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고 있는 페미니즘 책읽기 모임의 이번 테마는 한국 근현대 여성작가 소설읽기 이다.
김명순 <의심의 소녀>
나혜석 <경희>
강경애 <소금>
박화성 <하수도 공사>
이렇게 네 편을 읽었다. 단편이라 부담없이.
(단편소설들이 전자책으로 잘 나와있어서 찾기 편했다. 현대어로 좀 바꾼 판본들도 있지만, 번역을 하지 않으므로 판본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읽어도 된다. 책마다 배경 지식과 작품에 대한 해설이 있는 것들이 있고 없는 것들이 있고의 차이는 있다)
한국 문학에 문외한이라 네 명의 작가 중 나혜석 한 명 밖에 몰랐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심지어 국문학 전공하신 분들도) 몰랐다고 해서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가,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생각을 했다.
학창시절에 중요하다며 읽었던 작가들의 작품, 정전 work는 다 남성작가들의 작품이었다.
김명순 <의심의 소녀>는 짧지만 되게 세련된 소설이라는 느낌이었고 재밌지만, 뭔가 막 얘기하려고 하는 순간 끝나는 느낌. 작가가 몸을 사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네이버 등 온라인으로 검색하면 그냥 읽을 수 있다)
작가 소개를 좀 찾아보고 저번에 주워온 책 <다시 살아나라, 김명순> 을 좀 훑어봤다. 요즘 인신공격이 인터넷 댓글로 이뤄진다면 김명순은
성폭행 당한 일이 소설화 (김동인의 <김연실전>) 되어 인신공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도 소설을 써서 억울함을 토로하고 또 다른 문인들이 글로 공격하고...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실제 지면으로 사람을 괴롭혔구나.
그래서 굉장히 이슈가 되고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전혀 몰랐었다..
EBS 다큐프라임 여성백년사 - 그때는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1부 에 김명순의 이야기가 나온다는데, 보진 못했다.
유튜브에도 관련 자료가 꽤 있는 듯.
나혜석 <경희>는 좀 계몽적이고 주인공의 독백으로 직접적으로 서술하는지라 문학성이 그리 뛰어나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지만
당시 '여학생' 에 대한 편견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했고, 결혼에 대한 생각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 했다는 것이 놀랍다.
“여자도 사람이다.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이 소설의 내용으로 보아 나혜석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결혼 전 쓴 것이고 결국 결혼하고...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지금 시대에 데려다놔도 대단한 재능있는 사람일 듯.
이혼사유서에 대해 말들이 많던데 정말 그런 내용인지? 읽어보고 싶다.
강경애의 <소금>은 놀라운 작품이었다. 읽기 좀 힘든 이야기이기도 했는데 당시 다수였을 평민, 서민, 극빈층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것도 매우 감칠맛 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서 암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보다 인상적인 것은 강경애가 그리고 있는 '여성의 삶' 이다. 남편을 잃고 아들도 잃고 몸을 의탁하던 중국인 지주에게도 쫓겨나 헛간에서 출산하고 먹을 것이 없어 옆에 있던 파를 물어뜯어 삼키는... 그리고 젖어미로 생계를 꾸려가느라 자기 자식에게는 젖을 먹이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이게 다가 아니다)
여성의 몸으로 소금 밀수를 하는 마지막 장면은, 김정환의 시 <국경의 밤> 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시에도 소금 밀수 이야기가 나온다)
여성은 역시 언제나 부양을 하고 있었다.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는 로맨스가 잠깐 나오는 것 이외에는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한 소설이다.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서 좀더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노동쟁의를 다루고 있다는 게 좀 특이하긴 하다. 주인공도 남성이고, 그냥 무난무난하달까.. 뭔가 당시의 주류들에게 거슬릴만한 것은 피해가며 썼다는 느낌? 아니면 그냥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 명예남성이라던가.. 엘리트였던 것 같다. 박화성은 강경애에 대해 '뿌리가 없는 작가' 라고 평한 적이 있다고 한다.
네 명의 작가 중 가장 이름을 떨치고 오래도록 살아남은 작가인데, 그럴 수 있었던 것에 다른 이유도 있긴 하겠지만 논란을 일으키지 않은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해방 이후 박화성의 작품은 성격이 약간 바뀌어 사회주의적인 내용은 없어지고 (남한에 있었으므로 그럴 수 밖에 없었을 듯하다) 여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런데 작품은 초기 작품이 더 낫다는 지인의 평..
김명순과 박화성은 모두 이광수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다고 한다. 당시 이광수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부분.
인상적이었던 강경애의 장편 <인간문제>와
예전에 사 두고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은거냐...) <세 여자> 를 읽어보려고 적어둔다.
다음에는
박경리-강신재-박완서-오정희 작가의 소설을 읽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