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족의 화목을 생각한다

      권정안 / 소장․공주대 한문교육과 교수


가족해체 시대의 ‘가화만사성’

지난 두 회에 걸쳐 점잖은 논어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조금은 통속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본래 고전적인 근거는 없는 구절이지만, 한문을 잘 모르고 또 좋아하지도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말 가운데 ‘家和萬事成’이라는 구절이 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이 말은 구체적으로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훈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老子가 이미 지적했지만, 不仁 不義의 시대에서 仁義의 주장이 나오는 것이고 不孝 不忠의 현실에서 忠孝의 당위가 강조되는 것이듯이, ‘가화만사성’이 이렇게 많은 가정에서 가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시대 많은 가정의 실패와 불화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IMF 이후 수많은 실업과 이에 따른 가족해체를 경험한 우리 사회에서 이 구절은 더욱 절실한 의미를 갖게 된 것 같다.

물론 가족해체는 단순히 IMF의 영향에서 온 것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특징짓는 큰 조류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대가족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 되었고, 노부모를 배제한 부부와 자식만의 소가족이 정착되는가 했더니, 어느새 자식을 두지 않는 부부만의 가족과 아예 부부라는 가족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증가해 가는 현실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혼자 살 수 있을 만큼 능력을 가진 성인들이라면 누군들 자식이나 부모와 같은 가족들을 위한 의무가 짐스럽지 않겠으며, 나의 행복을 위해 투자할 시간과 인생을 거기에 낭비하는 것이 아깝지 않겠는가?

‘자식이 원수’라는 옛 말이나 ‘결혼은 무덤이라’는 요즈음 말속에 담긴 가족제도 아래 삶의 끔찍한 굴레에 비하면, ‘고독한 황야의 이리’ 같은 삶은 표현만으로도 얼마나 자유롭고 멋진 것인가? 소가족제도 아래서 자식을 왕자와 공주처럼 기르기 위해 못할 짓이 없다고 헌신하던 얼마 전의 부모들도, 이제 와서는 자식을 키우느라 흘려보낸 젊은 시절이 너무나 아까워서 땅을 치고 후회하며, 이제라도 내 인생을 찾아 즐겨야겠다고 앞 다투어 나서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가족을 다시 말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뿐만이 아니다. 어느 학자의 지적대로 가족제도와 가족주의는 ‘국가의 음모’인지도 모른다. IMF 라는 국가적인 실패에서 그 덤터기를 뒤집어써서 실업의 고통을 겪고 가족이 해체되는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서 국가와 그 당시 지도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가족에게 그 책임을 떠넘겼으니, 이런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는가?

의무가 있으면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민주적인 국가사회의 정의이다. 그런데 납세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걷어가고 국방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국가의 권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더니,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행복한 삶을 살 권리를 보장하는 의무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발을 빼서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가족제도와 가족주의가 국가적 음모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더 심각한 도전도 있다. 이제까지의 가족공동체를 지탱해 온 혈연적 동질성이라는 기제 자체가 무너져 가는 추세가 그것이다. 먼 나라의 이야기로 농담처럼 말해지던 ‘네 아이 내 아이 우리 아이로 이루어진 가족’이 현실적으로 늘어가고,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입양이 권장되는 상황에서 혈연적 동질성에 기반한 전통적인 가족관은 변화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찍이 대동사회의 건설을 주장한 강유위는 이 혈연적 동질성에 기반한 가족이야말로 대동사회 건설의 가장 큰 장애로 보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가족의 해체와 1년 단위의 계약결혼제와 아이들의 국가양육제 등을 주장하였지만, 오늘날 과학의 발전으로 눈앞에 닥친 인간 배아와 복제인간의 가능성을 알았더라면 가족해체에 그렇게 열을 올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개인주의적인 삶의 풍미와 국가적 음모라는 질타와 혈연적 동질성의 이완 속에서 흔들리는 가족과 그 제도는 과연 어떻게 바뀌어 갈 것이고,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인가? 나아가 이처럼 가족이라는 전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가족의 화목이란 또 얼마나 공허한 ‘흘러간 옛 노래’인가? 그럼에도 나는 다시 가족과 가족의 화목을 생각해보고 싶다. 그것은 우선 가족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삶의 공동체 가운데 하나이고, 그 구성원의 화목은 행복한 삶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등’을 전제로 한 ‘화합’

즉 ‘家和萬事成’이라는 구절 속에는 가족의 행복한 삶에 대한 바람과 그 조건으로서 화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의식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역으로 가족 간의 불화가 불행한 가족생활의 중요한 원인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화는 바람직한 모습이라면 불화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의미하니, ‘和諧’ ‘和合’ ‘調和’ ‘協和’ ‘溫和’ ‘和睦’ ‘共和’ ‘和平’ 등의 개념들이 대체로 긍정적인 가치를 담고 있음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許愼의 說文解字에 의하면 ‘화’라는 글자의 본래 의미는 ‘相應’ 즉 서로간의 호응으로서, 주로 음악에서의 하모니 즉 ‘和音’이라는 의미로 쓰이던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선 조화롭지 못한 불협화음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배제하는 것이니, 음악의 하모니처럼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 관계가 갈등과 대립과 불화를 청산하고 조화와 화목을 성취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화는 불화와만 대립적인 모습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는 가장 가까워 보이는 모습과 대립되는 것이니, 그 대표적인 것이 같음을 표현하는 ‘同’이다. 물론 다름 즉 ‘異’와 대립의 짝이 되는 같음의 동은 언제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의미의 화와 대립되는 부정적인 의미의 동의 관계를 처음으로 지적한 것은 공자이다. 그는 논어에서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라 하여, 이 화와 동을 군자와 소인이 보여주는 관계맺음의 대립적인 특성으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뛰어난 음악 애호가 작곡가 연주가였던 공자의 체험 속에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여러 악기와 그 연주자가 하모니를 무시한  채 제각기 소리를 내는 것이 불협화음의 소음이듯이, 모든 연주자가 같은 악기로 같은 음만을 내는 것도 역시 소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사이비의 화와 동을 ‘附和雷同’이라 하는 것이니, 여기에서 진정한 화란 ‘각자의 개성과 주체성이 살아있으면서 함께 어울려 하모니를 이루는 관계맺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가족의 화목도 역시 가족 개개인의 개성과 주체성이 존중되면서 서로 어울리는 속에서 바른 모습을 가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구체적인 가족생활에서 이런 화목의 모습은 역시 그 구성원 사이에 있어 권리와 기회 그리고 책임과 의무가 공평할 때 더욱 공고해질 수 있는 것이다. 실로 가족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 ‘화목’과 ‘화합’은 반드시 ‘공정’과 ‘평등’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서로의 애정과 신뢰를 키워 가는 진정한 의미의 화목과 화합이 되는 것이다.

지난 시절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나 고속도로마다 서있던 ‘총화단결’의 표지판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고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메아리 없는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불화를 일으키고 단결을 깨는 ‘불공정’과 ‘불평등’을 방치하고 심화시키면서, 바로 그 불공정과 불평등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불공정과 불평등을 조장하고 확대하는 사람들과 화합하고 단결하자는 말은 공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공자가 왜 정치에 있어서 풍요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가난한 것이 걱정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이 걱정이다(不患貧而患不均)’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실로 ‘平和’란 한자어의 구조를 보면 ‘내적인 갈등과 불화, 그리고 외적인 전쟁 상태의 부재’라는 ‘和’의 앞에 공평과 균형을 의미하는 ‘平’을 먼저 말한 것을 보면, 왜 ‘平天下’가 인류 사회의 이상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족은 혈연적 동질성에 기반한 애정과 신뢰가 일반사회보다는 훨씬 강력한 관계이기 때문에, 기회와 권리 책임과 의무의 불공정과 불평등이 있더라도 이해와 인내로 갈등과 불화를 상당히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 사이라 하더라도 불공정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지속된다면, 그들 사이에 애정과 신뢰가 줄어들고 결국은 가족관계 자체에 위기가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의 화목’은 언제나 ‘집안을 가지런히 한다’는 의미의 ‘齊家’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修身齊家’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大學에 나오는 이 유명한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오히려 매우 드문 것 같다. 그래서 ‘제가’를 전통적인 가부장제 아래서 일사불란한 가부장적 통제를 의미하는 것쯤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齊의 본래 의미는 ‘平等’과 ‘均衡’이다. 그러니 ‘제가’의 의미는 역시 가족 내에서 기회와 권리 책임과 의무가 공평하고 균형 있게 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그 책임은 주로 가장에게 있었고, 그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의 권리가 지나치게 주어졌기 때문에, 가부장적 제도의 여러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제가를 해야한다는 것 자체에 있지 않고, 제가의 내용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의 비민주성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민주적인 가정을 이 시대적 가치로 확신한다면, ‘제가’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의사결정을 가족 전체의 의견을 공평하게 반영하고 균형 있게 실천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혈연적 동질성과 생활공동체로 함께 살아온 경험 속에서 형성된 애정과 신뢰, 그리고 그 구성원 사이에 기회와 권리 책임과 의무의 공정성과 균형성을 의미하는 齊家의 조건 속에서, 한 가족은 진정한 의미의 가족의 화목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가족은 그들 사이의 불화와 갈등을 해결하는 데 힘을 낭비하지 않고, 도리어 그 화목에서 형성된 강력한 힘으로 그 가족이 성취하고자 하는 소망을 이룰 수도 있고, 그 가족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것이다.

 

周易에

‘두 사람이 한 마음이면 그 예리함은 쇠도 자를 수 있으니, 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두 사람만으로도 그러한데 하물며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합심하는 것이겠는가? 어떤 목적인들 이루지 못하겠으며, 어떤 문제인들 해결하지 못하겠는가? 만에 하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해도, 그 한 마음 되어봄과 화목 속에서 그 가족의 삶은 이미 충분하게 향기롭고 행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여전히 나는 ‘家和萬事成’을 되뇌어본다.

나의 가족과 우리 연구소의 회원님들 모두의 가족과 특히 IMF 이후 더 힘들어진 모든 분들의 가족이 화목으로 소망을 성취하고 아픔을 이기기를 마음속으로나마 기원해본다. 그래서 그 힘이 우리 사회의 힘으로 모아지고, 민족의 힘으로 모아지고, 인류의 힘으로 모아지기를 기대해본다. 가족의 대동단결만세. 양심의 대동단결만세. 민족의 대동단결만세. 인류의 대동단결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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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1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한문 학습자를 위한 보충

‘和’는 본문에서 설명한대로 ‘서로 호응한다’는 의미의 ‘相應’을 의미하고, 이것은 주로 음악에서 하모니를 의미하는 것이다. 구조적으로는 노래가 나오는 기관인 입을 표현한 形部의 ‘口’와 이 글자의 발음을 표현한 聲部의 ‘禾’가 결합한 形聲字로 이해한다. 다만 많은 형성자가 동시에 會意를 겸하는 예와 같이, 이 글자도 會意字로 이해할 수 있고, 이 경우에 의미가 더욱 다양해진다.
‘벼화’로 읽는 ‘禾’는 본래 지금의 쌀[米]을 생산하는 벼를 표현하던 글자가 아니라, 벼가 있기 이전에 초기 곡식인 ‘기장[粱]’을 표현하던 글자였다. 곡식의 줄기와 뿌리 그리고 이삭을 그린 이 글자는 뒤에 모든 알곡을 총체적으로 대표하는 의미로 쓰여, 곡식을 표현하는 글자들의 部首가 되었다. 본래 지금의 벼는 시기적으로 다른 곡식들보다 늦게 경작하였는데, 이를 표현하는 글자는 ‘稻’이다. 다만 후기에 와서는 벼를 의미하는 글자로 이 두 글자가 혼용되었다.
‘和’를 벼와 입의 회의로 이해할 때, 그 의미는 우선 ‘잘 맞는다.’ 또는 ‘잘 어울린다.’는 의미이니, 모든 음식 가운데 벼가 사람에 입에 가장 잘 맞는다는 의미이다. 결코 새삼스럽게 쌀 소비를 부축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쌀밥이 최고이다. 그것은 쌀의 기름짐과 부드러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甘味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감미가 있기에 쌀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으며, 더욱이 어떤 반찬과도 잘 어울린다. 그래서 또 어울림이 화이다. 음식의 단맛은 모든 맛을 내는 바탕이다. 그것은 마치 흰 바탕의 종이가 어떤 색깔이건 잘 받아들여 드러내주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옛 분들이 ‘단맛의 바탕 위에서 어떤 맛이건 내는 요리를 할 수가 있고, 흰색의 바탕 위에서 채색이 가능하다(甘受和 白受采)’ 한 것이니, 여기에서 和는 다시 요리하고 간맞춘다는 의미가 생긴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것이지만, 이것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平和가 있는 것이 아닐까? 옛말에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君 以民爲天 民 以食爲天)’ 하여, 먹거리를 ‘하늘의 하늘(天之天)’이라 하였으니,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평화 그 자체가 아니었겠는가?
‘齊’는 본래 곡식의 이삭들이 가지런하게 피어나는 것을 표현한 글자이다. 본문의 제가는 바로 이 가지런한 평등과 균형의 의미를 쓰고 있는 것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나도 가을의 황금벌판을 바라보면, 공연히 가슴이 뿌듯하고 여유가 생긴다. 그러니 직접 농사를 지은 분들이야 잘 자라준 자식들을 보는 것만큼 흐뭇하지 않겠는가? 애써 지은 작물을 갈아엎는 아픔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내 어머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에 의하면, 농사짓는 사람이 가장 기쁠 때는 추수철이 아니라 이삭이 피어날 때라고 하셨다. 무더운 여름 햇살이 조금씩 걷혀가면서 온 벌판의 벼줄기마다 다함께 이삭을 피워 올릴 때를 ‘대동맞이 철’이라 한다고 하셨다. ‘가지런할 齊’자는 바로 그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었을까? 이 글자를 만든 사람의 희열과 감동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사랑으로만 즐거워하고 노여워하라

                             권정안 / 소장, 공주대 한문교육과 교수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역시 즐겁지 않겠는가?


이 구절은 지난 호에 살펴 본 논어 첫머리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 이어지는 구절이다. 얼핏 보면 이 구절은 앞의 내용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시절 신문을 읽으면서도 行間을 읽도록 지겹게 훈련받은 능력을 이제 고전을 읽으면서 발휘해 본다면, 이 두 구절 사이에 어떤 곡절이 숨어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요즈음은 일부 신문에서 기승을 부리는 자본주의적 광고 선전과 당파적 왜곡 선동을 꿰뚫어 보아야 하는 훈련을 받고 있으니, 옛날 분들이 ‘고전을 읽을 때는 그 말을 한 聖人의 心法과 氣像을 찾아 보라.’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正邪 是非는 판연히 다르더라도, 그 표현 속에 담긴 의도와 마음가짐 그리고 인격의 경지를 통찰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공자가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한 말에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대로 내가 본받을 것이 있고,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대로 내가 반성하여 고칠 반면교사가 된다는 것처럼, 현실과 역사에 해악을 끼치는 교활한 왜곡 선동도 우리들이 진실을 통찰하는 힘을 기르는 훈련 정도라면 얼마간은 참아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에서도 정의와 불의가 모두 결국은 그 진전에 공헌한다고 하니 말이다.  행간을 읽거나 왜곡 선동을 넘어서서 진실을 통찰하는 훈련을 하고, 이를 통해 그것을 극복할 힘과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획득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자신에 대해 참으로 희열을 느낄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공자는 이 두 구절의 행간에서 ‘그 희열은 아직은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학습을 통해서 훈련하여 얻은 힘은 자유를 주고 자유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힘은 나의 자유와 희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그 힘을 필요로 하는 벗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줄 마음만 있으면. 그러므로 이 두 구절을 이어주는 것은 자신이 애써 기른 힘을 기꺼이 벗들에게 나누어주는 인간상으로 군자이다.

우리는 왜 친구를 찾아가고, 또 친구는 왜 나를 찾아오는 것일까? 그것이 물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서건, 아니면 정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서건, 그것도 아니면 그냥 친구가 그리워서건, 어느 경우에나 우리가 찾아가는 대상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을 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며, 적어도 그런 힘을 갖고 도움을 줄 사람임을 기대하고 가는 것이다.

주자는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먼 곳의 친구가 찾아오니, 가까운 곳의 친구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가까운 곳은 물론이고 먼 곳의 친구들까지 찾아오게 할 힘이 있고, 그보다 그 힘을 기꺼이 벗들에게 나누어 줄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면만의 희열을 넘어서 벗과 더불어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공자에게는 너무나 당연해 보여서 행간으로 생략해버린 이 마음을 우리는 과연 갖고 있는 것일까? 군자가 못 되는 대부분의 우리들도 스스로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자신에게 큰 손해가 안되거나 적절한 대가가 주어진다는 조건 아래서이지만. 그것은 구태여 현대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젖어있는 자본주의적 심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사람들에게 폭넓게 나타나는 ‘주고받기’라는 삶의 한 단면일 것이다. 

실제로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것’은 ‘주지 않고 받거나 준 것 이상 받기, 그리고 받기 만하고 주지 않거나 받은 것보다 적게 주기’의 불의에 비하면 정의로운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스스로의 강한 힘을 오직 이 구조를 고착하고 확대하는 데 쓰는 야만이나 약한 힘을 핑계로 나름의 힘만큼 갚기를 거부하고 갚을 힘을 기름에 태만하고 힘을 얻은 뒤에도 갚지 않는 몰염치에 비하면, 적어도 이것은 간절하게 그리운 정의의 원칙임에랴.

그러나 적어도 벗이라면, 이 이해타산의 ‘주고받기’를 넘어선 그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벗을 표현하는 한자는 이 구절에서 쓰인 朋이란 글자와 友라는 글자이다. 옛 분들은 이 두 글자를 풀이하여 ‘함께 어울리는 사람을 朋이라 하고,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을 友라 한다.(同類曰朋 同志曰友)’ 하였다. 그것은 본래 朋이라는 글자가 ‘떼를 지어 다니는 새’를 표현하는 글자이고, 友라는 글자가 ‘손과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글자인 것을 근거로 풀이한 것이다.

그래서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어울리면서’ 생겨나는 우정은 벗들 사이에서 서로의 힘을  ‘받기만 하고 주지 않기’의 불의나 ‘주고받기’의 타산적 정의를 넘어서서, ‘많이 주고 적게 받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기꺼이 주기만 하고 받지 않기’에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인간애의 교류인 동시에 서로를 진정한 군자로 키워나가는 훈련과정이 아니겠는가?

물론 ‘많이 주고 적게 받기’나 ‘주기만 하고 받지 않기’가 일방적일 때는 그 상대를 불의나 몰염치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분명히 전혀 대가를 받으려는 의사 없이 주기나, 나아가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여 받은 지도 모르게 주기를 끊임없이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그들의 행위가 군자의 덕이며 고귀한 인간정신의 발로인 것은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계약적인 정의를 넘어서서 서로를 인격적으로 상승시키는 보다 높은 관계맺음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힘의 우열이 다른 현실에서 형식적으로 대등한 주고받기의 관계를 넘어서서 약자를 편들고 도움으로서 궁극적으로 진정한 정의와 평등을 지향해가기 때문이다.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程子가 ‘희열’과 ‘즐거움’을 구분하여, ‘희열이 개인적이고 내적인 것이라면, 즐거움은 밖으로 드러나 퍼져 가는 것’이라고 한 말은 바로 이런 경지를 말한 것이 아닐까? 그것은 맹자가 ‘與民同樂’이라 한 말처럼 더불어 함께 하는 즐거움의 경지이다. 그러나 과연 더불어 함께 하기는 모두 즐거운 일일까? 즐기는 일을 함께 더불어 하기는 쉽지만, 어려운 일을 더불어 함께 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진정한 벗이 누구인가를 알아볼 수 있다는 옛 격언은, 진정한 벗들의 어울림과 그 즐거움은 세상의 모든 정의가 그렇듯이 내가 부담을 지고 손해를 보는 일임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또한 우리에게 ‘그래도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 즐거운가?’를 물어오고 있는 것이다. 대답은 각자의 것이지만, 나는 이 구절에서 또 다시 공자의 조금은 심술궂어 보이는 미소를 본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


이 구절은 우선 앞의 미소 뒤에 이어진 위로와 격려. 손해를 보고 부담을 짊어지는 일을 즐겁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학습이라는 짜증나는 지루한 과정을 이겨내고 얻은 힘으로, 다시 나를 위해 쓰라는 유혹을 이겨내고 남을 위해서 이 힘을 기꺼이 쓰고자 했으니, 그것은 보답은 그만두고라도 적어도 共感과 共鳴은 받을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공감과 공명이 없을 때의 외로움과 좌절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공자의 말은 이에 대한 위로이자 격려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덕을 가진 군자가 공감과 공명을 얻지 못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외로움과 좌절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정자의 제자인 尹焞이란 학자는 ‘배움의 성취는 나의 문제이고, 알아주느냐 알아주지 않느냐는 다른 사람의 문제이다.’ 라고 점잖게 말했지만, 공감과 공명의 많음이 즐거움이라면 메아리 없는 공허함은 우리를 노엽게 하는 것이다.

많은 옛 가르침들은 분노의 위험을 지적하여 인내를 가르치고, 강준만은 ‘우리는 왜 분노를 잃어버렸을까?’를 한탄한다. 맹자는 ‘한 번 노여워해서 천하를 안정시킨 文王의 분노’를 정의로운 분노라 하고, 변영로는 왜장을 끼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행동을 ‘거룩한 분노’라고 노래한다. 노여워할 만한 일에 노여워하라던 공자는 이 구절에서는 슬그머니 노여워하지 않아야 군자가 아니냐고 딴지를 건다.

알아주지 않을 뿐이겠는가? 작은 보답으로 이미 충분히 갚았다고 큰소리치고, 도움을 받고서도 시치미를 떼고, 받았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고 부담스러워 받지 않았다고 억지 부리는 것은 얄밉지만 그래도 참아줄 수 있다. 스스로는 주기는커녕 받기만 하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 진정한 정의이고 도덕성이니, 갚을 필요가 없다.’고 강변하면서, 자신에게는 꿈속에서조차 한번도 적용해본 일이 없는 최고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어 재단하는 것도 환장할 일이지만 참아주자.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거꾸로 세상을 망치는 일이라 헐뜯고, 결과 드러나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일에는 본래 딴 속셈이 있다고 모함하는 지경에 이르면, 어찌 노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타산적이지만 현실적인 정의가 못내 그리운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맹자는 ‘다른 사람의 善을 인정하고 도와주는 善’을 모든 선 가운데 으뜸으로 보고, 그 모델을 舜 임금이라 하였다. 바로 그런 순 임금이 ‘다른 사람의 선을 왜곡하여 딴 속셈이 있는 것이라고 헐뜯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는 그 선을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그 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라.’ 여겨, 모든 악 중에 가장 큰 악으로 규정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도 노여워하지 말아야 하나? 답답한 공자는 여전히 노여워말라고 한다. 아니 진정한 군자가 되라고 한다.

정확하게 열 아홉 해 전, 나는 교양한문을 내게 한 학기 배운 학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가정이 어려워 공장에 다니면서 동생들을 다 가르치고, 군대에 다녀온 뒤에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 온 그 학생은, 그 편지에서 ‘자신이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도 자신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였다. 말만 선생이지 부모님 덕에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온 나는 답장을 쓸 자격도 할 말도 없었다.

그래도 선생으로 인정하고 편지를 보내온 것을 생각하여,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겨우 답장을 보냈다. 그 요지는 ‘학생이 그런 뜻을 가진 것은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더라도, 그것을 희생과 헌신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바로 그 곁에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니 그런 삶을 누군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라고 여기지 말고, 스스로의 당연한 삶의 모습이라고 여겨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내 생각도 아니고, 더욱이 나의 삶의 모습도 아니었다. 이 답장은 퇴계 선생의 다음 말씀을 컨닝한 것이다.

“깊은 산 무성한 숲 속에 난초 한 송이가 피었다. 그 난초 하루 종일 향기를 풍기면서도,  스스로는 자신이 향기를 풍기는 줄도 모른다. (深山茂林之中 有一蘭草焉 終日薰香 不自     知其爲香也)”

자신이 향기를 풍기는 줄도 모르는데, 남이 그 향기를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음이야 더 말할 것이 있는가? 퇴계 선생은 이것을 ‘군자가 자신을 위한 학문(君子爲己之學)’의 가장 적절한 비유로 보았다. 공자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런 군자의 삶이니,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역시 군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삶을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이고 또 어디에 그런 삶의 모습이 있는가? 그러나 조용히 돌아 보라. 우리 하나 하나가 바로 그런 꽃보다 아름다운 삶들의 열매이며 증거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제 공자에게 넌지시 던져보자. 진정으로 사람과 세상을 살리고 키우는 사랑으로만 즐거워하고 노여워하라. 역시 미소를 짓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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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10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문 학습자를 위한 보충

‘來’ 자는 본래 보리를 그린 글자이다. 다만 그 보리는 한 가지에서 두 개의 이삭이 난 보리로 하늘이 周 나라에 내린 축복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하늘에서 ‘온’ 것이어서 ‘올 래’ 자가 된 것이다. 그 뒤에 대체로 이 글자는 공간적으로는 ‘위에서 아래로와 저기서 여기로’를 표현하고, 시간적으로는 ‘지금에서 앞으로’를 표현하는 글자이다.

다음은 논어에 대해서 은사님께 들은 이야기.
논어는 배움에서 시작하여 천명을 아는 것으로 끝난다.(논어 마지막 장은 ‘천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이다.) 배움이란 자신을 성장시키는 길이라면, 천명을 안다는 것은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고 실천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배움에서 역사적 사명의 자각과 실천까지는 모두 군자라는 인격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결국 논어는 군자에서 시작하고 군자로 끝나는 것이다.

君子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모습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지위를 가진 사람(有位), 식견을 가진 사람(有識), 도덕성을 갖춘 사람(有德)이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지도자, 지식인, 지성인 정도일 것이다. 공자 이전 그 개념은 지도자가 중심이었지만, 공자에 와서 그 중심은 도덕성을 갖춘 지성인으로 옮아왔다. 그것은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 반드시 지도자가 되지 못한 당대의 현실의 비극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 영역이 인간의 능동적인 선택에 가장 크게 열려있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논어에서 군자는 때로 지도자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계급적 개념보다 자신의 인격적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이다. 대칭 개념으로 쓰이는 小人도 마찬가지이다.
 

고전 새롭게 읽기


      ‘배움이 기쁘다’는 거짓말, 아니면 참말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論語 學而篇 1장)

공자가 말하기를, “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역시 기쁘지 않겠는가?” 하였다.


 孔子나 論語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대부분 이 구절에 대해서는 한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고, 그 의미도 대충 알고 있는 글이다. 그러나 신라 향가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양주동 선생이 말한 대로, 이 구절은 ‘그처럼 유명한 책의 첫머리의 그처럼 유명한 사람의 말로는 오히려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무미건조하게 들린다.

 이 글이 무미건조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배우고 익히는 것, 즉 간단하게 말해서 학습은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겉으로는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을 도덕적 설교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이런 무미건조한 도덕적인 설교에 진저리를 낸다.

 우리가 일상의 대화 속에서 누군가가 ‘입바른 말’을 하면 얼마간의 냉소적인 의도를 담아 ‘공자님 말씀하고 있네’ 하듯이, 공자의 말은 우리에게 당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현대인처럼 당위를 거의 실천하지 못하여 속으로 주눅들어온 사람들에게 그런 당위적은 말씀은 짜증나는 것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찔리는 것이다. 

 이런 심정에서야 누군들 ‘공자님 말씀에’ 대해 야유를 하고 싶지 않겠는가? 더욱이 그런 말씀을 묵묵히 실천하는 사회적 ‘범생이’에 대해서는 야유를 넘어서 증오심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전국의 수백만의 아이들에게 이런 당위적인 내용을, 그것도 천편일률적으로 강요해온 교육이 서태지로부터 ‘됐어, 됐어’ 하는 야유를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학습이 기쁘다니, 모든 시대에 모든 학습자들에게 물어 보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에 있는가? 언어는 인류가 찾아낸 위대한 자기표현의 방식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공감을 얻기를 추구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이 유명한 논어 첫머리에 위대한 성인이라는 공자의 말은 아무도 머리를 끄덕여 공감하지 않는 독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공자는 ‘배우기를 좋아했다’ 하고, 그 제자 가운데서는 顔回라는 제자가 배우기를 좋아하여 공자의 칭찬과 총애를 독점했다고 하지만, 삼천 명이라고 전해지는 공자의 제자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그것도 ‘즐거운 것’이 아니라 ‘좋아한 것’ 뿐이니, 이 말은 애초부터 공감 따위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이 말이 그렇게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회자된 것은 누군가는 이 말에 나름의 공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보다 더 도덕적이고 거기에다가 이론적이기까지 해서, 요즈음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롱을 당하는 朱子가 이 말에 공감하여 해석한 내용을 따라가 보자.

 우선 이 말의 첫 글자로 우리가 배움이라고 해석하는 ‘學’자를 주자는 ‘效’, 즉 본받기 또는 흉내내기로 풀이하였다. 배움은 무엇인가를 흉내내는 모방일까? 인간의 자존심과 주체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모방이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고, 본받기는 그 말 자체가 더욱 속이 뒤집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흉내내기를 하는 것은 이 흉내내기의 배움이 스스로를 성장시켜주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배움이 흉내내기나 본받기에 그친다는 의미는 아니고, 거기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中庸에 의하면, 배움은 적어도 다섯 단계를 거쳐야 참다운 배움이 된다. 그것은 흉내내기(學) - 질문하기(問) - 생각하기(思) - 판단하기(辨) - 실천하기(行)이다. 흉내내기는 널리 본받아 흉내내야 하기에 博學이 중요하고, 질문하기는 치밀하게 물음을 내야 하기에 審問이 중요하고, 생각하기는 독단과 맹신을 피해 신중해야 하기에 愼思가 중요하고, 판단하기는 실천의 근거로 사실과 가치에 대한 명백한 결론을 내려야 하기에 明辨이 중요하고, 실천하기는 굳센 의지를 수반하여 지속적이어야 하기에 篤行이 중요하니, 이 다섯 가지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제대로 배운 것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學問이라고 말하는 용어는 바로 이 가운데 처음의 두 가지, 즉 박학과 심문에서 학과 문을 따다가 그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 쓴 것이다.

 다만 널리 흉내내기의 박학은 ‘널리’라는 영역적인 다양성을 중시한 것이지만, 그것이 팔방미인 식으로 이것 저것 대충 대충 배우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한 가지를 흉내내서 배움에는 그것이 완전히 내 것으로 체득될 때까지 반복적인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익히기를 의미하는 ‘習’이다. 그래서 이 글의 첫 구절은 ‘무엇인가 자기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학습의 내용을 우선 흉내내보고 그것을 때때로 반복하여 훈련하면’이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 ‘習’이라는 글자는 본래 새의 날개를 의미하는 깃우[羽] 자와 하루하루를 의미하는 날일[日] 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옛날 이 글자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어린 새끼 새가 어미 새가 나르는 모습을 보고 흉내를 내서[學] 매일 연습[習]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연습을 통해서 익힘’의 의미를 표현하는 글자로 만든 것이다. 결국 ‘학습’이란 흉내내기와 그 반복적인 연습의 결합을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주자의 해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습은 기쁜가?’를 물으면, 아무래도 그 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흉내내기는 자존심이 상하고 반복적인 연습은 지루한데, 누가 그것을 좋아할까? 혹시 성적의 결과가 좋아서 그 뒤의 공부가 즐거울 수도 있고, 배우는 내용이 적성에 맞아서 수업 시간이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 자체가 즐겁고 기쁜 것은 매우 드문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공자는 태연히 강조법을 써서 ‘역시 기쁘지 않겠는가?’ 하고 시치미를 뗀다. 이것을 이해하는 비밀은 역시 그 드러난 말밖에 있다.

 새끼 새의 이야기를 더 해 보자. 새끼 새가 어미 새가 나는 모습을 흉내내어 어느날 드디어 어미 새처럼은 아니라도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우선 그것은 본능의 힘일까, 아니면 학습의 결과일까를 생각해보자. 그 답은 아마 본능의 가능성이 학습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설명일 것이다. (본능을 가진 새끼 새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날지 못하고, 나는 본능이 없는 인간은 연습해도 날지 못한다. 그래서 오랜 세월 그 비상을 선망해 온 인간은 새를 흉내낸 비행기를 만들었다.) 사족이지만,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해석 과정에서 숨겨져 있는 중요한 것은 새끼 새가 난 능력 즉 힘을 학습을 통해 얻었다는 것이다. 이 힘은 새끼 새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그에게 닫혀 있던 세계인 창공이 그의 세계로 열렸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그가 자유롭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공자의 ‘학습이 즐겁다’는 두 구절 사이에 숨어있는 비밀은 바로 이 힘과 그것이 주는 자유가 그 학습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즐거운 것은 학습과정 자체가 아니라, 이 학습을 통해서 체득한 힘과 그 힘이 주는 자유가 즐겁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언젠가는 그 속상하고 지루한 학습의 과정조차도 역시 즐거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공자의 말을 다시 읽어보자. 우선 그것을 짜증나는 당위의 설교로 받아들이지 말자. 그것은 공자가 공자 이전의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 그 만큼의 자유를 얻었던 역사적인 체험들을 확인했고, 이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그 자신도 역시 학습을 통해서 힘을 획득했으며, 그 힘만큼 그가 자유로웠던 희열의 체험을 표현한 것이다.

 아마 그 마음속에 이 말에 대한 공감과 공명을 기대하면서 속삭인 것이다. 우리 함께 진정한 희열을 느껴보지 않겠니? 우리 함께 진정한 자유를 누려보지 않겠니? 그리고 이 체험을 공감하고 공유한 사람들은 짜증내지도 않고 야유하지도 않으며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다.

 이미 눈치를 챈 분도 계시겠지만, 이 짧은 한 구절을 누군가가 소설로 썼다. ‘갈매기의 꿈’이라는. 다만 한 가지 다른 것은 갈매기 리빙스턴은 그 공감을 널리 찾는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너무 좁게 제한했지만(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공자는 우리가 보통 느끼듯이 당위로 강권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이 희열과 자유를 누리기를 믿고 기다려준다는 것이다.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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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10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문 학습자를 위한 보충

‘亦’ 자는 원래 가운데 부분은 사람을 그린 것이고, 양쪽의 점은 겨드랑이 부위를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겨드랑이이다. 그런데 겨드랑이는 한 쪽에 있고 ‘또’ 한 쪽에 있어서, ‘또’라는 의미가 생긴 것이다. 이것을 본래의 의미에서 부연한 의미라는 뜻의 引伸義라고 한다. 그것은 ‘又’ 자도 같다. 이 글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글자이다. 본래 손을 그린 ‘手’ 자는 다섯 손가락을 모두 그린 것인데, 이를 줄여서 세 가락만 그린 것이 又이다. 이는 손 수 자의 부수의 약자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손도 역시 왼 손과 오른 손 둘이 있어 ‘또’ 하나가 있기 때문에 ‘또 우’ 자가 된 것이다.

다만 이 구절에서 일반적으로 이해하듯이 亦을 ‘또한’이라고 해석하면, 그 문장의 의미에서 약간 어긋난다. 그것은 또한 보다는 ‘역시’로 하는 것이 옳다. 물론 ‘또한’과 ‘역시’는 같은 의미를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역시’를 한자로는 ‘亦是’로 쓰는데, 이 경우 ‘亦’ 자에는 ‘是’의 의미 즉 ‘당연하다’ 또는 ‘옳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역시 기쁘지 않은가?’ 하는 말은 ‘기쁜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의 강조적인 표현이다.

說은 크게 ‘말할 설’, ‘기쁠 열’, ‘달랠 세’의 세 가지 음과 의미를 표현하는 글자이다. 이렇게 한 글자에 여러 의미와 발음이 생긴 것은 초기에 문자가 부족하여 한 글자에 여러 음과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많이 쓰이는 음과 의미에 대해서는 후세에 다른 글자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위의 글에서 쓰인 ‘기쁠 열’의 경우 후세에서 ‘悅’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져 쓰인다. 다만 경전을 예전 분들이 신성시했기 때문에 함부로 고치려고 하지 않아 이 글에는 여전히 說자를 쓰는 것이다. 이 때 說을 古字라하고 悅을 今字라고 한다. 주자는 이 說을 인간 내면에서 솟구치는 희열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직접 현장을 체험한 듯 생생함이 돋보이는 추리소설

이봉원 회원, 임정 국새 행방을 쫓는 역사추리소설 [국새] 출간

 

 

편집자주 : 연구소 운영위원회 이봉원 부위원장이 최근 임시정부 국새의 행방을 찾아 나서는 역사 추리소설 [국새]를 출간했다. 실제로 이 부위원장은 임시정부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 분야 전문가로 다음은 [국새]를 출판한 시대의 창에서 보내온 보도자료 내용이다. 한편 저자는 소설 앞머리에 이 책을 ''민족문제연구소 7천여 명의 회원과,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을 계속하라고 국회가 삭감한 5억 원을 단 열하루 만에 국민 성금으로 만들어 준 2만2천여 명의 전국 누리꾼에게 바친다''고 말하고 있다.

 

국새 1∙2(전2권)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 역사의 귀중한 자료가 든 열개의 문헌 상자들이, 1953년 여름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분실돼,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가 오리무중 속에 분실 경위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런데, 2005년 2월 하순, 그때 문헌들과 함께 분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새가 중국 베이징(北京) 류리창 골동상가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한 언론에 보도되면서, 관련 학계와 언론사, 국민들은 경악과 충격에 휘말린다.

 

인터넷신문 시민기자인 정내리는 중국 땅에서 문제의 국새를 찾았다는 방송작가 이매송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한 여행사가 긴급히 마련한 ‘임시정부 27년 유적지 답사’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여행사 사장과 조선족 현지 가이드를 합쳐 총 11명으로 짜진 1차 답사단은, 3월 15일부터 한 달 예정으로 중국 내 여행을 시작한다.

 


“잃어버린 국새를 찾아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긴 문서들은 지금 거의 사라져 버렸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임시정부의 이야기들은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지사들의 증언과 일부 기록에 의존할 뿐이다. 모두 13개로 나뉘어져 국내에 들어온 임시정부의 자료들은 당시의 휴대물품 중량제한을 받고 있어 추리고 추린 상태였다. 그 알짜 자료들은 하지만 지금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그 물품들은 이리저리 나뉘었고, 결국 그것마저 난리통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포악했던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나라를 잃지 않았던 것은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킨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친일파들에 의해 상처받고 죽임을 당하면서 아직도 고된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세상. 온전히 우리 것을 지키지 못하는 세상. 그 중심에는 약하고 힘들었던 우리의 지난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그 고단했던 식민지 시절. 남의 나라에서 힘들게 지탱해왔던 임시정부의 유산들은 소중하다. 그런데 그것을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떻게든 막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 급기야 그들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국민들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었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기위해 국회에 제출했던 5억 원의 예산이 삭감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볼 국민들이 아니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계속하라고 2만 2천여 명의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았다. 단 열흘 만에 그 돈이 만들어졌다.

 

역사는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사실은 증언만큼이나 증거를 중요시한다. 우리의 고단했던 나라 지키기의 증거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리고 그것을 증언해 줄 사람들도 이제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저자는 사라진 증거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특히 1994년 시작된 임시정부의 흔적 찾기 외유는 98년과 99년 두 차례 더 중국으로 가게 만들었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아직도 곳곳에 숨 쉬고 있는 임시정부의 흔적들을 찾았다. 최초로 당시 임정에서 사용하던 국새의 실제 날인을 찾아 낸 것은 그중 돋보이는 상과였다. 하지만 개발의 바람에 밀려 임시정부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있었다. 이젠 저자의 사진 속에 담긴 것이 유일한 증거가 된 것들도 상당수다.

 

지금 극장가엔 국새를 다룬 영화 한편이 화제다. 하지만 이것은 논픽션이다. 소설 『국새』가 다루고 있는 사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소설에 쓰인 등장인물은 허구지만, 소설이 찾아가는 노정은 고스란히 현실이다. 임시정부의 수많은 지사들이 그 옛날 걸어갔던 그 길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역사가 꿈틀거리고 있다. 그 살아있는 역사를 온전히 전하기 위해선 잃어버린 자료를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의 나라도장이었던 국새가 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찾으려 했던 것은 분단된 조국이나 친일파 천국이 아니다. 친일파가 청산된 조국을 찾으려 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독립운동으로 나라를 찾아 친일파한테 진상한 꼴이 되어 버렸다. 거기다가 나라도 분단되어 버렸다. 남북통일과 친일파 청산이 소중한 것이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해방이고, 통일이 이루어져야 올바른 독립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봉원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고, 육군 중위로 전역한 뒤, 극단 얄라성 대표, 기독교방송 프로듀서, 국립영화제작소 감독, 극영화 감독,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 같은 일들을 하다가, 현재는 기록영화를 제작하는 얄라성 프로덕션의 대표로 있다. 그 밖에 시민단체 활동으로는, 대학생 때 국어운동학생회를 창립해서 한말글사랑 운동, 한말글이름짓기 운동을 시작해,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고, 또한 근래엔 민족문제연구소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도 적극 참여해서, 이 나라에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친일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연극 연출 - 세익스피어 원작 ‘당신 좋으실 대로’ 외 다수 / 극영화 연출 -‘엘리베이터 올라타기’ 외 2편 / TV극본 - ‘청춘극장’(22부작), ‘김구’(16부작) 외 다수 / 방송다큐 제작- ‘세계로 한글로’, ‘임시정부 27년 대륙 3만리’(3부작) 외 다수 / 일반 저서 - ‘내 사랑 뀌린’(장편소설), ‘우암산 아이들’(장편동화), ‘연극연출’(편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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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 머리통 자화상’ 수수께끼 풀렸다 [한겨레]

 

그림 밑바탕에 색칠도 드러나 “미완성 인물상 아니다” 몸체 그린 방식은 아직 못밝혀

우리 회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18세기초 선비 화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국보 240호·해남 윤씨 종가 소장)은 그림을 둘러싼 숱한 수수께끼로도 이름높다. 자기 내면을 투시하는 듯한 형형한 눈매,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 안면의 핍진한 묘사가 압권인 이 절세의 초상화는 목과 상체는 물론 귀도 없이 머리통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뛰어난 사대부 지식인이던 공재가 당대 유교적 미의식을 정면으로 벗어나면서까지 엽기적 자화상을 그린 까닭은 무엇일가. 왜 이 걸작은 미완성 그림처럼 남았을까.

한국 미술사학계의 첨예한 논란거리였던 공재의 ‘머리통 자화상’에 얽힌 비밀이 최근 상당부분 풀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지금도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온전한 그림이었다. 자화상은 윤곽선만 그린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채색까지 되어 있었다.



단지 이런 부분들이 후대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사실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지난해 용산 박물관 개관 특별전을 위해 윤씨 종가에서 빌려온 액자 형태의 <윤두서 자화상>을 처음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밝혀냈다. 연구팀은 박물관이 최근 펴낸 <미술자료>74호에 ‘윤두서 자화상의 표현기법 및 안료 분석’이란 글을 싣고 상세한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우선 적외선 투시 분석 결과 눈으로 보기 힘든 상체의 옷깃과 도포의 옷 주름 선의 표현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져온 양쪽 귀또한 왜소하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져 학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공재의 자화상에 원래 상체가 그려졌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작고한 미술사가 오주석이 지난 96년 조선총독부 자료인 <조선사료집진속>(1937년 간행)에서 상체 윤곽이 보이는 당시 공재의 자화상 도판을 발굴해 공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오주석은 “원래 윤두서 자화상은 밑그림 그릴 때 쓰는 유탄(버드나무 숯)으로 화면 위에 상체를 그렸다가 미처 먹선으로 다시 그리지 않은 채 미완성 상태로 전해졌다”고 추정했다. “후대 표구하는 과정에서 표면을 문질러 유탄 자국을 지워버리는 실수를 한 것”이라는 견해였다. 원래 자화상에 있던 공재의 상체 그림이 후대 표구과정에서 실수로 사라져버렸다는 그의 주장은 이후 통설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이번 조사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사라진 몸체를 그린 방식을 놓고 벌어졌던 학계의 논란또한 다시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림 화면 앞 표면에 몸체를 그렸다는 오주석의 주장에 대해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옛 자화상 사진에 보이는 옷주름은 뒷면에 윤곽선을 그린 이른바 배선법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양보없는 논쟁을 벌여왔다. “<조선사료집진속>에 실린 자화상의 사진은 그림 뒤에서 조명을 비추어 찍었기 때문에 뒷면 옷주름선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라는게 이 교수의 견해다.

그렇다면 박물관 분석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일단 두 주장 가운데 한쪽에 당장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워보인다. 박물관쪽은 현존 <자화상>의 화면 앞쪽을 현미경으로 정밀 관찰한 결과 화폭 앞 표면에 어깨 부분 옷깃, 옷주름 등을 그린 듯한 부분적인 선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외선 사진에서 확인된 것처럼 몸체의 형상을 이루는 일관된 선의 흔적은 확인하지 못했다. 통상 적외선 조사는 안료 등으로 가려진 먹선, 즉 채색화의 밑그림이나 먹글씨를 확인하는데 주로 쓰인다. 선이 연속되도록 최소한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먹의 탄소 입자가 적외선을 흡수해 먹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자화상 전면에 보이는 일부 선의 흔적보다 적외선 촬영 사진에서 나타난 몸체의 윤곽선이 더욱 뚜렷한 만큼 앞 표면의 윤곽선이 적외선 사진의 윤곽선으로 찍혔다고 보기에는 미진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놓고 보면 그림 뒷면에서 선을 그려 비쳐보이게 하는 얼개로 몸체를 나타냈다는 이태호 교수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단정은 어렵다. 이 그림이 액자로 표구되면서 배접(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그림 뒷면에 다른 종이를 포개 덧대는 것)된 탓에 현재 뒷면을 드러내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몸체의 선들이 앞면에 그려진 유탄 혹은 먹선의 흔적인지, 그림 뒷면에 그린 윤곽선인지는 그림 뒷면을 제대로 조사한 뒤에야 규명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결론지었다.

하지만 연백과 진사 안료를 써서 그린 양쪽 귀의 윤곽이 현미경 관찰로 얼굴 가장 자리에서 발견되어 공재 윤두서가 귀를 그렸다는 사실은 분명히 입증됐다. X선 촬영을 통한 안료 분석 결과 선으로만 그렸다고 여겼던 자화상의 안면과 몸체, 탕건과 귀부분 등도 화면의 뒷면에 은은하게 채색하는 배채법으로 색칠되어 있었다는 점도 처음으로 밝혀졌다. 논란의 대상인 몸체의 도포는 전체가 흰색으로 은은하게 배채가 되어있었다. 뒷면에 칠한 색감을 투명하게 비치도록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종이는 젖은 상태의 종이를 여러장 겹쳐 두드려 한장의 종이로 만드는 이른바 도침(搗砧)가공이 이뤄진 종이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결국 미완성처럼 보였던 공재 윤두서의 초상은 사실상 완성품으로 봐도 손색 없는 치밀하고 정교한 인물상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조사에 참여했던 미술부 이수미 학예연구관은 “지워진 줄 알았던 자화상의 상체 부분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점과 배채 채색 사실을 확인한 점이 큰 성과”라며 “액자로 표구하면서 배접지가 붙어 배채법을 쓴 몸체의 색감이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체를 앞 화면에 그렸는지 화면 뒤에 그렸는지의 논란은 앞으로 그림을 다시 표구하기 전까지는 풀리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분석결과로는 뒤에서 그렸을 가능성에 근접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초본으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매우 높아 미완성작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윤두서 자화상>은 그의 후손들이 60년대 말려져 있던 것을 펼쳐서 액자에 표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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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남에서 보았던 그 자화상이 떠오릅니다. 대단하군요.. 가져갈게요^^

바람돌이 2006-08-09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갈게요. ^^

해콩 2006-08-0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 어서들, 많이들 퍼가3

水巖 2006-08-09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서재에 들렸다가 처음 방문하는군요, 그림 좋아하는 사람이라 초면에 처음 들려서 퍼 갑니다. 감사합니다.

해콩 2006-08-0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수암님... 얼마든지 퍼가세요~ 그런데 국립박물관에 가면 이 그림 원본을 볼 수 있나요?

水巖 2006-08-0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로는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것은 개관특별전때인 2005년에 전시하고 원 보관자인 해남 윤씨 종가로 갔다고 보는데요. 이 기사도 조금은 과장된듯 싶군요.
현미경으로 관찰로 귀를 발견했다고 하였는데 1985년판 '한국의 미' 20권에 나온 자화상에는 흐릿하게나마 귀 부분이 보이던데요.

2006-08-10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경을넘어 2006-08-10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 긁어오려했는데 이미 하셨군요 ^^* 가져가겠습니당.

가넷 2006-08-1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께요..^^;

BRINY 2006-08-10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1정 연수에는 미술사가 오주석과 친분 있는 강사들이 대거 강의를 맡으셨는데, 어제도 바로 저 그림 보면서 유탄으로 그려진 부분이 표구할 때 잘못해서 다 지워졌다라는 설명으로 들었었는데...

해콩 2006-08-10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구나, 그랬구나.. 재미있었겠당... 브리니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연수는 이제 막바지죠? 더운데 우리 모두 수고가 많아요, 그쵸? 맘에 드는 강의는 있으셨나요? 저는.. 있어요. 지금 그 선생님이 내주 과제 열심히 하는 중!! ^^ 건강 조심조심 나머지 연수 잘 마치세요~

BRINY 2006-08-11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직 빼고는 다 맘에 드는 편이여요. 귀동냥한 참고도서 또 보관함에 넣고 있어요. 해콩님도 주말 잘 보내시고, 마지막까지 즐겁게 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