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을 ‘잠시간’의 준말로 둔갑시켜
‘조선에 무슨 말이 있었느냐’며 억지부려
 
 
한겨레 최인호 기자 권오성 기자 김진수 기자
 








 

» 한국땅이름학회장을 지내고, 지금은 한말글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글학자 정재도 선생이 한글사전을 펼쳐 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 원로 한글학자 정재도 선생


우리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의 70%쯤이 한자말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그 한자말들 가운데 쓰이지 않는 말이 많다. 국어사전이 그렇게 된 데는 일제의 농간을 빠뜨릴 수 없다. 일제가 그랬다더라도, 하마 쓰이지도 않는 말들을 정리할 때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혹 한자말 가운데 빠뜨린 게 없나 찾아 헤매고, 있는 한자말을 바꿔 우리말이라 하고, 없는 한자말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정부(문화부)에서는 <새한글지식사전>(가칭) 편찬 계획을 밝혔다. 지난 2005년부터는 남북 전문가들이 모여 7년 계획으로 <겨레말 큰사전> 편찬 작업을 하고 있다. 이에 최초의 국어대사전인 <큰사전>(1957년 6권 완간·한글학회) 편찬에 참여하고, 언론계를 거쳐 다시 <우리말 큰사전>(1992년) 편찬에 참여한 원로 한글학자 정재도(85) 선생을 만나 근황과 함께 국어사전 편찬 지침이 될 만한 말씀을 들어봤다. 선생은 1925년에 나서 광주사범을 졸업하고 교원으로 일하다 49년 <호남신문> 교정부를 거쳐, 56년 <큰사전> 편찬에 참여했다. 그 뒤 소년조선 주간, 국어심의회 심의위원, 한국땅이름학회장을 거쳐 현재 한말글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말글’이란 말을 자주 쓰시는 줄 압니다.

“예, 한말은 우리 겨레가 쓰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한나라(큰나라), 우리 겨레는 한겨레(같은 겨레), 우리글은 한글(바른글)입니다. 한말에는 우리말(토박이말) 외래말(한자말·왜말·서양말·몽골말…)과 그것들의 섞음말까지 통틀어 일컫는 말이지요. ‘한말글’은 한나라 말과 글을 일컫습니다.”


-숱한 토박이말을 한자말로 둔갑시켜 사전에 올렸다는 말씀을 하신 지 오래됐지요? 연구 결과의 한 부분을 몇 해 전 <한겨레>에 1년여 연재하신 바 있고, 최근에는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낸 <조선어사전>(조-일 사전)에 실린 낱말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신 걸로 압니다.

“총독부 <조선어사전>은 한마디로 우리말을 없애고 내리깎은 사전입니다. 예컨대 ‘편지’라는 우리말을 “片紙(편지): 手紙”라고 조작했는데(手紙는 ‘편지’란 뜻의 일본말), 우리말 ‘편지’가 片紙에서 왔다고 꾸며 ‘종잇조각’ 같은 것이라고 얼버무린 것입니다.(便紙는 취음) 우리말 ‘부실하다’를 ‘不實(부실): …’이라고 했는데, ‘不實(불실): 열매 맺지 못함’임을 알면서도 ‘부실하다’를 없애고 ‘不實’로 꾸미려고 억지를 부린 것입니다. 우리 고유악기 ‘날라리’를 大平蕭의 속칭이라고 했는데, 중국에 太平蕭(포 charamela)가 있지만 ‘대평소’는 없는 허깨비입니다. 있는 것이 없는 것의 ‘속된말’이라니요?

만주말에도 남아 있는 ‘사둔’을 査頓(사돈)이라고 했습니다. 둔할 둔(頓)의 경우를 이용해 취음했는데, ‘사돈’이라고 하여 ‘사둔’을 없애려고 한 것입니다. ‘사돈’은 <훈몽자회>에도 “婚: 사돈 혼, 姻: 사돈 인”이라고 했듯 ‘혼인’이라는 뜻입니다. ‘잠깐’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말로 바꾸려고 ‘暫時間’이라는 헛것을 만들어, 있는 暫時도 없는 暫間도 그 준말이라고 하여 ‘잠깐’의 원말로 삼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선에 무슨 말이 있었느냐고 한자말을 70%로 만들었습니다.”

-선생께서는 평소 한자 ‘窟’이 없을 때 우리는 ‘굴’에서 살았고, ‘주발·접시·대접·통’ 따위 ‘물건’도 만들고, ‘온돌’ 깐 ‘방’에 ‘장작불’ 때고, ‘문’도 달고 ‘외’도 엮어 ‘바람벽’도 치고 ‘도배’도 하고, ‘수염’ 난 ‘영감’이 ‘사랑방’에서 ‘모양’ 내고 ‘사설’ 늘어놓으며, ‘안주’에 ‘강정·경단·인절미·저냐’ 곁들여 ‘잔’ 들고 ‘술타령’도 하고, ‘농’도 만들고 ‘옷장’도 마련했다. 이들은 한자와는 상관없는 우리말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窟·周鉢·桶·物件·溫突·房·長斫·門 …따위에서 왔다고 하느냐며 한탄하시는 걸로 듣습니다. ‘아, 그렇구나!’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한자가 있기 전에 우리말이 있었다’는 논리만으로 남들을 깨우치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만?

“한자가 없을 때에도 우리말은 있었다’는 논리가 모든 말에 적용되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숱한 나날살이 말들이 있었고, 이 말들을 향찰이나 이두로 적었다는 걸 누가 부정하겠습니까? 요즘 영어 따위 외래말을 들여와 우리말을 쓰이지 못하게 하는 현실과 견줘 보면 알 수 있지요. 우리 상고 때 활동무대는 주로 중국 땅이었습니다. ‘나라’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자연히 말이 섞일 수밖에요. 우리말은 적는 ‘글짜’가 없어서 기록으로 남지 못하고, 행정 땅이름이 전라북도 ‘임실’만 남고 모조리 한자말로 둔갑했잖습니까.”


6년째 우리말로 바꿀 한자말 7만 낱말 빼내
우리말이 70%라고 자랑할 사전 만들어야




 

» 2009년 9월8일 한글학자 정재두.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문·벽·방, 門·壁·房이 이쪽저쪽에서 따로 자란 말들이란 말씀은 이해가 갑니다만, 어쨌든 그렇게 해서 찾아내신 우리말 낱말 수는 얼마나 됩니까?

“단군 때만 해도 농경기입니다. 우리 건축 양식은 고유의 ‘온돌방’이 뿌리입니다. 이는 방구들을 놓고 벽을 치고 문을 달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양식이 없습니다. 한자도 없었고요. 그런데 총독부 사전은 우리말 ‘온돌’에다가 ‘溫


·溫突’이란 헛것을 달아 놓았습니다. ‘방’에도 뜻이 다른 ‘房’을 달았습니다. 중국말 ‘房’은 ‘집’이란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문·벽’도 마찬가집니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우리말로 바꿀 한자말을 6년째 7만 낱말쯤 빼냈는데, 요즘은 ‘고사성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고, 현대문헌에서 추려낼 낱말들을 더해 15만 낱말 정도를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외곡·의곡’(歪曲)을 ‘왜곡’으로, ‘군’을 ‘꾼’으로 고치고, 교과서 띄어쓰기와 외래말 긴소리 없애기에도 관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띄어쓰기는 1958년 한갑수·이강로 님들과 교과서 교정 보면서, 보기를 들면 ‘찾아 가다’ (물건을 찾아서 가지고 가다)와 ‘찾아가다’(만나러 가다)로 구별한 것 따위를 1964년 문교부 <교정편람>에서 정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통일해 버린 것 같습니다. 외래말 긴소리는 교과서의 ‘베에토오벤’을 1963년 4월 문교부 ‘사회과 인명 지명 심의회’에 언론계 대표로 나가 ‘베토벤’으로 했다가 그해 9월 합동회의에서 ‘베에토벤’으로 절충한 것을 1970년 국어조사연구 위원회에서 맡아 1979년 ‘시안’에서 다시 ‘베토벤’으로 했습니다.

<큰사전> 원고에는 ‘외곡’으로 국어국문학회 사전에는 ‘의곡’으로 돼 있어서 ‘왜곡’을 내세워 27년 만에 통일했습니다. ‘장군’과 ‘장꾼’을 구별할 일이 생겨서, 논의 끝에 ‘군→꾼, 대기→때기, 갈→깔’로 고쳤는데, ‘빛깔·색깔·성깔·태깔…’들로는 고쳤으나, ‘젓깔’은 빠뜨렸습니다. ‘젓갈’은 ‘젓가락’의 준말이므로, 부탁합니다, ‘젓으로 담근 음식’은 ‘젓깔’로 써 주십시오.”

-평소 막걸리도 두어 잔은 하시는 줄 압니다. 아흔을 바라보시는데도 강녕하신 비결이 뭔가요?

“겉으로만 건강한 것 같습니다. 그나마도 수학에 ‘거꿀(逆)도 또한 참(眞)이라’는 말 그대로 남이 하는 짓은 잘 안 합니다. 일제 때 사범학교 학생이 학교보다는 헌책방에서 한글책 봤습니다. 들키면 큰일 났지요. 하루 여덟 잔 물도 안 마십니다. 지금도 할일이 많아서 몸이 약해지면 안 됩니다. ‘거꿀 건강’이지요.”

-소리빌기(취음)로 된 말이 적잖습니다. 한글로 된 전거(기록)보다 한자로 된 전거가 많은 게 사실이고, 이를 보고 우리말도 한자말에서 온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땅이름은 삼국시대 초에는 거의 소리빌기였습니다. 삼한 때 ‘미추홀’은 ‘미’는 물의 옛말, ‘추’는 ‘ㅊ’으로 사이시옷 적기, ‘홀’은 ‘골’의 옛말로, 그래서 ‘미ㅅ골’은 ‘물ㅅ골’입니다. ‘마리산’은 麻利山·摩璃山·摩尼山…들로 소리빌기란 게 환히 드러납니다. 그러다가 뜻소리빌기로 이두 적기가 나타납니다. 고구려는 ‘크크리’고 벼슬이름 대로(對盧)는 ‘마주’(對의 뜻)의 ‘마’와 ‘盧’의 소리(‘로’)를 따서 ‘마로’(우두머리), ‘대대로’는 ‘한마로’입니다. ‘인절미’도 ‘仁切味·引切味·仁切餠 …’ 따위로 적습니다.”

-한국 한자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말을 한자로 적어야겠는데, 중국 한자에 알맞은 것이 없을 때 우리가 만들어 쓰는 한자입니다. 예컨대 乫(갈)·乭(돌)·垈(대)·畓(답) … 따위가 있습니다.”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다가 요즘은 글로벌화란 말을 자주 씁니다. 중국·일본·미국화에 이어 이런 말들이 나오는데, 말글 국제화 얘기를 한번 들려주시지요.

“우리가 400차례도 더 되는 침략을 당하느라 내 것 다 뺏겨 버리고 살아남기 힘들어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보니까 외부 세력에나마 빌붙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습니다. 과거제도는 한자·한문을 배워 중국을 알지 못하면 벼슬을 하지 못하는 괴물이었습니다. 비슷한 형세가 요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말 국제화는 외국말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알고들 있습니다. 중국에선 간체자에서 병음자모(로마자) 쓰기로 가고 있는데 한자능력시험이니 엉뚱한 일로 야단들입니다. 교육당국은 정신 차려야 합니다. 우리는 뛰어난 한글뿐만 아니라 이를 낳게 한 뛰어난 우리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분야의 고갱이 말들이, 천부인 셋이 ‘칼·돌·거울’이고, 따라서 일본 왕권의 상징이 ‘칼·구슬·거울’인 것처럼 ‘ㄹ’받침 말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또 ‘상글·방글·깔깔깔·하하하… 하는 웃음시늉말이 380개가 넘습니다. 다른 나라 말에는 10개도 넘지 않는답니다. 제 것을 알차게 갈고닦는 일이 국제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8월21일 사회복지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예고하면서 ‘부랑인·노숙인’이라는 말을 ‘홈리스’로 바꾸겠답니다. 그럴듯한 새말을 하나 지어 주신다면?

“‘한데살이’가 알맞은 말인데, ‘집 없는 천사’보다는 ‘집 밖의 천사’ 정도가 ‘홈리스’보다는 낫지요.”

-국어사전 만드는 데 가르침이나 지침이 될 만한 말씀이 있다면?

“<큰사전>만 18년 걸렸고(1927년 준비작업부터 치면 30년), 나머지 사전들은 10년도 안 걸려 뚝딱 해치웁니다. 다른 나라에서 100년을 헤아리는 일에 비추면 웃음이 나오지요. 남의 것 베끼기만 하지 말고 우리다운 사전이 필요합니다. 우리말이 70%라고 자랑할 수 있는 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79살 때부터 우리말 자료를 모아오는데, 절반가량 진행된 시점에 갈 길이 바빠 큰일났습니다. 늙어서 10년은 더 걸릴 테니까요. 보조원 양성이 급합니다.

그리고 정신들 차립시다. 논밭 넓이 단위인 ‘단보’(段步)는 일본에서 만든 말인데 우리도 씁니다. 그들은 말을 줄여 쓰는 재주가 있어서 무엇이든 줄입니다. ‘段’을 왼쪽 변에서 ‘


’을 따고 오른쪽 몸에서 ‘又’를 따서 ‘反’으로 줄여 ‘단보’(反步)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북쪽 사전에서 ‘반보’(反步)라고 하니까 그것을 올린 사전이 나왔습니다. 총독부 사전을 찢어 버리고, 필요 없는 한자말 빼고 우리말을 싣는데, 새로 이름꼴 낱말·익은말(명사형·숙어)들을 개발해야 합니다.”

-현행 한글맞춤법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잘못된 것만 바로잡으면 되는 것을, 그 잘못들을 살려서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보기를 들면 ‘쌕쌕쌕’ 소리를 내는 벌레나 물건 이름을 ‘쌕쌔기’로 하기로 돼 있는데, 그것을 ‘쌕쌕이’로 잘못 적는 이가 있다고 이를 원칙으로 삼았으니 적을 수가 있어야지요. 사이시옷 적기에서 한자말 6개도 우습지만, 그나마 ‘셋방’의 ‘방’은 우리말이고, ‘툇간’의 ‘퇴’도 우리말입니다. 우리말과 한자말을 구별짓지 않는 맞춤법이 맞춤법입니까? ‘둘째’ 때문에 ‘두째·세째·네째’도 없애다니 말이 됩니까?”  

 

- 정리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정치 그만하고 장사 잘하세요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여름방학 특집 시사탐구생활 ④
미국 쇠고기 수입업체는 왜 1년도 지난 지금, 연예인 발언에 소송을 걸었을까요?
 
 
한겨레  
 








 

» 정치 그만하고 장사 잘하세요.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Q 1. 김민선씨가 미니홈피에 미국 쇠고기 관련 글 쓴 걸 문제 삼아 한 쇠고기 수입업체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잖아요. 전여옥 의원은 공인인 연예인들은 그 발언을 더 조심해야 한다고 했고요. 근데 유명한 연예인은 공인인가요? 그리고 왜 1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A 첫째, 연예인이 공인이냐. 아니. 본 교사 주야장천 주장해 왔던바, 재탕한다. 연예인은 공공(公共)의 영역에서 공적 책무 수행하는 공복이 아니라 공공연(公公然)한 영역에서 사적 이익 추구하는 직업인이다. 그 영업 내용이 퍼블릭한 게 아니라 그 영업 장소가 마침 퍼블릭할 뿐이라고. 선출된 것도, 세비 받는 것도 아닌 그들에게 여느 자연인 이상의 공적 책무, 요구할 수 없다. 유명하다? 그럼 공적 가치 추구가 아니라 사적 싸가지 관리나 잘하면 될 일이다. 그마저 의무 아니라 개인 품성의 영역이고. 여기서 공인 운운하는 건 그저 사적 메모 하나에 거대한 공적 책임을 묻기 위한 수작일 뿐이다.

둘째,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작년, 국방부가 불온서적 선정했다. 본 교사, 선정 즉시 해당 서적들 베스트셀러 됐단 점으로 보아 사회과학 서적의 만성적 판매 부진을 타개키 위해 기무사에 침투한 출판인 점조직의 음모가 틀림없단 ‘썰’을 유포한 적 있다만, 당시 삽질의 핵심은 어떤 책이 무슨 내용으로 왜 불온하다 판정되었나에 있지 않다. 핵심은 군이, 이전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서적들을,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불온하다 판단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는 거다. 그건 정치 행위다. 군이 왜 자본주의를 걱정하나. 군은 국방 걱정하라 있는 거다. 그렇게 군이 국가가 아니라 정권을 위해, 국방이 아니라 정치를 했다는 거, 그게 그 사건의 본질이다.

이 사건, 같은 맥락에서, 장사가 아니라 정치다. 주변 아는 변호사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라. 승소 가능성, 거의 제로다. 그래도 한다. 왜. 스스로 실토한다. 버르장머리 고치려고. 기업이 승소 가능성 희박하고 돈도 안 되는 남의 버르장머리 따위를, 왜 자기 돈까지 들여 고치려 하나. 그것도 1년이나 지나서. 오히려 다시 시끄러우면 소비자 불안만 환기시킬 뿐인데. 그건 오히려 장사에 더 손해인데. 더구나 이제는 굳이 막아야 할 입도 없는데. 다들 이미 할 말은 다 했는데. 도무지 장사 쪽이 얻을 실익이 없다.

그러니 다시 튀어나오지 않도록 못 박아 두겠다는 그 버르장머리는, 실은 미국 쇠고기에 대한 게 아닌 게라. 정부가 결정하고 진행하는 사안에 감히 나서서 반대하고 시비하는 버르장머리, 바로 그 국민 버르장머리를 뜻하는 게라. 한마디로 앞으로는 소송 감수하기 싫으면 주댕이 닥치라는 소리인 게라. 그 자기검열의 족쇄를, 모두의 머릿속에 채워두고 싶은 게라. 김민선은 그 대국민 협박의 홍보모델로 강제 징발 당한 게고. 그렇게 기업이 이익이 아니라 정권을 위해, 장사가 아니라 정치를 했다는 거, 그게 이 사건의 본질이다.


2. 우리 정부가 클린턴 방북을 그 전날에야 통보받았다, 아니다 그 전주에 받았다 하는 논란이 있었잖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그때 뭐 하셨어요?

언론에선 클린턴 방북 전날에야 통보받았다 하고 또 보수 쪽에서도 미국에 배신당했다는 말 나오니까, 청와대에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단 말이지. 그래서 아니다, 그 전주에 받았단 해명, 즉각 내놨어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 워낙 다급하게 해명하다 보니 각하를, 미국 전직 대통령이 북한 방문해 김정일과 담판한다는 중차대한 외교적 사건이 있을 거란 통보를 받고도 휴가나 가버린, 개념진공 대통령으로 만들고 말았네. 청와대가 각하를 조져버린 거지. 어머, 이 자해를 워쪄. 각하는 클린턴 방북 직전, 휴가 가셨거든. 부시도 만나고.


그렇게 남북 현직 정상 두 사람과 미국 전직 정상 두 사람이 같은 주에 한반도에서 만난 건, 역사상 최초의 일이에요. 북쪽에선 김정일과 클린턴이, 남쪽에선 각하와 부시가 만난 거지. 그래서 클린턴은 김정일로부터 두 기자의 석방과 북-미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이끌어냈고, 각하는 부시로부터 “기부는 대단한 일”이란 칭찬을 이끌어 내셨지. 멋지지 않니, 우리 각하. 이럴 때 우린, 각하 힘내시라고 이런 구호 외쳐드리면 되는 거란다. 장하다, 이명박!


3. 와이에스(YS)가 디제이(DJ)와 화해했다는 보도가 크게 났던데, 진짠가요?

화해는, 상호 해원하는 거란다. 쌍방이 서로에게 가한 과거의 해코지를 마침내, 서로, 용서하는 거지. 근데 와이에스는 디제이를 만나지도 못했어요. 상호작용이어야 하는 걸 혼자로 족하다고 우기는 걸 우린 땡깡이라 하지. 게다가 정신이상, 독재자, 아이엠에프(IMF)도 디제이 탓 등등 무수한 저주와 비방은 전부 와이에스가 일방적으로 디제이에게 던진 거였지, 디제이는 와이에스를 그리 상대한 적 없거든. 그러니 와이에스가 디제이 관련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화해가 아니라 회개가 맞지. 이상.



 

» 김어준
 
PS-마감 직전, 서거 소식을 들었다. 너무 분하다. 그가 마지막 눈에 담고 간 장면들이, 시답잖은 무리에게 그 자신 평생을 바쳐 이룩한 가치들이 유린당하는 모습이었단 사실이. 그 대목, 결코 잊지 않으리.

당신 덕에, 떳떳했어요. 참, 고마웠어요. 이제 편히 잠드세요, 내 첫 번째 대통령님.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시사탐구생활 3탄-미디어법 투표 논란, MB의 ‘서민’을 알려주마
 
 
한겨레  
 








 

» 지난 대선 재투표도 콜!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최근 폭증하고 있는 요해 불가요 이해 난망인 각종 시사 사건들을 위한, 여름방학 특집 시사탐구생활 고삐리 면학지도 그 세 번째 상담. 가자.

Q 1. 미디어법, 재투표다 대리투표다 해서 큰 논란이잖아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정리 좀 해주세요. 그리고 미디어법은 왜 안 되는 거죠?

A 일단 이것부터 밝혀 두자. 그 직권상정은 말이야, 의정활동이 아냐. 직속상관 조중동에게 방송을 직권상납함으로써 10년 야당의 한을 해원코자 하는 한나라당의 씻김굿이지. 영구집권하려고. 자 그럼 그 난리굿의 디테일 한번 보자고. 먼저 재투표. 한나라 논리는 두 가지야.

우선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거. 이거 웃기는 논리라 봐. 애초 의결정족수라는 건 법안 가결의 조건이지 투표행위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의결정족수 미달된 채 투표행위, 할 수 있어. 그땐 부결되는 거지. 그래서 미달이면 투표하지도 않지. 뭐하러 해. 자동부결인데. 아예 투표 않고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거나 중지하고 정족수 채우거나 안 될 거 같으면 산회한다고. 투표 시작해도 종료 안 한다고. 그래서 “투표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거거든. 근데 이번엔 종료 선언 했다고. 그럼 표결은 정상적으로 일어난 거야. 표결이 있었으니 당연히 결과가 나와야지. 결과는 가·부결밖에 없는 거고. 이걸 자기들 맘대로 재투표해버렸어요. 당연히 일사부재의 위배지.

또하나는 “가결 또는 부결 등의 의결이 완료되지 못한 상태”라 표결이 성립되지 않았다는 주장인데, 이건 사회자가 가·부결을 선언해야 의결이 완료된단 논리거든. 아니지. 부결은 투표가 만드는 결과지. 사회자 진행발언으로 만들어지는 결과가 아니지. 그럼 한나라, 왜 이런 짓을 했냐. 이윤 딱 하나지. 결과가 맘에 안 들어서. 어쨌거나 이 사안은 헌재 갔으니 기다려 보자고. 만에 하나 헌재가, 결과가 맘에 안 든다고 재투표해버린 한나라 손을 들어준다. 그럼 우린 지난 대선 재투표하자고 해야지. 결과가 맘에 안 들어도 담 대선까지 기다려야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는 말이니까.

아예 논란의 여지조차 없는 건 대리투표지. 이건 용어부터 잘못이야. 국회의원의 대리투표란 개념 자체가 없는 거야. 당연하지. 대구 달성군 지역주민을 대의하는 박근혜 권리와 의무를 누가 어떤 절차로 위임받을 수 있나. 없어요, 그런 거. 그러니 그냥 불법투표지. 근데 야당이 대리투표라니 한나라에선 야당도 대리투표했단 주장을 했어요. 이게 진정 코미디야. 그러니까 왜 우리만 갖고 그래, 쟤들도 잘못했는데 이건데. 만날 물타기하던 게 버릇이 돼 놔서 너도 총 쐈고 나도 총 쐈으니 우리 서로 안 죽은 걸로 하자, 이거거든. 불법, 누가 했든 뭔 상관이야. 불법이면 무효지. 스스로 증거를 추가 제출하네. 자해지 자해. 전문용어로 실성이라고 해.


2.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서민을 돕는 게 내 삶의 가치”라고 했잖아요. 그 기사에 엄청난 수의 댓글이 달리면서 말들이 많던데 왜 그런 거예요?


사실 각하 그 발언엔 본 교사도 고민 많았어. 장애인 혹은 미혼모를 돕는 게 내 삶의 가치다. 그런 건 말이 돼. 인권과 인본의 가치관을 드러낸 거니까. 노동자 언급해도 계급적 각성이나 세계관의 피력이라 할 수 있지. 뭐 국민 언급했다면 대통령이니 당연한 거고. 근데 서민을 돕는 게 삶의 가치라. 이런 건 또 처음 들어봐요. 서민이면 평범한 일반인인데, 무슨 가치를 말하자는 건가. 그리고 뭘 어떻게 돕겠단 건가. 방 청소 해주고 팥빙수 사줄 건가. 더구나 경제적 계층의 의미라면, 더욱 말이 안 되지. 홀몸노인 도시락 보조금이나 연탄 보조금, 기초생활수급자 의료비 지원 같은 각종 복지예산 왕창 삭감하는 대신 수십조원으로 멀쩡한 강바닥 긁어주시는 각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 리가 없잖아. 그건 파란해골 13호가 마루치를, 다스베이더가 추바카를 돕는 게 내 삶의 가치라고 한 것과 다이다이잖아. 하여 우리가 또 각하를 오해했다고 본다. 원래 각하께선 오해 많이 받으시잖니. 그런 전차로 본 교사, 서민이 그 서민일 리 없단 결론이다. 그럼 뭐냐.

서민의 서, 독음만 같고 한자가 다른 거야. 서생원 할 때 그 서라. 각하의 특정 생물에 대한 한량없는 애정 표현이라 보는 거지. 혹시라도 그게 아니다. 그럼 섬인을 우리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 거 왜 연음법칙인가 있잖아. 섬인 → 서민. 즉, 섬사람들. 아무래도 일본이지 싶어. 것도 아니다. 그럼 ‘썸인’ 아니겠는가 싶네. some inn. 어떤 숙박업소. <조선일보>가 사실은 숙박업자잖니. 조선일보 돕겠단 일종의 은유라 봐야지. 발음이 좀 다르다? 시적허용이지 뭐.



 

» 김어준
 
어쨌거나 분명한 건 이거야. 각하, 세상 참 편하게 사신다. 그냥 말로 다 하셔. 이건 뭐 하늘이 있으라 하니 하늘이 있었다, 수준이야. 참 좋으시겠어. 해서 각하 말은 다 한 줄로 해석돼요. 수리수리마수리수수리사바하. 그러니 서민 니들은, 고마운 줄 알아 이것들아.


PS- 아 참 미디어법, 왜 안 되냐. 세상은 서로 다른 생각이 다투는 과정을 통해 앞으로 가는 거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언론을 장악한다, 그럼 인식과 사고의 적대적 인수합병이 벌어진다. 일방적으로. 그런 사회를 우린 전제국가라 한다.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분의 주차박애주의에 박수!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시사 탐구생활 2탄 - 사퇴한 천성관 후보자 뭐가 문제였나요?
 
 
한겨레  
 








 

» 그분의 주차박애주의에 박수!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최근 폭증하고 있는 요해 불가요 이해 난망인 각종 시사 사건들을 위한, 여름방학 특집 시사 탐구생활 고삐리 면학지도 그 두 번째 상담, 나가신다.


Q 1. 이명박 대통령이 공무원 50만명 휴대폰에 음성메시지를 남겼는데, 남기면 듣지도 않고 삭제한단 비율이 97%나 되더라구요. 대통령은 공무원의 수장인데 왜들 그럴까요?

A 97%라는 건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와도 무관하단 소리거든. 대체 왜들 바로 삭제한다는 거냐. 대통령, 공무원 수장 맞아요. 그래서 공무중인 공무원들에게 공적 지시 할 권한, 분명 있지. 공적 공간에서 공적 문서나 공적 명령으로. 허나 휴대폰은 개인이 사비로 임차한 사적 서비스잖아. 대통령이 휴대폰 요금 내주나. 아니거든. 완전한 개인공간이라고. 근데 왜 그 사적 영역을 자기 맘대로 침범하냐고. 공무원의 집이기만 하면 대통령이라고 해서 허락도 없이 맘대로 들어가 똥 싸도 되냐. 안 되잖아. 그래서 내용에 상관없이 짜증부터 난 거지. 그럼 대통령 메시지가 똥이란 소리냐. 그건 뭐 각자 판단에 맡기겠어. 어쨌든 스팸이야.


2.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많은 논란 끝에 사퇴했잖아요. 뭐가 그렇게 큰 문제였나요?

그 이슈는 말이다. 각하께서 초장에 수립하신 국정철학의 올곧은 기조는 한 치 흔들림 없이 견지되어야 한다는 청와대의 강고한 의지가 빚어낸 작품이라고 봐야지. 사실 강부자 고소영이 아무나 짤짤이로 딸 수 있는 영예가 아니거든. 위장전입 했고 주택 구입자금에 의혹 있고 의심스러운 부인의 명품 쇼핑, 스폰서와 해외 골프여행 했단 수준의 기본 패키지는 커트라인에 불과하다고. 그 정도 결단도 없이 어떻게 감히 이명박 정부의 동반자가 되겠나. 더구나 범죄수법에 가장 정통한 검찰 출신이 말이야. 그 정도로는 감동이 딸렸다.

교사, 자가용 리스 대납 의혹을 접하고야 비로소 고개를 주억거릴 수가 있었지. 역시 전문가는 디테일이 달라. 그렇지. 이런 신종 스킬 하나쯤은 세상에 선보일 수 있어야지. 특히 그 차는 지인이 그 아들을 위해 리스해 준 거라면서 왜 당신의 아파트에 등록되어 있었냐고 묻자, 경기도 사는 지인의 아들이 서울 올 때 주차할 곳이 없어 자신의 아파트에 주차 등록해 줬다는 해명에 이르러서는 벌떡 기립박수를 치고 말았지. 오, 그 하해와 같은 주차박애주의. 그래도 의혹이 계속되자, 주차하는 김에 자신의 거처에 지인 아들을 자주 재워 줬다는 해명을 추가함으로써 그 자애로운 탁아활동까지 공개하고 마신다. 상당히 은혜로웠어.



그리고 인사청문회에서 기어이 방점을 찍어 주셨지. 자녀 결혼식을 최소 기천만원 한다는 국내 최고가의 6성급 특급호텔 야외식장에서 하시고서도 그곳을 소박하게 “조그만 교외”라 표현하시는 격조 높은 서정성을 드러내셨을 땐, 그 어떤 완연한 정서적 충만감에 성마른 본 교사마저 가늘게 몸을 떨며 하릴없이 벽에 기댈 수밖에 없었지. 아, 이제는 더 이상 부족함이 없구나. 이제는 완전해진 거야. 유 콤플리트 미.


3. 이명박 대통령의 기부가 화제잖아요. 말들이 많더라구요. 친구들과도 헌납이다 아니다 싸우는데요, 정리 좀 해주세요.

음, 그 문제는 용어 정리만 하면 간단해요. 기부나 헌납은 재산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포기하고 그 일체를 제3자에게 양도하는 거거든. 자신과 무관한 비영리 복지단체에 재산을 쾌척했다, 그럼 당연히 기부고 헌납이지. 문근영, 김장훈이 만날 하는 그거 말이야. 근데 각하께선 따로 재단을 설립하셨단 말이지. 그러니까 이건 자신의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재산을 출연했다, 이게 객관적으로 적확한 표현되겠어.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지. 그럼 재단이란 뭐냐. 간단히 말해 재산을 운영하는 법인이야. 이렇게 생각하면 대략 맞아. 개인의 소유권이 재단의 운영권으로 전환되었구나. 그래서 중요한 게 재단의 운영권이야. 결국 누가 자금 집행을 결정하느냐 이거지. 물론 재단 이사회지. 그럼 각하께선 그 이사진을 어떻게 구성하셨느냐. 자신의 가족, 친구, 지인들로. 오, 이건 어서 많이 본 시추에이션. 우리 재벌들이 이렇게 해먹은 역사가 유구해요. 사학 재단들이 그렇게 해먹은 역사도 장구하고. 재단은 세금 혜택도 많고 수익사업도 할 수 있거든. 원하는 사람에게 월급 형식으로 돈도 얼마든지 퍼줄 수 있고. 게다가 재단의 운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어요. 재단 운영권은 소유권이 아니라 상속세마저 없어요. 어때, 죽이지. 여기서 물론 각하께선 절대 그럴 리가 없어! 하는 반론, 가능해요. 거기엔 이런 재반론이 다시 한 번 가능하지. 무슨 근거로 새꺄.




 

» 김어준
 
4.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휴대폰 도청법이란 게 논란이란 소리를 들었어요. 그게 뭔가요.

음, 그건 말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우리 사회 전래의 특정 동물에 대한 편파적 고정관념을 한탄해 오시던 각하께서, 설치류로 하여금 낮말까지도 반드시 청취 가능토록 하고 말겠다는 평생의 한을 한 조각 법문으로 승화시키신 거란다. 그 내용은 그러니까 한 줄로 요약이 돼요. 쌀라카둘라메치카둘라비비디바비디부, 아멘.

오늘은 여기까지.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여름방학 특집 시사탐구생활① 진보매체는 보수를 너무 미워하는 거 아닌가요?
 
 
한겨레  
 

시절이 하 수상타. 하여 어른들 연애상담 잠시 휴업하고, 고삐리들을 위한 여름방학 특집 시사탐구생활 면학지도소, 임시 개점 하는 바이다. 최근 폭증하고 있는, 상식으론 요해 불가요 이해 난망인 각종 사태에 대한 염력 상담 대환영. 고삐리 일체 중생들의 많은 이용,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자, 첫날 상담.


Q 1) 얼마 전 시국선언한 분들에게 아나운서 송지헌씨가 한 발언이 논란이 됐잖아요. 그런데 아나운서라고 해서 정치적 입장을 가지지 못하라는 법은 없잖아요? 방송에서 그렇게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게 낫지 어중간한 건 비겁한 거 아닌가요?


A 그렇다. 정치 성향이란, 제 직업에 우선하는 존재 양식. 자신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자체가 죄가 될 순 없는 법. 정치 성향이든 성적 지향이든, 제 정체 오픈하고 살겠다는 거, 박수쳐 줄 일이다. 그거 숨겨야 먹고사는 사회가 후진 게지. 여기까진 노 푸라불럼. 그런데, 그는 지상파 아나운서 출신. 전파란 게 공공재거든. 하여 그들에겐, 방송 중 중립이 직업윤리로 요구된다. 그리고 그 덕에 공평무사의 이미지 적립되고. 정치권이 아나운서 영입에 목매는 것도 그 연유지. 인지도에 그런 이미지 더해진 대중적 신뢰도가 탐나서.

자, 그런 그가 인터넷방송에서 제 정치성을 드러냈다. 그 선택은 온전히 그의 권리다. 그런데 본인의 실제 정치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제 직업 덕에 누적된 불편부당의 이미지가,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사적 정치성이 마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인 양 포장되는 데 동원된다면, 그건 기만이거든. 자신이 그렇게 비축할 수 있었던 이미지와 방송권력은, 제 정치성 덕이 아니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그렇게 방송하려면, 이건 공평무사한 아나운서 송지헌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을 가진 개인 송지헌이 진행하는 시사방송이라는 걸, 시청자로 하여금 사전인지토록 해야 했던 게지. 그렇게 커밍아웃부터 했어야지. 그게 페어플레이지. 인터뷰를 하건 글을 쓰건 오프닝에 담건, 여하간의 방식으로. 만약 그랬다면, 그의 발언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그걸 방송에 드러낸다는 사실 자체는 오히려 지지할 수 있지. 우리 풍토에선. 편파적인 조갑제 아저씨가 대선후보 토론회 사회 봐선 안 되는 것처럼, 대선후보 토론회 사회자의 공정 이미지로 개인적 편향을 커버해도, 반칙인 게지.

게다가 “그분들은 국회의원이나 도지사가 안 돼서 그런 거 아니에요? 왜 그렇게 사실까” 같은 멘트들은, 정치 성향으로 간주해 주기엔 그 논거가 전무하잖아. 이건 그냥 비아냥이에요. 이런 식이라면 실제 커밍아웃된 건 그의 정치성이 아니라 그의 품성이 되고 마는 게라. 특히 자신의 공개발언으로 그 정도의 논란 일면, 제 입장 밝혔어야 한다고. 자신만의 정치성은 누구나 가질 수 있되, 그걸 어떠한 이유로든 드러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면, 그럼 그로 인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단 대가 역시 당연히 지급해야지. 그게 세상 이치거든. 그러니까 문제는 정치적 입장의 공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방식, 내용, 대처가 되는 게라. 이건 여기까지. 질문 더 있나. 있어도 웬만하면 니가 참고. 자, 다음.

Q 2) 진보매체는 보수의 주장을 무조건 비판만 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한겨레>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보수의 의견도 경청하고 존중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A 옛날 영국에 에드먼드 버크란 양반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선 게나 고동이나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라 주장하는 보수에게, 내가 니 애비다 이 자슥들아, 할 자격 있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원조 되시겠다. 이 양반 소싯적에 식민본국 영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법치에 대한 도전이요 체제에 대한 모반에 해당될, 미국의 독립전쟁을 대놓고 지지했다 말이야. 그러면서 반란은 오히려 영국 국왕이 했다 했어요. 뭔가 직관적으로 좀 안 맞지. 보수는 기존 질서를 옹호해야 할 거 같은데 말이야. 그 이유는 이래. 과거로부터 누적된 ‘전통’의 완숙한 귀납이자 공동체가 축적한 역사의 산물로서 ‘자유’와 ‘원칙’이 당장의 왕 하나보다 중요하단 거지. 그래서 ‘자유’라는 ‘원칙’을 억압하는 왕이 오히려 영국의 ‘전통’에 반란을 일으킨 거란 거야. 죽이지 않냐. 원래 보수란 이건 거다. 전통, 원칙, 자유에 목숨까지 거는 기개, 거기 어긋나면 왕과도 한판 뜨는 곤조.



 

» 김어준
 
그래서 헌정 질서란 ‘원칙’을 파괴하고 기본권인 ‘자유’를 속박하는 권력에 그렇게 오랫동안 부역하며 ‘전통’은커녕 미국적 질서에만 복속해온 자들이 스스로를 보수라 말하는 건, 물 먹는 하마 습기 뿜는 소리인 게다. 그렇게 욕망이 이념 행세하며 보신이 신념 구실하고 반북이 철학인 줄 아는 자들이 스스로를 보수라 자처해온 게, 우리네 형편이다. 보수라서 문제가 아니라 보수 아닌 자들이 보수 노릇 해온 게 문제였다고. 그러니까 한겨레가 그들을 문제 삼는 건 그들이 보수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보수가 아니라서인 게지. 고로 <한겨레>가 해온 건 비판이 아녀. 쫑코지. 하여 한겨레의 모든 비판은 결국 딱 두 줄로 요약돼요.

근데 말야, 니들은 대체 누구냐.

그러고 밥은 먹고 다니냐.

오늘은 여기까지.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