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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책 향기]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 내 집에 가둬놓은 그림자


발행일 : 2007.11.10 / Books D3 면 기고자 : 이주향 
 
 



 


가을 끝자락이 남산에 들었습니다.
꼭 자기만큼의 햇살을 거둔 나무들이 벌이는 빛깔의 축제로 내 마음도 햇살 따라 비눗물처럼 순하게 풀어집니다.
햇살 퍼지듯 퍼지는 마음의 부챗살이 천지를 품안에 안습니다.
장님이 된 로체스터에게 손 내밀었던 제인 에어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그 동안 ‘제인 에어’를 올곧은 가정교사와 사내다운 사내의 열정적 사랑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문득문득 떠올랐던 것은 마지막 부분이었지요.
장님이 되고도 위축됨이 없이 자기 사랑에 정직할 수 있는 사내가 보기 좋았고,
그 사랑의 빛을 거두어 마침내 정갈한 사랑으로 되돌려준 여자가 아름다웠습니다.

다시 ‘제인 에어’를 빼든 것은 가을 햇살 때문이었습니다.
가을햇살로 씻긴 세상이 순하고 맑아서 사랑을 하기에도 생은 너무나 짧다고,
하루하루가 아까운 날들이라고 속삭이고 있었으니까요.
이번엔 이상하게도 ‘손필드’라는 로체스터의 저택이 눈에 들어오네요.
손필드는 로체스터와 제인 에어의 사랑이 싹튼 집이지요?

집이 그 사람의 영혼이라면 로체스터의 영혼은 떠도는 영혼입니다.
로체스터는 늘 여행을 떠나 있습니다. 집을 두고 떠돌 땐 집이 싫다는 거지요?
집이 싫어서 그는 변덕스럽고 화를 잘 내며 냉소적이고 우울해진 겁니다.
그는 왜 그의 영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집을 싫어했을까요?

그 집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가 숨어살고 있었습니다.
바로 파괴적인 여인 베르다입니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분노의 불을 지르는 여인,
틈만 나면 악착스레 달려들어 무차별적으로 공격해대는데 안간힘을 써도 떼어낼 수 없는 여인입니다.
바로 부인이기 때문이지요. 로체스터는 왜 그런 여자와 결혼했을까요?
소설에서는 어쩔 수 없이 논리를 만들기 위해 사기결혼이었다고 하고 있지만, 나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르다야말로 버릴 수 없는 우리 내면의 그림자일 테니까요.

파괴적인 집착의 극단을 보여주는 베르다는 내 마음의 분노, 내 마음의 불안, 내 마음의 깊은 공허감입니다.
내가 두려워해서 꼭꼭 감춰놓기만 하는 정서들이지요. 그런데 감춰놓는다고 감춰지나요?
오히려 억압당한 그림자가 불쑥불쑥 올라와 내 성격만 변덕스러워지고 거칠어지는 겁니다.
그 그림자를 가둬놓고는 나를 사랑할 수도 없고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로체스터가 제인에게 했던 사랑의 말은 참 진솔했습니다.
“제인, 당신은 나를 신앙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창가에 앉아 매일 기도로 호소했어요.
당신의 이름을 숱하게 부르면서.” 그런 사랑이라 해도 그림자의 지배를 받으면 추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지요.

그림자는 감춰둘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이 늦가을의 햇살처럼 부드럽게 천지를 품는 사랑이 파괴적인 집착으로 동강나지 않습니다.
그래야 제인 에어가 정갈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수원대 교수·철학 이주향) 

 


그래요.. 내 집에 숨겨 둔 그림자 찾기..그게 우리들의 공부 과정이지 않을까요..

출처: 조선일보에서 퍼온 기사를 독서치료 까페에 올려둔 것을 다시 퍼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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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너무 재밌게 본 <카모메 식당> !!!
소박하면서 알차고 부드럽지만 힘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게 하는 영화 같아요^^
영화에 나온 네 명의 여자, 각각의 캐릭터가 다 인상 깊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하는 영화 감상평을 적어봅니다^^ 

*사치에




핀란드 헬싱키의 어느 골목길에 ‘카모메 식당’이라는 조그만 일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한 달째 손님이 없다. 그래도 꿋꿋이 매일 아침 컵과 접시를 깨끗이 닦고 손님을 기다리는 그녀. 가게 앞에는 ‘일본 식당’ ‘맛있는 오니기리’ ‘최고의 맛’ 이런 광고 문구 하나 없다. 여행 왔다가 일을 돕게 된 미도리 상이 관광 안내책자에 소개를 싣자고 하지만 정중히 거절한다. 가이드북을 보고 찾아오는 일본 관광객이 아니라, 이 동네 사람들이 골목길을 오가다 들르는 그런 ‘동네 식당’을 하고 싶다는 거다. 또 미도리 상이 야심차게 오니기리의 핀란드화를 꿈꾸며 순록고기, 청어 등을 사들고 와서 핀란드인 입맛에 맞는 오니기리를 만들어보는데, 시식을 한 뒤 시도는 좋지만, 이 맛은 아니라고 한다.

소신 있게 그러나 부드럽게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는 모습이 어찌나 이쁘고 사랑스럽고 용감한지요!! 

 

* 미도리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손가락을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핀란드에 여행을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우연히 사치에 집에 머물게 되고 가게 일을 돕고 싶다며 눌러 앉는다. 손님이 없는 카모메 식당이 잘 되게 하려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보는데, 사치에 상은 정중히 거절한다.

멀뚱멀뚱한 표정, 화면에 얼굴이 잡힐 때부터 그리고 그 뒤로 뭘 해도 미도리가 나오면 재밌습니다. 처음엔 뭔가 불안한 기운이... 세상 끝으로 여행을 온 듯한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너무나 평범한 얼굴에 너무나 평범한 삶인데, 가슴으로 몰두할 일을 찾는 사람 같았다. 그런 모습이 나 같아서 좋았다^^ 


* 마사코


인적 없는 공항에서 빈 컨베이어 벨트를 넋 놓고 바라보다가, 바람 부는 핀란드 항구에서 어눌한 말투로 ‘저... 제 가방이 없어졌어요’ 하는 통화를 한 뒤 카모메 식당에 등장. 부모님 병수발을 하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이상한 말이지만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행을 왔다고 한다.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안달하지 않는다, 찾을 때까지 며칠 있다 가면 될 뿐. 또 옷이 한 벌뿐이겠네요 라는 말을 듣고는, 바로 옷을 사 입고, 핀란드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부럽다는 자신의 말에 누군가 그 비결이 숲이라고 하자 바로 울창한 숲 속에 가 있는 사람이다.

마사코는 어눌하고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마음 가뿐하고 행동 민첩하기로 단연 최고다. 나는 이 여자가 너무 좋다!!! 그녀가 동네의 수상한 여자와 대면하는 장면 또한 압권이다^^ 

* 수상한 여자



카모메 식당 앞에서 사나운 눈길로 안을 째려보다가 가버리곤 하는 수상한 여자가 나타났다. 어느 날 그녀가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모두들 초긴장. 그녀는 술을 달라더니 원샷을 하고 사치에에게 잔을 내민다. 사치에도 미도리도 고개를 젓는데, 마사코가 도전을 받아들인다. 원샷 대결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수상한 여자가 푹 쓰러진다. 모두들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는데, 깨어난 그녀는 울기 시작하고, 마사코는 그런 그녀를 다독이며 위로해 준다. 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떠나 버렸고, 곧바로 키우던 강아지까지 죽었는데 그 강아지가 사치에와 닮았다는 것이다.

아, 그녀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그녀가 식당 앞에서 꼬나볼 땐 정말 무서웠다. 그런 겉모습 속에, 누구든 붙잡고 울고 싶은 상처받은 영혼이 있었구나~ 겉으로 잔뜩 날이 선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

이리하여 만나게 된 네 여자는 곧 유쾌한 친구가 되어, 한껏 멋을 낸 차림으로 휴가를 즐기기도 하고 사우나에서 누가 오래 버티나 대결도 하며 카모메 식당에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간답니다. 그리고 식당은 어떻게 됐느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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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발달장애 아들 위해 '인간극장' 출연 결심했어요"

- 영화 '말아톤' 실제 주인공 배형진씨 보며 용기 얻어


<저작권자ⓒ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포털, ‘이데일리 SPN’>
자료출처: http://photo.media.daum.net/gallery/star_family/200709/10/Edaily/v18079800.html

 


▲ 가수 이상우 가족


[이데일리 SPN 유숙기자] 가수 이상우가 발달장애 아들과의 생활을 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한다.

이상우는 10일부터 KBS 2TV ‘인간극장’에서 발달 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 승훈이, 늦둥이 둘째 도훈이와 만들어가는 네 식구의 즐거운 삶을 보여준다.

이상우는 최근 이데일리 SPN과 전화인터뷰를 통해 “내가 연예인이다 보니 당연히 (장애아를 키우는 것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 생각했고 (우리를 둘러싸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올 바에야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승훈이를 키우며 다른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마치 공기나 물처럼 가족의 고마움을 못 느끼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는 승훈이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며 “다른 장애아 부모들에게도 이 방송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고 출연 의의를 덧붙였다.

현재 14살인 승훈이는 수영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선수로 활약 중이다. 전국대회에서 비장애아들과 맞붙어 예선 2위, 본선 4위를 했을 정도다. 학교 대표로 계영 경기 스타트 멤버로 나가서는 은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 역시 ‘인간극장’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이상우는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 씨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했던 김진호 씨 덕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는 그분들보다 어려 아직 상태가 좋지는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재능을 키웠으니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인간극장’ 방송 후에) 내가 없이 길에 나가도 많이들 알아볼텐데, 그런 점이 염려는 됐지만 배형진씨와 같은 분들이 방송에 나간 후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고 장애우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을 보면서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상우는 마지막으로 “큰 아이는 스승같은 아들이고 작은 아이는 선물 같은 아들”이라며 “그만큼 승훈이는 부모를 어른으로 만든다. 키우는 과정자체가 감사한 일이고 그것이 방송으로 잘 표현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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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로암안과 김선태 목사, 막사이사이상 수상 
           평생 맹인들 섬긴 이유로...상금 전액은 아이센터 건립에 쾌척 
   
   실로암안과병원 김선태 병원장(66세)이 2007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막사이사이 재단이사회는 어제(31일) “시각장애인을 위해 그간 김 목사가 펼쳐온 사회봉사 활동 공로”를 선정 사유라고 밝혔다. 

   당시 10살이던 한국전쟁 당시 장난으로 불발탄을 만졌다가 실명을 당한 김 목사는 이후 정상인들이 공부하는 숭실중, 고,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맹인연합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장신대 신대원과 미국 맥코믹 신대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과정에서도 1989년 한빛맹학교 이사 등 줄곧 맹인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아왔다.
 
   특히 1986년부터 안과 전문 병원인 실로암안과병원 병원장을 맡아 실명 예방과 개안수술에 선구적 역할을 감당해 왔다. 지금까지 실로암안과병원을 통해 새롭게 빛을 찾은 사람들은 2만7천6백여 명에 이른다. 1년에 약 40주간은 병원이 없는 농어촌 오지에 가서 사랑의 무료안과 진료를 실시해 오고 있다. 
 
   김 목사는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도와주신 분들과 실명 예방과 개안수술을 위해 도와주신 교회들에게 주신 상”이라며 “제가 대표로 받은 것이지 결코 제 개인의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수상 상금 전액인 5만 달러를 실로암 아이센터 건축을 위해 내놓기로 했다. 김 목사는 “한경직 목사님께서 템플턴상을 수상하시면서 100만 달러를 군선교를 위해 바치셨다”며 “한 목사님의 발자취가 너무 아름다워서 저도 한 목사님처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나의 삶을 바치고 싶다”며 이 같은 뜻을 피력했다.
  
   실로암 아이센터는 지하 4층, 지상 9층 등 총 2,400평의 안과전문병원으로서 병원 공사비에만 총 12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김 목사는 “실로암 아이센터가 건립되면 환자의 육신의 치료뿐만 아니라 영적인 치료, 마음의 치료까지 받을 수 있는 전인치료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후진국에 있는 맹인들을 위한 개안수술과 실명예방에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막사이사이상은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기부받은 50만 달러로 막사이사이 재단을 설립, 해마다 공무원, 국제협조, 지역사회, 언론문화 등 5개 부문에 걸쳐 수상자를 선정해 왔다. 올해의 수상자로는 김 목사 외에도 필리핀의 독재자였던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 대항했던 조비토 살롱가 변호사(87세) 등 7명이다. 
 
   지금까지 한국인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로는 장준하(1962), 김활란(1963), 김용기(1966), 이태영(1975), 장기려(1979), 엄대섭(1980), 제정구․정일우(1986), 김임순(1989), 오웅진 신부(1996), 법륜 스님(2002), 시민운동가 윤혜란(2005), 박원순 변호사(2006) 등이다. (2007. 8. 1. 뉴스파워 김성원 기자)
 
  
                     거지에서 병원장까지…‘남자 헬렌 켈러
                막사이사이상 받는 김선태 목사의 인생 드라마   


 


    “헬렌 켈러처럼 살고 싶었죠. 앞 못 보는 이들이 어둠을 헤쳐가게 도와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었어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 올해 수상자로 7월 31일 선정된 김선태(66․실로암안과병원장) 목사의 소망이다. 8월 1일 수상 소식을 접한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상금이 5만 달러(약 4500만 원)라고 합니다. 모두 시각장애인 의료시설인 실로암 아이센터 건립에 쓸 생각입니다.”

   김 목사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평생을 바쳐왔고, 그 자신이 시각장애인이기도 하다. 이런 그에겐 각별한 별칭이 따라다닌다. ‘남자 헬렌 켈러’라는 별명이다. 절망에 절망을 헤쳐온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숨 쉬는 드라마’처럼 느껴지면서 헬렌 켈러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였다. 미처 피난을 못간 김 목사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뚝섬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폭탄이 터졌다. 함께 놀던 8명 중 7명이 즉사했다. 김 목사만 살아남았으나 눈에 파편을 맞아 시력을 잃고 말았다. 열 살 때였다. “당시의 절망감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생명이 끊어진 줄 알았죠.” 얼마 후 폭격에 맞아 부모님마저 세상을 떴다.

   “친척집을 돌다가 구박을 엄청 받았죠. 결국 친척집을 나와서 거지가 됐어요. 구걸을 하며 목숨을 이어갔죠.” 
   엄동설한에 밖에서 잠을 자다 한쪽 다리가 동상에 걸려 썩었다고 한다. 앞을 못 보니 상한 음식을 얻어 먹고 식중독에 걸려 죽을 뻔도 했다. 
   “한번은 옻나무를 가득 쌓은 남의 집 창고에서 잠을 자다가 온몸에 옻이 올랐어요.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갔죠.” 

   그때 평생의 은인이 된 한 할머니가 그를 집으로 데려가 간호를 해줬다. 크리스천이었던 할머니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고 성직자의 삶을 꿈꾸게 된다. 
   “다 낫고 나서 할머니가 그러시대요. ‘나는 돈은 없지만 일평생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대신 너는 커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다오.’ 저는 그 꿈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고아원에서 살면서도 그는 학교를 빼먹지 않았고 성적도 우수했다고 한다. “점자로 공부했죠. 반 친구들이 8시간 잘 때 저는 5시간만 잤어요.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빵과 물로 배를 채우며 공부했죠.”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난 당시 그는 박사 학위 3개를 따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뤄간다. 헬렌 켈러도 박사 학위가 3개였다. “헬렌 켈러처럼 가난하고 앞 못 보는 이들을 돕고 싶었어요. 그런데 박사 학위가 있어야 제게 현실적인 힘이 생길 것 같았죠.”

   그러나 5․16 군사혁명이 터지고 대학갈 길이 막히고 말았다. “군사 정부가 새로 손질한 문교 정책이 장벽이 되었죠. 대학에 가려면 국가고시를 봐야 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앞 못 보는 사람도 국가고시를 볼 수 있는 길이 없었죠.” 

   그는 문교부를 찾아가 매달렸다. 그러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서른 두 번이나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죠. 결심을 했죠. 훗날에도 공부하고픈 시각장애인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자고 말이죠.” 그는 무작정 문교부 장학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작대기를 들고 휘둘렀다. 

   “마침 신문기자들이 와있더군요. 앞을 못 보는 제가 그들의 눈길을 끌었죠. 결국 기자들이 장관실로 데려가더군요.” 
   문교부 장관은 그에게 국가고시를 볼 수 있는 특전을 주었고, 그는 시험을 거쳐 숭실대에 입학했다. 

   이후 장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전공했고, 미국 매코믹대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땄다. 훗날 명예 철학 박사학위와 명예 신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헬렌 켈러 이후 처음으로 세 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시각장애인이 된 것이다. 

   공부를 마친 그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회를 세우고, 점자 성경과 점자 찬송가를 소개했다. 또 앞을 못 보는 젊은이 10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1986년에는 재계의 지원을 받아 서울 등촌동에 실로암안과병원을 설립했으며 지금까지 이 병원에서 개안수술을 받은 이가 2만7000명이 넘는다. 또 실명 위기에 처한 35만 명에게 무료 안과 진료를 실시했다. 최근에는 46인승 리무진 버스에 안과 시설을 갖추고 돈이 없어 진료를 못 받는 시각장애인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김 목사에게 가슴에 담아둔 성경 구절을 물었다. 그는 ‘고린도 전서 15장10절’을 꺼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막사이사이상
1957년 비행기 사고로 죽은 필리핀 전 대통령 R.막사이사이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아시아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공공사업, 국제협조 증진, 지역사회 지도, 정부 공무원, 언론문화 등 5개 부문에 걸쳐 매년 수여한다. 한국인으로는 1962년 언론인 장준하, 63년 김활란 전 이대총장을 비롯해 오웅진 신부(96년), 법륜스님(2002년), 시민운동가 윤혜란(2005년),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박원순(2006년) 등이 받았다.

2007. 8. 2. 중앙일보 / 백성호 기자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81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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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광고 '옐레나 이신바예바' 편



내 이름은 엘레나 이신바예바,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어릴때부터 난 체조 세계 챔피언이 꿈이었어
그런데 키가 자꾸자꾸 커지는 바람에
체조를 못하게 된거야
코치가 나한테 장대높이뛰기 안해볼래 그러더라
난 대답했지, 제 정신이세요?
지금 난 세계기록만 20개야
언젠가 니가 서서 웃게 될 자리가
꼭 니가 시작한 거긴 아닐지도 몰라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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