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뭐였을까? 1) 자폐아가 뭔지 가르쳐준다 2) 장애아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가르쳐준다 3)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길 기대한다 4) 그저 작가적 영감이 떠올라서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다.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1순위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말아톤'을 보고 싶다며 좋냐고, 보여주겠다고 하길래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보기 전, 얼마나 눈물을 쥐어짜게 만들까? 그 감동이 작위적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했지만 그런 걱정 때문에 큰 기대를 안 하고 봐서 더 감동이 컸던 것 같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이 운 영화는 2번째이다. 첫번째는 고 2땐가 친했던 친구랑 본 '수잔 블링크의 아리랑'이었다. 그 때 울며 슬픈 감정을 어쩔 수 없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는 입양아에 대한 것을 자세히 알려줬고, 어떤 양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슬펐다.

 

그럼, 이 '말아톤'이란 영화는 내게 어떤 의미일까? 이 얘기를 하려면 아주 개인적인 얘기를 해야 하는데 할까 말까 고민이 된다. 그런데 방금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서재는 방문자가 적고, 내가 글을 열심히 올리지 않기 때문에 즐겨찾기 하는 사람도 안 늘어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유명한 서재인이 되고픈 마음은 없기 때문에 내 얘기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다. 우리집에는 장애인이 있다. 정신지체장애인인데, 이건 지능이 낮은 장애다. 지능이 아마도 요즘 아이들에 비춰보면 5살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영화 선전문구에 초원이 지능이 5살 수준이라고 돼있었던 것 같은데 초원이와는 많이 다른 5살 수준이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에 따라서 화폐 개념을 알고, 가게에 혼자 가서 물건도 사오고, 대중교통수단도 혼자 이용하고, 밥도 차려먹을 수 있겠지만 우리집의 장애인-언니는 그런 걸 전혀 못한다.

 

난 이 영화를 보며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갈 때부터 울었다. 영화가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 거라는 걸 한눈에 보여주는 오프닝 크레딧이 어찌나 내 마음에 와닿던지 그 때부터 그저 울컥 하며 눈물이 흘렀다. 계속 그렇게 남들은 재미있게 보고만 있는데 계속 울었다. 왜 그렇게 울었을까? 우리 엄마가 생각나서? 언니가 생각나서? 언니가 앞으로 어떻게 지내게 될지 걱정만 앞서서? 그런 건 나도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다.

 

참 재밌는 영화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아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영화를 보니, 나도 덩달아 편해져서 초원이의 엉뚱한 행동에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다가도 금방 가슴이 아려와서 눈물을 흘리며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넓어진 것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초원이가 지하철에서 폭행당한 후 엄마와 사람들 앞에서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라며 소리치는 장면에서 우는 것 같았다. 내 친구도 거기서 감정이 폭발해 거의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난 그 소리에 더 맘놓고 울었고...

 

친구나 나나 영화에 몰입해 눈물을 닦을 휴지를 찾을 생각을 안 했는데, 갑자기 중간에 친구가 휴지가 있다며 줬다. 그걸로 눈썹에 바른 마스카라를 주의하며 눈물을 찍어냈다. 어찌나 많이 울었는지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땐 그게 다 젖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보니 눈썹에 휴지가 조그맣게 매달려 있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인 것 같다. 이런 류의 영화가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은 허구였다. 그러나, 이건 사실에 기초해서 만든 거고 엄마가 자폐아를 키우며 겪은 우여곡절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에 감동을 자아냈던 것 같다. 끝부분에 나온 sub3를 달성했다는 자막이 '내가 한낱 허구에 매달려서 이렇게 슬퍼한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줬다.

 

조승우, '말아톤', 언론의 역할

 

이 영화는 작년 여름에 크랭크인 해서 올 설을 겨냥해 개봉했다. 촬영 초반에 조승우가 자폐아 연기를 하고, 김미숙이 엄마 역할을 맡았다는 것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저 가벼운 맘으로 볼 수 있는 소품이려니... 했다. 조승우는 TV 출연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역량에 비해 인지도는 굉장히 낮았고, 그의 빼어난 노래 실력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조승우는 그런 것에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충실해 해나갔다.

 

작년 10월에는 수요예술무대에 출연해 일반인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자신의 노래실력을 뽐냈고, 얼마 전에는 '지킬 앤 하이드'라는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했다. 조승우를 최대한 알리고픈 조승우를 매니지먼트하는 회사의 정책과 영화를 되도록 많이 알려 떼돈을 벌고 싶은 말아톤 제작사와 우리는 이만큼 장애인을 생각한다는 언론의 정책이 일치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매니지먼트사나 제작사와는 무관하게 언론사가 장애인을 등에 업고 그들의 이미지를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순수함의 발로였을까? 새해가 밝은 1월 아침 프로그램 등에 초원이의 실제인물인 배형진 씨와 어머니가 출연한 걸 봤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뉴스라인'이라는 곳에 김미숙 씨가 출연한 것도 봤다.

 

우리 세상은 참 재밌다. 내가 너무 한술에 배부르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동네 인근에 장애아 어린이집이 들어선다고 하면, 땅값 떨어진다며 시청에 민원을 넣는 NIMBY현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렇게 TV에서 떠들어대는 그들은 장애인 가족의 고충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걸까?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만났을 때 무섭다고 피할 필요는 없다. 특별히 잘해줄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 특별한 시선을 던질수록 그들은 집에서 못 나온다. 자폐아든 지체장애인이든, 정신지체인이든 다 같은 사람이다. 우리가 평소대로 하면 그들도 편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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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15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제목 참 마음에 듭니다.
많은 이야길 하고 싶지만 마음으로만 나누죠.

하루(春) 2005-02-1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ET가 생각나네요. 손끝을 맞대고 있던 장면.. 마치 로드무비님과 제가 그러고 있는 것 같은... ^^

깍두기 2005-02-1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도 울었지만 님의 글에도 가슴이 뭉클해지는군요.

하루(春) 2005-02-1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이 울어서... 조금 머쓱했지만, 나올 땐 기분 좋았어요.

마늘빵 2005-02-15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만족했던 영화였습니다. 예상했던 바 그대로 진행된. 장애인들을 애써 도우려하지도 안좋게 보려하지도 않는답니다. 어딘선가 장애인들을 그들을 도와주려는 이들의 손길을 부담스러워하고 거기서 스스로 장애인임을 느낀다고 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