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터널 선샤인'은 올해 나온 최고의 사랑영화입니다.
지난주와 이번주 들어서 좋은 영화가 너무 많이 나와
마치 제가 양치기 소년 같은 느낌마저 들지만,^^
이 영화, 꼭 보시길 바랍니다.
작년과 올해, 미국과 한국에서,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제 경험으로 미뤄보면
반복 관람해도(혹은 반복 관람하면 더) 괜찮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시티 오브 갓'과 '이터널 선샤인'과 '내 사랑 말순씨'가
나란히 걸려 있는 이번 주 극장가만큼 풍성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번 주말엔 다들 극장 나들이 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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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에 따르면,
삶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사랑을 잃는 비극이 그 하나.
나머지 한 가지는 사랑을 얻는 비극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랑이
무료함 때문에 시작되고
싫증 때문에 끝나버리는 것일까.
마침내 목적을 이룬 간절함은
짧은 시간 환희로 머물다가
독하고 질긴 권태에 뼈째 잡아 먹힌다.
수명이 다해 길게 누워버린 사랑의 시체를
허다하게 목격했으면서도,
왜 사람들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설까.
또는, 왜 형해만 남은 옛 사랑을
못내 그리워하는 걸까.
조엘(짐 캐리)은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 심하게 다툰 후
뒤늦게 찾아가 사과하려하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거듭된 갈등에 지친 클레멘타인이
잊고싶은 기억만 지워준다는 라쿠나사(社)의
첨단 서비스를 받아버린 것.
그녀가 자신에 관한 추억을
모두 삭제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된 조엘은
화가 치밀어 자신도 자청해 그 회사로 간다.
‘이터널 선샤인’(10일 개봉)은
황홀할 만큼 감성적이면서
혀를 내두를 만큼 이성적이다.
모처럼 볼만한 영화들이 잔뜩 깔린 올 11월 극장가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을만큼 매력적이다.
조엘의 기억 속을 누비는 복잡한 구조와 편집 때문에
이 영화는 중반까지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삭제당하지 않으려
기억 속 연인들이 도망치고 숨는
그 모든 과정의 메커니즘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영화는 기기묘묘한 설정으로
관객에게 복잡한 퍼즐 숙제를 던져주는 SF가 아니라,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100% 사랑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뛰어났지만 절제와 통제를 잃었던
‘휴먼 네이처’의 실패를 딛고 다시 만난
미셸 공드리의 연출과 찰리 카우프먼의 각본은
최상의 조합으로 재치의 너비와 사색의 깊이를
모두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이터널 선샤인’은
더없이 낭만적이며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두 사람이 두 차례에 걸쳐 만나는
뉴욕 인근 몬타크의 겨울 바닷가 풍경은
눈이 시릴 정도로 생생하고 아름다우며,
“그럼 어때?”라고 조엘이 나직히 내뱉는
이 영화의 마지막 짧은 대사는
그 모든 사랑의 상처를
다 아물게 할 것만 같은 치유력을 지녔다.
의상보다 머리 색깔을 더 자주 바꾸며 등장하는 케이트 윈슬렛은
톡톡 튀는 생명력 그 자체인 여성 캐릭터를 멋지게 살려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편견을 잊을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에게
짐 캐리는 오래도록 숨겨온 우울하고 과묵한 한 사내의 내면을
진지하게 열어보인다.
‘짐 캐리스러운’ 그 모든 동작과 표정의 형용사를 버리고,
이 영화에서 그는 온전히 고유명사가 되었다.
무차별적인 권태의 폭격에도
파괴되지 않고 결국 남는 것은
사랑했던 이유가 아니라
사랑했던 시간들이다.
‘이터널 선샤인’은 그 모든 기억마저 사라진 뒤에도
사랑했던 흔적과 습관은 남아
우리의 등을 다시금 떠민다고 말한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그곳이 진창이든 꽃밭이든,
그래, 좋다.
다시 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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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모든 기사 중 한치의 의심없이 무조건 신뢰하는 단 한 명의 기자. 이동진 기자의 카페에서 퍼온 이동진 기자의 글입니다.
저는 지난 일요일(11월 13일) 이 영화를 봤습니다. 보게 된 계기는 금요일 밤 EBS의 '시네마 천국'의 한 꼭지인 '추천 이 영화!'를 통해서입니다. 레니 크라비츠나 뷔요크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미쉘 공드리의 작품이라 해서 끌렸습니다. 얼핏 보여주는 영상이 꽤 멋져 보였구요.
짐 캐리가 나온다고 하나, 솔직히 저는 영화를 보면서도 짐 캐리 같지가 않아서 계속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트루먼쇼> 이후 사람이 이렇게 달라져도 되나, 싶었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리뷰를 지금 쓰는 건 제게 무리인 것 같습니다. 이동진 기자처럼 2번쯤 보고 나서야 쓸 수 있을까요? 대신, 이동진 기자의 또다른 추천작 중 <씨티 오브 갓>을 봐야 겠네요. 이런 멋진 영화의 리뷰를 함부로 쓰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탐식하려는 제 욕구를 채우는 게 우선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참, 제가 영화를 볼 땐 분명히 몬.타.우.크(Montauk)라고 들었는데, 이동진 기자는 몬타크라고 썼네요. 실수일까요? 그게 맞는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