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낮에 대형할인마트에 갔습니다. 주차를 하고, 그 전에 은행에 입금할 돈이 있어서 은행에 갔습니다. 은행은 우리집과 마트의 중간지점에 있습니다. ATM에 통장을 넣고 돈을 입금하려고 넣었는데, 불량지폐 2장이 입금이 안 됐다고 나오더군요. 그래서, 다시 한번 해보려고 확인키를 눌렀죠. 다시 튀어나오더군요. '취소'키를 눌렀습니다. '안 되나 보다. 창구로 들어가서 입금해야 하나?' 생각하며 나오는 통장을 뺐습니다. 거래내역이 하나도 찍혀있지 않더군요. 불길했지만, 전 ATM이 이상하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래서 뒤로 돌아서 다른 기기에서 할까 하다가 옆의 기계로 가서 통장정리를 했죠. 그랬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방금 입금한 내역이 없는 겁니다. 순간 너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바로 직원한테 얘기했죠. 조금 기다리라면서 ATM 내역을 확인하러 들어가더군요. 그 직원이 나오기까지 3분 동안 스스로 질책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이상하다... 이상해..."
확인하고 나온 직원의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용내역이 없다는 겁니다. 이럴 수가.... 그제서야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인식되더군요.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직원이 하는 말이 돈이 나왔는데 내가 안 뺐다는 겁니다.
이런 일을 겪은 적이 한번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했더니, CCTV를 보여주겠답니다. 봤습니다. 아까 ATM에서 통장을 빼서 돌아섰다가 다시 내가 썼던 기기로 돌아서면서 눈이 마주치고 말까지 했던 그 아주머니의 소행이었습니다. 왜 저는 그때 그 아주머니 의심할 생각을 못한 걸까요?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심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건 고객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아주머니가 다시 은행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분이 다시 오신다 해도 돈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직원의 얼굴조차 쳐다보기 싫어지더군요. 그래서 매우 실망한 얼굴빛으로 "알았어요." 하고 바로 돌아서서 은행을 나왔습니다. 난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자꾸만 '어머니'라고 하는 게 싫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원래 은행에서 다시 마트로 돌아가 쇼핑을 할 생각이었는데, 전혀 그럴 기분이 안 들고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얌체같지만 바로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기억에 제가 주차한 곳은 '3층의 B구역'이었습니다. 차가 없더군요. 그래서 2층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4층, 그러다가 힘이 빠지고 정신도 혼란스러워 엄마한테 전화했습니다. 돈 잃어버렸고, 지금 차를 어디다 주차했는지 찾을 수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다 5층까지 갔는데, 거기서 직원을 만났습니다. "죄송한데, 제가 지금 은행에 갔다가 돈을 잃어버려서 정신이상(?)이 된 것 같다. 도저히 차를 못 찾겠다"고 말했더니, 차종과 번호를 묻더군요. 번호가 생각이 안 나더군요. 번호판 바뀌기 전 번호를 댈 뻔 했습니다. 다행히, 제 차가 매우 드문 차여서 차종과 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3층 A구역'에 있다더군요. 그렇게 어렵게 집에 왔습니다.
집에 오니, 허탈하고 화가 나서 아무것도 못하겠더군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12에 전화했습니다. 경위를 얘기했더니, 지구대 전화번호를 가르쳐 줍니다. 거기서 경찰이 집으로 왔습니다. 그 정도 돈이면 큰 돈이라면서 만약 진술서를 쓰면 형사계로 사건이 넘어가서 강력반 형사들이 CCTV 화면을 갖고 탐문수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그 아주머니를 잡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하더군요. 약간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신고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진술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같이 다시 은행으로 갔습니다. CCTV 화면을 Floppy Disk에 저장한다고 하더군요. 아까 저와 말했던 은행직원이 경찰의 요청에 비협조적입니다. 책임자와 함께 봐야 한다는 둥, 저장을 못하니 디카로 찍어가라는 둥... 하다가 경찰이 약간 큰소리를 내자 해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경찰이 제게 디스켓을 사오라고 합니다. 부랴부랴 뛰어가서 사다 줬습니다. 은행직원이 약간 쫄아서 저장을 해주니, 집에 데려다 준다며 타라더군요. 오면서 저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확실한 단서가 나올 때까지 연락할 일은 없을 겁니다."
경찰차 뒷좌석에 타고 경찰과 은행에 갈 때는 의자가 굉장히 낮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차문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경찰이 앞자리에서 내려 밖에서 문을 열어줘야 내릴 수 있더군요. 안에서 보면 문고리가 뜯겨나가 있고, 스프링이랑 약간의 플라스틱만 붙어 있습니다. 앞자리에 계시던 분이 내려서 문을 열어주시는데 그제서야 퍼뜩 생각이 나더군요. '범죄자 도망 방지용'이었던 겁니다. 두 경찰 중 좀 더 친절하고 젊은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문은 안에서 못 여는 거예요."라고...
휴~ 제 잘못이 큰 건 인정하지만, 은행의 미온적인 태도가 정말 싫습니다. 경찰에 집까지 태워주면서 제게 그 은행 다시 거래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저는 다른 은행에서 그런 일을 겪었을 때도 똑같은 대우를 받을까봐 그게 겁이 나서 옮기기도 꺼려집니다.
ATM 사용하실 때는 신중하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용하세요. 오늘 깨달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