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를 읽은 까닭은 노벨문학상의 계절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요즘 씨네큐브,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벨라 타르(Bela Tarr) 특별전을 하고 있는데 상영작 중 <사탄탱고 Satan Tango>(1994)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은 439분. 무려 7시간 19분이다.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몰입은커녕 집중하기 어려워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만 있던 중. 드디어 지난 토요일 상영작을 예매 성공했다. 씨네큐브에서는 9월에 한 번 상영한 적이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뒤늦게 예매하러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앞자리만 몇 개 남고 거의 매진이더라. 7시간 19분을 맨 앞자리에서 볼 수는 없어서 언젠가 또 하겠지 싶은 마음에 일단 그때는 포기했었다.
집사2는 7시간 19분 동안 이 영화를 볼 자신이 없다고 해서 혼자 관람. 나도 이게 속 편했다. 전에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155분)을 같이 봤는데 도파민&고자극물에 익숙해진 이 어린양.... 지루해하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하고, 동물(말)이 고통받는 장면에서 괴로워하는 게 보여서 나중에 <사탄탱고>는 혼자 보러 가야겠군, 했던 참이다. <사탄탱고> 원작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토리노의 말>보다 더 심하게 동물이 괴롭힘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하필이면 고양이..... 원작을 먼저 읽어서 예상했던 장면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고양이가 고통받는 장면에서는 너무 힘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드디어 혼자 보게 된 벨라 타르의 <사탄탱고>-


인터미션 시간까지 포함해서... 내가 극장을 나온 시간은 6시 50분. 해가 저물었다!
영화는 라슬로의 원작과 거의 비슷하다(라슬로가 직접 각본에 참여했다). 단지 좀 더 암울한 느낌이랄까. 원작에서 종종 보이는 농담이나 그 비슷한 것들을 다 제거하기도 했고, 흑백의 화면 위로 시종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어서 더 암담한 분위기이다. 절망과 나락뿐 어디에도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의 세계, 인물도 구성 방식도 원작과 거의 똑같아서 400쪽 가까이 되는 원작을 7시간 19분짜리로 만든 비디오북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어쨌든 영화 속으로 조금씩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황폐해진 헝가리의 한 외딴 집단 농장. 몇몇 가구만 제외하고는 사람들도 이미 다 떠난 모양이다. 여기 아직 남아있는 그들도 드디어 떠날 결심을 한다. 오늘 밤에는 꼭 떠날 거야. 농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나눠 갖고 꼭 떠날 거야…. 그런데 10월에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길은 진창벌판이고, 어쩐지 무기력이 이미 이 농장을 지배하고 있어 그들은 쉽사리 떠날 수 없을 것만 같다. 게다가 떠나려는 그들 앞에 한 소식이 전해진다. “이리미아시가 온대!” 그들은 동요한다. 거짓말 마라! 이리미아시는 1년 반 전에 죽은 사람이 아닌가! 이리미아시는 유령인가? 부활했는가? 그가 진짜 오는가?
이리미아시는 죽지 않았다.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자신이 죽었다고 소문을 내놓으라고 소년 서니에게 일러둔 탓에 사람들은 서니의 거짓말만 믿고 그가 죽었노라 생각하고 있던 터. 그런데 바로 그 이리미아시가 부하나 다름없는 페트리너와 함께 이 황폐한 농장으로 다시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마을로 돌아오기 전에 경찰서에서 대위를 만나 어떤 지령을 받는다. 그들에게 내려진 지령은 무엇이며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는 마을로 돌아와 무슨 일을 벌이게 될까?
집단 농장에서 같이 일하며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후터키, 슈미트 부부, 크라네르 부부, 헐리치 부부, 교장 선생 등등은 이리미아시가 온다는 소리에 저마다의 반응을 보이며 삼삼오오 술집에 모여든다. 어떤 자는 이리미아시의 귀환 소식에 들뜨기도 하고 어떤 자는 가진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들이 이리미아시를 기다리는 태도를 보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리미아시는 과연 그들에게 희망인가 절망인가? 구원인가 나락인가? 삶인가 절망인가? 메시아인가 사기꾼인가?
영화에는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농장이므로 소, 돼지, 닭 등의 가축부터 시작해 개, 말, 부엉이, 고양이 등등- 그런데 결정적인 장면마다 비 내리는 진창에서도 먹이를 찾느라 정신없는 돼지의 모습과, 비 내리는 와중에도 교미하려고 암소를 올라타는 수소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친다. 그저 돼지일까 소일까…. 마을에는 백치라고 불리는 소녀 ‘에슈티케’가 있다. 에슈티케는 오빠 서니에게조차 바보 취급을 받는다. 서니는 땅에 돈을 심으면 돈나무가 자란다고 속여 동생의 돈을 가로챈다. 에슈티케의 언니들은 돈을 벌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몸을 팔고, 이 남매들의 엄마는 딸들이 그렇게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산다. 엄마도 종종 몸을 파는 눈치이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에슈티케는 차라리 백치인 게 낫지 않을까.
이처럼 숨 막히는 순간에 괴로워하며 자기 인식의 심연으로 던져진 그가 깨달은 것은, 뇌리를 스치고 가는 것은 그의 파란만장한 쉰두 해의 삶이 불타는 집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처럼 사소하고 무의미하다는 사실이었다. (<사탄탱고>, p.122~123)
영화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소녀 에슈티케가 절망 속에 술집으로 가 어른들이 술에 취해 춤추며 노는 모습을 창밖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는 장면이다. 에슈티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카메라는 한참 그 모습을 담는다. 이리미아시가 오기 전, 그들은 모두가 술에 취해 춤을 춘다. 탱고를 추기도 한다. 그들은 이리미아시외 함께 오는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일까? 희망을 기다리는 것일까? 에슈티케처럼 그들의 춤을 지켜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이야, 소녀야, 너는 무얼 보고 있니. 일하고 취하고 춤추고 섹스하고 삶이란 그것뿐이란다. 노동과 술 그리고 섹스 단지 그뿐이란다...... 그리고 그 섹스에는 대개 사랑이라고는 없어. 그저 욕정뿐. 그게 인생이란다......


집단 농장의 이 마을은 아내도 공유하는지 거의 모든 남자들의 슈미트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술집에서도 그들은 모두 저마다 슈미트의 아내를 탐한다. 저 어린 서니 놈까지도 이리미아시의 졸개 노릇을 하면서 슈미트 부인과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조건을 거는 지경이다. 여기에 어디 사랑이 있는가?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수소가 암소를 올라타려고 애쓰는 그 장면, 그와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그들은 술에 취해 먹고 또 마시고 먹고 또 마시고 그러다가 그대로 쓰러져 잠든다. 진창에서 먹이를 찾느라 킁킁대던 저 돼지와 무엇이 다른가. 이리미아시는 이들의 그런 속성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안다. 그래서 이런 자들에게 사탕발림이나 현학적인 미사여구로 그럴듯하게 떠들어대며 그들을 속여 넘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이다. 이런 자들에게 제아무리 종소리가 깨지도록 울린다 한들 과연 깨어날 수 있을까. 가짜 구원자에게 속아 넘어가기를 자처하는 그들에게 희망은커녕 절망의 늪이 따라다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마을에는 이런 모든 장면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자가 있다. 의사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종일 창가로 난 책상에 앉아 알코올과 줄담배로 연명하면서 그는 마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 비대해진 몸과 운동 부족으로 숨 쉬기조차 쉬워 보이지 않는 그에게 어느 날,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술이 다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그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해주던 크라네르 부인이 농장을 떠날 생각에 일을 그만둔 것이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나는 이 와중에 웃음이 좀 터졌는데) 알코올중독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알코올! 그는 술을 구하기 위해 드디어 집밖으로 나간다. 추적추적 내리를 비를 뚫고 걷기조차 버거운 비대해진 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술집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다. 그는 무사히 술집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눈앞에 음악이 흐르는 술집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그 불빛을 바라본다. 나는 또 생각한다....... 술집의 저 불빛은 지금 이 알코올중독자에게 희망인가 절망인가 삶인가 죽음인가 구원인가 나락인가. 의사에게도 영화 말미에 종소리가 들려온다. 후터키가 들었던 바로 그 종소리. 그는 이 종소리를 처음에는 죽음의 종소리라 생각한다. 그는 이 종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한 번 더 집밖으로 나간다. 이 종소리는 과연 죽음의 소리인가 삶의 소리인가? 가짜구원자를 메시아라 여기는 한 그 종소리는 파멸의 울림일 뿐이리라....

세상은 도처에서 이리미아시가 넘쳐나고 따르는 자들 또한 넘쳐나는구나.

까불지 마! 나 이런 사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 영화 끝난 후에 선물이 있다더니 이걸 주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빵터짐.

영화 볼 때 포스터나 기념품 받아오는 일 드문데... 저 배지는 탐이 나더라.

이걸 어디다 달고 다니죠? 가슴에 달고 다닐까요? 물려줄 자식도 없고.....
관짝에 들어갈 때 가슴에 달아달라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