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를 읽은 까닭은 노벨문학상의 계절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요즘 씨네큐브,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벨라 타르(Bela Tarr) 특별전을 하고 있는데 상영작 중 <사탄탱고 Satan Tango>(1994)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은 439분. 무려 7시간 19분이다.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몰입은커녕 집중하기 어려워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만 있던 중. 드디어 지난 토요일 상영작을 예매 성공했다. 씨네큐브에서는 9월에 한 번 상영한 적이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뒤늦게 예매하러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앞자리만 몇 개 남고 거의 매진이더라. 7시간 19분을 맨 앞자리에서 볼 수는 없어서 언젠가 또 하겠지 싶은 마음에 일단 그때는 포기했었다.

집사2는 7시간 19분 동안 이 영화를 볼 자신이 없다고 해서 혼자 관람. 나도 이게 속 편했다. 전에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155분)을 같이 봤는데 도파민&고자극물에 익숙해진 이 어린양.... 지루해하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하고, 동물(말)이 고통받는 장면에서 괴로워하는 게 보여서 나중에 <사탄탱고>는 혼자 보러 가야겠군, 했던 참이다. <사탄탱고> 원작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토리노의 말>보다 더 심하게 동물이 괴롭힘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하필이면 고양이..... 원작을 먼저 읽어서 예상했던 장면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고양이가 고통받는 장면에서는 너무 힘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드디어 혼자 보게 된 벨라 타르의 <사탄탱고>-






인터미션 시간까지 포함해서... 내가 극장을 나온 시간은 6시 50분. 해가 저물었다!



영화는 라슬로의 원작과 거의 비슷하다(라슬로가 직접 각본에 참여했다). 단지 좀 더 암울한 느낌이랄까. 원작에서 종종 보이는 농담이나 그 비슷한 것들을 다 제거하기도 했고, 흑백의 화면 위로 시종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어서 더 암담한 분위기이다. 절망과 나락뿐 어디에도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의 세계, 인물도 구성 방식도 원작과 거의 똑같아서 400쪽 가까이 되는 원작을 7시간 19분짜리로 만든 비디오북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어쨌든 영화 속으로 조금씩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황폐해진 헝가리의 한 외딴 집단 농장. 몇몇 가구만 제외하고는 사람들도 이미 다 떠난 모양이다. 여기 아직 남아있는 그들도 드디어 떠날 결심을 한다. 오늘 밤에는 꼭 떠날 거야. 농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나눠 갖고 꼭 떠날 거야…. 그런데 10월에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길은 진창벌판이고, 어쩐지 무기력이 이미 이 농장을 지배하고 있어 그들은 쉽사리 떠날 수 없을 것만 같다. 게다가 떠나려는 그들 앞에 한 소식이 전해진다. “이리미아시가 온대!” 그들은 동요한다. 거짓말 마라! 이리미아시는 1년 반 전에 죽은 사람이 아닌가! 이리미아시는 유령인가? 부활했는가? 그가 진짜 오는가?

이리미아시는 죽지 않았다.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자신이 죽었다고 소문을 내놓으라고 소년 서니에게 일러둔 탓에 사람들은 서니의 거짓말만 믿고 그가 죽었노라 생각하고 있던 터. 그런데 바로 그 이리미아시가 부하나 다름없는 페트리너와 함께 이 황폐한 농장으로 다시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마을로 돌아오기 전에 경찰서에서 대위를 만나 어떤 지령을 받는다. 그들에게 내려진 지령은 무엇이며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는 마을로 돌아와 무슨 일을 벌이게 될까?

집단 농장에서 같이 일하며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후터키, 슈미트 부부, 크라네르 부부, 헐리치 부부, 교장 선생 등등은 이리미아시가 온다는 소리에 저마다의 반응을 보이며 삼삼오오 술집에 모여든다. 어떤 자는 이리미아시의 귀환 소식에 들뜨기도 하고 어떤 자는 가진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들이 이리미아시를 기다리는 태도를 보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리미아시는 과연 그들에게 희망인가 절망인가? 구원인가 나락인가? 삶인가 절망인가? 메시아인가 사기꾼인가?  

영화에는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농장이므로 소, 돼지, 닭 등의 가축부터 시작해 개, 말, 부엉이, 고양이 등등- 그런데 결정적인 장면마다 비 내리는 진창에서도 먹이를 찾느라 정신없는 돼지의 모습과, 비 내리는 와중에도 교미하려고 암소를 올라타는 수소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친다. 그저 돼지일까 소일까…. 마을에는 백치라고 불리는 소녀 ‘에슈티케’가 있다. 에슈티케는 오빠 서니에게조차 바보 취급을 받는다. 서니는 땅에 돈을 심으면 돈나무가 자란다고 속여 동생의 돈을 가로챈다. 에슈티케의 언니들은 돈을 벌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몸을 팔고, 이 남매들의 엄마는 딸들이 그렇게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산다. 엄마도 종종 몸을 파는 눈치이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에슈티케는 차라리 백치인 게 낫지 않을까. 



이처럼 숨 막히는 순간에 괴로워하며 자기 인식의 심연으로 던져진 그가 깨달은 것은, 뇌리를 스치고 가는 것은 그의 파란만장한 쉰두 해의 삶이 불타는 집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처럼 사소하고 무의미하다는 사실이었다. (<사탄탱고>, p.122~123)


영화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소녀 에슈티케가 절망 속에 술집으로 가 어른들이 술에 취해 춤추며 노는 모습을 창밖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는 장면이다. 에슈티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카메라는 한참 그 모습을 담는다. 이리미아시가 오기 전, 그들은 모두가 술에 취해 춤을 춘다. 탱고를 추기도 한다. 그들은 이리미아시외 함께 오는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일까? 희망을 기다리는 것일까? 에슈티케처럼 그들의 춤을 지켜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이야, 소녀야, 너는 무얼 보고 있니. 일하고 취하고 춤추고 섹스하고 삶이란 그것뿐이란다. 노동과 술 그리고 섹스 단지 그뿐이란다...... 그리고 그 섹스에는 대개 사랑이라고는 없어. 그저 욕정뿐. 그게 인생이란다......






집단 농장의 이 마을은 아내도 공유하는지 거의 모든 남자들의 슈미트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술집에서도 그들은 모두 저마다 슈미트의 아내를 탐한다. 저 어린 서니 놈까지도 이리미아시의 졸개 노릇을 하면서 슈미트 부인과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조건을 거는 지경이다. 여기에 어디 사랑이 있는가?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수소가 암소를 올라타려고 애쓰는 그 장면, 그와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그들은 술에 취해 먹고 또 마시고 먹고 또 마시고 그러다가 그대로 쓰러져 잠든다. 진창에서 먹이를 찾느라 킁킁대던 저 돼지와 무엇이 다른가. 이리미아시는 이들의 그런 속성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안다. 그래서 이런 자들에게 사탕발림이나 현학적인 미사여구로 그럴듯하게 떠들어대며 그들을 속여 넘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이다. 이런 자들에게 제아무리 종소리가 깨지도록 울린다 한들 과연 깨어날 수 있을까. 가짜 구원자에게 속아 넘어가기를 자처하는 그들에게 희망은커녕 절망의 늪이 따라다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마을에는 이런 모든 장면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자가 있다. 의사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종일 창가로 난 책상에 앉아 알코올과 줄담배로 연명하면서 그는 마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 비대해진 몸과 운동 부족으로 숨 쉬기조차 쉬워 보이지 않는 그에게 어느 날,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술이 다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그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해주던 크라네르 부인이 농장을 떠날 생각에 일을 그만둔 것이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나는 이 와중에 웃음이 좀 터졌는데) 알코올중독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알코올! 그는 술을 구하기 위해 드디어 집밖으로 나간다. 추적추적 내리를 비를 뚫고 걷기조차 버거운 비대해진 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술집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다. 그는 무사히 술집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눈앞에 음악이 흐르는 술집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그 불빛을 바라본다. 나는 또 생각한다....... 술집의 저 불빛은 지금 이 알코올중독자에게 희망인가 절망인가 삶인가 죽음인가 구원인가 나락인가. 의사에게도 영화 말미에 종소리가 들려온다. 후터키가 들었던 바로 그 종소리. 그는 이 종소리를 처음에는 죽음의 종소리라 생각한다. 그는 이 종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한 번 더 집밖으로 나간다. 이 종소리는 과연 죽음의 소리인가 삶의 소리인가? 가짜구원자를 메시아라 여기는 한 그 종소리는 파멸의 울림일 뿐이리라.... 




세상은 도처에서 이리미아시가 넘쳐나고 따르는 자들 또한 넘쳐나는구나.




까불지 마! 나 이런 사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 영화 끝난 후에 선물이 있다더니 이걸 주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빵터짐.


 


영화 볼 때 포스터나 기념품 받아오는 일 드문데... 저 배지는 탐이 나더라. 


이걸 어디다 달고 다니죠? 가슴에 달고 다닐까요? 물려줄 자식도 없고.....

관짝에 들어갈 때 가슴에 달아달라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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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2026-10-12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대단하십니다. 부럽고요. 저는 ‘토리노의 말‘은 보았어요. 말이 나오는 첫 장면부터 압도 되었어요. 잊지 못 할 영화 체험 중 하나입니다. 현재 몸 상태로는 ‘사탄탱고‘는 엄두가 안 나네요. 일단 사 두고 안 읽은 책부터 읽어보려고 합니다. 글 잘 읽고 있고요, 책 소개는 항상 도움 받고 있습니다!

잠자냥 2026-10-12 14:40   좋아요 1 | URL
네, 이 영화도 문학으로는 표현되지 못한 압도적인 장면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영화관에 가는 거겠지요? ㅎㅎ 몸 상태 좋으실 때 꼭 한번 극장에서 이 작품 만나보세요~

coolcat329 2026-10-12 19:35   좋아요 0 | URL
압도적인 장면이란 게 책에는 안 나오는 내용인가요? 아니면 글로는 담아내지 못한 것을 장면으로 보여줬다는 건가요?

잠자냥 2026-10-12 21:59   좋아요 0 | URL
책에 안 나오는 내용은 아니고요, 책과 좀 다르게 표현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도리어 좀 영화 쪽이 좀 더 낫지 않나 싶구요. (예를 들면 이리미아시가 환상을 보는 장면이요) 아무래도 흑백의 롱테이크로 찍은 영상미가 황폐한 풍경인데도 참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장면들이 꽤 있습니다. 음악도 좀 한몫하는 거 같고요. 마지막에 의사한테 들리는 종소리도 좀 다르게 표현되었어요.

건수하 2026-10-1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다시 상영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제가 아는 사람 중 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일단 끝까지 다 본 것만 해도 대단하십니다. 그러고보니 잠자냥님 책은 양장이네요? (작년 수상하고 샀는데 아직까지 안 읽은 자)

잠자냥 2026-10-12 14:29   좋아요 1 | URL
그게 바로 나임! ㅋㅋㅋㅋㅋ 나 이런 사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지난 9월 상영 때 씨네큐브 1관이 매진인 거 보고 놀랐어요. 매진일 줄이야.... 이번 상영 때는 매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ㅋㅋㅋ
양장본인 까닭은.... 저는 라슬로가 노벨문학상 받기 전!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샀기 때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때 빨강검정 랜덤 배송이었는데 사람들이 빨강 책 갖고 싶다고 아우성이었거든요? 전 빨간 책이 와서 아주 기분 좋았었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6-10-12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긴 영화를...엉덩이 안 아프셨어요? 잠자냥님은 정말로 시네필이시군요😍
고양이가 고통받다니!! 책도 영화도 꺼려지는군요ㅠㅠ

잠자냥 2026-10-12 14:43   좋아요 1 | URL
이 영화 보고 나니 진정한 시네필 수잔 손택과 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지더라고요? ㅋㅋㅋㅋ
아무튼 엉덩이보다는 허리가? ㅋㅋㅋㅋ 15분씩 인터미션 두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이 극장 바로 맞은편에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와구와구 막 뭐라도 먹더라고요. 그것도 웃긴 장면이었습니다(이 극장이 물과 커피 외에는 반입 금지라서). 어떤 사람은 병에 담긴 커피 몇 개씩 쌓아두고 마시고 ㅋㅋㅋㅋㅋㅋㅋ 전 커피 한 잔 마셨는데.... 집에 오니 너무 배고팠다....... ㅋㅋㅋㅋㅋㅋ

고양이 괴롭히는 장면은 소설로는 그렇게까지 곳통스럽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영상으로 보려니.... 으윽...... 심지어 왜 그 와중에 귀여운 녀석으로!!! (극장 안 사람들도 이때 좀 동요하는 거 같았어요).

coolcat329 2026-10-12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 이 영화를 보셨군요!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에 유튜브에 영화 전체가 올라와 있었어요. 한 시간쯤 보다가 ‘나중에 책으로 읽고 나서 끝까지 봐야지‘ 했는데, 노벨문학상 발표 후에 영상이 내려갔더라고요.ㅠㅠ
술집 ​춤추는 장면, 고양이 괴롭히는 장면, ㅠㅠ 그리고 소녀가 비 내리는 진창길을 끝도 없이 걸어가는 장면은 봤는데, 롱테이크가 주는 분위기가 정말 엄청나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에, 그 긴 상영 시간 동안 커피와 물 외엔 반입 금지였다니...
잠자냥님 정말 대단하세요! 뱃지 가슴에 달고 다니세요! ㅋ

잠자냥 2026-10-12 22:07   좋아요 1 | URL
유튜브에 다 올라간 적 있는 건 알았는데… 저는 극장에서 보려고 아껴뒀어요! ㅎㅎ 나중에 기회되시면 꼭 한번 극장에서 보는 거 도전해보세요. 그럴 가치가 충분한 것 같습니다. 소녀가 끝없이 걸어가는 장면도 압도적이라고 느낀 장면 중 하나였어요. 그 절망감이 진짜 절절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씨네큐브는 원래 물 외에는 전부 반입금지였는데 (그래서 저는 더 좋아하기도 합니다… 😹) 너무한다 싶었는지 얼마전부터는 커피까지는 허용하더라고요. 그 외 씹는 음식은 절대 불가! 그래서 사람들이 인터미션 15분 동안 입에 막 넣기 바쁘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일주일동안 달고 다닐까요? 🤣🤣🤣

자목련 2026-10-13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감히 상상도 못할 시간이네요. 영화에 몰입도 힘들 것 같아요 ㅋㅋ
빛나는 뱃지는 잘 보이는 곳에 두세요. 쿨캣 님 말씀처럼 며칠은 달고 다니셔도 좋을 듯!!

잠자냥 2026-10-13 12:01   좋아요 1 | URL
영화 세 편 몰아 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ㅋ
배지는.... 서랍 같은 데 넣어두지 않고 일단 제 방에 잘 보이는 데 두긴 했습니다만...
저만 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10-1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은 출퇴근 때 가방 안들고 다니시나요? 저는 백팩을 메고 다니거든요. 그래서 만약 저였다면, 저 뱃지.. 가방에 달았을 것 같아요! 잠자냥 님도 가방을 들고 다니신다면 가방에 달아보세요. 저 뱃지는 그만큼 자랑해도 되는 것입니다!
저도 저 책 가지고 있는데, 차마 영화로 볼 자신은 없고(인터미션 있어도 앉아있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요 ㅠㅠ) 나중에 책으로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여자는.. 가난과 절망이 들이닥치면...몸 파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는걸까요? 그때 몸을 파는것 그리고 그 육체를 사서 하는 것이, 과연 ‘섹스‘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일까요? 좀비 영화 <28일 후>에도 좀비가 판치는 세상에서 서로 도망치던 인간들끼리 만났는데, 거기서도 여자를 보고 강간을 하려고 하더라고요. 대체 섹스 뭔가요? 그게 섹스이긴 할까요? 흠..

잠자냥 2026-10-13 12:02   좋아요 0 | URL
가방 들고 다니긴 하는데.... 제가 가방에 뭐 달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ㅋㅋㅋ
책은 생각보다 재밌어요. 제가 처음에 읽은 라슬로의 작품이 <저항의 멜랑콜리>였는데요, 이건 좀 읽기 어려워요... 엄청난 만연체... 그래서 3분의 1쯤 읽다가 일단 내려뒀는데.... <사탄탱고>는 그런 만연체가 아니더라고요?! 라슬로는 <사탄탱고>로 시작하세요.......

먹고살기가 막막할 때 여자의 몸은 자원이 되기 참 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섹스를 단지 성교로만 본다면 성매매도 섹스의 하나이긴 한 것 같고.... 저 영화(책)에서 제가 말한 섹스는 슈미트 부인과 남자들의 관계에 한정해서만 말한 것인데요, 슈미트 부인은 몸을 파는 건 아니고 자발적으로 여러 남자와 성관계를 하거든요. 근데 그게 다 남자나 여자나 욕정으로만 보여서요... 거기에 사랑은 없다........

케이 2026-10-13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시네필이 되고자 했던 어린 시절 <양철북> 영화를 구해 집에서 혼자 본 적이 있어요. 보고 나서 지긋지긋한 인간 환멸에 시달렸던 기억이 나요. 비록 <사탄탱고>를 책도 영화도 못 봤지만, 비슷한 느낌일 것 같네요.
저는 인간은 시궁창에서도 희망을 갖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저렇게 되는 대로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조차 뭔가.. 내 삶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의 발로일까요? 아니면 정말 모든 것을 다 포기했기에 그 지경으로 사는 것일까요.
저는 요즘에 티니핑 같이 애기들 만화만 보고 살아서 정신이 완전 유리멘탈이 되서 며칠 전 티비에서 본 시리즈 액션신 보고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답니다.. ㅋㅋㅋ 사람을 너무 쎄게 후려치고 패고 죽이고 어흑. 옛날엔 어떻게 그런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았는지. 저 기나긴 영화를 끝까지 시청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잠자냥 2026-10-13 14:28   좋아요 1 | URL
<양철북>은 이 영화에 비하면 무지하게 재미난 작품입니다! ㅋㅋㅋㅋㅋㅋ 물론 지긋지긋한 환멸에 시달리게 된다는 데 동의하고요...
인간은 시궁창에서도 희망을 갖고 싶어 하는 존재이긴 한 것 같아요. <사탄탱고> 이 영화에서도 사람들이 좀 그 거짓 희망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긴 있거든요...?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두둥.

티니핑 하츄핑 ㅋㅋㅋㅋㅋ 사랑스러운 세계에서 살고 계시는군요.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독서괭 2026-10-16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세상에. 7시간짜리 영화가 있다는 사실, 그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서울에 있다는 사실, 심지어 그 영화표가 매진된다는 사실??? 굉장히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네요😱 그와중에 놀랍지 않은 건 잠자냥님이 그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이라는 거 하나뿐 ㅋㅋㅋ 안 놀랍다 하나도 놀랍지가 않아… 고양이 학대라니 그건 보기 힘드셨겠네요 정말 ㅠㅠ

잠자냥 2026-10-16 15:38   좋아요 1 | URL
매진에는 나도 놀랐고요... ㅋㅋㅋㅋ 그 영화를 내가 끝까지 봤다는 사실에는 나도 안 놀랐고요..... (역시 잠잘알 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의 아름다움 -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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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진리이고 아름다움이 확신을 주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이 모든 걸 상쇄할까…? 남편이(연인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했다는 그녀. 그의 외모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부정 기만 속임수 거짓말… 하는 짓은 전혀 아름답지 않은데도 이 아름다움이 진리인가? 의문. 카슨의 문장은 아름답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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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10-11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신은 말하곤 했다. “욕망이 두 배면 사랑이고 사랑이 두 배면 광기야.” 광기가 두 배면 결혼이지 내가 덧붙였다.

잠자냥 2026-10-12 12:30   좋아요 0 | URL
광기의 괭 좋아요 누름 🤣

다락방 2026-10-1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이거 안좋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하하하하핫

잠자냥 2026-10-12 06:27   좋아요 0 | URL
남미새 같았어요. 남편한테 미친ㅋㅋㅋㅋ 🤣

건수하 2026-10-12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자?일 줄 알았는데 아닌가요…?

잠자냥 2026-10-12 06:2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거 아닐까 싶었지만….. 😹

건수하 2026-10-12 11:28   좋아요 1 | URL
그 남편이랑은 헤어졌다고 해서 전 그런 줄 알았네요 ^^;;;

독서괭 2026-10-12 11:48   좋아요 2 | URL
전 제목만 보고 반어법인 줄….

잠자냥 2026-10-12 12:43   좋아요 2 | URL
네 이혼하기는 합니다.... 근데 막 환멸 느끼면서 그런 건 아니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생각엔 이 작품은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이나 <집착> 같은 면이 좀 있더라고요)

페넬로페 2026-10-12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가 정말 환상적이네요, ㅎㅎ
남편의 아름다움이라~~
작가라 그런가봅니다.

잠자냥 2026-10-12 12:4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제가 바로 그 제목 때문에 지금까지 이 작품을 안 읽었던 것입니다!
전 남편 대신 연인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하고 읽었어요. 그랬더니 읽히더라고요..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10-12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캐나다 와있는데 서점에서 앤 카슨 책 좀 찾아보자!! 하고 들어갔으나 중고서점이라 그런지 진열된 걸 못찾았어요. 미국이고 캐나다고 책값은 느무나 비쌉니다~ 한국이 최고여~

잠자냥 2026-10-12 12:46   좋아요 1 | URL
한국은 무려 밀리의서재에서 앤 카슨 3종 읽을 수 있습니다..
<빨강의 자서전> <레드 닥>> <남편의 아름다움>
저도 그래서 빨랑 읽은 것이라능.

건수하 2026-10-12 13:49   좋아요 2 | URL
예스24 북클럽에도 있고, 리디셀렉트에도 있다고 합니다 :)

잠자냥 2026-10-12 14:35   좋아요 1 | URL
괭/ 미쿡 간 김에 캐나다로 가보든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캐나다라고! 정신차려 잠자냥! 연휴 끝 출근이라 이러긔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10-14 06: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나 캐나다에 있다는데 지금 캐나다 가보라고 한 거예요?! 정신차려!!ㅋㅋㅋ

케이 2026-10-1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름다움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것은 착각인 동시에 거짓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정말 아름답게 생긴 남자 차에 타서 그 남자의 얼굴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그 남자가 유모차에 애기 태우고 짐까지 들고 건널목을 건너는 애기 엄마를 보며 혼잣말로 ˝빨리 지나가. 썅년아.˝ 이랬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남자 얼굴이 아름다워 보일까요? 전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면상이 역겨워 보이겠죠.
당연한 말이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심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심성도 훌륭 얼굴도 훌륭하면 최고겠지만요.

잠자냥 2026-10-13 14:2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케이 님이 들어주신 예가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적인 거 아닌가요? ㅋㅋㅋㅋㅋㅋ 저도 아무리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사람이라고 해도, 저렴한 표현을 입에 달고 산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안 만날 거 같아요. 뇌가 빻았어도 그럴 거 같고... ㅋㅋ

케이 2026-10-13 14:29   좋아요 1 | URL
남편이랑 동일 주제로 얘기하다가 남편이 이러면 어떨 거 같냐고 예를 들어 말해준 건데 이 얘기에 역시 심성이 제일이다로 결론 냈어요.ㅋㅋㅋ 험한 말 죄송합니다!
 
빨강의 자서전 - 시로 쓴 소설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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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와 게리온의 신화 다시 쓰기. 호메로스에 대척하는 스테시코로스, 괴물 게리온 등 상대적 약자와 소수자성에 눈을 돌린 점이 주목하게 된다. 문학이 그런 거지…. 앤 카슨의 게리온은 사랑 때문에 죽어가는구나. 뜻밖의 BL이라 깜놀(게리온의 말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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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10-11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 네가 자유롭기를 바라.
난 자유롭고 싶지 않아 너랑 같이 있고 싶어.
- <빨강의 자서전>, 앤 카슨

건수하 2026-10-1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딱 한 권만 갖고 있었는데, 초반 좀 읽다가 놔버렸네요 ㅎ 남편의 아름다움에는 좀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잠자냥 2026-10-11 23:39   좋아요 0 | URL
아닐 거 같은데….🙄
 
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ㅣ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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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자들. 그들 앞에 그가 온다. 희망인가 절망인가? 삶인가 죽음인가?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 메시아인가 사기꾼인가. 몰락하는 것에는 과연 날개기 있는가? 음울한 라슬로의 묵시록. 그러나 아름다운. 이렇게 라슬로에게 빠져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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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다니엘 슈타인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200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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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은 올해 우주 리뷰상에 응모할 작품으로 읽었다. 처음에는 재미도 있고 할 이야기도 많고 좋았다. 그런데 중반쯤에 접어들면서부터 고개가 갸우뚱해지더니 자꾸만 다른 의문이 고개를 치솟고, 더 읽어 나가다 보니 아, 이건 안 되겠다 싶어졌다. 내가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되는 동기는 두 가지가 있다. 작품이 너무 좋아서 글로 남겨 다른 이들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을 때, 또 다른 경우는 작품에 불만이 많아서 뭐라고 투덜거리고 싶을 때. 이 작품은 어디에 속하는가 하면 후자에 속한다. 작품 자체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뭐랄까 장점보다는 자꾸만 단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그런 작품이랄까. 처음에는 리뷰라는 게 꼭 장점만 써야 하는가 싶어서 내가 느낀 불만 그대로를 담아 우주 리뷰상에 응모할까 싶기도 했지만 일단 그건 포기. 그러고 나서도 하고 싶은 몇 가지 말들.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이라는 한 남자의 일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반적인 통역사라면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을 법하나, 이 남자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으로 게슈타포의 통역사가 된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유대인이 게슈타포의 통역사를 한다니.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의 통역사 역할을 하는 조선인 김 첨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지는 임무란 제 민족, 유대인을 팔아넘기는 일이 되기 쉽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에게 주어진 환경, 유대인으로 폴란드에서 태어나 나치 치하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 때문에 히브리어와 폴란드어, 러시아어에 독일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언어 천재적 능력을 지니게 되고 그로 인해 게슈타포의 통역사로 살아가게 된다.

살아남고자 유대인 신분을 철저히 숨긴 그의 독일식 이름은 ‘디터’이다. 그러나 반전은 그가, 제 민족을 팔아넘기는 행위에 가담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유대인의 목숨을 살리는 데 애를 쓴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니엘을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은(못한) 그의 직속상관 라인홀트 소령이 인도주의적 인물이기에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라인홀트가 적극적으로 디터를 도와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라인홀트는 자신이 무척 아끼던 디터가 독일을 배신해 유대인을 살리는 데 몇 차례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아량을 베푼다. 그로 말미암아 디터가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가톨릭 사제로서 살아가는 데 일조하는 인물이다. 라인홀트의 존재가 없었다면 통역사 다니엘은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의 목숨을 살리는 역할을 하다 사라진 인물로서 이 작품은 끝을 맺었으리라.....

그러나 본격적인 이야기는 가톨릭 사제가 된 유대인 다니엘의 삶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유대인이 가톨릭 신부라니! 게다가 그는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유대 민족이 보기엔 게슈타포의 통역사 역할을 한 것도 1차 배신일 터인데,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를 믿는 가톨릭 사제가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씻을 수 없는 배신일 것이다. 그렇기에 전후 이스라엘로 돌아가 국민으로 인정받고자 애쓰는 다니엘에게 이스라엘 정부는 그를 전쟁 영웅으로 받아들여 (게슈타포의 통역관으로 유대인을 구한 일이 인정받는다), 귀화 시민권은 주되, 국적을 주지는 않는다. 그의 종교 때문에 그 안의 유대인성을 인정하지 않아 국민으로 허락하지는 않은 것이다. 다니엘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곧 이스라엘 시민이 되겠지만, 스스로를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이라고 부를 권리는 없다는 거야. 폴란드에 가든 독일에 가든 거기서 모두에게 나는 유대인이지만 오직 이스라엘 정부에게만 나는 유대인이 아닌 거라네. 내 증명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 ‘국적 미확인’” (p.114)

다니엘, 이 디아스포라적인 인물의 생을 지켜보노라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언어에 재능이 뛰어나,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 게슈타포의 통역사요, 유대인임에도 유대교의 랍비가 아닌 가톨릭 사제로 살아가는 생이라니. 참으로 기구하구나. 그런데 여기서 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 굳이...? 하는 지점들이 발생한다.

도대체 그는 왜 가톨릭 사제로서 왜 굳이 이스라엘로 가야만 했는가? 이것도 일종의 시온주의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1948년 1차 중동전쟁에 이어 지금까지 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물론 영국의 제국주의가 가장 큰 원흉이기는 하지만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 그들만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시온주의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폴란드가 조국인 다니엘은, 가톨릭 사제로 살아가면서도 왜 굳이 이스라엘로 간 것인가? 물론 다니엘의 이스라엘행은 일반적인 유대인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영토를 유대인만의 땅으로 보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는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공동체를 이끌며 민족은 물론 종교적인 화해를 시도한다. 때문에 그의 이런 행보는 유대 민족주의의 폐쇄성에 대한 도전이자 유대인, 아랍인, 기독교인이 역사는 물론·종교적 갈등을 넘어 서로 포용해야 한다는 믿음에 따른 행위이기도 하다. 종교와 민족의 경계를 허문 그야말로 화해와 공존의 통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가능한 것은 그가 아랍인에 비해, 팔레스타인 민족에 비해, 가진 자, 강자의 위치에 서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위와 같은 화해와 공존의 실천은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했을까? 나 같은 비종교인의 눈에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종교적인 오만으로 보인다. 굳이 무슬림들의 땅에 기어들어 가 가톨릭이든 기독교이든 자신들의 종교를 설파하는 그들의 행위가 나는 평소에도 종교적 오만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는 그곳에서 히브리어로 미사드린다. 이 또한 언어적 시온주의가 아닌가? 물론 이 부분도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 전통의 복원 및 이스라엘 현지인과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임을 알 수는 있다. 더욱이 그의 이런 행위는 정통파 유대인들의 눈에는 히브리어로 이방인의 종교인 가톨릭 미사를 보다니! 오히려 시온주의에 대한 도전이나 도발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의 히브리어는 갈라진 유대교와 기독교를 연결 지으려는 또 다른 통역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유대인인 그가 이스라엘로 가서 히브리어로 가톨릭 미사를....? 이것도 결국 또 다른 오만이 아닌가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결정적으로 그 언어 천재가 아랍 땅에서 아랍어를 배우지 않았다는 점은 내 의구심에 기름을 붓는다. 그에게 감화받은 수녀 힐다가 말하길(그녀는 독일인으로 그의 민족이 유대인에게 저지른 죄를 참회하기 위해 다니엘 곁에서 수녀로 살아간다), 다니엘 신부님은 폴란드어, 독일어, 히브리어를 잘하고, 다른 언어는 잘못한다고 하면서도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영어, 루마니아어 등을 사용하며 이스라엘에 온 견학단을 데리고 다닌다. 체코인, 불가리아인, 아랍인 등과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평생 라틴어로 미사를 드리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는 결정적으로 아랍어를 배우지 않았다. 이것은 다니엘의 고백에서도 드러난다. 언어 천재가 그 땅에 살면서 히브리어로 미사들 드리며 현지 이스라엘인들과의 소통에는 진심으로 애를 쓰면서 왜 그 땅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자들, 아랍인들의 언어는 배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까? 이제껏 그를 살려온 언어들- 그렇다 다니엘에게 언어는 살기 위한 도구, 실존을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과 달리 아랍어는 생존에 꼭 필요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인가? 이는 아랍인들의 땅에서는 굳이 아랍어를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기 수월하다는,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또 다른 오만의 증거 아닐까. 다니엘이 살아간 시기에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죽 이어지고 있는 아랍-팔레스타인 현실에 대한 방관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니엘은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외치지만, 그의 신, 그가 외치는 사랑과 용서와 화해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향하지는 않는다. 팔레스타인인, 그들의 고통에는 다니엘은 물론 그가 믿고 따르는 신도, 그리고 이 작품을 쓴 작가도 눈을 돌린다.

그렇다. 다니엘, 디터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그의 뒤에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있는 것을. 그녀는 실제로 이 작품 속에서도 직접 등장해 말한다. 이 작품을 “누구에게 필요할까 싶은 자유에 관해서”(p.167) 쓰노라 고심 중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자유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속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대상에 당연히 그들도 포함되지 않느냐고? 글쎄... 독자인 내가 읽기엔 유대인을 향한 핍박과 고난에 비하면 작가의 아랍인들을 향한 연민은 거의 느낄 수조차 없으니 무슨 일일까. 심지어 그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에 분노해 러시아를 떠나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살아가고 있는 행동파 작가가 아닌가. 그런데 왜 자기의 민족인 유대인에게는 이토록 한없는 연민만을 보내는 것일까.

루카치는 소설을 ‘총체성(Totality)을 상실한 시대의 서사시’로 정의하며 훌륭한 소설이란 파편화된 현실 속에서도 개인과 사회적·역사적 현실 간의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관계를 복원해 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 관점에서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은 명백하게 한계를 지닌다. 오늘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하고 억압하는 현실은 군사, 영토, 자본, 생존권이 얽힌 철저히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사회적 모순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 참혹한 현실을 다니엘 신부의,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자’는 식의 추상적이고 종교적인 박애주의로 해결하려 한다. 그로 인해 이토록 참혹한 현실을 낭만화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역사적 토대에 대한 냉철한 분석 없이 그저 관념적인 도덕론으로 가해와 피해의 객관적 현실을 흐리는 부르주아적 기만이 아닐까. 게다가 역사적·사회적 구조를 총체적으로 직시하지도 못하고, 작가의 출신이 유대인이라는 주관적 한계와 수많은 인물이 주고받은 편지의 나열과 인터뷰 등등 파편화된 서사 형식, 종교적 관념주의 뒤로 도피함으로써 소설이 도달해야 할 진실의 총체성을 획득하는 데 철저하게 실패하고 만다.

10월 8일 오늘은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날이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유력 후보는 아니지만 해마다 이 상의 후보자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가이다, 나는 그녀의 수상을 점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만일,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오늘 수상자가 되어 연단에 서서 연설하게 된다면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저 만행에 대해 한소리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저 추상적인 말들-사랑과 용서 화해 운운하면서 자기의 수상 소감을 밝힐 가능성이 더 크다. 이스라엘은 언제까지 피해자일까? 더는 아니다. 가해자의 위치에서 말하는 사랑과 용서, 화해는 공허한 기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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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10-08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언제나 그랬지만, 이 리뷰도 역시나 정말 너무나 좋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한계가 있는 작품이라 하셨지만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노벨상 누가 탈 지 궁금합니다. 저는 투표했는데요, 아무도 하지 않을 작가에게 해서.. 만약 그 작가가 된다면 2백만원 혼자 갖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10-08 14:10   좋아요 0 | URL
무려 제가 휴가 중인데도!! (할 말이 많아서) 노트북을 켜고 아침부터 쓴 글인데 다락방 님 마음에 든다니 뿌듯합니다. 읽어보셔도 좋을 거 같아요. 기독교 역사에 대해서도 훑어보실 겸…(하필 제가 손석춘의 <교양으로 읽는 기독교> 읽는 중에 이 책을 읽는 바람에 기독교 역사 부분이 좀 중복되는 내용들이 있어서… ㅋㅋㅋ 좀 더 지겹게 느껴진 거 같아요). 저도 다른 사람들이 언급한 작가가 아닌 작가에 투표해서…. 맞힌다면 알라딘 배당금 꽤 될 거 같은데…. 과연?! ㅋㅋㅋㅋ (작년에 이어 또 맞히고 싶습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6-10-08 22:08   좋아요 0 | URL
다락방의 200만 원 꿈은 날아가고….😹

다락방 2026-10-08 22:53   좋아요 0 | URL
저 앤 카슨 했었는데 ㅋㅋ 동료랑 밥 먹다가 적게 가질바에야 200 노려야겠어 이러고 삭제하고 다른 작가 한거거든요? ㅋㅋ 결국 아무것도 못받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고치기 전이 정답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10-08 22:57   좋아요 0 | URL
😹 앤 카슨 했어도 많이는 못 받았겠어요! 😹

케이 2026-10-08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치에게 박해당했기 때문에 다른 민족을 박해할 권리가 있다는 듯 행사하는 그들.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에서 손을 떨면서도 할 말은 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더욱 더 대단해보입니다.
오늘 노벨상 발표하는 거 잠자냥님 덕분에 알았습니다. 아마도 이번 수상자도 아는 작가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기대되네요.
좋은 계절입니다. 아름다운 날씨 만끽하시길.
P.S 자우메 카브레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퍼뜩 듭니다.

잠자냥 2026-10-08 16:44   좋아요 1 | URL
자기 자신과 관계된 것을 벗어나 객관적인 눈으로 그것들을 판단하는 게 인간에겐 참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위대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거겠지요. 그런 존재가 귀하게 여겨지기도 하고요. 노벨문학상은 한국 시각으로는 오늘 밤 8시에 발표됩니다. 저마다 자기가 응원하는 작가가 받길 기대해보는 재미도 쏠쏠!? 그러고 보니 자우메 카브레도 있었군요. 내일부터 연휴네요. 날씨도 좋고요. 쌍둥이들과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독서괭 2026-10-12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만”이라는 표현이 와닿네요. 특권을 가진 자의 오만. 그건 스스로 깨닫긴 어려운 것 같아요. 저 최근에 미국인 친구를 사귀었는데 자기도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고 싶다고, 이유는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라고 말하길래, 영어는 어느 나라에서든 쓸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했더니, 다른 나라 가서 영어만 쓰는 건 selfish 하다고 말해서 인상적이었어요. 다니엘이 아랍어 안 배웠단 거 보니 이게 생각나네요ㅎ 여행중이라 오랜만에 들렀슙니다!

잠자냥 2026-10-12 12:48   좋아요 1 | URL
여행 중에 서재 들어오는 거 오만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여행을 즐기시오.
그나저나 저 말만 들었을 땐 괜찮은 친구 사귄 거 같네요?!

독서괭 2026-10-14 06:34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사람이예요~ 이렇게 단기 거주하는 동양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백인은 첨만나네요 ㅋ 애들이 같은 학년이라 자주 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