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와 성평등에 대한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호소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 커커스 리뷰 


보니 가머스는 페미니즘을 먹음직스러울 뿐 아니라 맛있게 만들었다. - 아이뉴스 



왜 페미니즘은 사랑스럽고 먹음직스럽고 맛있어 보여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지만 

(물론 먹음직스럽고 맛있어 보인다는 표현은 이 이야기에 요리가 나오기 때문에 썼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랑스럽다는 표현보다 조금 더 불편하다) 페미니즘에 누군가 관심을 가졌으면 싶을 때 쉬운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못하는 걸 해준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는 것도 괜찮겠지. 페미니즘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권해보자. 











엘리자베스 조트는 1961년, 서른 살이다. 그러니까 1931년생이다.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1963년에 출판되었다.



2차대전과 이후 여성들은 일을 하도록 격려되었지만 50년대에는 다시 여성을 가정으로 보내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방송, 잡지, 고용주.. 모두가 그런 압력을 행사했다.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이 50년에 일어났으므로 여성에게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압력이 주어지는 시기는 좀더 늦게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의 어머니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일을 했고, 결혼하여 남편이 전혀 협조하지 않는 악조건 하에서도 일을 병행했지만 첫 아이의 유산을 겪은 뒤 퇴사했다. 심지어 어머니의 월급이 더 많았는데도. 그리고서 어머니는 딸이 가사일을 조금 돕는 것 외에는 '필요한 일'만 하기를 바랬다. 꼭 대학에 가고 교육을 받고 자기 일을 하라고. 



엘리자베스 조트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고 청혼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누구의 부인,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아이에도 관심이 없었지만, 좋아하는 남자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결혼했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



1952년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외간 남자와 같이 사는 법은 없었다. 



1952년으로부터 50년도 더 훌쩍 지난 때였는데. 동거라는 선택이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 부모님 때문에 고려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기도 했고. 다시 십 년 이상 훌쩍 지난 지금은 어떤가. 예전보다는 좀 편한 분위기일까. 



1960년대 조트는 피임을 (뭘로 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했다. 경구피임약은 1960년대 보급되었다. 1931년 전에 아이를 낳은 에이브리가 아이를 가졌을 때에는 피임약이 없었다. 둘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개개인의 성향도 차이가 있지만) 결과는 많이 달랐다. 사회 분위기도 많이 달랐을 터다. 


경구 피임약 개발에 공헌한 마거릿 생어의 책, 북펀드 목표 금액은 달성되었다.

1월 초에 책이 온다는데 무척 기대된다.  








성추행, 성폭행과 관계된 사건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입이 아파서 줄이기로 한다. 내가 아는 교수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잘 아는 공적인 장소 내의 사적인 공간에서의 지도 학생 성폭행을 계기로 사직했다 (표면상의 이유는 다른 것으로 처리했다). 그 일에 대해서 내 남자 동기들은 '섹스' 문제라고 하고, 나는 '성폭행' 이라고 한다. 그런 일이 있고도 그 교수는 나를 비롯한 여성 동료들을 공적인 행사에서 만났을 때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게 인사를 걸어왔다. 



아, 19일 하비 와인스타인이 LA에서 24년형을 받았다. 

‘미투 촉발’ 하비 와인스타인, 뉴욕 23년형 이어 LA 최대 24년형 - 매일경제 (mk.co.kr)


어디 뉴욕에서 23년 살고, LA에서 24년 살아봐라..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성추행 혹은 성폭행을 당했던 피해자들의 인터뷰와 추적 과정이 담겨있는 <그녀가 말했다>가 영화화되어 최근 개봉했다. 

그녀가 말했다 | 다음영화 (daum.net) 

상영관이 어딘가, 찾아봐야지. 개봉한 지 좀 되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도권에서는 마포의 아트하우스모모에서만 1일 1회 상영한다)



엘리자베스는 온갖 주제에 대해 맞는 말, 옳은 말만 한다. 그래서 정세랑 작가의 소설이 생각났다. 

마무리가 좀 진부하다는 생각도 든다. 얼굴 본 적 없는 친척의 유산을 받아 상속녀가 된 제인 에어와 다를게 뭔가. 그렇지만, 현실이란 건 사실 잘 바뀌지 않는다. 60년대 혹은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의 한계이자 현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르게 쓴다면 그건 판타지가 될 테니까. 


그래도 돈 많은 여성이 다른 여성을 (이유가 복잡하다 하더라도) 지원한다는 건 좋았다. 뭐든 일을 꾸미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여성운동이 활발해지고 페미니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하는 걸 보면서 돈은 누가 대는 걸까 생각한 적이 있다. 페미니스트 이민경이 자신의 인스타 계정에서 '투자자' 를 언급하는 걸 보고 투자자의 성별을 궁금해 했던 적이 있다.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물려받은 재산도 없지만 내가 좀더 돈이 많았다면 여성들에게 투자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이미 글렀 돈 많이 벌 일을 하고 있지 않아서.. 어릴 때 좀더 돈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을텐데.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들은 이것일 것이다. 



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언제 가진다는 것인가? 애들이 상 차리는 동안? 오븐에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한 40분 정도?

그래, 그것도 없는 것보단 낫지만. 그 시절엔 그것도 잘 없었겠지만. 


이제와서 이 문장들이 자꾸 인용되는 게 그리 바람직한 일 같진 않다. 



시스템을 굳이 뛰어넘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싫었으니까. 애초에 시스템을 다르게 만들면 안 되는 거야? 호의를 받아들인다는 것도 정말 싫었다. 호의란 결국 꼼수와 다를 게 없다.

1952년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외간 남자와 같이 사는 법은 없었다.

소설은 문제가 많은 장르라고 여섯시-삼십분에게 막 이야기한 참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작품의 의미가 뭔지 안다고 주장한다고. 작가가 전혀 그런 뜻으로 쓴 게 아니라도 상관없이. 실은 그들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의미는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도.

신생아를 키우면서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조트 양. 이 조그마한 악마는 당신 삶을 쪽쪽 빨아먹을 거라고요.

아기는 조그마한 주제에 이기적인 사디스트랍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봐요, 매일.

아내와 저는 우리집 개를 키우면서 일종의 아이 키우기 체험판이라고 생각했답니다.

부모가 되는 일은 공부하지 않은 영역의 시험을 치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너무 어려워서 주눅이 드는데 선택지도 없는 주관식이 대부분이다.

스트레스가 과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흔히들 좀 더 단순한 업무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음이나 머리를 과하게 쓰지 않는 업무, 그러니까 새벽 3시까지 정신을 혹사하지 않는 업무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강등되는 게 그보다 더 나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부들은 언제나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으로 대단한 생산성을 발휘하며 살아가요. 능력이 되든 안 되는 저녁 식사는 반드시 지어야 하거든요. 엘리자베스, 그건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니에요. 이러다간 심장마비든 뇌졸중에든 걸릴 수밖에 없어요. 최소한 우울증엔 걸리게 되죠. 주부들은 4학년짜리 애가 숙제를 미루듯 집안일을 미룰 수 없으니까요. 남편이 회사에서 딴짓하듯 집안일을 두고 딴짓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절대로 뭔가 이뤄낼 수 없을 시간대에도 언제나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해요.

해리엇은 그래도 자신과 아이들을 영원히 이어주는 강철 같은 단단한 유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가족이란 알고 보면 끊임없이 유지 보수가 필요했다.

엘리자베스는 한계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사람이니까. 본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의 한계도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해리엇이 생전 처음 받아보는 임금이었다. 이 돈을 받게 되자 해리엇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더 나쁜 것은 이런 개념을 주입받은 많은 여성이 그걸 다시 아이들에게 전수한다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남자애는 남자다워야지‘ 라든가 ‘여자애들이 어떤지 알잖아‘ 같은 말을 해대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이런 가계도를 통해 스스로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의 이름을 잔뜩 써놓은 나뭇가지일 뿐이란다. ... 조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네가 중요하거나 똑똑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란다. 너를 너답게 만드는 건 조상이 아니야.

수소 결합은 이 셋 중 가장 약하고 섬세한 결합입니다. 저는 이것을 ‘첫눈에 반한 사랑‘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 만약 뭔가가 진짜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좋아 보인다면, 대부분 생각처럼 진짜일 리 없다는 걸 화학적으로 알려주는 표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가정에서는 바로 여러분이 그 토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는 일에는 엄청난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이토록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저평가되고 있지요.

일기란 인간이 가족과 친구에 대해서 아주 악랄한 글을 써놓고 제발 그들이 보지 말아주십사 신에게 비는 것이었다.

왜 남자들은 여자들이 남자 성기를 보면 꼼짝 못 하거나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할까.

남자들이 다들 필 같을까? 월터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들이 필 같은 남자에 대해 무슨 조처를 한 적이나 있던가? 자기 자신은 그런 적이 있던가? 없었다.

믿음에는 종교가 필요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상대의 재능을 인정하는 포용력과 그 재능에 주눅 들지 않고 앞으로 상대가 발전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능력이야말로 총명한 사람의 자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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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2-21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빌레뜨 읽다 집어드셨군요^^ 저도 진작 담아둔 책인데...ㅎㅎㅎ
동거라는 옵션이 있었겠지만 연애 4~5년차 지나고 결혼 적령기가 지나니까 부모님은 당연히 결혼해야지~ 이야기부터 꺼내시더군요. 용기도 없었고 현실적으로 어른들을 설득한다는 게 두려웠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엄마의 시간이란... 참 여러 생각이 드네요.

건수하 2022-12-21 17:31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 아이 키우는 부분에 가장 공감이 됐었어요. 저의 아이도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울어제끼는 스타일이었거든요… ㅠㅠ (신생아실에서 울면 다른 애들 깰까봐 먼저 안아주는 아이… )

단발머리 2022-12-21 1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 있어요‘ 결론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소개해주신 바로는 흥미롭네요.
저는 빌레뜨 2권이 당최 제자리여서 현재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중입니다. 아, 나도 빌레뜨 읽어야 하는데요. (먼 산)

건수하 2022-12-21 17:32   좋아요 0 | URL
이걸 잠깐 듣다가 너무 잘 넘어가서 먼저 읽어버리고 말았어요.. 이제 다시 빌레뜨로 돌아가야. 단발머리님은 다미여 진도 많이 나가셨던데요? ^^

mini74 2022-12-21 14: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그랬어요. 얘들아 상을 차려라~~~ 그 부분ㅎㅎ 너나 잘해라 해주고 싶은 느낌에 괜시리 화가 나더라고요. *^^*

건수하 2022-12-21 17:33   좋아요 1 | URL
남편 얘기가 안 나오는게 이해는 되는데, 지금 식탁 차리는 게 문제냐고요.. 그쵸?

독서괭 2022-12-21 15: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상을 차리라니, 고작?? 엄마의 시간이 고작 그정도면 된다고?? 물론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저도 미니님처럼 괜히 화나네요 -ㅁ-; 얘들아 아빠한테 가라~ 는 어떨까요? ㅋㅋㅋ 수하님의 아쉬움이 많이 느껴집니다.

건수하 2022-12-21 17:48   좋아요 1 | URL
상이라도 차려라~ 인데… 시대가 시대이긴 하지만 하여간 성에 안 차죠. 아빠가 안 나오는 이유가 있긴 한데… 아래에 라로님께도 댓글 달았는데 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는지 궁금해요.

라로 2022-12-21 1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슨 인 케미스트리> 저는 초반에 재밌었는데 갈수록 별로였어요. 식상했어요. 하지만 의도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미여를 읽어야 하는데 밀린 책이 너무 많고 이제 겨우 <빌레뜨 2>를 시작했는데 어쩐지 스토리가 뻔한 것 같아서 혼자 방황하고 있어요. 괜히 답답한 일인.^^;;

건수하 2022-12-21 17:29   좋아요 1 | URL
저도 의도는 좋은데 시대를 특정했고 그게 60년대였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가는 왜 굳이 그 때의 일을 썼을까요…? 전 그게 좀 궁금하더라고요.

청아 2022-12-21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기적인 사디스트 ㅋㅋㅋ인용문들 좋네요. 하비 와인스타인 다큐봤었는데 영화로도 만들어졌군요? 책 찜해갑니다^^*

건수하 2022-12-21 17:35   좋아요 1 | URL
표현들 재미있는 것도 많고 좋은데 좀 아쉬워요. 아무리 대중 소설이라지만 지금 시대에 페미니즘을 부드럽게 겨우 이 정도만 표현해야 할까 싶어서.. 그래도 뒷부분 빼고는 재미 있었어요 ^^

2022-12-22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22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22-12-27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었나싶게 .... 이렇게 멋진 감상문이라니요.

건수하 2022-12-27 12:56   좋아요 0 | URL
그 날 필받아서 (다미여 읽다가 이거 읽으니까 너무 잘 읽히고 좋았나봐요) 열심히 썼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