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의 사랑과 학문
로이스 W. 배너 지음, 정병선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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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에 획을 그은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 그들의 눈부신 학문적 업적과 지적인 성취, 사랑과 자유연애, 그 시절 지적 풍토가 놀랍도록 세밀하게, 문학적으로 펼쳐진다. 연인이자 사제관계였던 그 둘이 그즈음 남성들이 판치던 학계에서 서로 끌어주며 당차게 맞서는 장면들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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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 우리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드는 83가지 질문,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피터 싱어 지음, 박세연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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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윤리학 거장 피터 싱어의 글은 언제 읽어도 명쾌하고 뜨겁다. 이 책의 글들은 더 쉽고 간결하지만 그 울림은 여전히 크다. 생명, 도덕, 젠더, 동물권, 과학기술, 기부, 정치 등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결국 해답은 ‘인류애’와 ‘생명 가치’에 있음을 전한다. 새해에 읽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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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급행열차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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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편들이지만, 읽는데 매우 오래 걸린다. 천천히 문장 아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느라 집중, 또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 설터, 그가 쓴 문장은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의 10분의 1 정도만 보여준다. 삶의 미세한 균열이 기어이 터지고 마는 순간을 이토록 잘 포착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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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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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는 일은 사람이 자기를 들여다보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이다. 단편 소설을 읽는 일은 때때로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물론 여기서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사람이 아닌, 한 사회이리라. 어떤 사회의 단면을 보기 위해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참고하는 일은 가장 손쉬운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필터를 통해 바라본 한 사회의 모습은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때로 더욱 많은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인 <웃는 남자>, 그 안에 실린 단편 하나하나를 읽노라니, 거울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2000년대의 한국 그 어느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또는 이미 일어난 일들을 지켜보는 심정. 지금의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살아낸, 살아나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쉽지 않은 인생을 엿본다. 그런데 그 풍경은 하나같이 행복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인다. 평화롭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 하나씩은 잃어버렸고(‘웃는 남자’, ‘존엄의 탄생’, ‘최미진은 어디로’, ‘여름방학’, ‘개의 밤’ 등) 잃어버릴 위험에 처했거나(‘웃는 남자’, ‘이혼’), 간직했었다고 느꼈던 것이 실은 순전히 자신만의 착각이었음을(‘평범해진 처제’)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모두 한없이 쓸쓸하고 초라하다.

<웃는 남자>에 실린 일곱 작품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 보이는 이들이 있는가? 그래서 어쩌면 ‘웃는 남자’라는 이 단편 모음집의 제목은 매우 역설적이다. 어쩌면 <웃는 남자>는 이토록 힘든 오늘날의 한국에서 인간으로서 살아남으려면 고통 속에서도 웃는 법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다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로 읽은 김숨의 ‘이혼’부터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이혼을 앞둔 ‘민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읽어갈수록 답답하다. 가부장의 폭력으로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엄마와 그런 엄마를 대신해 이혼 서류까지 만들어왔던 민정은 이제 자신의 이혼을 앞두고 있다. 대물림 되는 ‘이혼’의 풍경 속에서 지금 이 땅의 수많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을 가정폭력과 해체의 문제를 세밀하게 다룬다. 민정은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이미 한 번 가정이 망가진 경험을 했다. 그런데 또 다시 가정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삶의 풍경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 켜진 어느 한 집안에서는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조금 유쾌한 작품인가 싶은 기대로 읽어나간 김언수의 ‘존엄의 탄생’에서는 매우 익숙한 망원동 골목 풍경이 펼쳐진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캣맘,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백수나 마찬가지인 박진수, 그리고 그들 주변을 어슬렁대면서 진수의 신경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떠돌이 개. 진수는 어쩌면 이 사회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쓸모없는 잉여인간이며, 그 잉여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왠지 떠돌이 개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가 싶어 슬그머니 개에게 발길질을 한다. 어떤 장면 장면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 뒷맛은 역시 쓰다.

이기호의 ‘최미진은 어디로’도 이와 비슷하다. 블랙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어 키득키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중고 책을 팔러 나온 사람과 자기 책을 형편없는 가격에 판매하는 사람에 대한 분노와 일종의 호기심 때문에 직접 거래에 나선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과연 어떤 사연이 펼쳐질까, 싶었는데 그 끝은 조금 허무하고 마찬가지로 씁쓸하다. ‘존엄의 탄생’의 ‘진수’나 ‘최미진은 어디로’의 작가 ‘나’ 모두 어찌 보면 이 사회에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다. 경제적 가치로만 따진다면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아마 가장 밑바닥이 되지 않을까? 그런 이들이기에 이 사회에서 얼마나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살기 힘들었을지 이 짧은 단편을 보면서도 고스란히 그 괴로움이 전해온다. 그렇기에 ‘최미진은 어디로’의 ‘나’는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려고’(245쪽) 하다가 그런 자기 자신을 깨닫고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그건 ‘나’가 작가라는 신분이기에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느끼며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여느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욕 당할까봐 상대에게 먼저 모욕을 주는 행위를 오늘도 곳곳에서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지 않을까? 이렇듯, 이 두 작품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버린, 그 존엄을 잊어야만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오히려 쉽사리 누군가에게 ‘모욕감’을 주는 이 사회의 풍경이 ‘웃프게’ 그려진다.

윤고은의 ‘평범해진 처제’에서는 젊은 세대의 사랑, 또는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그 어떤 애매한 관계’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페이스북, SNS, 자전거, 종주 기념 도장 등 오늘날 이 사회의 익숙한 풍경 속에 정기적으로 야동을 보고 리뷰를 쓰는 작가라는 조금은 재미난 설정이 등장한다. 가볍고도 능청스러운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그 결말 또한 어쩐지 쓸쓸하다. 한때는, 연인 사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어색했어도, 그럼에도 자신을 좋아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상의 진실이 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이의 씁쓸하고도 비루한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머쓱한, 오해와 오독이 빚어낸 관계의 풍경이 펼쳐진다.

황정은의 ‘웃는 남자’는 나머지 작품들이 가진 개인적인 서사 안에서 조금 더 진폭을 넓혀서 한국 현대 사회가 겪어왔던 굵직한 사건들을 과하지 않게 담아냈다. 연인을 잃어버린 d의 일상을 통해 서울 주변부 반지하방, 음악조차 마음대로 들을 수 없는 고시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세운상가 풍경이 펼쳐진다. d와 그가 만나는, 그를 스치고 지나가는 인물들 사연으로 한국전쟁, 산업화, 독재와 민주화 운동, 세월호 사건을 지나 이른바 ‘헬조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d는 세운상가의 ‘여소녀’로부터 우연히 구입한 오디오로 음악을 들으며 잃어버렸던 생(生)의 의지를 조금씩 되찾는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81쪽)는 신세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d가 언젠가는 ‘웃을’ 수 있을까? 소음이 아닌 소리의 세상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 그다지 희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건 사실, 명예퇴직 이후 새로운 노년의 삶을 모색하는 ‘이병자’의 이야기를 그린 ‘여름방학’이나, 비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더욱 ‘속물적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김’의 이야기를 담은 ‘개의 밤’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계의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풍경은 아닐까.

고백하건데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나는 언제부터인가 한국 현대 문학을 잘 읽지 않았다. 대학 때까지는 한국 문학을 꽤 많이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더는 읽지 않게 되었다. 거울에 비친 너무나도 생생한 그 풍경들이, 익히 봐온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들을 마주한다는 게 때로는 신물이 났던 것 같다. 좀 더 넓은 세상, 내가 잘 모르는 세상이 펼쳐지는 낯선 나라의 문학이 더 좋았다.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나’의 모습은 요즘 어떤지 거울 앞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이런 ‘단편 모음집’은 꽤 유용하다. <웃는 남자>는 오늘날 한국 현실을 생생하게 거울에 비춰준다. 그것이 비록 ‘헬조선’- 환멸로부터 탈출 할 곳 없는 지옥도 같은 풍경일지라도 그것을 직시해야만 한다고, 그래야 어쩌면 소음이 아닌 소리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그런 가능성이라도 찾을 수 있다고 일곱 개의 단편은 저마다 아우성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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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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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에서 출간되는 시리즈 가운데 가장 아끼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제임스 설터(James Salter)’를 꼽을 것 같다. 최근 그의 단편 모음집 <아메리칸 급행열차 Dusk and Other Stories>가 출간되었다. 2010년 <어젯밤>을 시작으로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텀을 두고 꾸준히 나오고 있다. 작년과 재작년에 나온 <그때 그곳에서>, <사냥꾼들>은 사두기만 하고 아직 읽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 <어젯밤>, <가벼운 나날>, <스포츠와 여가>, <올 댓 이즈> 는 모두 읽어봤다.


며칠 전 <아메리칸 급행열차> 출간 소식을 듣고는 탄식했다. 아니, 왜 하필이면 내가 1월 할당량 책을 모두 주문한 다음에 나왔는가!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고는 2월에 사자,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결국 설터의 손짓에 굴복하고 말았다. 알라딘 굿즈고 뭐고 이것저것 따질 틈 없이 이 책을 주문해서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을 몇 권 읽어 본 결과 설터는, ‘장편’보다는 ‘단편’에 탁월하다. <아메리칸 급행열차>에 실린 첫 번째 작품 ‘탕헤르 해변에서’를 읽노라니, 그래, 역시 설터는 단편이야! 만족감이 차올랐다. 그를 처음 알게 된 <어젯밤 Last Night>을 읽었을 때의 흥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책꽂이에서 <어젯밤>을 오랜만에 꺼내서 뒤적이기 시작했다.

<어젯밤>의 뒤표지에는 수잔 손택의 평이 실려 있다. ‘제임스 설터는 독서의 강렬한 즐거움을 아는 독자들에게 특히 어울리는 작가다.’- 소설가 하성란은 ‘제임스 설터는 너무 늦게 우리 독자에게 왔다. 왜 존 치버나 레이먼드 카버에 가려져 있었는지!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의 소설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말한다. 정말 그렇다. 나는 이토록 강렬하면서도 완벽한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애초에 알라딘에서 소개 글을 읽다가 이 문장 하나에 그냥 꽂혔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어젯밤>을 사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녀는 열다섯이었고 그는 매일 아침 그녀의 몸을 안았다. 그때는 그게 삶의 시작이었는지, 아니면 삶을 망치고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스타의 눈’, 42쪽)

<어젯밤>에는 제임스 설터가 그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작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단편 10개가 실려 있다. 그가 자신하듯 한 작품 한 작품 모두 대단하다. 나는 어떤 작품을 읽자마자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는 일은 거의 없는데 설터의 작품은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그래서 놀랍다. 하나의 단편이 끝나자마자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또 읽고 싶어진다. 혹시 내가 놓친 부분, 또는 내가 잘못 생각한 부분은 없는지 다시 읽는다. 아니,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 여운이 몹시도 강렬하기에 나도 모르게 읽고 또 읽는다.

한편의 긴 시를 읽는 느낌이다. 화려한 문장을 자랑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레이먼드 카버처럼 단문 위주다. 별다른 꾸밈도 수식도 없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런데도 강렬하게 아름답다. 이 책의 옮긴이는 설터의 작품을 읽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번역을 하고 있었노라고 고백을 했다. 옮긴이의 이 고백에 진심으로 공감이 갔다. 번역본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설터가 쓴 원문 그대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원래 문장은 어떨까 무척 궁금해진다.

10개의 단편 속 인물들은 모두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그 삶이 어느 순간 비틀어진다. 인생이 어긋나기 시작한 순간, 어쩔 수 없이 예전의 삶과는 갑자기 달라지는 삶. 언제 그렇게 되었을까? 설터는 그 순간을 놀랍도록 포착한다. 설터의 작품 속 인물들은 욕망하고, 사랑하고, 배신하고, 유혹한다. 어그러진 인간관계의 파편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그래서 읽고 있노라면 쓰다. 상실감, 공허함, 슬픔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런데 매우 아름답고 강렬하다. 삶과 인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 돋보인다.

그 시절, <어젯밤>을 읽고 이런 작품을, 이런 작가를 지금에야 만나다니! 안타까운 심정이 들기도 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그 때 만난 게 차라리 다행스럽다. 설터의 작품은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본 후에 읽었을 때 더 다가오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0대에 만나고 20대에 그의 작품을 만났다면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복은 다른 걸 갖는 게 아니라 언제나 똑같은 걸 갖는 데 있다는 걸 난 그때 몰랐어’(‘방콕’, 163쪽) 이런 문장을 내가 10대, 20대에 봤어도 절절하게 공감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때문에 좀 더 나이 들어서 설터의 작품을 다시 읽는다면 그때는 또 어떨까 기대 되기도 한다.

어느덧 그때로부터 8년이 흘러 <아메리칸 급행열차>가 다시 내 머리맡에 놓여졌다. 이제 겨우 한 작품 읽었을 뿐이지만, 8년 전 제임스 설터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흥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강렬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쓰디 쓴 이야기들……. 평소 소설 읽기를 무척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제임스 설터 의 작품에서 한동안 빠져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어젯밤>도 <아메리칸 급행열차>도 쓰고 싶은 욕망을 활활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내가 좋아할 물건을 찾아내기는 쉬웠다. 우린 취향이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취향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난 항상 취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건 아마도 옷을 입는 방식이나 또는, 같은 이유로, 벗는 방식으로 전해지는데, 취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학습되고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가끔 했다.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또 바꿀 수 없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나 책이나 어떤 인물이 그들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그전에 어땠는지 알고 있다면 사실 별로 바뀐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상대방이 매력적이긴 해도 완벽하지는 않을 때, 사람들은 결혼한 다음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론 잘해야 한 가지 정도를 바꿀 수 있을 뿐이고, 그것마저도 결국은 예전처럼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포기’,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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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8-01-19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설터, 완전 좋아요!! 잠자냥 님의 이렇게 황홀한 리뷰를 읽었으니 <아멘리칸 급행열차>를 빨리 만나야겠네요^^

잠자냥 2018-01-19 11:57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좋죠!! 저도 <어젯밤> 리뷰 다른 분들이 쓰신 것 읽어보다가 가장 첫 페이지에 있는 자목련 님의 리뷰를 좀 전에 읽고 그래, 그래, 맞아, 맞아.... ㅎㅎ 하고 왔답니다. ㅎㅎ <아메리카 급행열차> 급행으로 주문하셔서, 천천히~음미하며 읽으세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8-01-1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중의 작가란 표현이 명불허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표지는 정말 뚝심있네요.

잠자냥 2018-01-19 17:18   좋아요 0 | URL
표지는 모아놓고 보니 또 그럭저럭 통일감은 있네요. 하하하하. -_-;;; 즐겁게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