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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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느긋한 일요일 오후에 '빛의 제국'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 편안한 마음에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뜨자 약속이라도 한 듯 따스하고 안온한 햇살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추워보이던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아마 '빛의 제국'을 읽은 덕분이 아닌가 한다.

열 편의 단편들이 묘하게 겹칠 듯 겹칠 듯 겹쳐지지 않고 이어지는 모습이 사람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유독 사람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나로서는 각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름들과 이전 작품 속 주인공을 비교하며 읽느라 읽는 내내 앞장과 뒷장을 뒤적이는 데 바빴다. 단편임을 알면서도 묘하게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이름 속에 들어있을 의미를 하나라도 놓칠새라 그짓을 계속하곤 했다. 그렇기에 자칫 감흥이 끊어질까 다시 읽기를 반복했는데도 전혀 질리지가 않는다. 읽을 때마다 새로움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스릴 있는 장면이 아닌 듯 하면서도 '도코노' 일가에 대한 궁금함과 아릿함이 나를 열뜨게 만들곤 한다. 커다란 서랍장에 사람들의 마음과 많은 풍경들을 담고 담아, 그것을 울릴 경지에 오른 가족들. 나지막한 산 속에서 사라진 여대생과, 상상만으로도 마음씨 좋고 푸근할 것만 같은, 언젠가 꼭 만나고 싶은 두루미 선생님. 뒤집히지 않고 뒤집어야만 살 수 있는 가족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모습들. 양치류 식물의 모습을 하고 우리 마음과 이 세계를 잠식해 가는 잡초를 묵묵히 제거하는 사람들. 인정하기 싫은 모습을 계속 부인하다가 결국 자신의 역할에 전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튀거나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세상을 위해 뛰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언제나 조명을 받으며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우리네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단 몇 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인 것인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특별한 도코노 일가가 될 수 있는데 우린 어느 새 검은 그림자를 가진, 도코노 일가를 위협하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빠른 발을 가진 놀라운 능력은 없지만 우린 누구도 하늘을 날 수 있게,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서로 웃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끝없는 능력인데도 우린 왜 자꾸 험해져만 가는 것인지. 우리 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잡초가 자라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서로 남의 몸 속에 자라나는 잡초를 보느라 나에게 자라난 잡초를 못 보는 것이 아닌지. 그런 험한 세상 속에서 홀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빛의 제국'이 험난하고 상처 투성이의 이야기라 여겨지지 않는 것은 사람들끼리 보듬어 주는 마음과 마지막 부분의 연주회 장면 덕분이 아닌가 한다. 10년 후 만나야 할 이들이 모인 자리의 흥성스러움이 가슴을 후끈히 데워주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의 아픔을 줄이기 위해 그들이 뭔가를 시작해 줄 것만 같은 기대가 읽는 나로 하여금 이것이 소설임을 잊게 만들어준다.

작가가 이토록 많은 인물을 창조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지 그녀가 토로하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작가의 말처럼 하나의 단편만으로도 충분한 장편이 구성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연작 소설이기에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하련다. '온다 리쿠' 그녀를 믿기 때문이다.

커다란 서랍장을 지닌 일가만큼은 아니라도 나역시 그러한 서랍장을 하나 가지고 싶다. 그것이 울림통으로써의 역할을 할 때가 온다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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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3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다 리쿠, 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네요. 님은 온다 리쿠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시나 봅니다. 기회 되면 읽어보고 싶어지는 리뷰입니다. 반가워요^^

sokdagi 2007-01-30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지 반갑습니다. 메아리를 들은 듯 해서요. ^^ 온다 리쿠의 작품은 우연한 기회로 접한 소설인데 요즘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님 서재에서 좋은 동화책 많이 퍼왔답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어서요. 참고 많이 해도 되죠?

산도 2007-03-05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저하고 있던 마음에 확신을 주네요.
좋은 리뷰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sokdagi 2007-03-0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이 필요한 하루였는데 ^^ 칭찬해 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부디 실망하시지 않았으면 하네요. 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