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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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에서 출간되는 시리즈 가운데 가장 아끼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제임스 설터(James Salter)’를 꼽을 것 같다. 최근 그의 단편 모음집 <아메리칸 급행열차 Dusk and Other Stories>가 출간되었다. 2010년 <어젯밤>을 시작으로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텀을 두고 꾸준히 나오고 있다. 작년과 재작년에 나온 <그때 그곳에서>, <사냥꾼들>은 사두기만 하고 아직 읽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 <어젯밤>, <가벼운 나날>, <스포츠와 여가>, <올 댓 이즈> 는 모두 읽어봤다.


며칠 전 <아메리칸 급행열차> 출간 소식을 듣고는 탄식했다. 아니, 왜 하필이면 내가 1월 할당량 책을 모두 주문한 다음에 나왔는가!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고는 2월에 사자,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결국 설터의 손짓에 굴복하고 말았다. 알라딘 굿즈고 뭐고 이것저것 따질 틈 없이 이 책을 주문해서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을 몇 권 읽어 본 결과 설터는, ‘장편’보다는 ‘단편’에 탁월하다. <아메리칸 급행열차>에 실린 첫 번째 작품 ‘탕헤르 해변에서’를 읽노라니, 그래, 역시 설터는 단편이야! 만족감이 차올랐다. 그를 처음 알게 된 <어젯밤 Last Night>을 읽었을 때의 흥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책꽂이에서 <어젯밤>을 오랜만에 꺼내서 뒤적이기 시작했다.

<어젯밤>의 뒤표지에는 수잔 손택의 평이 실려 있다. ‘제임스 설터는 독서의 강렬한 즐거움을 아는 독자들에게 특히 어울리는 작가다.’- 소설가 하성란은 ‘제임스 설터는 너무 늦게 우리 독자에게 왔다. 왜 존 치버나 레이먼드 카버에 가려져 있었는지!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의 소설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말한다. 정말 그렇다. 나는 이토록 강렬하면서도 완벽한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애초에 알라딘에서 소개 글을 읽다가 이 문장 하나에 그냥 꽂혔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어젯밤>을 사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녀는 열다섯이었고 그는 매일 아침 그녀의 몸을 안았다. 그때는 그게 삶의 시작이었는지, 아니면 삶을 망치고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스타의 눈’, 42쪽)

<어젯밤>에는 제임스 설터가 그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작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단편 10개가 실려 있다. 그가 자신하듯 한 작품 한 작품 모두 대단하다. 나는 어떤 작품을 읽자마자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는 일은 거의 없는데 설터의 작품은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그래서 놀랍다. 하나의 단편이 끝나자마자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또 읽고 싶어진다. 혹시 내가 놓친 부분, 또는 내가 잘못 생각한 부분은 없는지 다시 읽는다. 아니,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 여운이 몹시도 강렬하기에 나도 모르게 읽고 또 읽는다.

한편의 긴 시를 읽는 느낌이다. 화려한 문장을 자랑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레이먼드 카버처럼 단문 위주다. 별다른 꾸밈도 수식도 없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런데도 강렬하게 아름답다. 이 책의 옮긴이는 설터의 작품을 읽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번역을 하고 있었노라고 고백을 했다. 옮긴이의 이 고백에 진심으로 공감이 갔다. 번역본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설터가 쓴 원문 그대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원래 문장은 어떨까 무척 궁금해진다.

10개의 단편 속 인물들은 모두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그 삶이 어느 순간 비틀어진다. 인생이 어긋나기 시작한 순간, 어쩔 수 없이 예전의 삶과는 갑자기 달라지는 삶. 언제 그렇게 되었을까? 설터는 그 순간을 놀랍도록 포착한다. 설터의 작품 속 인물들은 욕망하고, 사랑하고, 배신하고, 유혹한다. 어그러진 인간관계의 파편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그래서 읽고 있노라면 쓰다. 상실감, 공허함, 슬픔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런데 매우 아름답고 강렬하다. 삶과 인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 돋보인다.

그 시절, <어젯밤>을 읽고 이런 작품을, 이런 작가를 지금에야 만나다니! 안타까운 심정이 들기도 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그 때 만난 게 차라리 다행스럽다. 설터의 작품은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본 후에 읽었을 때 더 다가오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0대에 만나고 20대에 그의 작품을 만났다면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복은 다른 걸 갖는 게 아니라 언제나 똑같은 걸 갖는 데 있다는 걸 난 그때 몰랐어’(‘방콕’, 163쪽) 이런 문장을 내가 10대, 20대에 봤어도 절절하게 공감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때문에 좀 더 나이 들어서 설터의 작품을 다시 읽는다면 그때는 또 어떨까 기대 되기도 한다.

어느덧 그때로부터 8년이 흘러 <아메리칸 급행열차>가 다시 내 머리맡에 놓여졌다. 이제 겨우 한 작품 읽었을 뿐이지만, 8년 전 제임스 설터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흥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강렬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쓰디 쓴 이야기들……. 평소 소설 읽기를 무척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제임스 설터 의 작품에서 한동안 빠져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어젯밤>도 <아메리칸 급행열차>도 쓰고 싶은 욕망을 활활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내가 좋아할 물건을 찾아내기는 쉬웠다. 우린 취향이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취향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난 항상 취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건 아마도 옷을 입는 방식이나 또는, 같은 이유로, 벗는 방식으로 전해지는데, 취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학습되고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가끔 했다.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또 바꿀 수 없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나 책이나 어떤 인물이 그들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그전에 어땠는지 알고 있다면 사실 별로 바뀐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상대방이 매력적이긴 해도 완벽하지는 않을 때, 사람들은 결혼한 다음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론 잘해야 한 가지 정도를 바꿀 수 있을 뿐이고, 그것마저도 결국은 예전처럼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포기’,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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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8-01-19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설터, 완전 좋아요!! 잠자냥 님의 이렇게 황홀한 리뷰를 읽었으니 <아멘리칸 급행열차>를 빨리 만나야겠네요^^

잠자냥 2018-01-19 11:57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좋죠!! 저도 <어젯밤> 리뷰 다른 분들이 쓰신 것 읽어보다가 가장 첫 페이지에 있는 자목련 님의 리뷰를 좀 전에 읽고 그래, 그래, 맞아, 맞아.... ㅎㅎ 하고 왔답니다. ㅎㅎ <아메리카 급행열차> 급행으로 주문하셔서, 천천히~음미하며 읽으세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8-01-1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중의 작가란 표현이 명불허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표지는 정말 뚝심있네요.

잠자냥 2018-01-19 17:18   좋아요 0 | URL
표지는 모아놓고 보니 또 그럭저럭 통일감은 있네요. 하하하하. -_-;;; 즐겁게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