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연장된 박완서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에 다녀왔다. 사실 박완서 작가의 팬은 아니었던지라 지금까지 가지 않은 것인데, 주변인들 중 가고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출퇴근길에서 좀 샛길로 새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위치라 갈 마음을 먹었다. 결국 시간이 안 맞아 혼자 다녀왔지만..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어진 근대화 혹은 현대화까지... 몇 년 전 백수를 다 누리고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의 삶이 참 변화무쌍했다 생각했는데, 박완서 작가는 그 생각을 '스쳐간 문화의 부피가 500년은 될 것 같다' 고 표현했다.

출판된 책, 외국어로 번역된 책, 작가가 소장하고 있던 책 등을 모아서 다 전시해두었다. 이 사진은 출판된 책을 모아둔 것을 찍은 것. 이렇게나 많았구나...

어릴 적 엄마가 읽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를 나도 읽었었다. 초등학생 때였던 듯 한데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많았을 것이고 전쟁 때의 이야기가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물어보면 엄마는 대충 얼버무리면서 잘 대답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근대화를 지향하던 대한민국의 어린이- 나 - 는 한국 소설보다는 외국 소설이 훨씬 재밌었다.
몇 년전 독서모임에서 한국 근대 여성작가 소설을 읽으면서 <엄마의 말뚝>을 읽었다. 어린시절 읽고 받았던 느낌과는 달리 꽤 날카롭고 시니컬하고 페미니즘적인 요소도 있어서 어린 시절 읽었던 책만 생각하고 안 읽었던 게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내가 그동안 어른이 되었고 엄마가 되어서 느끼는 게 많이 달라졌겠지만, 알았더라면 좀더 읽었을테고, 좋아했을지도 모르는데...
전시도 그런, 좀 아쉬운 마음으로 가게 된 것 같다. 내가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아쉬움, 뒤늦은 후회(?), 이제라도 좀 알고자 하는 마음. 작가는 가셨지만 책은 남아있으니까.

어릴 때는 생활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흥미롭지 않다고 느꼈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섯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한 주부가 이렇게 많은 책을 써냈다는 사실도 존경스럽다.

작가님이 꾸준히 써온 일기의 일부를 이렇게 전시해두었다. 명필은 아니라서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

1970년 <나목>을 출간했는데, 처음에는 방바닥에 엎드려 썼었고 그 다음 밥상에서 쓰다가 1985년이 되어서야, 첫 책이 나오고 비로소 15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책상을 갖게 되었고, 1998년 드디어 '자기만의 방' 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서재에 있던 책과 책상 등을 옮겨 전시해두었는데, 이 책상은 1985년에 처음 샀던 그 책상이라고. 멀쩡해보이지만 책상은 가장자리의 칠이 벗겨져있었고, 특히 서랍 부분은 서로 잘 맞지 않았는데도 계속 사용하신 모양이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거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갔는데,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서 좋았고, 또 안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모르면서도 아쉬웠을 것 같다.
전시를 다녀왔으니 이제 책을 읽으면 되겠다.
여성주의 소설이라고 소개되어 있던 세 권을 담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