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술 냄새만 맡아도;; 얼굴이 빨개지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몸 전체가 울긋불긋 꽃동산이 되기 때문에 술 잘 안 마시는데 오늘은 왠지 맥주가 땡긴다. 아니, 사실 어제부터 마시고 싶었는데 어젠 물을 하도 많이 마셔서 배불러 못 먹다가 오늘 드디어 냉장고 한켠에 숨어 있던 카스캔을 땄다. 하루만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지금은 등이 서늘할 정도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차가운 맥주는 맛있구낭~ ^^
안주는 말린 바나나 칩. 이것도 평소엔 엄마가 못 먹게 하는 아이템인데 지난번에 마트 가서 모른 척하고 과감하게 집어들었다. 그런 걸 굳이 먹어야겠냐며 잔소리를 쪼끔 듣긴 했지만 그래도 들고 있던 거 뺏기지 않은 게 어디냐. 앙, 한 5년만에 먹어보는 것 같은 반가운 맛.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려니 옛날 회사가 생각난다. 예전에 학교 졸업하고 처음으로 들어갔던 회사는 참 작디작은 회사였다. 직원은 나까지 10명 남짓, 사무실도 작은 오피스텔 2~3칸을 빌려서 쓰던 곳. 덕분에 회사라기보다 친구 작업실 같은 분위기에서 사장님, 부장님이 아니라 언니, 오빠 호칭을 쓰고, 일한다기보다는 같이 어울려 노는 기분으로 다녔던 곳.
10~11시경에 출근을 하면(10시가 공식 출근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신입인 나부터도 10시 반~11시는 넘어야 나갔으니까) 우선 다같이 아침부터 챙겨 먹었다. 메뉴는 주로 근처 빵집의 샌드위치와 커피 또는 우유. 빵을 사러 가는 심부름은 막둥이인 내 차지였지만 그런 자잘한 심부름이 전혀 귀찮지 않았다. 그저 무슨 빵을 먹을지 메뉴 선택권이 나한테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을 뿐. -_-v
그리고 요즘처럼 더운 여름철이면 오후 근무는 늘 맥주와 함께 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들어오면서 편의점에서 맥주를 잔뜩 사와서, 바쁜 사람은 컴퓨터 모니터 옆에 맥주캔을 놓고, 그리고 좀 한가한 사람들은 둥근 회의 탁자에 둘러앉아 한쪽에 있는 부엌에서 만든 안주를 곁들여 맥주를 마시곤 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주량이 셌던 나는 오후 내내 맥주 몇 캔을 해치우고,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질 즈음이면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다가 새벽녘이 되면 집에 갈 사람은 집에 가고, 사무실로 들어올 사람은 다시 들어와서 각자 일을 하거나 다시 술판을 벌이거나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또 아침이면 부시시한 몰골로 모여들고..
과거를 돌이켜보면 거의 즐거웠던 추억들만 떠오르지만, 그때 그 시절도 내게는 참 즐거웠던 것 같다. 일하는 것도 즐거웠고 회사 사람들 만나는 것도 즐거웠고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것도 즐거웠고..
그렇게 즐거웟던 회사는 나중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이면서 이상하게 변질되어서 나를 슬프게 했지만.. 그래도 그런 추억을 줬으니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은 그때와 비슷하면서도 또 많이 달라서 완전히 혼자 해야 하는 일.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내가 정할 수 있지만 마감만은 어떻게든 지켜야 하는 일.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매일매일 하루 24시간 나사 빠진 애처럼 지내지만, 정작 친구 얼굴 한번 보기 위해서 억지로 억지로 시간을 짜내야 할 떄도 있는..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다만, 술 몇 모금 마시고 나니까 아까부터도 눈에 안 들어오던 글자들이 점점 더 가물해지고, 머릿속에서 점점 생각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문제랄까..
어헝, 일하기 더 싫어졌자나! 이를 어쩜 조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