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크리스마스> 중에서-

여행의 맛은 바로 출발의 순간에 있었다.

: 여행, 떠남에 대한 생각이 가득해서일까, 그냥 그냥 읽던 소설책에서 이 말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한 장면이 반짝 떠오르며 생기가 돈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던 때, 그 때가.

결국 난 그에게 말하고 말았다. 난 만나는 건 안 좋아한다고. 우리는 누구와도 만나지 못한다고. 만남의 장소에 이르렀을 땐 언제나 아무도 없다고. (...) 내가 원하는 건 함께 떠나는 것이다. 함께 택시를 잡는 것이다.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안고 플랫폼 위를 한껏 달려가며, 멀리서 번호만 보고도 우리가 탈 기차를 알아보는 게 좋다. 객실의 작은 오렌지색 램프도 좋다.

: 그러게... 내가 원하는 것도.

 

 

 

 

 

사실 이 책의 주요 정서는 이게 아닌데.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를 마치 전투하듯 통과해야 하는 (이혼한) 엄마와 어린 아들의 복잡, 고독, 냉소, 음울, 몽환적 심리상태가 주요 내용인데. 처음 이 책을 읽어야 했을 땐(독서모임에서 정해진 책이라 어쩔 수 없이) 100쪽을 채 못 읽고 갔다. 난 이런 정서가 너무 싫다고. 이런 주인공의 모습이 싫다고 얘기하고 그만 읽었더랬다. 그런데 빌린 책을 돌려주는 데 시간이 걸리는 김에, 다른 읽을 것도 없는 김에, 정확히는 내 마음이 복잡, 고독, 냉소, 음울한 김에 읽게 됐다. 그리 싫지 않더라. 뭐 그리 삶이 복잡하고 머릿속은 얽히고 설켰냐 하고 비웃었던 주인공의 속내에 살짝 공감이 가더라는... 핫하. 살다보니 가끔 이렇게 복잡한 프랑스 소설과도 만나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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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엘자 앙리케즈에게           
 

                                  자크 프레베르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리세요
그 다음
무언가 예쁜 것을
무언가 단순한 것을
무언가 쓸 만한 것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그리고 나서 그 그림을 나무에 걸어 놓으세요
정원에 있는
또는 산 속에 있는
어느 나무 뒤에 숨겨 놓으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꼼짝도 하지 말고.....
때로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마음을 먹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하죠
용기를 잃지 마세요
기다리세요
그래야 한다면 몇 년이라도 기다려야 해요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건
그림이 잘 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답니다.
새가 날아올 때엔
혹 새가 날아온다면
가장 깊은 침묵을 지켜야 해요
새가 새장 안에 들어가기를 기다리세요
그리고 새가 들어갔을 때
붓으로 살며시 그 문을 닫으세요
그 다음
모든 창살을 하나씩 지우세요
새의 깃털 한끝도 다치지 않게 말이죠
그리고 나서 가장 아름다운 나뭇가지를 골라
나무의 모습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푸른 잎새와 싱그러운 바람과
햇빛이 반짝이는 금빛 부스러기까지도 그리세요
그리고 여름날 뜨거운 풀숲 벌레들의 소리를
그리세요
이제 새가 마음 먹고 노래하기를 기다리세요
혹 새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쁜 징조예요
그 그림이 잘못되었다는 징조예요
하지만 새가 노래한다면 그건 좋은 징조이지요
당신이 사인을 할 수 있다는 징조예요
그러면 당신은 살며시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으세요
그리고 그림 한구석에 당신의 이름을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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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치료학회 까페에 올려진 시다. 이 시를 가지고 마임극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어내려가는데 끝까지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시 한 편에서 그런 재미를 느끼다니. 어쩜 세상에 이런 시가 다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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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가 있다고 동생한테 말했더니, '어, 그거 그 책에 나오잖아!!!'하며 더듬더듬 기억해낸 책이 황경신의 <그림같은 세상>! 음 예전에 이 책을 읽은 듯한데 이 시는 어제 처음 본 듯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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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신 - 또 다른 인생 이야기
양귀자 지음 / 살림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여름에 서재(라고 하기엔 작다^^;) 정리를 하며 안 읽은 책들을 기증하고 나눠줬다. 그중에 살아남은 책이 '부엌신'이다. 이 책을 어떤 경로로 갖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모르겠고.. 암튼 아주 오랫동안 자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음식점을 하게 된 정말 우연한 사연, '빈집과 고양이'를 읽었는데, 어, 이 책 재밌네 싶었다. 하여 출퇴근길 밀고밀리는 만원 전철 안에서 한동안 좋은 동무가 되었다. 내가 제일 처음 밑줄을 그은 말은 "그 옛날 내 어머니가 차려주던 식탁의 풍미를 재현하는 일이라면 용기를 내서 진정으로 해보고 싶다." 였다. 용기를 내서 진정으로 해보고 싶은 일! 어떤 일을 하며 그런 마음을 내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간절히.

크고 위대한 무엇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주 특별한 무엇, 그런 것을 나는 원했다.

컨설턴트보다 내가 더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 나는 그래서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음식점 오픈 준비에 1대, 2대, 3대 주방장에 안착하기까지, 개업날 펑펑 울어버린 일, 불명예스러운 일로 1기를 마감하고, 리모델링을 하며 한여름을 보낸 일 등을 쭉~ 따라가며 크고 작은 에피스도들이 참 흥미로웠다. 아주 특별한 무엇이 있는 까페를 좋아하고 나중에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고픈 마음이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의 메뉴판을 보고 손님들이 제공한 아이디어가 또한 예술이다. 주로 남자손님들의 요청이지만, 아련하고 상큼한 '형수정식', 할머니의 정성이 어머니보다 나으므로 제일 윗 메뉴에 '할머니 정식'을, 깊은 맛은 없으나 상은 화려한 쪽으로 해서 그 이름을 '마누라 정식'  

6호실 작은방에 앉아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노라면 돈이야 남건 말건, 뭔가 대단히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어느 날은 홀로 이마를 짚으며 씩 웃기도 했다. 돈계산은 너무나 머리가 아파, 하고 생각했는데 그걸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여름내 건물 리모델링을 하고 2차 개업 전 그릇을 찾아 헤맨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처음 개업을 할 때도 영업용 그릇이 아닌, '마음을 담아 내놓았다는 느낌이 절로 나는' 그릇을 찾아 온 시장을 다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발품을 팔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연한 갈색 생활도기 세트를 발견해 잘 쓰게 됐다는데... 4년여 사이 그 생활도기가 전국의 한식집에 상당수 보급되어, 2차 개업을 앞두고 새로운 그릇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천에서 도예가를 수소문해 묻고 또 물어가며 청자 그릇 세트를 만들어냈는데... 개업 날 하루에만 주방에서 내려보낸 흠집 난 그릇이 수북했다고. 결국 열흘만에 청자를 포기하고 다시 제작한 세번째 그릇, 백자에 철 안료를 조화시켜 비로소 원하는 그릇을 얻을 수 있었다고.

이쯤 되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게 간판이며, 메뉴판, 세트 도구들도 모두 자신의 마음에 꼭 맞는 것을 찾아내는 노력과 정성, 열정이 대단하다. 원래 이런 거야, 니 맘에 꼭 맞는 거 그런 건 세상에 없어, 적당히 타협하는 거야 라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나 스스로 말하지는 않았나 그런 반성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만의 개성을 가진, 나만의 무언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나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에서 2001년쯤 밥을 먹었었다. 대학 졸업하고 처음 입사한 직장에서 '신입사원 환영회'를 그곳에서 했다. 가게 분위기며 그릇들, 수건, 또 나오는 음식에 감탄감탄하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세상에 이렇게 멋진 음식점이 있다며, 첫월급 타서 동생 데려가 점심밥을 사주기도 했던 곳. 아주 행복했던 한 시절이 묻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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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걷기모임에서 하는 한강따라걷기 5차 구간을 함께 했다.

2007년 8월 25일~26일 /단양에서 충주를 거쳐 원주까지.

충주에서는 물길이 댐으로 연결돼어 충주호 유람선을 탔다. 오전 6시부터 12시까지 줄기차게 걷고 점심 한 상 맛있게 먹고 낮잠까지 달콤하게 자고 유람선을 타니 그야말로 몸이 확 열렸다. 오전 내 같이 걸으며 친해진 사람들과 함께 해서 더 즐거웠던 한 순간!

하늘색 옷을 입은 분이 <내 나이가 어때서?>의 저자 황안나 님. 9월 3일부터는 스페인으로 떠나셨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러!! 정말 내 나이가 어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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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섬 2007-09-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한강따라~~>그 책 읽었거든요.
여럿이 함께 하는 시간..정말 즐거웠겠어요.^^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몇 주 전에 'TV 책을 말하다'에 이 책이 나왔다. 저자가 고생고생하며 가는 그 모습이 독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유쾌했노라는 말에 잔뜩! 기대를 하며 읽었는데.... 기대보다는 유쾌하지 않았다.  캠핑 장비들을 다 넣은 무거운 짐수레를 끌고 자전거 여행을 따라가자니 심히 무거웠다. 숙소로 들어가면 거기서 딱 외부와 분리가 되지만, 밖에 텐트를 치면 자연 속에 그 환경 속에 하나가 되어 지낼 수 있어 좋았다는 점에 공감한다.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너무 힘든 여행이다.

그렇게 힘든 여행인 만큼 몸에 대한 철학이 많다. 그 중에 공감가는 것 두 대목 꼽아본다.

나는 스리 친모이를 신봉할 만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만큼은 내 몸으로 공감한다. 운동이 신성까지 인도하지는 몰라도, 몸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퍼내는 펌프질은 맞다. 두뇌 세포의 10퍼센트도 못 쓰고 죽는 것처럼 우리가 얼마나 많은 몸의 가능성을 사장하고 사는지를 운동은, 그리고 그의 삶은 일깨워준다.

그래도 나는 페달을 밟는다. 이 일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게 현재를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많은 거리를 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퀴를 돌리면서 현재에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고 있다는 것을 더 진하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 빠져 오하이오강변에서 이틀이나 머물렀다.

->이 두 대목에서 8월말에 갔던 걷기 기행이 진하게 떠올랐다. 8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이틀을 하염없이 걷고 걷다 보니 어느덧 나는 무척 단순해졌다. 배고프면 먹고 힘들면 쉬고 밤이면 곯아 떨어지고.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움직이니 머리가 아주 명쾌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길을 두 발로 걷고 있는 내가 정말로 살아 있구나 하는 것을 진하게 경험했다.

10월에 또 한 번 가고 싶다. 우리땅걷기모임의 걷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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