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펌 (2005-07-13 20:25:28, Hit : 433, Vote : 3
제목

 인간성에 호소한다 / 홍세화


서울대 2008 학년도 입학전형을 놓고 집권세력과 서울대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초동진압’을 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서울대에서는 교수협의회와 평의원회까지 나서서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그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은 집권세력의 신자유주의 기조와는 모순되지 않는 것인지, ‘대학은 산업이다’라는 발언이나 경제관료의 교육부 장관 임용, 또는 돈받고 인문학을 파는 행위엔 침묵했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똟어보는 안목을 가지고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여 그 바탕 위에서 행동하는 것을 지성이라고 할 때, 서울대의 자율과 학문의 자유는 지성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논술이 본고사다, 아니다”란 논의는 ‘3불정책을 지키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계속해온 교육부의 기회주의의 산물이다. 그런 차원을 떠나서 볼 때, 논술은 그 자체로는 옳은 방향이다. 논술이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문화적 소양을 높이고 인문정신과 비판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오늘날 중고교는 쓰기와 읽기 중심의 교육을 할 준비가 돼 있지 못하고, 학생들은 이미 내신과 수능에 완전히 압도되어 있다. 서울대가 제기한 통합교과형 논술은 학생들에게는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서울 강남의 고급 학원 중심의 사교육을 부추기게 될 것이 뻔하다. 또 특목고 열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나의 첫 질문은 어린 사회 구성원들을 잠도 못 자게 할 만큼 억압하고 심지어 자살로까지 몰아가면서 우리가 얻는 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다수 구성원들에게 경쟁에서 실패했다고 일찍부터 열패감을 안겨주는 한편으로, 서울대를 비롯한 이른바 명문대학이 사회적 책임의식과 능력을 갖춘 엘리트를 양성하는가?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대학 서열구조 아래서는 사회 공공성을 높일 능력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진 교육자본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 학교 출신들이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보여준 역사적 사실도 그렇거니와,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승리했고 그 과정에서 사교육비를 투자했기 때문에 보상심리가 작용하는데다, 사익을 추구하는 특권의식을 견제할 수 있는 힘과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논란 당사자들 또한 거의 모두 내로라하는 교육자본을 갖고 있지만, 모두 기회주의적이거나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다.

종종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서울대 등을 방어하기 위해 프랑스의 그랑제콜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랑제콜은 분야별로 분산되어 수적으로 ‘벌’(패거리)을 이루기 어렵고, 횡적으로 연결된 평준화된 국립대학들이 버티고 있어서 견제된다. 또한 권력학교와 학문학교의 구분 아래 그랑제콜에서는 학위를 주지 않고 대학에서만 학위를 받을 수 있다.

또 대학 서열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국가 경쟁력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 경쟁력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적성과 자질에 바탕을 두고 자기성숙을 모색하고 실천할 때 그 결과로 획득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논술의 방향은 옳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 서열체제를 그대로 둔 채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려는 수단이 돼선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은 논술을 요구하는 철학을 배반하는 행위다. 모든 이의 인간성에 눈물로 호소한다. 기득권 시각을 버리고 대학 서열체제 극복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이자. 무엇보다 어린 사회 구성원들을 이 무지막지한 질곡에서 구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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