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워서 진지한 생각을 하기 힘든 며칠을 보냈다.
아이와 서울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더워서 그랬는지 위장이 움직이지 않아 고생을 좀 했고
그래도 또 기어나가서 <엘리멘탈>도 보고 어제는 운동도 좀 하고..
책은, 만화책만 봤다.
그래도 7월에는 책을 꽤 읽었으니
6월의 여성주의책같이읽기 책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를 마무리했고 (거의 6월에 읽었다고 봐야겠지만..)
전자책으로 계속 듣던 <마거릿 생어의 여성과 새로운 인류>도 마무리했다. 연설문 같은 구어체 글이라 (실제로 연설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듣기는 좋았는데 너무 엄숙해서... 가끔 졸렸다. 가난하고 건강이 안 좋은데 임신해서 어쩔 수 없이 낙태해야 하는 경우나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이미 낳은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서 더 이상의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 임신 조절이 도움이 된다는 마거릿 생어의 견해와 피임약 개발로 이어진 임신 조절 캠페인은 생명의 존엄을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반감을 줄 것 같지만, 매우 현실적이다. (어디서부터가 존엄을 갖춘 생명인지는 여기서 따지지 않기로 하자)
내가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아이들을 많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낳아서 좀 키워봤을 때 내가 (이미 낳은) 한 명 이상의 아이를 잘 돌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서이기도 했는데, 사람에게는 주어진 조건 그리고 추구하는 생활이라는 게 있다. 마거릿 생어가 이야기한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조건 외에도. 나는 마거릿 생어가 살던 당시 여성들보다 교육을 좀더 받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생활 외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른 것을 하고 싶었던 거다. 또 예민하고 화를 잘 내고 엄청나게 크게 우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 무척 힘겹기도 했다.
물론 임신 조절 캠페인의 일환인 경구 피임약 보급이나 피임 수술 등이 앵글로 색슨 계열 백인 이외의 여성들의 출산율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우생학에 동조' 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 안에서 마거릿 생어가 펼친 논리에 인종간의 우위 같은 것은 없었다. 후원하면서 그걸 악용하려는 사람들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8월의 여성주의책같이읽기책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를 책모임에서 읽었다. 모임원 중 한 명의 배우자가 표지를 보고 화를 냈다고 하는 걸 보니 저 제목, 그러니까 원래 시위에서 사용하던 문구가 강력하기는 한 모양이다. 관심없는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를 줄 알았는데...
<캘리번과 마녀>에 비해서 쉽게 쓰여진 대중서이지만 근거나 뒷받침하는 내용이 적어 '마녀사냥과 자본주의의 태동' 사이의 관계를 처음 접하거나 의심을 하는 독자는 이 책의 내용을 수용하기 좀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그 근거를 여러 장에 걸쳐 제시하는 것이 <캘리번과 마녀>이니 이 책을 먼저 읽고 <캘리번과 마녀>를 읽는 것도 괜찮을 듯. 책의 마지막에 실려있는 역자후기에서는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되어 증언을 했었던 윤지오를 관심병자로 몰아간 여론에 대해 (일종의 마녀사냥으로 보는 것 같다) 짧게 언급하고 있는데, 그 일 관련해서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는 인상만 갖고 있었던 지라 이 출판사에서 낸 <증언 혐오>를 읽어보려고 한다.
<증언 혐오> 와 <까판의 문법> 두 책이 모두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증언 혐오>를 읽어보려고 도서관에서 빌려두었다. 윤지오가 쓴 <13번째 증언>이란 책도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읽기가 (어렵지는 않겠지만) 더 힘들 것 같아서.
그리고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었다.
읽었지만... '그래 그렇구나' 하고 내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는데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의식적으로 전화기를 좀 멀리하려는 생각을 가끔 하긴 한다.
하지만 집 밖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 - 그러니까 뭔가 다른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 - 이 전화기를 멀리하기에는 가장 좋았다. 그러니까 다른 더 매력적이고 즐거운 일 그리고 충분한 신체활동을 한다면 스마트폰은 덜 보게 되지 않을까?
7월의 여성주의책같이읽기 책 <성의 변증법> 에 나오는 대로 사이버네틱스가 우리의 노동을 대신해주고,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해도 된다면.. 그러면 집중력을 도둑맞는 일 따위 신경쓰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다. (사이버네틱스의 노동에 대한 윤리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후기를 짧게 썼지만 아주 탁월한 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파이어스톤의 상상력에 빚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용 안한 사람도 많겠지).
그 외에 그림책 세 권과 만화책 여러 권을 보았다.
리베카 솔닛의 '해방자 신데렐라'에 이은 두 번째 그림책, 잠자는 공주가 아닌 <깨어있는 숲속의 공주>를 읽었고 - 뭔가 시사하는 점이 많다 -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접해보면 좋겠다.
얼마 전 내한했던 맥 바넷 - 존 클라센 콤비의 그림책들. 잊고 있다가 찾아보았다.
한 권은 이미 갖고 있었는데 집에 있는 줄 모르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아이가 알려줘서 바로 반납하고 집에 와서 보았다는 ...
어른에겐 허를 찌르는, 아이들에겐 어떤 자극을 주는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는 그러나 재미있는 책들이다.
만화책이라는 이유로 나란히 놓기에 독서중독자들의 항의가 예상되지만...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2> 그리고 <최애의 아이> 몇 권을 보았다.
최애의 아이는 아이가 친구에게 소개받아 방학 때 보겠다고 해서 1-10권 세트를 사주었는데
아무래도 설정 등이 마음에 걸려서 사후검열차 읽은 것. 애니는 한국에서 15세 등급 판정을 받은 것 같고 만화에는 딱히 연령 표시가 없으나, 어둡고.. 어둡다. 초등학생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의 성경험 평균연령이나 초등학생들이 무심코 접하는 뉴스나 영상물의 수위를 생각할 때 또 그리 금해야 하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듯. 아이돌이나 유튜버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교훈적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사전검열을 하지 못했고, 보겠다는 아이를 막지도 못했으니 계속 같이 보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이는 '엄마가 그럴 것 같아서 보지 않았으면 했는데!' 라면서도 같이 얘기할 사람이 있어서 좋아하기도 하는 것 같다.
책 안 읽고 (못 읽고) 만화책만 읽는 며칠을 보내고 나니, (출근을 안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하고 잠도 많이 자고 좋은데 나는 왜 그렇게 책에 집착하는 건가 싶다. (어려운) 책을 안 읽으면 삶이 참 편해질 것도 같은데.. 좀 바보같아지긴 할테고 나는 좀더 내가 똑똑하기를 바라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상엔 어려운 책이 너무 많고, 어려운 책은 좀 포기해도 될 것 같다.
<왜 읽을 수 없는가>를 읽고 있다. 메리 맥카시가 궁금하고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이 멋져서 <터프 이너프>의 '들어가며' 와 '메리 매카시' 부분을 좀 읽다가 이 책은 포기하기로 했다. 너무 어려워...
8월에는 꼭 읽어야 할 책 몇 권은 읽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읽고 싶다. 그런데 꼭 읽어야 할 책이 많다.
<여전히 미쳐있는> 의 예습도 조금씩 시작해야 할 것 같고. 내 팔자 내가 꼰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