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크리스마스> 중에서-
여행의 맛은 바로 출발의 순간에 있었다.
: 여행, 떠남에 대한 생각이 가득해서일까, 그냥 그냥 읽던 소설책에서 이 말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한 장면이 반짝 떠오르며 생기가 돈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던 때, 그 때가.
결국 난 그에게 말하고 말았다. 난 만나는 건 안 좋아한다고. 우리는 누구와도 만나지 못한다고. 만남의 장소에 이르렀을 땐 언제나 아무도 없다고. (...) 내가 원하는 건 함께 떠나는 것이다. 함께 택시를 잡는 것이다.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안고 플랫폼 위를 한껏 달려가며, 멀리서 번호만 보고도 우리가 탈 기차를 알아보는 게 좋다. 객실의 작은 오렌지색 램프도 좋다.
: 그러게... 내가 원하는 것도.
사실 이 책의 주요 정서는 이게 아닌데.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를 마치 전투하듯 통과해야 하는 (이혼한) 엄마와 어린 아들의 복잡, 고독, 냉소, 음울, 몽환적 심리상태가 주요 내용인데. 처음 이 책을 읽어야 했을 땐(독서모임에서 정해진 책이라 어쩔 수 없이) 100쪽을 채 못 읽고 갔다. 난 이런 정서가 너무 싫다고. 이런 주인공의 모습이 싫다고 얘기하고 그만 읽었더랬다. 그런데 빌린 책을 돌려주는 데 시간이 걸리는 김에, 다른 읽을 것도 없는 김에, 정확히는 내 마음이 복잡, 고독, 냉소, 음울한 김에 읽게 됐다. 그리 싫지 않더라. 뭐 그리 삶이 복잡하고 머릿속은 얽히고 설켰냐 하고 비웃었던 주인공의 속내에 살짝 공감이 가더라는... 핫하. 살다보니 가끔 이렇게 복잡한 프랑스 소설과도 만나게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