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평화시장의 무수한 영세 의류·피복 공장들. 하루에 10∼12시간씩 일주일에 거의 70∼80시간씩 ‘구두 계약’으로 일하면서 월급을 제때 받은 적이 드문 지방 처녀들. 폭력과 폭언 속에서 피땀과 피로, 재해, 죽음으로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

나이 든 독자라면 기억할 만한 1960∼70년대의 광경이고, 젊은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같은 영화에서 구경할 수 있는 장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노동 여건들이 ‘일부 후진국’에만 남아 있는 걸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통념은 의류업계에서 환상에 불과하다. 의류 제조업에서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 노동조건이 악화되었지 나아진 적은 없다. 대부분의 세계 시민들은 노예 같은 조건 아래 일하는 노동자의 손에서 나온 옷을 본인도 모른 채 입고 다닌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슬픈 진리다.


세계 최고 규모의 의류시장인 미국의 의류제조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는 전국적으로 약 80만명이 된다. 물론 제3세계로부터의 저가품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20년 전에 비하면 근로자 수가 거의 30%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80만명이 일하는 2만여개의 의류제조 기업체들이, 우리가 보통 미국이라 하면 상상하는 최첨단 기술집약적 생산업체들일까? 천만에다. 그 중의 75%는 미 노동부마저도 ‘착취공장’(sweatshop)으로 분류한다. 착취공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에서조차 ‘생계 유지 불가’로 생각될 한달 600∼700달러의 월급, 지배인의 폭력, 폭언, 성추행, 그리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영구적인 불안감의 노동환경이다.

이들의 대다수가 중국·멕시코 등지에서 온 여성 불법이민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그들이 이와 같은 조건을 왜 받아들이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들 중의 일부는 마피아의 도움으로 통제되는 착취공장에서 거의 노예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미국 내 노동자의 대다수는 최소한의 신체 자유를 잃지 않고 기아에 허덕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선진국’ 의류·운동화 판매시장의 약 35%를 점유하는 제3세계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활을 영위할까? 리바이스(Levi Strauss)와 같은 유명 미국 기업체들이 올해부터 대부분의 제조 부문을 옮길 ‘저임금 노동력 착취의 천국’ 중국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현재 세계 의류 생산의 약 5분의 1을 담당하는 중국. 저임금 노동력이 뒷받침하는 ‘눈부신 성장’은 중국의 관료, 기업인 엘리트와 중국에서 하청업체와의 거래를 통해 천문학적 이득을 챙기는 미국·유럽 대기업들에는 ‘기쁜 소식’이다. 그러면 옷을 만드는 직접 생산자의 몫은 어떨까. 구미 대기업들의 하청업체들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절대다수(90∼95%)는 국내 이주 노동자, 즉 가난한 내륙지방에서 해안지방으로 당국의 허가 없이 이주한 사람들이다.

일단 범법자인 그들은, 한국에서 일하는 ‘불법 이주노동자’ 못지않게 권리를 찾지 못한다. 최근의 과로사 사건에 대한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2002년 5월13일치)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광둥성 바이난(Bainan) 인형공장은 그 노동여건을 잘 보여준다. 하루 16∼17시간 노동, 생활이 어려운 한달 50∼60달러 정도의 월급, 2∼3달씩의 월급 체불 관행, 노동자의 기술사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병영식 감시, 체벌과 욕설의 난무…. 그러한 상황에서 세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는 노부모를 먹여살리기 위해 해안도시로 몰려드는 시골 처녀들이 1년에 한 공장에서 몇명씩 과로로 죽는 것이 이상할까?

1년에 몇만건이나 되는 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하청업체 주인들과 지역 관료들이 뇌물·특혜 거래로 유착된 중국 해안의 ‘개발도시’ 상황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역만리의 원귀가 된 시골 처녀의 해골 위에 중국 권력 엘리트의 부가 축적되고 중심부 국가의 풍요는 지속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는 수백만명의 미국·서구·한국 시민들은 일주일에 80시간 일하며 쓰러지는 중국의 20대 초반 여성들의 손에서 나온 ‘세계적 브랜드’ 옷을 입고 다닌다.

중국 내 하청업체들이 왜 하필이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달 70∼80달러의 ‘현실적 월급’을 밑도는 50∼60달러와 같은 ‘기아 월급’을 주는가? 인권운동가들의 항의에 대해 대만·한국 출신이 많은 하청업자들은 “우리도 희생자”라고 답하곤 한다. 월마트(Wal-Mart), 케이마트(Kmart) 등을 위시한 5∼6개의 주요 대형 소매업자들이 미국 의류 소매시장의 70∼80%를 점유하는 상황에서는 “대형 소매업자가 부르는 대로가 값”이라는 이야기다.

옷 한개에 판매마진 50% 정도를 매기는 대형 소매업자들이 서로 치열한 가격경쟁을 하면서 ‘유명 브랜드’ 소유자들에게 늘 ‘염가’를 강조한다. 자신들의 마진도 남겨야 할 ‘브랜드 메이커’들은 하청업자쪽의 공급이 과다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그들에게는 최저 가격을 강요한다. 결국 하청업자들이 직접 생산자라도 등쳐야지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세계의 소비 중심인 ‘선진국’ 시장을 거대 자본이 휘어잡는 한 세계의 생산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준주변부·주변부 영세 자본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고, 주변부 노동자들이 절대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세계 자본주의의 비뚤어진 불평등한 구조가 중국 여자들을 16∼17시간씩 일하다 쓰러지게 만든다. 그들은 50달러의 월급도 몇달째 받지 못하다 죽어가지만, 의류시장의 ‘왕’으로 군림하는 월마트의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글래스(David Glass)는 1년에 450만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 이것이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의 신자유주의의 현실 그대로다.

그렇다면 한쪽의 과로사가 다른 쪽의 천문학적 소득으로 이어지는 세계 의류산업의 구조를 바로잡을 방법이 있는가?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착취가 가장 심한 경우 노동자와 소비자의 연대로 부분적인 성과를 쟁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년 전 ‘착취공장 반대 국민연대’(NMASS, http://www.nmass.org/)가 중심이 되어 뉴욕의 이민자 여성(주로 중국인과 중남미 계통) 노동자들에게 하루 12∼14시간씩 일을 시키고 몇 개월째 월급을 체불하고 근무시간에 화장실 사용마저 불허하고 노조활동가를 악질적으로 탄압하는 하청업자와 결탁한 ‘유명 브랜드’ 도나 카란(Donna Karan)을 상대로 대대적인 불매운동과 항의 캠페인 등이 벌어졌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중심사항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보이콧(boycott)을 아예 ‘걸콧’(girlcott)으로 부르기로 하여 세인의 주목을 끈 이 캠페인은 아직은 부당 노동행위 저지와 희생자 보상 등 소기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지만 ‘착취공장’ 문제에 대한 서민들의 의식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 전의 중요한 이정표로는 유럽의 ‘깨끗한 옷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 http://www.cleanclothes.org/)이 1993년부터 나이키(Nike)나 리복(Reebok)과 같은 주요 운동화·의류 ‘브랜드 소유자’들에게 요구하기 시작한 행동강령 채택이었다. 물론 1990년대 중반에 나이키나 리복 등이 노동시간과 잔업시간, 노동자 행동에 대한 통제 등을 규제한 행동강령을 부득이하게 받아들였다고 해서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하청공장 노동자의 근무조건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유명 브랜드’의 본사들이 하청공장의 ‘행동강령 준수’에 대한 형식적 감시에 그쳤으며, 유럽 시민들이 그 명칭조차 모를 무수한 하청공장들은 과거의 부당 노동행위를 그대로 계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유럽 시민단체들은 하청공장의 감사에 나서 감사의 결과를 발표하고 구체적인 부당 노동행위(노동자들의 대화 금지, 노동자의 기숙사 외출 통제, 구타, 체벌 등)를 지적하여 일부 개선되기도 하였다. 물론 생산 현지에서의 독립적인 노동운동의 활성화야말로 부당 노동행위 근절의 첩경이지만 아직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착취가 난무하고 ‘착취공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후기 자본주의 세계에서 노동자의 피땀이 묻지 않은 ‘깨끗한 옷’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유명 브랜드와 거대 소매업체, 하청업체의 악행과 세계적 의류산업의 희생자들의 모습을 바로 아는 것이 ‘깨끗하지 못한 옷’을 입고 다니는 우리의 최소한의 자세일 것이다.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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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1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하게 이라크에 경비원을 보내는 사설 경호회사 간부도 이런 말을 하더군요. 개도국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보다 많은 월급을 주니 만족할 거라구요.

글샘 2006-03-10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끗하지 못한 옷을 입고, 깨끗하지 못한 음식을 먹는 사이,
우리 주변에선 갈수록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슬픕니다. 저 월드컵 축구공보면 다시 파키스탄 아이들이 꿰맬 모습이 떠오르네요.

해콩 2006-03-12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아는 것이 최소한의 자세... 그 최소한의 자세만으로는 세상이 바뀔 것 같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조장하고 또 그 과정의 이윤이 모두 가진 자들에게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알고 난 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일은? 불매운동과 투쟁일까요? 나 하나라도 최대한 소비를 줄이는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