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이를 키우며  

 

                                          렴형미


 
처녀시절 나 홀로 공상에 잠길 때 며는
무지개 웃는 저 하늘가에서
날개 돋쳐 나에게 날아오던 아이

그 애는 얼마나 곱고 튼튼한 사내였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생긴 아이는

눈이 크고 가냘픈 총각 애

총 센 머리칼 탓인 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

물푸레아지 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

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고삐 없는 새끼염소마냥

산으로 강으로 내닫는 그 애를 두고

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를 탓 합니다

다른 집 애들처럼 붙들어놓고

무슨 재간이든 배워줘야 하지 않는가고

 

그런 때면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까맣게 탄 그 애 몸에 비누거품 일구어댑니다

뭐랍니까 그 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데

정다운 이 땅에 축구공마냥 그 애 맘껏 딩구는데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 보고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 잡고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백지같이 깨끗한 네 마음속에

또렷이 소중히 새겨 넣어라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 주었지만

그 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어야 할 피는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

네가 마음껏 딩구는 땅이

네가 한생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

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

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

그런 심장이 가진 재능은

지구 우에 조국을 들어올리기에…

-----

출처: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965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내게 주어진 운명을 따스하게 품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세상에 사랑은 없다.

세상에 편안하고 따스하고 용감한 사랑을 감지하고 싶다.

-2008년 5월 10일자 경향신문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이승수 교수의 글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랑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간격 /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의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한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에 묶어두지는 말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속에선 자랄 수 없다
     
    *마지막 구절이 참 인상적이다.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온라인 
 
                                 - 이복희

 

 
나는 오늘 너에게 사랑을 무통장으로 입금시켰다

온라인으로 전산 처리되는 나의 사랑은

몇 자리의 숫자로 너의 통장에 찍힐 것이다

오늘 날짜는 생략하기로 하자

의뢰인이 나였고 수취인이 너였다는 사실만 기억했으면 한다

통장에 사랑이 무수히 송금되면

너는 전국 어디서나 필요한 만큼 인출하여 유용할 수 있고

너의 비밀 구좌에 다만 사랑을 적립하고픈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서는 사랑하지 말자 

 

오늘도 나는 은행으로 들어간다

무통장 입금증에 네 영혼의 계좌 번호를 적어놓고

내가 가진 얼마간의 사랑을 송금시킨다.

 

-------

날씨가 갑자기 추워서만은 아닌데... 마음이 허하다. 독서치료 까페에 있는 시 소개 방을 뒤지다가 마음에 콕 들어오는 시 한 편 내 서재에 둔다. 이문세가 진행하는 아침 라디오에 최윤희 씨가 나와서 요즘 재테크들 많이 하는데 마음을 키우라며, 사랑 통장을 만들라고 이야기하던 게 생각난다. 그때 ATM기계에서 입금하면서 입금자를 '행복'이라고 찍고는 재밌어 했던 기억이 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엘자 앙리케즈에게           
 

                                  자크 프레베르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리세요
그 다음
무언가 예쁜 것을
무언가 단순한 것을
무언가 쓸 만한 것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그리고 나서 그 그림을 나무에 걸어 놓으세요
정원에 있는
또는 산 속에 있는
어느 나무 뒤에 숨겨 놓으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꼼짝도 하지 말고.....
때로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마음을 먹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하죠
용기를 잃지 마세요
기다리세요
그래야 한다면 몇 년이라도 기다려야 해요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건
그림이 잘 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답니다.
새가 날아올 때엔
혹 새가 날아온다면
가장 깊은 침묵을 지켜야 해요
새가 새장 안에 들어가기를 기다리세요
그리고 새가 들어갔을 때
붓으로 살며시 그 문을 닫으세요
그 다음
모든 창살을 하나씩 지우세요
새의 깃털 한끝도 다치지 않게 말이죠
그리고 나서 가장 아름다운 나뭇가지를 골라
나무의 모습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푸른 잎새와 싱그러운 바람과
햇빛이 반짝이는 금빛 부스러기까지도 그리세요
그리고 여름날 뜨거운 풀숲 벌레들의 소리를
그리세요
이제 새가 마음 먹고 노래하기를 기다리세요
혹 새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쁜 징조예요
그 그림이 잘못되었다는 징조예요
하지만 새가 노래한다면 그건 좋은 징조이지요
당신이 사인을 할 수 있다는 징조예요
그러면 당신은 살며시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으세요
그리고 그림 한구석에 당신의 이름을 쓰세요

 

--------

독서치료학회 까페에 올려진 시다. 이 시를 가지고 마임극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어내려가는데 끝까지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시 한 편에서 그런 재미를 느끼다니. 어쩜 세상에 이런 시가 다 있냐?^^

-------

이런 시가 있다고 동생한테 말했더니, '어, 그거 그 책에 나오잖아!!!'하며 더듬더듬 기억해낸 책이 황경신의 <그림같은 세상>! 음 예전에 이 책을 읽은 듯한데 이 시는 어제 처음 본 듯하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