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만 즐거워하고 노여워하라
권정안 / 소장, 공주대 한문교육과 교수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역시 즐겁지 않겠는가?
이 구절은 지난 호에 살펴 본 논어 첫머리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 이어지는 구절이다. 얼핏 보면 이 구절은 앞의 내용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시절 신문을 읽으면서도 行間을 읽도록 지겹게 훈련받은 능력을 이제 고전을 읽으면서 발휘해 본다면, 이 두 구절 사이에 어떤 곡절이 숨어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요즈음은 일부 신문에서 기승을 부리는 자본주의적 광고 선전과 당파적 왜곡 선동을 꿰뚫어 보아야 하는 훈련을 받고 있으니, 옛날 분들이 ‘고전을 읽을 때는 그 말을 한 聖人의 心法과 氣像을 찾아 보라.’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正邪 是非는 판연히 다르더라도, 그 표현 속에 담긴 의도와 마음가짐 그리고 인격의 경지를 통찰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공자가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한 말에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대로 내가 본받을 것이 있고,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대로 내가 반성하여 고칠 반면교사가 된다는 것처럼, 현실과 역사에 해악을 끼치는 교활한 왜곡 선동도 우리들이 진실을 통찰하는 힘을 기르는 훈련 정도라면 얼마간은 참아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에서도 정의와 불의가 모두 결국은 그 진전에 공헌한다고 하니 말이다. 행간을 읽거나 왜곡 선동을 넘어서서 진실을 통찰하는 훈련을 하고, 이를 통해 그것을 극복할 힘과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획득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자신에 대해 참으로 희열을 느낄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공자는 이 두 구절의 행간에서 ‘그 희열은 아직은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학습을 통해서 훈련하여 얻은 힘은 자유를 주고 자유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힘은 나의 자유와 희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그 힘을 필요로 하는 벗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줄 마음만 있으면. 그러므로 이 두 구절을 이어주는 것은 자신이 애써 기른 힘을 기꺼이 벗들에게 나누어주는 인간상으로 군자이다.
우리는 왜 친구를 찾아가고, 또 친구는 왜 나를 찾아오는 것일까? 그것이 물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서건, 아니면 정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서건, 그것도 아니면 그냥 친구가 그리워서건, 어느 경우에나 우리가 찾아가는 대상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을 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며, 적어도 그런 힘을 갖고 도움을 줄 사람임을 기대하고 가는 것이다.
주자는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먼 곳의 친구가 찾아오니, 가까운 곳의 친구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가까운 곳은 물론이고 먼 곳의 친구들까지 찾아오게 할 힘이 있고, 그보다 그 힘을 기꺼이 벗들에게 나누어 줄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면만의 희열을 넘어서 벗과 더불어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공자에게는 너무나 당연해 보여서 행간으로 생략해버린 이 마음을 우리는 과연 갖고 있는 것일까? 군자가 못 되는 대부분의 우리들도 스스로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자신에게 큰 손해가 안되거나 적절한 대가가 주어진다는 조건 아래서이지만. 그것은 구태여 현대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젖어있는 자본주의적 심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사람들에게 폭넓게 나타나는 ‘주고받기’라는 삶의 한 단면일 것이다.
실제로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것’은 ‘주지 않고 받거나 준 것 이상 받기, 그리고 받기 만하고 주지 않거나 받은 것보다 적게 주기’의 불의에 비하면 정의로운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스스로의 강한 힘을 오직 이 구조를 고착하고 확대하는 데 쓰는 야만이나 약한 힘을 핑계로 나름의 힘만큼 갚기를 거부하고 갚을 힘을 기름에 태만하고 힘을 얻은 뒤에도 갚지 않는 몰염치에 비하면, 적어도 이것은 간절하게 그리운 정의의 원칙임에랴.
그러나 적어도 벗이라면, 이 이해타산의 ‘주고받기’를 넘어선 그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벗을 표현하는 한자는 이 구절에서 쓰인 朋이란 글자와 友라는 글자이다. 옛 분들은 이 두 글자를 풀이하여 ‘함께 어울리는 사람을 朋이라 하고,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을 友라 한다.(同類曰朋 同志曰友)’ 하였다. 그것은 본래 朋이라는 글자가 ‘떼를 지어 다니는 새’를 표현하는 글자이고, 友라는 글자가 ‘손과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글자인 것을 근거로 풀이한 것이다.
그래서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어울리면서’ 생겨나는 우정은 벗들 사이에서 서로의 힘을 ‘받기만 하고 주지 않기’의 불의나 ‘주고받기’의 타산적 정의를 넘어서서, ‘많이 주고 적게 받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기꺼이 주기만 하고 받지 않기’에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인간애의 교류인 동시에 서로를 진정한 군자로 키워나가는 훈련과정이 아니겠는가?
물론 ‘많이 주고 적게 받기’나 ‘주기만 하고 받지 않기’가 일방적일 때는 그 상대를 불의나 몰염치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분명히 전혀 대가를 받으려는 의사 없이 주기나, 나아가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여 받은 지도 모르게 주기를 끊임없이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그들의 행위가 군자의 덕이며 고귀한 인간정신의 발로인 것은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계약적인 정의를 넘어서서 서로를 인격적으로 상승시키는 보다 높은 관계맺음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힘의 우열이 다른 현실에서 형식적으로 대등한 주고받기의 관계를 넘어서서 약자를 편들고 도움으로서 궁극적으로 진정한 정의와 평등을 지향해가기 때문이다.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程子가 ‘희열’과 ‘즐거움’을 구분하여, ‘희열이 개인적이고 내적인 것이라면, 즐거움은 밖으로 드러나 퍼져 가는 것’이라고 한 말은 바로 이런 경지를 말한 것이 아닐까? 그것은 맹자가 ‘與民同樂’이라 한 말처럼 더불어 함께 하는 즐거움의 경지이다. 그러나 과연 더불어 함께 하기는 모두 즐거운 일일까? 즐기는 일을 함께 더불어 하기는 쉽지만, 어려운 일을 더불어 함께 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진정한 벗이 누구인가를 알아볼 수 있다는 옛 격언은, 진정한 벗들의 어울림과 그 즐거움은 세상의 모든 정의가 그렇듯이 내가 부담을 지고 손해를 보는 일임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또한 우리에게 ‘그래도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 즐거운가?’를 물어오고 있는 것이다. 대답은 각자의 것이지만, 나는 이 구절에서 또 다시 공자의 조금은 심술궂어 보이는 미소를 본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
이 구절은 우선 앞의 미소 뒤에 이어진 위로와 격려. 손해를 보고 부담을 짊어지는 일을 즐겁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학습이라는 짜증나는 지루한 과정을 이겨내고 얻은 힘으로, 다시 나를 위해 쓰라는 유혹을 이겨내고 남을 위해서 이 힘을 기꺼이 쓰고자 했으니, 그것은 보답은 그만두고라도 적어도 共感과 共鳴은 받을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공감과 공명이 없을 때의 외로움과 좌절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공자의 말은 이에 대한 위로이자 격려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덕을 가진 군자가 공감과 공명을 얻지 못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외로움과 좌절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정자의 제자인 尹焞이란 학자는 ‘배움의 성취는 나의 문제이고, 알아주느냐 알아주지 않느냐는 다른 사람의 문제이다.’ 라고 점잖게 말했지만, 공감과 공명의 많음이 즐거움이라면 메아리 없는 공허함은 우리를 노엽게 하는 것이다.
많은 옛 가르침들은 분노의 위험을 지적하여 인내를 가르치고, 강준만은 ‘우리는 왜 분노를 잃어버렸을까?’를 한탄한다. 맹자는 ‘한 번 노여워해서 천하를 안정시킨 文王의 분노’를 정의로운 분노라 하고, 변영로는 왜장을 끼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행동을 ‘거룩한 분노’라고 노래한다. 노여워할 만한 일에 노여워하라던 공자는 이 구절에서는 슬그머니 노여워하지 않아야 군자가 아니냐고 딴지를 건다.
알아주지 않을 뿐이겠는가? 작은 보답으로 이미 충분히 갚았다고 큰소리치고, 도움을 받고서도 시치미를 떼고, 받았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고 부담스러워 받지 않았다고 억지 부리는 것은 얄밉지만 그래도 참아줄 수 있다. 스스로는 주기는커녕 받기만 하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 진정한 정의이고 도덕성이니, 갚을 필요가 없다.’고 강변하면서, 자신에게는 꿈속에서조차 한번도 적용해본 일이 없는 최고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어 재단하는 것도 환장할 일이지만 참아주자.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거꾸로 세상을 망치는 일이라 헐뜯고, 결과 드러나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일에는 본래 딴 속셈이 있다고 모함하는 지경에 이르면, 어찌 노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타산적이지만 현실적인 정의가 못내 그리운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맹자는 ‘다른 사람의 善을 인정하고 도와주는 善’을 모든 선 가운데 으뜸으로 보고, 그 모델을 舜 임금이라 하였다. 바로 그런 순 임금이 ‘다른 사람의 선을 왜곡하여 딴 속셈이 있는 것이라고 헐뜯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는 그 선을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그 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라.’ 여겨, 모든 악 중에 가장 큰 악으로 규정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도 노여워하지 말아야 하나? 답답한 공자는 여전히 노여워말라고 한다. 아니 진정한 군자가 되라고 한다.
정확하게 열 아홉 해 전, 나는 교양한문을 내게 한 학기 배운 학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가정이 어려워 공장에 다니면서 동생들을 다 가르치고, 군대에 다녀온 뒤에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 온 그 학생은, 그 편지에서 ‘자신이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도 자신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였다. 말만 선생이지 부모님 덕에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온 나는 답장을 쓸 자격도 할 말도 없었다.
그래도 선생으로 인정하고 편지를 보내온 것을 생각하여,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겨우 답장을 보냈다. 그 요지는 ‘학생이 그런 뜻을 가진 것은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더라도, 그것을 희생과 헌신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바로 그 곁에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니 그런 삶을 누군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라고 여기지 말고, 스스로의 당연한 삶의 모습이라고 여겨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내 생각도 아니고, 더욱이 나의 삶의 모습도 아니었다. 이 답장은 퇴계 선생의 다음 말씀을 컨닝한 것이다.
“깊은 산 무성한 숲 속에 난초 한 송이가 피었다. 그 난초 하루 종일 향기를 풍기면서도, 스스로는 자신이 향기를 풍기는 줄도 모른다. (深山茂林之中 有一蘭草焉 終日薰香 不自 知其爲香也)”
자신이 향기를 풍기는 줄도 모르는데, 남이 그 향기를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음이야 더 말할 것이 있는가? 퇴계 선생은 이것을 ‘군자가 자신을 위한 학문(君子爲己之學)’의 가장 적절한 비유로 보았다. 공자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런 군자의 삶이니,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역시 군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삶을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이고 또 어디에 그런 삶의 모습이 있는가? 그러나 조용히 돌아 보라. 우리 하나 하나가 바로 그런 꽃보다 아름다운 삶들의 열매이며 증거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제 공자에게 넌지시 던져보자. 진정으로 사람과 세상을 살리고 키우는 사랑으로만 즐거워하고 노여워하라. 역시 미소를 짓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