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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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특유의 전형성, 예측 가능한 내용들이 진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문학은 보통 이렇다. 전쟁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가는 개인. 그 사람은 틀림없이 전쟁터로 끌려가기 전에 지고지순한, 또는 애절한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사랑이 한창 피어오를 즈음 전쟁이 터지고 그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두 연인은 헤어진다. 전쟁터로 끌려간 남자는 그곳에서 인간성을 말살해버리는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더없이 끔찍하면서도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다.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바람이 되고, 애틋하게 연인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희망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비롯된 온갖 오해로 인해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거의 이렇지 않은가? 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 가운데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처럼 참신한 작품을 찾아보기란 좀처럼 어렵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이 나왔을 때, 책 소개를 통해 전쟁 소재 문학임을 알고는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외면했다. 예측 가능한 내용들이 펼쳐지겠지. 그런데 문학상은 보통 이런 어떤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에 수상하는 일이 잦으니까, 맨부커상도 그런 선택을 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 상이 맨부커상이라는 점에서 아주 관심을 끊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은 바쇼의 <오쿠로 가는 작은 길> 영어판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는 글을 읽게 되었고, 바쇼의 하이쿠가 이 책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자못 궁금해졌다.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을 때는 역시 예측 가능한 내용들에 조금 김이 빠졌다. 내가 상상했던 내용과 거의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뭇 남자들의 뜨거운 시선을 외면하고 도리고 에번스 앞에 당차게 나타나는 에이미- 이토록 진부하고 클리셰에 충실할 수가. 물론 도리고가 에이미를 다시 만나고 둘 사이의 장벽을 알게 되는 순간은 예상치 못한 전개라서 갑자기 흥미가 솟구쳤다. 그런데 이 또한 도리고와 에이미의 애절하고도 안타까운 사랑을 한층 극대화하는데 필요한 하나의 장치인 셈이지 않은가. 게다가 도리고, 미남 도리고. ‘모든 여자가 남몰래 갈망하는 남자’(482쪽) 도리고라니. 이런 설정에는 조금 실소가 나기도 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좀 더 그의 고통과 번민이 더 잘 전달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 둘이 폭발적으로 서로에게 빠져들 즈음, 도리고는 전쟁터로 끌려가고 전쟁포로가 되어 숨이 붙은 것을 저주할 정도로 최악의 경험을 한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이제는 전쟁영웅이 된 도리고의 모습이 과거와 교차하면서 드러난다. 전쟁에서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참혹한 광경을 지켜봤기에 현재 그의 모습은 살아남았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그는 방탕하고 무의미한 삶을 그저 이어나갈 뿐이다. 이 또한 작품을 읽기 전에 예측 가능했던 내용이다.

그런데 바쇼의 하이쿠, 그 하이쿠들이 이 작품을 조금 색다르게 만든다. 책을 읽다 보니 바쇼를 비롯해 잇사, 부손 등 일본 하이쿠 대가들은 물론 그들의 작품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심지어 작품 속에서 나카무라와 고토 등 일본군들은 바쇼의 하이쿠가 일본 정신의 상징이라고 말하면서 포로들을 괴롭히거나, 그들 중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 하이쿠를 읊기도 한다.


철도를 위하여. 고타 대령이 찻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일본을 위하여. 나카무라가 자신의 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천황 폐화를 위하여! 고타 대령이 말했다.
바쇼를 위하여! 나카무라가 말했다.
잇사!
부손! (162쪽)

서로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하이쿠를 읊어주었다. 시 자체보다는 시에 대한 서로의 감수성이, 시에 깃듯 천재성보다는 시를 이해하는 서로의 지혜가 두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자신이 시를 안다는 사실 보다는 시가 자신들과 일본 정신의 고귀한 측면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그 일본 정신은 이제 곧 철로를 따라 매일 버마까지 이동할 것이고, 버마에서부터 인도까지 나아갈 것이며, 거기에서 다시 세계를 정복하게 될 터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일본 정신이 바로 철로고 철로가 바로 일본 정신인 거야. 나카무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바쇼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더 넓은 세상에 알게 될, 저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인 거지. (163쪽)

이 작품을 읽다 말고 바쇼의 하이쿠에 관심이 생겨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읽었다. 바쇼가 살았던 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가 세웠던 에도 막부 초창기의 혼란스러움이 진정되고 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인 계급 조닌(町人)들의 문화가 꽃피기 시작할 때였다. 철저하게 세속적인 조닌 문화의 쾌락주의는 무사 문화의 금욕적 윤리와 이중구조를 이룬다. 이렇게 감각적이면서도 동시에 금욕적이기도 했던 시대에 바쇼는 세상 흐름의 어느 것과도 전혀 다른 삶을 지향한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 때 오히려 그는 도시를 떠나 멀고 먼 변방으로 고된 여행을 떠난다. 일본 동북부 지역 ‘오쿠’까지 2,4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걸어서….

그런 바쇼의 하이쿠가 전쟁터에서, 그것도 포로들을 가차없이 학대하는 나카무라나 고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꽤나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나카무라와 고타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범들이 재판 받고 처형당할 때도 운 좋게 살아남아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오히려 승승장구한다. 자신들은 전범이 아니라, 천황의 선한 뜻을 실제로 행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포로들을 학대한 것 또한 그 위업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치부한다. ‘구타는 더 나은 선(善)을 위해 필요한 일’(357쪽)이었던 것이다. 하이쿠를 그토록 사랑했던 나카무라에게 천황은 하나의 시(詩)였다.


그가 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이 바로 시(詩)인데, 천황 폐하는 그 자체로서 시였다. 어쩌면 가장 위대한 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는 우주를 모두 포함했으며, 모든 도덕과 고통을 초월했다. 위대한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천황 폐하라는 시 또한 선과 악 너머에 있었다. (478쪽)


나카무라는 선하기 그지없는 아내와 살면서 자신 안의 선한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급기야 자신은 원래 착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죽기 직전까지 바쇼의 하이쿠를 읽으며 ‘살아 있는 부처가 되려 했다’(444쪽)는 고타와 닮은꼴이다. 그렇게 반성도 참회도 속죄도 없이 자기 안의 선함을 발견했다고 기뻐하고, 살아 있는 부처가 되기를 바라면서 죽어간 전범들의 몰염치한 모습은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한다. 전쟁포로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고통의 흔적인 녹슨 기차가 그들에게는 위대한 업적으로 남아 야스쿠니 신사에 전시해야 마땅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거기서 그들이 본 것은 1944년 시암-버마 철로를 끝까지 다린 첫 번째 기관차가 껍데기만 남아 녹슬어 가고 있는 광경이었다. 기술자들은 그 기관차를 복구중이며, 그것을 일본으로 가져와 야스쿠니신사에 전시해서 자신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464쪽)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이렇게 전쟁포로가 된 이들의 삶과 전쟁에서 천황의 선한 의지를 행했다고 말하는 일본군관들의 삶을 겹쳐 보여주면서 전쟁이 남긴 상처를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그 어떤 인물도 이 삶에서 승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도리고는 말할 것도 없고, 그와 얽힌 여성들- 앨런, 에이미. 에이미의 남편 키스 멀베이니. 그들 모두 삶이라는 덫에 걸린 패배자들이다. 나카무라나 고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원하던 대로 굴러갔는가? ‘사람이 온 세상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는 있지만, 승자는 언제나 세상’(352쪽)인 것이다.


인생은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운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대게 인생은 누가 미리 농간을 부려둔 카드와 같았다. 그러니 그저 다음 걸음을 제대로 내딛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283쪽)


도리고도 에이미도 ‘그 다음 걸음’을 제대로 내딛지는 못한 것 같다. 앨런이나 키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앨런과 키스의 그 기만적 행위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어쩌자고 그러는지 탄식하게 된다. 그들 모두 ‘사랑’이라는 덫에 걸린 가엾은 포로들인 셈이다. 키스나 앨런은 둘 다 자신들이 덫을 놓았지만 그 덫에 걸리고만 것은 결국 자기들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전쟁 이야기면서도 전쟁과도 같은 삶의 이야기, 그 덫에 걸린 포로와도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토록 개인들의 욕망이 부딪히고, 때로는 국가와 개인의 욕망이 부딪히는 현장에서 역설적으로 바쇼의 하이쿠는 조용하고도 은은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빛난다. 속세의 이 모든 고뇌를 벗어난, 달관의 삶. 침략과 살생이 자행되는, 가장 저열한 인간의 욕망이 들끓는 전쟁터. 그 극명한 대비 속에서 바쇼의 하이쿠는 슬프게 빛난다. 시(詩)가 되기를 바라지만 결코 시가 되지 못하는 삶, ‘먼 북’이라는 멀고도 먼 구원의 길. 그 애잔하고도 쓸쓸한 풍경이 이 작품을 한없이 쓸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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