA시간까지 알려주~ [전국청소년논술토론한마당] 행사의 주제 강연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생긴 교수님이 강연을 하기로 되어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중요하겠지만 대한민국 얼짱 교수님의 모습은 당근 한 번 봐줘야겠지? 흐흐흐  이 분은 2001년부터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7년부터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병역대체복무제’ 등을 주도하고 계셔. 잘생긴데다가 멋있기까지 하다니까...ㅋㅋ 이도 저도 관심 없으면 민주공원 위치가 좋으니까 봄소풍 간다고 생각하셔.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부산항 경치가 쥑이거든. 그리고 상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 [논술토론한마당]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따로 나에게 물으러 오슈. “스따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 아참, 점심은 김밥 쏜다.

2. 4월 15일 수욜, 우리 동아리 첫 번째 정기 모임. 함께 읽고 이야기할 책은 작년 전국 서점을 강타한 『완득이』 이 책은 다들 알아서 빌려보자고 했지? 동아리회비 아껴야하니까..ㅋㅋㅋ 이미 읽은 사람도 있고, 빌려보기 충분할 만큼 주위에서 흔히 가지고 있는 책이니까. 책은 쉽고 재미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 장담함. 기다리던 첫 번째 독후 과제는

 하나. 책을 읽은 후 느낀 점이나 생각한 점, 특별히 좋았던(싫었던) 부분과 이유, 연상되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 등 써보기. 분량은 A4(글자크기 11, 좌우 여백 20, 자간 160) 한 바닥 이상은 되어야함. 이건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은 후 항상 따라다니는 과제가 될 거야.

 두나 『완득이』에 나오는 각종 인물들 행동이나 생각 중 나와 가장 비슷한 부분 한 가지 + 나와 가장 다른 부분 한 가지를 고르고 그 이유 말하기. 쉽게 말하면 책을 읽다가 ‘그래 나라도 이렇게 하겠다.’ 싶은 부분과 ‘어라, 나라면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아!’ 싶은 부분을 고르고 그 이유를 우리 모두에게 설명해 주는 거지. 인물과 상황 선택은 무조건 자기 맘대로.

 세나. 우리 가족의 비밀 한 가지 들려주기. 『완득이』에는 가족에 얽힌 비밀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잖아? 완득이 아버지는 난장이고 엄마는 필리핀 사람. 담임인 똥주네 아버지는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는 공장 사장이고... 뭐 이렇게까지 깊숙한 이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내가 알고 있는 우리 가족의 비밀... 한 가지씩 서로 이야기해주기. 나도 한 가지 공개하지.

3. 그런데 모임 전에 우리가 정해야 할 것이 있다. 모임을 진행할 사회자와 그걸 기록할 서기를 정해야 해. 우리가 모두 열 번 정도 모임을 가질 거니까 모두들 사회자 한번, 서기 한 번 이렇게 맡으면 될 것 같아. 사회자는 각자 해온 과제를 발표할 순서를 정하고 발표한 내용을 정리하는 등 모임을 자연스럽고 편하게 진행하고, 서기는 그걸 적절하게 기록 ․ 정리(워드작업)해서 메일로 내게 보내주면 돼. (아니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서 그곳에 올릴까? 그렇게 공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간혹 모임 전에 샘이랑 셋이 만나서 그 달 책에 관한 과제를 의논해볼 수도 있겠고. 첫모임의 사회자와 서기는 제일 부담이 덜 하지. 하다보면 다들 실력이 늘게 되니 뒤로 갈수록 부담스러워질 확률이 높아. 자~ 누가 우리 첫 모임의 사회자, 서기를 자원 할래? 선착순 두 명!! 결정했으면 뛰어오시오~

4. 독서노트를 나눠준 후 몇 명이 물었지? 도대체 ‘두빛나래혜윰아라나르샤’가 뭔 뜻이냐고? 뭔 뜻이게? 인터넷의, 모르는 게 없는 ‘그 분’께 여쭤보고, 혹은 여기 저기 뒤져서 대충이라도 알게 된 사람은 나에게 냅다 달려오너라~ 정답이면 상을 주겠다. 우리 첫 모임 때 발표와 함께 시상하마.

첫 편지라 그런지 좀 길었지? 쉬는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하자니 시간에 늘 쫓기게 되더라.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될 것 같다. 이 편지에 대한 답장, 물론 적극 환영! 물어보고 싶은 일, 건의할 일, 샘이 빼먹은 일 등등이 있으면 답장 써서 알려 다오. 얼굴 보고 말하기 힘들다면 이멜로 보내렴. sunbean70@hanmail.net.이다

2009. 4. 2. 꽃샘추위 물러간 날에 강낭콩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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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부터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남느냐, 가느냐는 완전히 너희들 결정에 달렸다.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그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 이 두 가지를 온전히 너희에게 돌려주는 수 있게 되었구나. 우리는 이 사안을 투표로 결정했고 너희 중 23명이 '자유'의 손을 들었지. 담임으로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희들의 올바른 판단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지만 애들아, 담임으로서 나는 너희들의 학교공부에 얼마간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고, 그 때문에 너희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어떤 두려움을 느낀단다. 이 두려움이 너희들의 공부와 성적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다는 것은 짐작하겠지? 그래서 어제 종례시간에 '우리반 모두 야자를 자율로 하면서도 학교 성적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한 가지씩 생각해오자'고 제안했고 사실 나는 어제 오늘, 계속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단다. 그 결과 담임으로서 약속 받고 싶은 것이 다음과 같은 것이란다. 자유를 얻는 대신 너희들도 이 몇 가지 약속을 해주었으면 한다.

1. 우선 부모님의 동의를 얻도록 하자. 담임인 나보다 훨씬 너희들의 공부와 성적에 걱정이 많으신 분들이니 당연히 야자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야아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부모님께서 너희들 생각과 다르셔서 강제로라도 야자를 해야한다고 여기신다면 최선을 다해 믿음을 드리렴.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약속을 하고 각오와 다짐을 보여드리렴. 그래도 부모님께서 야자를 강제로라도 꼭 하기를 원하신다면 나로선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는 수 밖에 없겠다. 너희들이 부모님을 설득해야한다. 그것은 너희들의 행동에 달렸다. 부모님께서 "우리 아이는 자율적으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억지로라도 야자를 시켜주세요"라고 의사를 전해오신다면 그 날부터 너희의 자유는 사라지게 될 거야.

2.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담임 혼자만의 멍청한 기우라는 걸 결과로 증명해주어야한다. 다시 말해서 야자를 강제로 하지 않아도 너희들 스스로 공부를 잘 해낼 수 있다는 것과 학습의 공간이 반드시 학교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는 결과로 보여달라는 것이지. 그래서 제안한다. 매 시험마다 학급등수가 5등 이상 떨어지는 사람은 다시 '강제야자'로 돌아가는 것으로. 성적이 5등 이상 떨어지는 것, 분명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증거이고 그럴 땐 공부의 습관과 방법과 환경을 바꿔야할 필요가 있으니까. 3월 한 달 동안 학원 다닌다고 야자 빼준 녀석들에게 내가 말했었지? "성적 떨어지면 무조건 야자복귀"라고. 모두 이 조건을 수락하고 야자를 하지 않았고. 지금 우리 반은 야자를 자율로 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그렇다면 이 정도의 조건은 너희들 모두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내신은 계열별/과목별 석차이기 때문에 반 등수가 의미있는 건 아니지만 공부에 대한 노력의 정도는 간접적으로 드러내준다고 본다. 이 정도 약속도 못한다면 나 역시 '야자 완전 자율'을 다시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일, 나도 일어나지 않길 바래. (학급 안에서 공부로 너희들의 경쟁을 조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 알지? 반등수는 당근 본인에게만 알려줄 것임)

3. 수업시간에 최대한 집중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다오. 야자도 자율로 하는 마당에 수업분위기마저 나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샘은 너무 불안할 것 같아. 다른 교과 샘들이 우리반 수업 분위기 좋다고 칭찬하는 이야기들 많이 듣게 해주라. 대답 잘 하고 질문 많이 하는 반이라는 소리 들으면 너희들에 대한 믿음이 팍팍 생기겠지? 야자를 자율로 해도 아이들 스스로 이렇게 잘 한답니다~ 다른 반 선생님들께 자랑하고 싶겠지?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잘 듣는 것이야말로 성적을 올리는 지름길이고 수업시간에 열심히 안하면서 '열심히 공부합니다'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고. '수업집중' 이것만 잘 지켜도 반에서 5등이상 떨어지는 일은 없을거야.

4. 이건 하나마나 한 이야기지만 절대 다른 반 아이들을 꼬셔서 같이 가서는 안된다. 각 학급은 그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우리 반이 자율이라고 다른 반 아이의 도망을 종용하는 짓은 샘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다른 반 아이들이 가고 싶은 맘 생기지 않도록 너희가 더욱 신경쓰거라. 야자가 시작되는 6시 10까지 남아있다가 그제서야 슬슬 계단 내려가는 녀석들 역시 샘한테 혼난다. 다른 아이들 공부를 방해하는 행동이니까.

이렇게 쓰고 보니 원래 그랬어야하는 야간자율학습을 '자율'로 해줘놓고 샘이 엄청 많은 조건과 생색을 내는 듯이 보이는군. 사실 나도 홀가분한 면도 있다. 우선 매일 너희들과 '간다 못간다, 보내달라 안된다' 하며 실갱이를 하지 않게 되어서 너무 좋다. 아프다고 할 때, 생일이라고 할 때, 나라고 왜 보내주고싶지 않았겠냐. 오죽하면 '마 도망가고 야단 맞아라'라고 까지 했을까? 몸이 아프거나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생일이라고 할 때, 그런 날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라고 했던 내 마음도 사실 편치 않았다. 힘들었지.

너희들이 도망가면 벌을 주어야하는 이유가 없어졌다는 사실 역시 너무 좋다. 야자 도망갔다고 너희들을 무슨 범죄자처럼 바라보며 잔뜩 찡그리고 야단칠 때, 너무 갑갑했다. 너희들도 기분 꿀꿀했지? 도망간 다음날은 들킬까봐 잔뜩 쫄아서 샘 얼굴 보기도 힘들었지? 우리가 서로를 째려보지 않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야. 사실 혹시 누군가 도망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반 전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게 된 것, 이게 내가 얻게 된 가장 큰 선물이지. 벌을 상으로 바꿀 수 있게 된 것도. ^^ 앞으로 야자를 열심히 하는 녀석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상을 주겠다.

우선, 4월부터 매달 야자를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녀석들에겐 좋은 책을 한 권씩 상으로 주겠다. 열 달이면 열 권의 책을 선물로 받겠구나. 어때? 상으로 책을 받으면 정말 좋겠지? 예쁜 상장도 만들어주마. 책이 지겹다면 간혹 영화를 보여줄 수도 있고.

그리고 매달 야자 참여 횟수를 참고로 해서 [학교생활기록부] <행동발달상황난>에 긍정적인 기록도 해주지.ㅋㅋ 수시로 원서 넣을 땐 이런 내용이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알고 있지?

매일 야자에 누가 참여했나 기록하는 건 선도부장인 우리 해인이가 하는 게 좋겠다. 이건 부담없이 할 수 있겠지, 해인아? 그런데 니가 야자에 빠지고 싶을 땐 어떡하냐? 선물도 받을 겸, 가능하면 빠지지 말거라~ ^^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 두 달이 되고, 그렇게 일 년 이 년이 간다. 2학년 때의 내신은 절대로 3학년에서 바꿀 수 없지. 이제 거의 성인인 18살 너희들, 너희들의 선택과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율적으로 행복한 1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임...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한데... 야자완전자율, 너희들의 큰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담임으로서 나도 너희들에게 소원이 생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나도 모르지만. 아무튼 샘이 너희들에게 소원이 생기면 너희들도 나의 작은 소원 세 가지 정도는 넉넉한 마음으로 들어주었으면 한다. 약속컨데 절대로 너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거나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야자도 완전 자율로 허락한 마당에 몇 가지 소원 정도는 들어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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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8-03-3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져요. 우리 아이도 야자 하기 싫다고 해서 일주일에 두 번은 겨우 빠져 나오는 데, 선생님도 아이도 괴로운 일을 과연 무엇때문에 하는지, 단체 혹은 조직의 경직성을 느낍니다. _()_

해콩 2008-04-01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사실 이게 그리 녹녹한 문제는 아니랍니다. 지난 학교에서 저도 계속 야자를 강제로 시켰었고, 올해는 별안간 벌어진 일에 당혹스런 상태에서 뒷수습을 하고 있는 수준이죠. 입시제도가 바로 서지 않는 한 고등학교 교육이 제자리를 찾기는 어렵고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들이 3불정책을 폐지를 요구하고 교육정책이 그에 맞춰주는 현상황에서 입시제도가 바로 서길 바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우리반 아이들 오늘은 몇 명이나 남았을까 걱정하는, 그런 수준의 담임노릇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ㅠㅠ
 

횡설수설... 구시렁구시렁의 연속! ㅠㅠ 말을 최대한 줄여서 '카리스마' 있어보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담임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이 사단이었다.

9:00~10:30  '2학년실 자리 정비해야하니 다 같이 들어가지 말자'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지난 주 준비해둔 가정환경조사서를 가지고 교실로 들어갔다. 마냥 떠들던 아이들이 얼렁 제자리를 찾아든다. 한달 간은 번호 순서대로 앉아달라 부탁하려고 "어떻게들 앉아있니?" 했더니
"번호 순서대로 앉아있어요~" 한다. 어라, 말도 안했는데 끼리끼리가 아닌 번호 순서대로 즈들이 알아서 앉아있다고? ㅎㅎ
"앞으로 한 달만 이렇게 앉자. 샘이 느들 얼굴이랑 이름이랑 번호랑 기억해야하니까. 그렇게 할까?" 
"예~"
"사물함은?"
"번호 순서대로 정리했는데요..."
엥? 사물함까지? 이 아이들, 독특한 거야. 작년에 이렇게 군대식으로 교육받은 거야?
비어있는 복도 쪽 책꽂이를 가리키며
"그럼 개인 책꽂이는? 그것도 번호순서대로 할까?" 
또한 다같이 소리 맞춰 "네~"
쉽게 쉽게 넘어가니 좋긴 좋구나. 전제군주제, 맛들이면 헤어나기 힘들겠다. ㅋㅋ

[선생님께만 보여주는 나](가정환경조사서)를 나눠주고 작성하게 했다. 생활기록부 운운하며 진실하고 성실하게 작성해야한다고 신신당부. 특히 학비감면이 필요한 사람은 작년에 받은 것을 토대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쓰라고. 필요하면 가정방문을 갈 수도 있다고.

그리고 급식 도우미 선발. 아이들은 의외로 손을 많이 들었다. 지난 학교에서는 급식비를 면제받고 도우미를 신청했기 때문에 '듣던대로구나.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급식비 내기도 어렵단 말이지... 에구.. 어쩌나..' 맘속으로 깊은 시름에 잠기며
"가위바위보로 정하면 정말 필요한 아이가 지원을 못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 정말 필요하다 싶은 사람은 샘한테 문자 날려라"
칠판에 이름과 핸폰 번호를 써주며
"자 모두들 핸폰 꺼내고 샘한테 7반 0번 누굽니다~ 이렇게 문자 날려줘. 번호 저장하게. 급식도우미 하고 싶은 사람은 필요하다는 메시지도 넣고"
시개를 보니 애매하게 남았다.. 흠흠.. 갑자기 들고간 노트북을 열심히 설치하기 시작했다. '기러기의 비행'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2,3학년 학생들은 지금 즉시 강당으로 오세요. 교장선생님의 취임식, 새로 오신 선생님 인사, 부장선생님 인사, 담임 발표가 있습니다."라는 방송이 시끄러운 가운데 정신 없이 동영상이 흘러가면 드뎌 '혼자 날면 빨리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날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멋진 마지막 멘트도 끝났다. 다른 반은 거의 강당으로 다 가고 우리반만 허위허위... 헉헉..

취임식을 마치니 11시 30분 점심시간까지 1시간이 남았는데 또 담임시간이란다. 우이씨... 다른 반 샘들은 이제 처음 아이들을 만나는 거지만 나는 벌써 할 거 다했다. 어쩔? 하는 수 없이 [얘들아, 나는 말이야...]를 들고 다시 교실로. 우선 아까 미쳐 정하지 못한 급식 도우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급식 도우미 그거 세 명은 봉사시간 주는 거라며? 나는 급식비 지원하는 건줄 알고... ^^ㅋㅋ 급식비 지원 받는 건 나중에 상담해서 결정하기로 하고 봉사시간 주는 건 지금 정하자. 다같이 가위바위보 해서 나랑 같은 거 내는 세 사람. 어때?"
"네~" 
어리버리한 담임 때문에 지난한 과정을 그렇게 세 명이 정해졌다.

가지고 온 [얘들아, 나는 말이야]를 나눠주고 우선 뒷면의 시를 함께 읽었다.
"담쟁이-도종환 ... ..."
"너무 좋지?"
아이들 묵묵부답. --;;
'너희들 서로의 첫인상이 더욱 중요하니까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을 소개해보거라' 하며 그림도 그리게 하고, 자기 이름으로 삼행시도 쓰게 하고, 자신의 장점과 올해 꼭 하고 싶은 일,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 등등을 쓰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청 오래 걸렸다. 뒷 게시판에 대충 다 붙이고 나니 10분 정도 남는군. 그때 번뜩 든 생각! '아, 임시 반장 안 뽑았다'
"그럼 이제 우리 임시 반장을 정해볼까? 자격기준은... 우선 담임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두번째는 성실한 사람"
"000 시키지요~"
"세번째 자격이 임시반장 하고 싶은 사람"
조용~~ 아무도 없다.
"만약 정식 반장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임시반장으로 아이들에게 점수 따놓는 게 좋겠제?" 한 마디 더 미끼를 던졌으나
고요~~ 너무도 적막. 역시 아무도 없다. 나만 멀뚱멀뚱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들. 그때 마침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 우짜지?
"야들아, 임시 반장 정해져야 밥 묵지. 나 배고파. 느들도 배고프제. 하고 싶은 사람 빨리 말해라. 내가 그리 싫나?"
그래도 조용. 하는 수 없이 비장의 가위바위보를 다시 제안했다.
"다 같이 가위바위보 해서 나랑 같은 거 내는, 샘이랑 텔레파시 통하는 사람으로 하자. 어때?"
"좋아요~"
또한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23번 주은이가 임시반장으로 정해졌다. 가위바위보, 두 번 연달아 내가 '찌'를 냈는데 두 번째도 나랑 같은 '찌'를 낸 사람은 주은이 하나밖에 없었다.
"우와~ 니 진짜 내랑 통하는 갑다. 자 이제 다들 밥 먹어라~"
우루루

7교시는 토3이 올라오기로 되어있었다. 6교시 후 교실에서 청소지도를 하고 있는데 방송이 나왔다. "7교시까지 이어서 대청소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무슨.. 첫날에 청소구역도 안 정해지고, 청소도구가 있어야 말이쥐.
"천천히 7교시까지 수업할래? 아니면 얼릉 끝내고 7교시 수업할래?"
"천천히 할게요"

7교시. 하는 수 있나. 또 담임이 들어가는 수밖에. 우선, 나도 [담임 소개서]를 게시판에 붙였다.
멀뚱멀뚱...이번 시간에는 뭘 하나?? 그래서 시작된 나의 지리한 횡설수설... 요약하면 공부 잘하는 방법, 별거 없다. 수업 시간에 반드시 샘을 볼 것! 그러면 자연히 귀에도 설명이 들어오고 그렇게 하나 둘 듣다 보면 하루 이틀 집중하는 시간 늘어나고 알아듣는 것도 많아진다. 입은? 당연히 샘 말에 대꾸해야지. 알면 알겠다, 모르면 모르겠다. 이것 못 하면 따로 백날 공부 해도 헛꺼야. 세상에 별 것 없는 이 내용으로 30분을 떠들었다. 아이들이 졸만도 하지. 그리고 남는 시간엔 나의 비장의 무기 지식채널 보여줬다. 교양과 상식을 쌓는 데 이것만한 것이 없다. 앞으로 아침 조례시간에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이걸 보여줄거다. 상식이 많아야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넒어진다.

준비물 알려주고 교실을 나온 시간이 5시 20분. 내 밑천 바닥까지 다 드러낸 모습으로 터벅터벅...
에고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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