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대형할인마트에 갔습니다. 주차를 하고, 그 전에 은행에 입금할 돈이 있어서 은행에 갔습니다. 은행은 우리집과 마트의 중간지점에 있습니다. ATM에 통장을 넣고 돈을 입금하려고 넣었는데, 불량지폐 2장이 입금이 안 됐다고 나오더군요. 그래서, 다시 한번 해보려고 확인키를 눌렀죠. 다시 튀어나오더군요. '취소'키를 눌렀습니다. '안 되나 보다. 창구로 들어가서 입금해야 하나?' 생각하며 나오는 통장을 뺐습니다. 거래내역이 하나도 찍혀있지 않더군요. 불길했지만, 전 ATM이 이상하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래서 뒤로 돌아서 다른 기기에서 할까 하다가 옆의 기계로 가서 통장정리를 했죠. 그랬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방금 입금한 내역이 없는 겁니다. 순간 너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바로 직원한테 얘기했죠. 조금 기다리라면서 ATM 내역을 확인하러 들어가더군요. 그 직원이 나오기까지 3분 동안 스스로 질책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이상하다... 이상해..."

확인하고 나온 직원의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용내역이 없다는 겁니다. 이럴 수가.... 그제서야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인식되더군요.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직원이 하는 말이 돈이 나왔는데 내가 안 뺐다는 겁니다.

이런 일을 겪은 적이 한번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했더니, CCTV를 보여주겠답니다. 봤습니다. 아까 ATM에서 통장을 빼서 돌아섰다가 다시 내가 썼던 기기로 돌아서면서 눈이 마주치고 말까지 했던 그 아주머니의 소행이었습니다. 왜 저는 그때 그 아주머니 의심할 생각을 못한 걸까요?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심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건 고객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아주머니가 다시 은행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분이 다시 오신다 해도 돈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직원의 얼굴조차 쳐다보기 싫어지더군요. 그래서 매우 실망한 얼굴빛으로 "알았어요." 하고 바로 돌아서서 은행을 나왔습니다. 난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자꾸만 '어머니'라고 하는 게 싫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원래 은행에서 다시 마트로 돌아가 쇼핑을 할 생각이었는데, 전혀 그럴 기분이 안 들고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얌체같지만 바로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기억에 제가 주차한 곳은 '3층의 B구역'이었습니다. 차가 없더군요. 그래서 2층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4층, 그러다가 힘이 빠지고 정신도 혼란스러워 엄마한테 전화했습니다. 돈 잃어버렸고, 지금 차를 어디다 주차했는지 찾을 수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다 5층까지 갔는데, 거기서 직원을 만났습니다. "죄송한데, 제가 지금 은행에 갔다가 돈을 잃어버려서 정신이상(?)이 된 것 같다. 도저히 차를 못 찾겠다"고 말했더니, 차종과 번호를 묻더군요. 번호가 생각이 안 나더군요. 번호판 바뀌기 전 번호를 댈 뻔 했습니다. 다행히, 제 차가 매우 드문 차여서 차종과 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3층 A구역'에 있다더군요. 그렇게 어렵게 집에 왔습니다.

집에 오니, 허탈하고 화가 나서 아무것도 못하겠더군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12에 전화했습니다. 경위를 얘기했더니, 지구대 전화번호를 가르쳐 줍니다. 거기서 경찰이 집으로 왔습니다. 그 정도 돈이면 큰 돈이라면서 만약 진술서를 쓰면 형사계로 사건이 넘어가서 강력반 형사들이 CCTV 화면을 갖고 탐문수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그 아주머니를 잡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하더군요. 약간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신고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진술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같이 다시 은행으로 갔습니다. CCTV 화면을 Floppy Disk에 저장한다고 하더군요. 아까 저와 말했던 은행직원이 경찰의 요청에 비협조적입니다. 책임자와 함께 봐야 한다는 둥, 저장을 못하니 디카로 찍어가라는 둥... 하다가 경찰이 약간 큰소리를 내자 해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경찰이 제게 디스켓을 사오라고 합니다. 부랴부랴 뛰어가서 사다 줬습니다. 은행직원이 약간 쫄아서 저장을 해주니, 집에 데려다 준다며 타라더군요. 오면서 저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확실한 단서가 나올 때까지 연락할 일은 없을 겁니다."

경찰차 뒷좌석에 타고 경찰과 은행에 갈 때는 의자가 굉장히 낮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차문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경찰이 앞자리에서 내려 밖에서 문을 열어줘야 내릴 수 있더군요. 안에서 보면 문고리가 뜯겨나가 있고, 스프링이랑 약간의 플라스틱만 붙어 있습니다. 앞자리에 계시던 분이 내려서 문을 열어주시는데 그제서야 퍼뜩 생각이 나더군요. '범죄자 도망 방지용'이었던 겁니다. 두 경찰 중 좀 더 친절하고 젊은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문은 안에서 못 여는 거예요."라고...

휴~ 제 잘못이 큰 건 인정하지만, 은행의 미온적인 태도가 정말 싫습니다. 경찰에 집까지 태워주면서 제게 그 은행 다시 거래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저는 다른 은행에서 그런 일을 겪었을 때도 똑같은 대우를 받을까봐 그게 겁이 나서 옮기기도 꺼려집니다.

ATM 사용하실 때는 신중하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용하세요. 오늘 깨달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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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2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큰일 당하셨네요.
워낙 먹고살기 어렵다보니 아저씨 아줌마 안 가리고 남의 돈 뺏어먹기에
나선 건 같습니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하루님이.....
그 아줌마 꼭 잡혀서 돈 찾았으면 좋겠네요.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로드무비 2005-02-2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정신머리에 컵 예쁘다고 추천을 누르고 가시다니!
강적이십니다.^^

하루(春) 2005-02-25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주차장에서 차도 못 찾고 헤맬 때는 눈물도 났는데, 지금은 조금 진정됐어요. 젊은 경찰이 조금 재밌었거든요. 그래도.. 그게 어떻게 생긴 돈인데.... 억울해요. ^^;
금방 오셔서 댓글 또 다신 님이 더 강적입니다. ㅎㅎ~

미네르바 2005-02-25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어쩌나... 읽는 내내 제 가슴이 아리고 아프네요. 그리고 심장은 벌렁벌렁 뛰고요. 그런 일이 날 수도 있군요. 부디 그 돈 찾았으면 정말 좋겠어요. 참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군요. 그 아줌마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다시 갖다 줬으면 좋으련만... 주차한 차 못 찾는 것은 당연한 것 같아요

하루(春) 2005-02-25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걸 내심 바라고 있어요. 위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글 다시 읽어보니 문장구조가 허술한 게 눈에 많이 띄네요. ^^;;

날개 2005-02-2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정신머리없는 울 옆지기는 ATM기에 돈을 찾으려고 가서는 카드만 빼오고 돈은 안가져 나온겁니다.. 금방 돌아서서 가보았지만 돈은 이미 누가 빼갔더군요..ㅠ.ㅠ 얼마나 속이 쓰리던지... 나쁜 사람들..
그나저나 경찰차 타고 집까지 가다니... 새로운 경험이셨겠군요.. 나쁜 일만 아니라면 한번 타보고 싶기도 합니다요..^^;;;;

로드무비 2005-02-25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700

777 이벤트 하세요.^^(이벤트 찔러족 로드무비)


하루(春) 2005-02-26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경찰도 제게 그러더군요. 저는 처음이겠지만, 이런 일 무지하게 많이 일어난다구요.
로드무비님/ 님은 17777인데, 저는 17000을 들어내고 777이라.. ㅋㅋ~ 저는 7월쯤에 하고 싶어요. 숫자랑 상관없이요. 그 때 마구 하고 싶은 날이 올 것 같아서요. 이유는 그 때 알려 드릴게요. 어제 은행사건 때문에 오후를 고스란히 날려버리고, 매우 허탈한 마음상태로 밤에 일찍 자버렸거든요. 돈이 눈 앞에서 아른거려요. ^^;;

마냐 2005-03-08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최악이었네요. 액땜이라 하시길. 너무 기막힌 스토리라...뭐라 말씀을 못드리겠네요. 이런이런. (음...시간이 꽤 흘렀으니, 이젠 괜찮으신 거죠?)

하루(春) 2005-03-08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은 아직도 쓰리지만, 생각 안하려 애쓰고 있어요. 경찰이 부지런히 움직여서 잡아주길 바라고 있답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윤대녕을 처음 알게 된 건 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프로에서 구효서와 윤대녕에 관한 얘기를 했는데, 그때 나는 내 무식함을 탓하며 메모를 했었다. 그리고 바로 서점에 가서 두 작가의 책을 찾아봤다. 그 중 내 맘에 든 건 윤대녕이었다.

나의 게으름 탓에 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읽은 게 뭔진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홍대 근처에 살던 나는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과 상호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그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곳은 홍대앞, 광화문, 인사동. 나중에 마음에 여유가 많아지면 그의 소설 속 상호와 길거리를 목록을 뽑아 찾아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윤대녕을 읽는 눈이 부족해 감상은 마치 한밤에 허공에 내젓는 손짓처럼 막연하지만, 그의 소설은 내게 막역한 친구다. 2001년인가 그 이듬해인가 마지막으로 '미란'을 읽은 후, 다음 작품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외수도 좋아하는 작가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일관된 주제의식에 조금은 질려 윤대녕을 더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내 관심은 소설에서 非소설로 옮겨가 작년 초 '누가 걸어간다'가 나왔지만, 구입을 미루고 있다가 시야에서 멀어져 있던 여행산문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을 지난 연말 구입했다. 반신욕을 하며, 혹은 읽고 싶을 때 한두편씩 읽었다. 읽다 보면 이게 허구인가, 아님 진짜 여행산문인가 싶은 대목도 있다. 일본 관련정보가 참 흥미로웠으며, 청년 시절의 관심사도 재미있다. 어떤 책을 좋아하며, 일상생활은 어떠한지, 책을 어떻게 읽으며, 어떤 마음일 때 여행을 떠나는지...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책장을 넘기는 게 아깝다. 윤대녕의 글 속 풍경에 그대로 머물고 싶어진다. 윤대녕을 한 10년째 좋아하고 있지만 그에 대해 아는 건 책에 나와있는 프로필이 전부였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에 대해 알게 되어 가슴이 벅차다. 몇 년 전 낮에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청취자들에게 지령을 내렸었는데 길거리를 걸어가며 아무나 찍어서 미행을 해보라고 했었다. 그 사람이 어디 가는지, 누굴 만나는지, 아니면 그 사람도 누군가를 미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참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재미있을 것 같은 지령이었는데, 이 책은 내게 딱 그런 느낌이다. 나는 윤대녕을 미행하고 있고-때론 그의 일기장까지 훔쳐보고- 윤대녕은 스튜어디스와 데이트하고...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작품을 다시 새로운 눈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됐다. 나의 목적불분명의 충성심-하긴 충성심에 무슨 목적을 실을까마는-에 제동을 걸만한 그의 작품이 영원히 나오지 않기를... 꽤 착해 보이는 윤대녕의 글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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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4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5-02-24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그렇군요. 그 봄 여름 가을 겨울 카페 이 책에도 나와요.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묘합니다. 윤대녕을 10년 이상 좋아하면서 제 주변에는 윤대녕을 아는 사람조차 없어 소외감 같은 것도 느끼고 있었는데 이 곳에 오니까 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기분이 좋네요. 뭐, 하긴 윤대녕이 박완서 님 같은 유명세를 타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위안하곤 해요.

마늘빵 2005-02-2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대녕은 이름만 알고 아직 읽어보진 않았는데... 관심이 가네요.

하루(春) 2005-02-2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분이랍니다. ^^

미네르바 2005-03-0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윤대녕 좋아해요. 그만의 그 분위기... 끊임없이 존재의 시원을 찾아가는 그의 글쓰기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은 아직 안 읽었어요. 일단 추천과 함께 땡스투를 누를게요. 다음에 사게 될 것 같아요. 잘 읽었어요. 그리고 이 곳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윤대녕 작가 좋아하는 사람 참 많답니다.

하루(春) 2005-03-0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밤에 이 후미진 곳까지 와주시다니... 고맙습니다. ^^* 전 이 책을 읽고, 윤대녕을 더 굳게 믿게 됐어요.
 




이은주가 그리 재능이 많은지 몰랐다. 얼마 전 PIFF에서 양조위와 만나 영어로 통역없이 대화를 나눴다는 얘길 들었을 때 '좀 튀고 싶나?'라는 질투어린 생각을 했었다.

Only when I sleep을 부르는 모습 멋졌다. 게다가 피아노까지 치다니..  모든 걸 다 잘하는 배우인가? 난 이 사진보다 노래 부르는 중간 양손을 머리깨로 올리면서 감정에 빠져 부르는 모습이 더 좋은데... 그 사진은 없더라.

이은주는 여지껏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다. 작품을 고르는 눈이 없어서 하는 영화들마다 손익분기점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녀가 주목받은 영화는 기껏해야 '번지점프를 하다' 에 불과했고, 2월인가 개봉했던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남자배우들에 눌려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내지 못한 것이다.

작품 고르는 눈 지지리도 없는 그녀가 확실히 자신을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된 건 올해 MBC의  '불새'에 출연한 것이다. 흥행 못하는 영화에 나오는 여자 배우였는데, 길거리 지나가면 어른들도 알아보며 좋아해주는 배우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어 '주홍글씨'까지... 변혁 감독과 만난 이은주 - 앞으로 그녀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는 배우가 되길...

음악이 멋져서 엔딩 크레딧을 유심히 봤더니, 이재진. 이창동 감독의 눈에 들어 그와 작업하면서 유명해진 사람이다. 이창동의 영화를 할 때는 연주곡 일색에다 지나치게 잔잔해서 보조역할 밖에 못하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 감독 잘 만나서 이.재.진.을 확실히 알리는 계기가 되겠다.

오리지날 조형사세요? 저도 가끔 조형사거든요.

여기까지가 작년 11월 '주홍글씨'를 보고 쓴 허섭한 감상문이다.

그러던 그녀가 오늘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름끼쳤고,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어서 남자관계인가 추측했다. 집에 오니, 프라임타임 뉴스에서 그녀의 자살소식을 다뤘는데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손목을 칼로 그은 자국이 있고, 목을 맸다?

사람들은 자살을 결심하면, 마치 긴 터널을 지나오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자살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고민한다고 한다. 그게 며칠이나 몇달에 걸친 것이든, 단 하루만에 끝날 것이든.

'오! 수정'에서도 노출연기를 했고, 관점에 따라 더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주홍글씨'의 노출이 자기가 대배우로 크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 걸까?

그녀는 분명 숨이 넘어가기 직전, 자살을 후회했을 것이다. 다만, 너무 멀리 와버려 되돌리지 못했을 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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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2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하루만 더 있다가 올려 주시지.
할 말이 없어요.

하루(春) 2005-02-2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셨나 보네요. 죄송해요. 한밤에 이런 글 올려서... --; 암튼 어이없고, 충격적인 일입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뭐였을까? 1) 자폐아가 뭔지 가르쳐준다 2) 장애아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가르쳐준다 3)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길 기대한다 4) 그저 작가적 영감이 떠올라서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다.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1순위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말아톤'을 보고 싶다며 좋냐고, 보여주겠다고 하길래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보기 전, 얼마나 눈물을 쥐어짜게 만들까? 그 감동이 작위적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했지만 그런 걱정 때문에 큰 기대를 안 하고 봐서 더 감동이 컸던 것 같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이 운 영화는 2번째이다. 첫번째는 고 2땐가 친했던 친구랑 본 '수잔 블링크의 아리랑'이었다. 그 때 울며 슬픈 감정을 어쩔 수 없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는 입양아에 대한 것을 자세히 알려줬고, 어떤 양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슬펐다.

 

그럼, 이 '말아톤'이란 영화는 내게 어떤 의미일까? 이 얘기를 하려면 아주 개인적인 얘기를 해야 하는데 할까 말까 고민이 된다. 그런데 방금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서재는 방문자가 적고, 내가 글을 열심히 올리지 않기 때문에 즐겨찾기 하는 사람도 안 늘어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유명한 서재인이 되고픈 마음은 없기 때문에 내 얘기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다. 우리집에는 장애인이 있다. 정신지체장애인인데, 이건 지능이 낮은 장애다. 지능이 아마도 요즘 아이들에 비춰보면 5살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영화 선전문구에 초원이 지능이 5살 수준이라고 돼있었던 것 같은데 초원이와는 많이 다른 5살 수준이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에 따라서 화폐 개념을 알고, 가게에 혼자 가서 물건도 사오고, 대중교통수단도 혼자 이용하고, 밥도 차려먹을 수 있겠지만 우리집의 장애인-언니는 그런 걸 전혀 못한다.

 

난 이 영화를 보며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갈 때부터 울었다. 영화가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 거라는 걸 한눈에 보여주는 오프닝 크레딧이 어찌나 내 마음에 와닿던지 그 때부터 그저 울컥 하며 눈물이 흘렀다. 계속 그렇게 남들은 재미있게 보고만 있는데 계속 울었다. 왜 그렇게 울었을까? 우리 엄마가 생각나서? 언니가 생각나서? 언니가 앞으로 어떻게 지내게 될지 걱정만 앞서서? 그런 건 나도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다.

 

참 재밌는 영화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아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영화를 보니, 나도 덩달아 편해져서 초원이의 엉뚱한 행동에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다가도 금방 가슴이 아려와서 눈물을 흘리며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넓어진 것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초원이가 지하철에서 폭행당한 후 엄마와 사람들 앞에서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라며 소리치는 장면에서 우는 것 같았다. 내 친구도 거기서 감정이 폭발해 거의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난 그 소리에 더 맘놓고 울었고...

 

친구나 나나 영화에 몰입해 눈물을 닦을 휴지를 찾을 생각을 안 했는데, 갑자기 중간에 친구가 휴지가 있다며 줬다. 그걸로 눈썹에 바른 마스카라를 주의하며 눈물을 찍어냈다. 어찌나 많이 울었는지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땐 그게 다 젖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보니 눈썹에 휴지가 조그맣게 매달려 있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인 것 같다. 이런 류의 영화가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은 허구였다. 그러나, 이건 사실에 기초해서 만든 거고 엄마가 자폐아를 키우며 겪은 우여곡절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에 감동을 자아냈던 것 같다. 끝부분에 나온 sub3를 달성했다는 자막이 '내가 한낱 허구에 매달려서 이렇게 슬퍼한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줬다.

 

조승우, '말아톤', 언론의 역할

 

이 영화는 작년 여름에 크랭크인 해서 올 설을 겨냥해 개봉했다. 촬영 초반에 조승우가 자폐아 연기를 하고, 김미숙이 엄마 역할을 맡았다는 것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저 가벼운 맘으로 볼 수 있는 소품이려니... 했다. 조승우는 TV 출연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역량에 비해 인지도는 굉장히 낮았고, 그의 빼어난 노래 실력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조승우는 그런 것에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충실해 해나갔다.

 

작년 10월에는 수요예술무대에 출연해 일반인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자신의 노래실력을 뽐냈고, 얼마 전에는 '지킬 앤 하이드'라는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했다. 조승우를 최대한 알리고픈 조승우를 매니지먼트하는 회사의 정책과 영화를 되도록 많이 알려 떼돈을 벌고 싶은 말아톤 제작사와 우리는 이만큼 장애인을 생각한다는 언론의 정책이 일치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매니지먼트사나 제작사와는 무관하게 언론사가 장애인을 등에 업고 그들의 이미지를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순수함의 발로였을까? 새해가 밝은 1월 아침 프로그램 등에 초원이의 실제인물인 배형진 씨와 어머니가 출연한 걸 봤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뉴스라인'이라는 곳에 김미숙 씨가 출연한 것도 봤다.

 

우리 세상은 참 재밌다. 내가 너무 한술에 배부르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동네 인근에 장애아 어린이집이 들어선다고 하면, 땅값 떨어진다며 시청에 민원을 넣는 NIMBY현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렇게 TV에서 떠들어대는 그들은 장애인 가족의 고충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걸까?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만났을 때 무섭다고 피할 필요는 없다. 특별히 잘해줄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 특별한 시선을 던질수록 그들은 집에서 못 나온다. 자폐아든 지체장애인이든, 정신지체인이든 다 같은 사람이다. 우리가 평소대로 하면 그들도 편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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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15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제목 참 마음에 듭니다.
많은 이야길 하고 싶지만 마음으로만 나누죠.

하루(春) 2005-02-1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ET가 생각나네요. 손끝을 맞대고 있던 장면.. 마치 로드무비님과 제가 그러고 있는 것 같은... ^^

깍두기 2005-02-1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도 울었지만 님의 글에도 가슴이 뭉클해지는군요.

하루(春) 2005-02-1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이 울어서... 조금 머쓱했지만, 나올 땐 기분 좋았어요.

마늘빵 2005-02-15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만족했던 영화였습니다. 예상했던 바 그대로 진행된. 장애인들을 애써 도우려하지도 안좋게 보려하지도 않는답니다. 어딘선가 장애인들을 그들을 도와주려는 이들의 손길을 부담스러워하고 거기서 스스로 장애인임을 느낀다고 봐서요.
 
과일나라 쾌청지수 퍼펙트 클렌징 크림 - 400g
과일나라
평점 :
단종


난 6000천원이 넘어가는 클렌징 크림을 쓴 적이 없다. 뭐, 대학생 때부터 화장 시작해서 지금까지 쓴 개수도 몇 개 안 되지만 말이다. 이 제품도 내 나름대로 정해놓은 상한선을 넘지 않으면서 용량이 많은 것을 고르다가 사게 된 것이다. 원래 포인트를 썼었는데, 좀 지겨워져서(한번 사면 2년 이상 쓰니) 다른 걸 쓰고 싶었다.

이 제품의 매력포인트는 바로 많은 용량이다. 다른 제품들에 비해 60g이 많이 들어있어서 속는 셈 치고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

이걸 쓴지 벌써 2년이 다 돼간다. 그리고 양은 통에 써있는 글자 '지'와 '수' 사이로 줄어들었다. 오늘, 화장을 지우려고 검지손가락으로 퍼내는데, "헉~" 손가락이 짧아서 조금만 더 쓰면 퍼내기 힘들 것 같은 거다. 난 왜 이리 손이 작고 짧아서 이런 웃긴 상황을 만들어내는 건지.... 하다가 문득 내 손에 얽힌 일화(?)가 생각났다.

첫번째, 지금은 여자아이의 엄마가 된 언니

대학교 다닐 때 자취를 했는데, 아주 친했던 같은 과의 그 언니는 내가 기초화장만 하면 내 손의 움직임과 모양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런 조그맣고 통통한 손으로 화장품을 바르는 게 어설퍼 보이기도 하고, 웃긴다고 했다. 그 때 나는 스스로 전혀 느끼지 못하는 내 모습을 남이 보며 느끼는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두번째, 안 좋은 추억

어른들 특히, 아줌마들은 내 손을 보면 일 한번 안 해본 아기의 것 같다고 한다. 물론, 보통의 아줌마들이 매일 같이 지겹도록 해대는 집안일에는 젬병이고 관심도 별로 없다. 그러나, 난 직장에서 일 하고, 그 돈으로 먹고, 저축하며 산다. 난 내 손에 대해 이렇게 선입견을 갖고 말하는 사람들이 싫다.

세번째, 부담스러운 의사

내가 주부습진(손바닥의 두세 손가락)에 시달린지는 10년도 넘었는데, 증상의 강약에 주기가 있어 때로는 따가울 정도로 심해지기도 한다. 7년쯤 전의 한여름이었다. 증상이 심해져서 타인에게 내 손을 보여주는 것이 꺼려졌다. 그래서, 어느 대학병원의 피부과에 우연히 가게 됐다. 그 곳엔 여자 레지던트와 중년의 남자 전문의가 있었는데, 여자 레지던트는 피부가 어찌나 여드름으로 울긋불긋하던지 친구와 둘이 나중에 흉을 봤다. 피부과 의사면서 피부가 안 좋으니까 믿음이 안 간다고...

옆길로 샜는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중년의 전문의에 관한 거다. 그 의사는 으레 환자들한테 하는 질문을 했다.

의사 : 내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언제부터 이랬어요?"

나 : "오래 됐어요."

의사 : 계속 만지작거리며 "집안일 많이 해요?"

나 : "학생인데요.. 물 만지는 일 별로 없어도 이래요."

의사 : 내가 보기엔 할 말도 없어 보이는데 손을 안 놔주며 "음..."

난 더운 여름, 그 대학병원의 의사와 마주 앉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 의사는 내게 무려 1달치의 내복약과 주부습진에 필수 연고인 네리소나를 처방해줬고, 내복약은 아직도 내 책상 서랍에 들어있다. 

 

결론 - 손가락이 짧은 사람들을 위해 조그만 주걱이 들어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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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05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사진과 소개글이 참 좋네요.^^

하루(春) 2005-02-05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에 문득.. 바꾸고 싶어서 그림 올리는 게 생각보다 많이 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