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펌 (2005-07-13 20:25:28, Hit : 433, Vote : 3
제목

 인간성에 호소한다 / 홍세화


서울대 2008 학년도 입학전형을 놓고 집권세력과 서울대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초동진압’을 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서울대에서는 교수협의회와 평의원회까지 나서서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그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은 집권세력의 신자유주의 기조와는 모순되지 않는 것인지, ‘대학은 산업이다’라는 발언이나 경제관료의 교육부 장관 임용, 또는 돈받고 인문학을 파는 행위엔 침묵했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똟어보는 안목을 가지고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여 그 바탕 위에서 행동하는 것을 지성이라고 할 때, 서울대의 자율과 학문의 자유는 지성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논술이 본고사다, 아니다”란 논의는 ‘3불정책을 지키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계속해온 교육부의 기회주의의 산물이다. 그런 차원을 떠나서 볼 때, 논술은 그 자체로는 옳은 방향이다. 논술이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문화적 소양을 높이고 인문정신과 비판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오늘날 중고교는 쓰기와 읽기 중심의 교육을 할 준비가 돼 있지 못하고, 학생들은 이미 내신과 수능에 완전히 압도되어 있다. 서울대가 제기한 통합교과형 논술은 학생들에게는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서울 강남의 고급 학원 중심의 사교육을 부추기게 될 것이 뻔하다. 또 특목고 열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나의 첫 질문은 어린 사회 구성원들을 잠도 못 자게 할 만큼 억압하고 심지어 자살로까지 몰아가면서 우리가 얻는 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다수 구성원들에게 경쟁에서 실패했다고 일찍부터 열패감을 안겨주는 한편으로, 서울대를 비롯한 이른바 명문대학이 사회적 책임의식과 능력을 갖춘 엘리트를 양성하는가?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대학 서열구조 아래서는 사회 공공성을 높일 능력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진 교육자본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 학교 출신들이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보여준 역사적 사실도 그렇거니와,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승리했고 그 과정에서 사교육비를 투자했기 때문에 보상심리가 작용하는데다, 사익을 추구하는 특권의식을 견제할 수 있는 힘과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논란 당사자들 또한 거의 모두 내로라하는 교육자본을 갖고 있지만, 모두 기회주의적이거나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다.

종종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서울대 등을 방어하기 위해 프랑스의 그랑제콜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랑제콜은 분야별로 분산되어 수적으로 ‘벌’(패거리)을 이루기 어렵고, 횡적으로 연결된 평준화된 국립대학들이 버티고 있어서 견제된다. 또한 권력학교와 학문학교의 구분 아래 그랑제콜에서는 학위를 주지 않고 대학에서만 학위를 받을 수 있다.

또 대학 서열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국가 경쟁력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 경쟁력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적성과 자질에 바탕을 두고 자기성숙을 모색하고 실천할 때 그 결과로 획득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논술의 방향은 옳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 서열체제를 그대로 둔 채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려는 수단이 돼선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은 논술을 요구하는 철학을 배반하는 행위다. 모든 이의 인간성에 눈물로 호소한다. 기득권 시각을 버리고 대학 서열체제 극복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이자. 무엇보다 어린 사회 구성원들을 이 무지막지한 질곡에서 구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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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이 정기적으로 자신의 칼럼을 올리고 있는 진보네트워크 '참세상'에서 퍼왔습니다. 김규항이 한 고등학생 독자의 질문에 답한 것입니다.


                                                 *                                                 *


저에게 사회주의에 대해 물으신 고3학생이 있었는데
제가 답을 빨리 안해서 지워버린 모양이군요..

우선 답을 빨리 못해 매우 미안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혹시 들어와 보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몇자 적습니다.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까...

우리가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사회주의란 게 혼자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라
이른바 자본주의라는 사회 체제가 생겨나고
그 비인간성이 드러나면서 그에 대항해서 생겼다는 겁니다.

그리고 혹시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우리가 사회주의를 맑스주의라는 말과 비슷하게 쓰기도 하지만
맑스 이전에도 공상적인 사회주의 사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맑스라는 사람이 일생에 걸쳐 연구하고 싸우면서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의 구조와 원리, 대안에 대해
매우 과학적인 이론 체계를 만들어 냈지요.
과학적 사회주의, 맑스주의의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그 후 사회주의는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 갈리는데
첫째는 자본주의 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로 바꾸려는 원칙적인 사회주의이고
둘째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즉 의회(제도 정치) 진출 등을 통해
사회주의적인 정책들(사회복지 정책들)을 실현해가려는 사민주의적 입장입니다.

현재는 동구의 현존 사회주의 나라들이 10여년 전 무너짐으로써
사회주의 입장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서유럽의 사민주의 나라들조차 사회복지 정책을 많이 포기하는 상황이지요.

그런 배경엔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게 있는데
신자유주의란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현재 형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엔 반드시 세계화라는 말이 붙어다닙니다.
이 세계화라는 것은 자본주의가 자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라의 국경을 넘어 말그대로 세계를 대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계화는 알고 보면 2차 세계화입니다.
대략 1870년에서 1914년 무렵까지도 세계화 바람이 있었는데
그 역시 자본주의가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었지요.
그런데 1차 세계화는 그 위기를 극복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은
위기 자체를 세계화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게 됩니다.
그 결론은 세계적인 공황과 전쟁이었습니다.

이후 자본주의는 그 쓰라린 체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2차 대전 이후 자본의 이동을 나라 안으로 제한하는 움직임과
자본의 운동을 자유롭게 놓아두면 위험으로 접어든다는 생각 하에
국가가 자본과 기업에 개입하고 계획하는 흐름을 갖습니다.
이런걸 케인주주의, 수정자본주의라고도 하지요.

동시에 자본주의에 강력한 위협으로 나타난 사회주의 나라들과
경쟁을 하려면 단지 빨갱이 사냥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그쪽보다 낫다는 근거를 보여야만 하는 사정이 생겼지요.
그래서 사회복지 정책을 강화하고 서유렵 나라들은
급속하게 사민주의적인 색채를 띄게 됩니다.
이것은 사민주의로 가는 게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보다 낫다는
자본의 판단과 사민주의자들의 타협의 산물인 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이 되면서 자본주의는 다시 불황이 거듭되고
거대한 위기를 맞게 되면서 결국 두번째 세계화의 바람이 불게 됩니다.
동시에 새로운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의 바람(국가가 자본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이 불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맨날 국가 간섭 없이 시장의 원리에 맡기면 된다고 말하지만
위에 적었듯이 그런 주장들은 진작에 엎어졌다 다시 염치불구하고 살아나는 것이지요.
자본을 자유롭게 놔두는 방식이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아갔다는 것도
이미 100여년 전에 철저하게 증명이 되었던 것이구요.
전경련이나 그런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놈들 보면
역시 자본가란 무식하고도 뻔뻔하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장 심각하고 불건전한 부분은
그것이 미국 위주 초국적 금융자본이 전적으로 주도한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돈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 투기 장사꾼들이 세계 경제를 쥐는 것입니다.

몇년 전 우리나라에도 펀드 매니저니 하는 직업이 영웅이 되고
밴처 투자붐이 줄고 했는데 이게 다 그런 일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구오조정되는 기간이
김영삼 정권 이후, 더 직접적으로는 김대중 정권 하에서입니다.

아이엠에프 위기극복의 이면은 한국 경제를 불과 몇년새에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게 바꾸어 놓는 것이었지요.

중간계급 이상은 삶은 지난 5년 새 사는 게 좀 근사해진듯 하지만
민중들의 형편은 그전보다 오히려 못하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이제 기본 체제가 정비되었으니 남은 건 본격적인 개방 정책뿐인데
그게 진행되면 농민이고 노동자 민중들이고 죽어나가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상황입니다.
나라별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나라 안에서 빈부격차가 심해지는건 당연한 귀결이지요.
9.11 사건을 두고 윤구병 선생이 "3차대전이 시작되었다. 초국적 금융독점자본과 제3세계민중들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해석하셨는데 상황을 참 명료하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뉴욕 쌍둥이 빌딩은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본부에 해당하는 곳이기도 하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목표가 되었던 것이지요.

솔직하 말하자면 현재의 상황은 무척 암울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좀 길게 놓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라는게 5년, 10년에 뭐가 확 뒤바뀌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현재 자본주의는 역사 에 유례없이 아무런 견제없이
가장 야만적인 형태로 내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머지 않아 위기를 맞게 될 겁니다.
결국 현재의 암울한 상황이 뒤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이고
사회주의적 전진은 많은 기회를 다시 얻게 될 거라고 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설사 그런 상황이 쉽게 오지 않는다고 해도
제 신념을 조정하거나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념이고 뭐고 다 떠나서 제 인간적 자존심의 차원에서라도
이런식의 야만을 못 본 체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를 용서하면서 인간에 대해 생명에 대해 문화와 지성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저 기괴한 코미디일 뿐입니다.
모른다면 모를까, 따뜻한 피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시회주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생각나는대로 중얼중얼 많은 얘길 했는데..
무슨 소린지 알듯모를듯 하시겠지요..ㅎㅎ.
그저 아 그런게 있나보다 담아 두었다가
대학 시험 마치면 좀더 찬찬히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는게 좋겠습니다.

대학에 가는 게 무조건 나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기왕 가려고 생각했다면 올 한해는 열심히 하는게 좋겠지요.

이 글 읽으면 아메일로 저에게 주소를 알려주시겠어요.
사과하는 뜻에서 제 책을 보내드리고 싶군요.
공부하다 짬짬이 읽어보는 용도로는 크게 나쁘지 않을 겁니다.

김규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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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6-03-1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읽어 본 글인데, 어디서 봤는지 잘 생각이 안 나네요. 김규항의 글은 진정 불온하게 느껴져요. 내적으로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지식인의 말 ^^
 

1971년 2월7일 스위스 여성이 참정권을 얻었다. 스위스의 역사는 13세기말까지 거슬러올라가지만, 이 나라 여성들은 남성과 동일한 정치적 권리를얻기 위해 무려 7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 날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남성으로만 이뤄진 스위스 유권자들은 찬성62만여 표 대 반대 32만여 표로 자국 여성의 참정권을 승인했다.

스위스를 이루는 20개 주(州: 캉통) 가운데 여섯 개 주에서는 반대표가 다수였다. 스위스는 유럽에서 여성 참정권을 가장 뒤늦게 인정한 나라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보통 선거 제도의 확립이 예외적으로 뒤늦었던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공화정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라로서 별난 일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정치적 권리를 지녀야 한다는 생각이 그리오래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랜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20년에 들어서다.

민족자결주의라는 상표로 세계 도처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던 우드로 윌슨대통령은 자국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는 데 완고히 반대해 자신의 평판을크게 깎아먹었다. 영국 여성은 1928년에 들어서야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얻었다.

혁명과 공화주의의 나라 프랑스는 어떤가? 프랑스 혁명기의 여성 연극인올랭프 드 구주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권리가 있다면 의정 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프랑스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은 1944년에 와서다.

그러니까 한국 여성이 1948년에 남성과 동일한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은 외국인 자매들의 기나긴 투쟁의 열매를 거의 거저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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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평화시장의 무수한 영세 의류·피복 공장들. 하루에 10∼12시간씩 일주일에 거의 70∼80시간씩 ‘구두 계약’으로 일하면서 월급을 제때 받은 적이 드문 지방 처녀들. 폭력과 폭언 속에서 피땀과 피로, 재해, 죽음으로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

나이 든 독자라면 기억할 만한 1960∼70년대의 광경이고, 젊은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같은 영화에서 구경할 수 있는 장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노동 여건들이 ‘일부 후진국’에만 남아 있는 걸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통념은 의류업계에서 환상에 불과하다. 의류 제조업에서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 노동조건이 악화되었지 나아진 적은 없다. 대부분의 세계 시민들은 노예 같은 조건 아래 일하는 노동자의 손에서 나온 옷을 본인도 모른 채 입고 다닌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슬픈 진리다.


세계 최고 규모의 의류시장인 미국의 의류제조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는 전국적으로 약 80만명이 된다. 물론 제3세계로부터의 저가품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20년 전에 비하면 근로자 수가 거의 30%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80만명이 일하는 2만여개의 의류제조 기업체들이, 우리가 보통 미국이라 하면 상상하는 최첨단 기술집약적 생산업체들일까? 천만에다. 그 중의 75%는 미 노동부마저도 ‘착취공장’(sweatshop)으로 분류한다. 착취공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에서조차 ‘생계 유지 불가’로 생각될 한달 600∼700달러의 월급, 지배인의 폭력, 폭언, 성추행, 그리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영구적인 불안감의 노동환경이다.

이들의 대다수가 중국·멕시코 등지에서 온 여성 불법이민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그들이 이와 같은 조건을 왜 받아들이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들 중의 일부는 마피아의 도움으로 통제되는 착취공장에서 거의 노예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미국 내 노동자의 대다수는 최소한의 신체 자유를 잃지 않고 기아에 허덕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선진국’ 의류·운동화 판매시장의 약 35%를 점유하는 제3세계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활을 영위할까? 리바이스(Levi Strauss)와 같은 유명 미국 기업체들이 올해부터 대부분의 제조 부문을 옮길 ‘저임금 노동력 착취의 천국’ 중국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현재 세계 의류 생산의 약 5분의 1을 담당하는 중국. 저임금 노동력이 뒷받침하는 ‘눈부신 성장’은 중국의 관료, 기업인 엘리트와 중국에서 하청업체와의 거래를 통해 천문학적 이득을 챙기는 미국·유럽 대기업들에는 ‘기쁜 소식’이다. 그러면 옷을 만드는 직접 생산자의 몫은 어떨까. 구미 대기업들의 하청업체들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절대다수(90∼95%)는 국내 이주 노동자, 즉 가난한 내륙지방에서 해안지방으로 당국의 허가 없이 이주한 사람들이다.

일단 범법자인 그들은, 한국에서 일하는 ‘불법 이주노동자’ 못지않게 권리를 찾지 못한다. 최근의 과로사 사건에 대한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2002년 5월13일치)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광둥성 바이난(Bainan) 인형공장은 그 노동여건을 잘 보여준다. 하루 16∼17시간 노동, 생활이 어려운 한달 50∼60달러 정도의 월급, 2∼3달씩의 월급 체불 관행, 노동자의 기술사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병영식 감시, 체벌과 욕설의 난무…. 그러한 상황에서 세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는 노부모를 먹여살리기 위해 해안도시로 몰려드는 시골 처녀들이 1년에 한 공장에서 몇명씩 과로로 죽는 것이 이상할까?

1년에 몇만건이나 되는 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하청업체 주인들과 지역 관료들이 뇌물·특혜 거래로 유착된 중국 해안의 ‘개발도시’ 상황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역만리의 원귀가 된 시골 처녀의 해골 위에 중국 권력 엘리트의 부가 축적되고 중심부 국가의 풍요는 지속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는 수백만명의 미국·서구·한국 시민들은 일주일에 80시간 일하며 쓰러지는 중국의 20대 초반 여성들의 손에서 나온 ‘세계적 브랜드’ 옷을 입고 다닌다.

중국 내 하청업체들이 왜 하필이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달 70∼80달러의 ‘현실적 월급’을 밑도는 50∼60달러와 같은 ‘기아 월급’을 주는가? 인권운동가들의 항의에 대해 대만·한국 출신이 많은 하청업자들은 “우리도 희생자”라고 답하곤 한다. 월마트(Wal-Mart), 케이마트(Kmart) 등을 위시한 5∼6개의 주요 대형 소매업자들이 미국 의류 소매시장의 70∼80%를 점유하는 상황에서는 “대형 소매업자가 부르는 대로가 값”이라는 이야기다.

옷 한개에 판매마진 50% 정도를 매기는 대형 소매업자들이 서로 치열한 가격경쟁을 하면서 ‘유명 브랜드’ 소유자들에게 늘 ‘염가’를 강조한다. 자신들의 마진도 남겨야 할 ‘브랜드 메이커’들은 하청업자쪽의 공급이 과다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그들에게는 최저 가격을 강요한다. 결국 하청업자들이 직접 생산자라도 등쳐야지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세계의 소비 중심인 ‘선진국’ 시장을 거대 자본이 휘어잡는 한 세계의 생산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준주변부·주변부 영세 자본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고, 주변부 노동자들이 절대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세계 자본주의의 비뚤어진 불평등한 구조가 중국 여자들을 16∼17시간씩 일하다 쓰러지게 만든다. 그들은 50달러의 월급도 몇달째 받지 못하다 죽어가지만, 의류시장의 ‘왕’으로 군림하는 월마트의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글래스(David Glass)는 1년에 450만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 이것이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의 신자유주의의 현실 그대로다.

그렇다면 한쪽의 과로사가 다른 쪽의 천문학적 소득으로 이어지는 세계 의류산업의 구조를 바로잡을 방법이 있는가?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착취가 가장 심한 경우 노동자와 소비자의 연대로 부분적인 성과를 쟁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년 전 ‘착취공장 반대 국민연대’(NMASS, http://www.nmass.org/)가 중심이 되어 뉴욕의 이민자 여성(주로 중국인과 중남미 계통) 노동자들에게 하루 12∼14시간씩 일을 시키고 몇 개월째 월급을 체불하고 근무시간에 화장실 사용마저 불허하고 노조활동가를 악질적으로 탄압하는 하청업자와 결탁한 ‘유명 브랜드’ 도나 카란(Donna Karan)을 상대로 대대적인 불매운동과 항의 캠페인 등이 벌어졌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중심사항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보이콧(boycott)을 아예 ‘걸콧’(girlcott)으로 부르기로 하여 세인의 주목을 끈 이 캠페인은 아직은 부당 노동행위 저지와 희생자 보상 등 소기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지만 ‘착취공장’ 문제에 대한 서민들의 의식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 전의 중요한 이정표로는 유럽의 ‘깨끗한 옷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 http://www.cleanclothes.org/)이 1993년부터 나이키(Nike)나 리복(Reebok)과 같은 주요 운동화·의류 ‘브랜드 소유자’들에게 요구하기 시작한 행동강령 채택이었다. 물론 1990년대 중반에 나이키나 리복 등이 노동시간과 잔업시간, 노동자 행동에 대한 통제 등을 규제한 행동강령을 부득이하게 받아들였다고 해서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하청공장 노동자의 근무조건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유명 브랜드’의 본사들이 하청공장의 ‘행동강령 준수’에 대한 형식적 감시에 그쳤으며, 유럽 시민들이 그 명칭조차 모를 무수한 하청공장들은 과거의 부당 노동행위를 그대로 계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유럽 시민단체들은 하청공장의 감사에 나서 감사의 결과를 발표하고 구체적인 부당 노동행위(노동자들의 대화 금지, 노동자의 기숙사 외출 통제, 구타, 체벌 등)를 지적하여 일부 개선되기도 하였다. 물론 생산 현지에서의 독립적인 노동운동의 활성화야말로 부당 노동행위 근절의 첩경이지만 아직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착취가 난무하고 ‘착취공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후기 자본주의 세계에서 노동자의 피땀이 묻지 않은 ‘깨끗한 옷’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유명 브랜드와 거대 소매업체, 하청업체의 악행과 세계적 의류산업의 희생자들의 모습을 바로 아는 것이 ‘깨끗하지 못한 옷’을 입고 다니는 우리의 최소한의 자세일 것이다.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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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1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하게 이라크에 경비원을 보내는 사설 경호회사 간부도 이런 말을 하더군요. 개도국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보다 많은 월급을 주니 만족할 거라구요.

글샘 2006-03-10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끗하지 못한 옷을 입고, 깨끗하지 못한 음식을 먹는 사이,
우리 주변에선 갈수록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슬픕니다. 저 월드컵 축구공보면 다시 파키스탄 아이들이 꿰맬 모습이 떠오르네요.

해콩 2006-03-12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아는 것이 최소한의 자세... 그 최소한의 자세만으로는 세상이 바뀔 것 같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조장하고 또 그 과정의 이윤이 모두 가진 자들에게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알고 난 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일은? 불매운동과 투쟁일까요? 나 하나라도 최대한 소비를 줄이는 일일까요?
 

오늘, 교정에 매화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있긴 하겠으나 완연히 너그러워진 햇살이 느껴집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이 아이들을 만난 지 이제 막 일주일을 넘기고 있는 10반 담임교사 OOO라고 합니다. '올 해 우리 아이 담임은 누굴까? 어떤 교과를 담당하며 성품은 어떨까?' 등등 많이 궁금하셨지요? 인사가 조금 늦었습니다. 3월 한 달, 학교에서는 정말 정신없는 시간들이 흘러갑니다. 아이들도 새 학년, 새 교실, 새 친구들 그리고 새 담임에 적응해야하고 저 역시 그러하다는 이유로 늦은 소개에 대한 핑계를 대봅니다.


저는 올해로 교직경력 8년이 되며 OO고등학교에서는 4년째 OO 교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본교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해라 아이들과의 관계에 욕심이 많이 난답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제가 좀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아이들 역시 제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담임으로서 아이들에게 보낸 저의 첫 편지는 그래서 '서로 믿기로 하자'는 당부를 적어 보냈답니다. '자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믿고, 서로의 소중함과 진실도 믿자'고 했지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런 '믿음'을 방해하는 상황도 가끔 발생하는 곳이 학교입니다.

"야간자율학습만 없다면 아이들과 다툴 일이 없겠다"

교사들 사이에 가끔 나오는 진심이 담긴 농담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제 경험으로 미루어보아도 집에 가려는 아이들을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학교에 잡아두는 일이 가장 고역스러웠습니다. 나름대로의 꿈과 계획이 있어서 미술, 음악, 제빵, 미용 등 다양한 공부를 하고 싶어하거나 개인적으로 필요한 과목을 보충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담임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잡아둘 권리가 내게 있을까' 하는 고민이 교직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까요.


올해는 이런 고민을 부모님과 의논하려고 합니다. 만약 '야간자율학습'을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님께서도 원치 않으신다면 담임인 저와 직접 의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상세한 내용을 적어보내주셔도 좋고, 전화를 주셔도 됩니다. 필요할 경우, 학교로 오시는 것도 환영하구요. 아이들의 선한 본성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가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거나,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기에 '야자'라든가 또 다른 문제에 있어서 부모님과의 대화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해야하는 학교에서의 아이들 모습은 부모님이 알고계시는 '가정에서의 내 아이'와 많이 다를 수도 있답니다.


아이들의 먹거리에 관한 부탁도 드리고 싶습니다.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3시간! 아이들의 하루는 '학습노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힘이 듭니다. 잘 먹어야하지요. '잘 먹는다'는 것이 단순히 많이 먹거나 자주 먹는 것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어야하는데, 아침은 굶기 일쑤이고 점심 저녁을 모두 학교급식으로 먹는 것은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을 듯합니다. 아이들을 만난 첫 날, 저는 한 끼만이라도 도시락을 싸다니라고 부탁했습니다. 저희 학교 급식에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음식물은 대량으로 취급하는 급식 자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급식보다는 집에서 지은 소박한 밥이 아이들의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치나 멸치, 상추, 당근, 오이 같이 별로 손이 가지 않는 반찬이 훨씬 아이들이 위와 장을 편안하게 합니다. 피와 정신도 맑아지게 하구요. 저도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도시락을 싸다닌답니다.


어머니께서 일을 나가시어 챙겨주시기 힘이 드신다면 아이들이 직접 도시락을 쌀 수 있도록 가정에서의 지도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도저히 도시락 싸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간식만이라도 집에서 챙겨주십시오. '학습능력'은 육체적인 건강이 뒷받침 되어야함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 또한 맑아지고 긍정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혹 아이들의 학비가 부담이 되시는 가정이라면 다음 주쯤에 나갈 '학비감면'에 관한 유인물을 눈여겨보시고 필요한 서류를 꼭 챙겨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면 가정형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또 대충이라도 알아야 하는 나이인데도 무관심하여 부모님의 어려움을 모르는 아이도 가끔 있습니다. 혹시 이에 관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처음엔 한 무더기 안개꽃같이 비슷비슷해 보이던 아이들이 하나하나 다른 색깔, 다른 향기를 지닌 꽃송이들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이맘때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행복이지요. 모든 아이들이 가치롭게 다가오는 지금의 첫 마음으로 끝까지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담임인 저와 부모님이 함께 아이들의 '꿈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의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이들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받고자 설문지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바쁘시더라도 꼭 챙겨서 보내주시길...



2006. 3. 9. 늦은 밤에

OO고등학교 2학년 O반 담임 OOO드림.


* OO고등학교 교무실 :

* 담임 연락처 :

* E-Mail 주소 :

* 학급 카페 : '다음' 카페의 'OOO OO OOO'


아이에 관한 일이나 학교에 관한 것 등 저와 의논하실 일이나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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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3-1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멋지시네요. ..!!!!

해콩 2006-03-1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부끄럽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학부모님께 편지를 쓰자'고 담임을 맡을 때마다 결심하지만 끝까지 해내지를 못해요.
이번 편지도 '짧게 써야지..' 했는데 쓰다보면 이렇게 길어진답니다. 글샘님께서 담임의 교육관을 말씀드리는 것도 좋겠다고 그러셨는데 쓰다가 그 중요한 걸 까먹었지 뭐예요.. ^^; 행간에 드러나겠지 하며 위안을..
오늘 아이들 편에 들려 보내려구요. ^^ 부모님들께서 꼼꼼 읽어보실까요?

여울 2006-03-1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히 읽어보실 겁니다.!!

해콩 2006-03-1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 늘 감사드려요~
사실 꼼꼼 안 읽어보시면 또 어떻습니까? 아이들에 대한 '담임 마음 세우기'의 한 방법인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