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거울을 보는 일은 사람이 자기를 들여다보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이다. 단편 소설을 읽는 일은 때때로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물론 여기서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사람이 아닌, 한 사회이리라. 어떤 사회의 단면을 보기 위해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참고하는 일은 가장 손쉬운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필터를 통해 바라본 한 사회의 모습은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때로 더욱 많은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인 <웃는 남자>, 그 안에 실린 단편 하나하나를 읽노라니, 거울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2000년대의 한국 그 어느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또는 이미 일어난 일들을 지켜보는 심정. 지금의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살아낸, 살아나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쉽지 않은 인생을 엿본다. 그런데 그 풍경은 하나같이 행복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인다. 평화롭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 하나씩은 잃어버렸고(‘웃는 남자’, ‘존엄의 탄생’, ‘최미진은 어디로’, ‘여름방학’, ‘개의 밤’ 등) 잃어버릴 위험에 처했거나(‘웃는 남자’, ‘이혼’), 간직했었다고 느꼈던 것이 실은 순전히 자신만의 착각이었음을(‘평범해진 처제’)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모두 한없이 쓸쓸하고 초라하다.

<웃는 남자>에 실린 일곱 작품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 보이는 이들이 있는가? 그래서 어쩌면 ‘웃는 남자’라는 이 단편 모음집의 제목은 매우 역설적이다. 어쩌면 <웃는 남자>는 이토록 힘든 오늘날의 한국에서 인간으로서 살아남으려면 고통 속에서도 웃는 법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다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로 읽은 김숨의 ‘이혼’부터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이혼을 앞둔 ‘민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읽어갈수록 답답하다. 가부장의 폭력으로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엄마와 그런 엄마를 대신해 이혼 서류까지 만들어왔던 민정은 이제 자신의 이혼을 앞두고 있다. 대물림 되는 ‘이혼’의 풍경 속에서 지금 이 땅의 수많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을 가정폭력과 해체의 문제를 세밀하게 다룬다. 민정은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이미 한 번 가정이 망가진 경험을 했다. 그런데 또 다시 가정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삶의 풍경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 켜진 어느 한 집안에서는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조금 유쾌한 작품인가 싶은 기대로 읽어나간 김언수의 ‘존엄의 탄생’에서는 매우 익숙한 망원동 골목 풍경이 펼쳐진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캣맘,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백수나 마찬가지인 박진수, 그리고 그들 주변을 어슬렁대면서 진수의 신경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떠돌이 개. 진수는 어쩌면 이 사회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쓸모없는 잉여인간이며, 그 잉여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왠지 떠돌이 개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가 싶어 슬그머니 개에게 발길질을 한다. 어떤 장면 장면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 뒷맛은 역시 쓰다.

이기호의 ‘최미진은 어디로’도 이와 비슷하다. 블랙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어 키득키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중고 책을 팔러 나온 사람과 자기 책을 형편없는 가격에 판매하는 사람에 대한 분노와 일종의 호기심 때문에 직접 거래에 나선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과연 어떤 사연이 펼쳐질까, 싶었는데 그 끝은 조금 허무하고 마찬가지로 씁쓸하다. ‘존엄의 탄생’의 ‘진수’나 ‘최미진은 어디로’의 작가 ‘나’ 모두 어찌 보면 이 사회에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다. 경제적 가치로만 따진다면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아마 가장 밑바닥이 되지 않을까? 그런 이들이기에 이 사회에서 얼마나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살기 힘들었을지 이 짧은 단편을 보면서도 고스란히 그 괴로움이 전해온다. 그렇기에 ‘최미진은 어디로’의 ‘나’는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려고’(245쪽) 하다가 그런 자기 자신을 깨닫고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그건 ‘나’가 작가라는 신분이기에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느끼며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여느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욕 당할까봐 상대에게 먼저 모욕을 주는 행위를 오늘도 곳곳에서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지 않을까? 이렇듯, 이 두 작품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버린, 그 존엄을 잊어야만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오히려 쉽사리 누군가에게 ‘모욕감’을 주는 이 사회의 풍경이 ‘웃프게’ 그려진다.

윤고은의 ‘평범해진 처제’에서는 젊은 세대의 사랑, 또는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그 어떤 애매한 관계’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페이스북, SNS, 자전거, 종주 기념 도장 등 오늘날 이 사회의 익숙한 풍경 속에 정기적으로 야동을 보고 리뷰를 쓰는 작가라는 조금은 재미난 설정이 등장한다. 가볍고도 능청스러운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그 결말 또한 어쩐지 쓸쓸하다. 한때는, 연인 사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어색했어도, 그럼에도 자신을 좋아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상의 진실이 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이의 씁쓸하고도 비루한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머쓱한, 오해와 오독이 빚어낸 관계의 풍경이 펼쳐진다.

황정은의 ‘웃는 남자’는 나머지 작품들이 가진 개인적인 서사 안에서 조금 더 진폭을 넓혀서 한국 현대 사회가 겪어왔던 굵직한 사건들을 과하지 않게 담아냈다. 연인을 잃어버린 d의 일상을 통해 서울 주변부 반지하방, 음악조차 마음대로 들을 수 없는 고시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세운상가 풍경이 펼쳐진다. d와 그가 만나는, 그를 스치고 지나가는 인물들 사연으로 한국전쟁, 산업화, 독재와 민주화 운동, 세월호 사건을 지나 이른바 ‘헬조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d는 세운상가의 ‘여소녀’로부터 우연히 구입한 오디오로 음악을 들으며 잃어버렸던 생(生)의 의지를 조금씩 되찾는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81쪽)는 신세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d가 언젠가는 ‘웃을’ 수 있을까? 소음이 아닌 소리의 세상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 그다지 희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건 사실, 명예퇴직 이후 새로운 노년의 삶을 모색하는 ‘이병자’의 이야기를 그린 ‘여름방학’이나, 비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더욱 ‘속물적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김’의 이야기를 담은 ‘개의 밤’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계의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풍경은 아닐까.

고백하건데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나는 언제부터인가 한국 현대 문학을 잘 읽지 않았다. 대학 때까지는 한국 문학을 꽤 많이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더는 읽지 않게 되었다. 거울에 비친 너무나도 생생한 그 풍경들이, 익히 봐온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들을 마주한다는 게 때로는 신물이 났던 것 같다. 좀 더 넓은 세상, 내가 잘 모르는 세상이 펼쳐지는 낯선 나라의 문학이 더 좋았다.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나’의 모습은 요즘 어떤지 거울 앞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이런 ‘단편 모음집’은 꽤 유용하다. <웃는 남자>는 오늘날 한국 현실을 생생하게 거울에 비춰준다. 그것이 비록 ‘헬조선’- 환멸로부터 탈출 할 곳 없는 지옥도 같은 풍경일지라도 그것을 직시해야만 한다고, 그래야 어쩌면 소음이 아닌 소리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그런 가능성이라도 찾을 수 있다고 일곱 개의 단편은 저마다 아우성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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