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은 정신 / 김종철

 

삶의창
 
 
한겨레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마음이 허전할 때, 문득 그리워지는 분들이 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방송극작가 박이엽 선생도 그런 분이다. 박이엽은 문필가이기 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고 민병산 선생과 함께 나란히 인사동 거리를 느린 걸음으로 떠돌던 ‘무욕’의 철학자이자 탈속의 현인이었다.

원래 민병산이나 박이엽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그분들의 뛰어난 번역 때문이었다. 나는 일본 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지만, 내가 큰 감명을 받은 작품은 대개 민병산 번역이었다. 원작의 질 못지않게 역자의 해박한 지식과 섬세한 감수성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음이 틀림없다. 박이엽의 번역도 일품이었다. 나는 그가 옮긴 <나의 서양미술 순례>나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혹은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의 기행문을 읽으면서 외국어에 대한 그의 정확한 이해는 물론, 우리말에 대한 그의 풍부한 교양과 예민한 감각이 늘 경탄스러웠다.

그런 박이엽의 학력은 중졸이었다. 그의 지식과 교양은 밑바닥 생활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배움의 결과였다. 그의 추모문집이 작년에 <저절로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 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지만, 그중에서 내게 무척 인상 깊었던 일화가 하나 있다.

원래 젊어서부터 폐병으로 고생하던 박이엽은 1970년대 어느날부터 어떤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인 진료를 받았다. 그를 담당했던 나이 지긋한 의사는 첫날 진료가 끝나자 박이엽에게 다음부터는 병원이 아니라 의과대학의 자기 연구실로 직접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병원에 올 때마다 진료비를 따로 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후 연구실에서 만날 때마다 그 의사/교수는 자신의 캐비닛에서 한달치 약을 꺼내 이 가난한 환자에게 무료로 주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의사는 대학병원의 규칙을 어겨가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가난한 환자 누구에게나 그런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의사는 박이엽을 앞에 앉혀놓고 담배가 해롭다는 이야기를 길게 해주었다. 그 당시는 담배의 유해성이 아직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고 있었다. 이때 박이엽은 ‘사실 담배를 끊을 마음은 전혀 없으면서’ 환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의사에 대한 인사성으로 “그럼 저도 담배를 끊어야 할까요?”라고 예의 바른 척 물었다. 그러자 당장에 의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자슥아, 네가 담배 시작할 때는 내 허락 받고 했어?” 의사는 이 청년 환자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박이엽은 평소에 환자에게 그지없이 인자하면서도 환자의 ‘교활한’ 태도에는 조금도 용서가 없는 의사의 이 솔직담백한 인간성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 후 그 의사에 대한 그의 존경심이 더 깊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빈틈없는 시스템 속에서 관리되고 길들여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세련된 삶, 근대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병원의 의사가 병원당국 몰래 환자를 자기 연구실로 오게 하여 약을 공짜로 준다든지, 환자에게 거리낌 없이 화를 낸다든지 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인간적인 배려와 반응은 오늘의 ‘진보된’ 사회 시스템에서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다. 더욱이 이미 이 체제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그런 행동은 오히려 촌스러운 것으로 비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촌스러운 야생의 정신이 아직 살아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도처에서 목격하는 제도화되거나 상품화된 ‘친절’은 결코 친절이 아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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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달개비꽃을 으깨 푸른 꽃잎 잉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던 정지용의 글을 읽었다. 1938년 서대문 밖으로 이사 갔을 때 일이다. 편지에다 그는 서울에도 꾀꼬리 울음을 들을 데가 있노라고 썼다. 편지를 받고 황해도 안악 사는 친구는 축하하는 답장을 보내오고, 전라도 장성 사는 벗은 집구경 하겠다고 우정 그 먼길을 찾아 올라왔다.

  망한 나라에서 왜놈의 백성으로 살 수 없다며 이건승이 조국을 등지고 만주로 망명하여 간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해마다 가을이 되면 들국화를 따서 봉투에 담아 만주로 보낸 사람이 있었다. 국과가 피지 않는 만주 땅에서 그 내음 맡으며 망국의 설움을 달래시라는 뜻이었다.

  꽃잎 잉크로 쓴 희미한 편지를 받고 빙그레 웃었을 벗들의 표정과, 조선 들판의 매운 향기를 머금은 국화 꽃잎을 앞에 두고 주루룩 눈물을 떨구었을 뜻 높은 선비의 주름살 팬 얼굴이 선연히 떠오른다. 아마득한 옛일 같은데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고 했다. 무늬 없는 삶 속에는 기쁨이 깃들지 않는다. 생활의 여유는 물질의 풍요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세상일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사람들은 바빠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자꾸 일을 만든다. 그러는 사이에 마음밭은 나날이 황폐해져서, 마음의 무늬가 빚어내는 잔잔한 감동을 만나볼 수가 없게 되었다. 살갑고 고맙던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 정민, [스승의 옥편], <달개비꽃 잉크>, p172~173, 마음산책,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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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들풀 종자 은행-

   신문에 ‘토종 들풀 종자 은행’ 이야기가 실렸다.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야생 들풀 1백과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세웠다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장한 뜻을 세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잡초들의 씨앗을 받으려 청춘을 다 바쳤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기사의 끝에 실린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죠.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오호라!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된다.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이냐. 사람도 한 가지다. 제가 꼭 필요한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된다. 그가 17년간 산하를 누비며 들풀의 씨를 받는 동안, 마음속에 스쳐 간 깨달음이 이것 하나뿐이었으랴만, 이 하나의 깨달음도 내게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참으로 달고 고마운 말씀이다.

  타고난 아름다운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히어 버려지는 삶이 너무나 많다. 지금 내 자리는 제자리인가? 잡초는 없다. 자리를 가리지 못해 잡초가 될 뿐이다.

- 정민, [스승의 옥편], <제자리가 아니면 잡초가 된다.>, 168~16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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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8-09-26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식>"우리나라 들풀.들꽃 보러오세요"
뉴시스 | 기사입력 2003.12.18 06:57

대전=뉴시스】 국내 토종 풀과 꽃을 한눈에 볼수있는 "한국 자원식물 생태사진 전시회"가 오는 22일부터 이달말까지 서울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전시장에서 개최된다. 한국과학재단(KOSEF)이 특수연구소재은행으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는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강병화 고려대교수)은 우리나라 자원식물 748초종의 종자와 560초종의 생태사진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전시회는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을 운영하는 강교수가 20여년간 들과 산을 돌아다니며 식물을 조사 연구하고 채취한 종자와 관련된 생태사진 2300여장이 전시된다.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에서는 현재 110과 1401초종 5958수집종을 확보해 필요한 연구자에게 분양하거나 채종정보를 제공하는 등 식물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주최측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자연과 식물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제민기자 jmyeon@newsis.com
 

  상想은 퍼뜩 떠오른 생각이다. 그래서 생가깅 일어나는 것을 상기想起라 하고, 이것을 복 저것이 떠오르면 연상聯想이라 한다. 사思는 곰곰한 생각이다. 사고思考한다고 하지, 상고想考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념念은 맴돌아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염두念頭에 두기는 해도 상두想頭나 사두思頭에 두지 않는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으면 상념想念이 되고, 떠나지 않는 생각이 바람이 될 때 염원念願이 된다. 려慮는 짓누르는 생각이다. 우려憂慮가 있을 때 사려思慮 깊게 행동해야지 염려念慮 깊고 상려想慮 깊게 행동하면 안된다. 같은 생각이되 같지가 않다. - 정민, [스승의 옥편], <마음의 얼룩>, p7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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