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이 정기적으로 자신의 칼럼을 올리고 있는 진보네트워크 '참세상'에서 퍼왔습니다. 김규항이 한 고등학생 독자의 질문에 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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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사회주의에 대해 물으신 고3학생이 있었는데
제가 답을 빨리 안해서 지워버린 모양이군요..

우선 답을 빨리 못해 매우 미안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혹시 들어와 보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몇자 적습니다.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까...

우리가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사회주의란 게 혼자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라
이른바 자본주의라는 사회 체제가 생겨나고
그 비인간성이 드러나면서 그에 대항해서 생겼다는 겁니다.

그리고 혹시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우리가 사회주의를 맑스주의라는 말과 비슷하게 쓰기도 하지만
맑스 이전에도 공상적인 사회주의 사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맑스라는 사람이 일생에 걸쳐 연구하고 싸우면서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의 구조와 원리, 대안에 대해
매우 과학적인 이론 체계를 만들어 냈지요.
과학적 사회주의, 맑스주의의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그 후 사회주의는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 갈리는데
첫째는 자본주의 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로 바꾸려는 원칙적인 사회주의이고
둘째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즉 의회(제도 정치) 진출 등을 통해
사회주의적인 정책들(사회복지 정책들)을 실현해가려는 사민주의적 입장입니다.

현재는 동구의 현존 사회주의 나라들이 10여년 전 무너짐으로써
사회주의 입장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서유럽의 사민주의 나라들조차 사회복지 정책을 많이 포기하는 상황이지요.

그런 배경엔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게 있는데
신자유주의란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현재 형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엔 반드시 세계화라는 말이 붙어다닙니다.
이 세계화라는 것은 자본주의가 자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라의 국경을 넘어 말그대로 세계를 대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계화는 알고 보면 2차 세계화입니다.
대략 1870년에서 1914년 무렵까지도 세계화 바람이 있었는데
그 역시 자본주의가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었지요.
그런데 1차 세계화는 그 위기를 극복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은
위기 자체를 세계화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게 됩니다.
그 결론은 세계적인 공황과 전쟁이었습니다.

이후 자본주의는 그 쓰라린 체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2차 대전 이후 자본의 이동을 나라 안으로 제한하는 움직임과
자본의 운동을 자유롭게 놓아두면 위험으로 접어든다는 생각 하에
국가가 자본과 기업에 개입하고 계획하는 흐름을 갖습니다.
이런걸 케인주주의, 수정자본주의라고도 하지요.

동시에 자본주의에 강력한 위협으로 나타난 사회주의 나라들과
경쟁을 하려면 단지 빨갱이 사냥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그쪽보다 낫다는 근거를 보여야만 하는 사정이 생겼지요.
그래서 사회복지 정책을 강화하고 서유렵 나라들은
급속하게 사민주의적인 색채를 띄게 됩니다.
이것은 사민주의로 가는 게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보다 낫다는
자본의 판단과 사민주의자들의 타협의 산물인 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이 되면서 자본주의는 다시 불황이 거듭되고
거대한 위기를 맞게 되면서 결국 두번째 세계화의 바람이 불게 됩니다.
동시에 새로운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의 바람(국가가 자본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이 불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맨날 국가 간섭 없이 시장의 원리에 맡기면 된다고 말하지만
위에 적었듯이 그런 주장들은 진작에 엎어졌다 다시 염치불구하고 살아나는 것이지요.
자본을 자유롭게 놔두는 방식이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아갔다는 것도
이미 100여년 전에 철저하게 증명이 되었던 것이구요.
전경련이나 그런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놈들 보면
역시 자본가란 무식하고도 뻔뻔하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장 심각하고 불건전한 부분은
그것이 미국 위주 초국적 금융자본이 전적으로 주도한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돈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 투기 장사꾼들이 세계 경제를 쥐는 것입니다.

몇년 전 우리나라에도 펀드 매니저니 하는 직업이 영웅이 되고
밴처 투자붐이 줄고 했는데 이게 다 그런 일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구오조정되는 기간이
김영삼 정권 이후, 더 직접적으로는 김대중 정권 하에서입니다.

아이엠에프 위기극복의 이면은 한국 경제를 불과 몇년새에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게 바꾸어 놓는 것이었지요.

중간계급 이상은 삶은 지난 5년 새 사는 게 좀 근사해진듯 하지만
민중들의 형편은 그전보다 오히려 못하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이제 기본 체제가 정비되었으니 남은 건 본격적인 개방 정책뿐인데
그게 진행되면 농민이고 노동자 민중들이고 죽어나가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상황입니다.
나라별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나라 안에서 빈부격차가 심해지는건 당연한 귀결이지요.
9.11 사건을 두고 윤구병 선생이 "3차대전이 시작되었다. 초국적 금융독점자본과 제3세계민중들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해석하셨는데 상황을 참 명료하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뉴욕 쌍둥이 빌딩은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본부에 해당하는 곳이기도 하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목표가 되었던 것이지요.

솔직하 말하자면 현재의 상황은 무척 암울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좀 길게 놓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라는게 5년, 10년에 뭐가 확 뒤바뀌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현재 자본주의는 역사 에 유례없이 아무런 견제없이
가장 야만적인 형태로 내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머지 않아 위기를 맞게 될 겁니다.
결국 현재의 암울한 상황이 뒤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이고
사회주의적 전진은 많은 기회를 다시 얻게 될 거라고 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설사 그런 상황이 쉽게 오지 않는다고 해도
제 신념을 조정하거나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념이고 뭐고 다 떠나서 제 인간적 자존심의 차원에서라도
이런식의 야만을 못 본 체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를 용서하면서 인간에 대해 생명에 대해 문화와 지성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저 기괴한 코미디일 뿐입니다.
모른다면 모를까, 따뜻한 피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시회주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생각나는대로 중얼중얼 많은 얘길 했는데..
무슨 소린지 알듯모를듯 하시겠지요..ㅎㅎ.
그저 아 그런게 있나보다 담아 두었다가
대학 시험 마치면 좀더 찬찬히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는게 좋겠습니다.

대학에 가는 게 무조건 나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기왕 가려고 생각했다면 올 한해는 열심히 하는게 좋겠지요.

이 글 읽으면 아메일로 저에게 주소를 알려주시겠어요.
사과하는 뜻에서 제 책을 보내드리고 싶군요.
공부하다 짬짬이 읽어보는 용도로는 크게 나쁘지 않을 겁니다.

김규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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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6-03-1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읽어 본 글인데, 어디서 봤는지 잘 생각이 안 나네요. 김규항의 글은 진정 불온하게 느껴져요. 내적으로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지식인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