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엘자 앙리케즈에게
자크 프레베르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리세요
그 다음
무언가 예쁜 것을
무언가 단순한 것을
무언가 쓸 만한 것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그리고 나서 그 그림을 나무에 걸어 놓으세요
정원에 있는
또는 산 속에 있는
어느 나무 뒤에 숨겨 놓으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꼼짝도 하지 말고.....
때로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마음을 먹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하죠
용기를 잃지 마세요
기다리세요
그래야 한다면 몇 년이라도 기다려야 해요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건
그림이 잘 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답니다.
새가 날아올 때엔
혹 새가 날아온다면
가장 깊은 침묵을 지켜야 해요
새가 새장 안에 들어가기를 기다리세요
그리고 새가 들어갔을 때
붓으로 살며시 그 문을 닫으세요
그 다음
모든 창살을 하나씩 지우세요
새의 깃털 한끝도 다치지 않게 말이죠
그리고 나서 가장 아름다운 나뭇가지를 골라
나무의 모습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푸른 잎새와 싱그러운 바람과
햇빛이 반짝이는 금빛 부스러기까지도 그리세요
그리고 여름날 뜨거운 풀숲 벌레들의 소리를
그리세요
이제 새가 마음 먹고 노래하기를 기다리세요
혹 새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쁜 징조예요
그 그림이 잘못되었다는 징조예요
하지만 새가 노래한다면 그건 좋은 징조이지요
당신이 사인을 할 수 있다는 징조예요
그러면 당신은 살며시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으세요
그리고 그림 한구석에 당신의 이름을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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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치료학회 까페에 올려진 시다. 이 시를 가지고 마임극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어내려가는데 끝까지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시 한 편에서 그런 재미를 느끼다니. 어쩜 세상에 이런 시가 다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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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가 있다고 동생한테 말했더니, '어, 그거 그 책에 나오잖아!!!'하며 더듬더듬 기억해낸 책이 황경신의 <그림같은 세상>! 음 예전에 이 책을 읽은 듯한데 이 시는 어제 처음 본 듯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