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보다 긴 하루 열린책들 세계문학 44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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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휴일 아침에 이 책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때마침 창문으로 눈부신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봤다면 그 빛에 눈이 부셔서 눈물을 흘리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그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에 파문이 일고, 그러다가 끝내 눈물이 나듯이 <백년보다 긴 하루>를 읽는 그 아침이 그랬다. 오랜만에 문학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 책은 오래 전에 출간되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에서도 44번이므로 꽤 앞에 속한다. 초판은 1990년 출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여러 번 이 책을 마주했다. 책표지와 제목이 이제는 아주 낯익은 정도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선뜻 손이 가지 않아서 여태 읽기를 미루던 책. 그런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일 20대 또는 30대 초반에 이 작품을 읽었다면 지금처럼 크게 와 닿았을까? 물론 그때도 그 나름대로 느낀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신하건대 지금처럼 이 작품을 온 마음으로 느끼지는 못했을 것 같다.

이 작품의 어떤 부분이 그토록 아름다웠을까?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선뜻 대답하기는 어렵다. 작품의 문체가 아주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책의 줄거리가 매우 특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척박한 스텝 지대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고달픈 삶이 그려질 뿐이다.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있느냐 하면 딱히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읽다보면 절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백년보다 긴 하루>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주인공인 ‘예지게이’와 그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까잔갑’- 이 두 사람은 내 기준엔 아름다운 인간의 전형이다. 근래 읽은 어느 문학 작품 속 인물들보다 나는 이 두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예지게이와 까잔갑뿐만이 아니다. 예지게이의 아내인 ‘우꾸발라’, 그리고 이들과 스텝 지대에서 함께 지내게 되는 ‘아부딸리쁘’와 ‘자리빠’ 부부도 보기 드문 인간 유형임은 틀림없다. 이런 이들이 내 주변에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 세상을 살다가는 게 그리 헛된 일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인물들이 한없이 선량하기만하다면 소설을 읽는 재미는 떨어질 것이다.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테니까. 그러나 이들은 비록 드물지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만 같다. 예지게이는 성격이 완고하고 격렬하기 때문에 ‘눈보라’라는 의미의 ‘부란니’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것을 잃어버린 뒤에는 존경해마지 않았던 까잔갑에게 비열하고 쪼잔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퍼붓는 치졸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의 그 간절한 바람 때문에 아내 우꾸발라에게 더할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 작품을 읽는 이들이라면 모두, 우꾸발라가 예지게이의 마음 속 폭풍을 알고 있었으리라고, 그럼에도 그녀는 끝내 모른 체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의 성품이라면 그러고도 남으리라. 하지만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까. 눈보라 같은 격정적인 성격의 남편 곁에서 묵묵히 ‘할망구’가 될 때까지 그 곁을 지킨 우꾸발라, 척박한 스텝 지역에서 때로는 헤매고 길을 잃더라도 인간다운 위엄과 예의, 정의로움, 이웃에 대한 따스함을 잃지 않고자 애썼던 예지게이. 그들이 삶이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예지게이를 있게 한 존재인 ‘까잔갑’. 그에게는 나도 모르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재산이 조금 불어나자 초심을 잃어버리는 듯한 예지게이에게 까잔갑은 말한다. “강도를 만나 털린대도 모든 걸 다 잃지는 않아. 그건 복구할 수가 있어. 하지만 영혼이 짓밟혔다면 그걸 다시는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어.”(113쪽). 그의 이 말에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본다. 혹시라도 돈 몇 푼에, 눈앞에 보이는 알량한 이익 때문에 스스로 영혼을 짓밟는 일을 한 적은 없는가, 그 아침에 내 인생 전반을 돌아보았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산 적이 있었나보다. 까잔갑의 꾸짖음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편,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역사를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날마다 글을 쓰는 ‘아부딸리쁘’도 인상 깊다. 섬세하고 예민하기에 한때는 삶을 다 놓아버릴 지경에 놓였던 그였지만 예지게이의 도움으로 또 다른 삶을 살게 되고 그 뒤로 자신의 아이들과 아내에게 전폭적인 애정을 쏟으며 헌신적인 삶을 사는 그. 그들의 평범하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로 가득한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산다는 게 무엇인지,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 살더라도 ‘그 어떤 것’을 잃지 않는 한 행복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백년보다 긴 하루>는 척박한 스텝 지역에서 서로 의지하며 사는 평범한 이들의 삶을 그린 소설인가? 쉽게 단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평범한 이야기 사이에 SF 같은 이야기가 삽입되어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묘지 ‘아나-베이뜨’의 전설이 된 ‘나이만-아나’와 노예가 된 그의 아들 ‘졸라만’의 이야기, 음유시인 ‘라이말리-아가’와 ‘베기마이’의 슬픈 사랑 이야기, 예지게이의 숫낙타 ‘까라나르’와 얽힌 사연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얽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예지게이가 까잔갑을 위해 ‘보란니-부란니’ 간이역에서 ‘사로제끄’로 가는 동안 벌어지는 ‘패리티 우주 정거장’의 우주 비행사 1-2와 우주비행사 2-1의 이야기는 대체 이 예지게이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그러는 가운데 마지막에 가서 아, 하고 큰 깨달음을 준다. 이 작품은 이렇게 리얼리티 넘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위에 전설과 역사, 현실과 공상을 적절히 뒤섞으면서 전혀 상관없을 듯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이 예지게이 삶과 하나로 이어지면서 좀처럼 잊기 힘든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사로제끄의 간이역들에서 살아가려면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파멸한다. 스텝은 광대하고 인간은 비소(卑小)하다. 스텝은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며 누군가가 곤란에 처해 있건 사정이 두루 다 좋건 그런 데는 상관하지 않는다. 스텝이란 결국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어디까지고 무심할 수가 없다. 그는 자기가 어딘가 다른 곳에서라면 더 행복할 터인데도 다만 운명의 장난으로 거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괴로워한다. (<백년보다 긴 하루>, 21쪽)


어린 시절, 그리고 20대만 하더라도 내 인생은 꿈꾸는 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만하게 세상에 맞서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바란 대로 이룬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예지게이 또한 그렇다. 그는 때로 자기 삶을 후회한다. ‘어째서 이제껏 그런 삶을 영위해 왔을까? 어째서 손 털고 사로제끄를 떠나지 못했을까? 어째서 이 몹쓸 운명으로 괴롭힘 당하는 불행하고 불운한 가족을 자기 삶에 끌어들였을까. 그들만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심한 고통을 당하지 않고서 조용하고 안락한 삶을 꾸려갔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한때는 무척 탐을 냈던 숫낙타 까라나르도 이제는 그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었으며 신이 내린 형벌이었고 그에게 어떤 행운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의 삶에 행운이라고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신 같은 건 없어! 삶에 대해서 뭣 한 가지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신이 어디 있어? 신 같은 건 있지도 않아!’ 소리치기도 한다. ‘삶이란 믿을 수 없는 농담’처럼 그의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만 같다.

나 또한 예지게이처럼 때때로 세상을 향해 불만을 터뜨리고, 나 자신을 책망하고 한심한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대체 그런 일은 왜 일어났을까,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후회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이 세상이 다 엉망진창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지게이 만큼만 살다간다면 ‘인간’으로서 이 세상 한평생 잘 살다가는 게 아닐까. 예지게이와 까잔갑을 보며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앞으로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곰곰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어느 것에나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는 그의 말처럼 살면서 일어나는 일에는 모든 것이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 삶의 비밀을 <백년보다 긴 하루>는 수수께끼처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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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09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아침부터 기다렸어요. 오늘은 잠자냥 님 글 안올라오나... 그런데 오후에 이렇게 소원대로 똭!

감사합니다. 헤헷.

잠자냥 2019-05-09 16:51   좋아요 0 | URL
앗, 정말요? 요즘 연휴라 (실은 이 책 읽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ㅎ) 글이 좀 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9-05-09 16:52   좋아요 0 | URL
저 잠자냥 님 좋아하나봐요.. (수줍)

잠자냥 2019-05-09 16:5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회사에서 지금 육성으로 실소가 터져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5-09 16:56   좋아요 0 | URL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syo 2019-05-10 01:30   좋아요 0 | URL
얼레리꼴레리~~ 다락방님은~~~ 얼레리꼴레리~~ 잠자냥님을~~~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05-10 06:51   좋아요 0 | URL
☺️

케이 2019-05-10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이켜보면, 저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마다 가장 적당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해 왔던 것 같아요. 저 역시 나중에 시간이 지나 그 선택이 잘못됐음을 깨달아 가슴이 아플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시절 나에게는 이외 선택안이 없었던 적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래서 전 스스로 인생을 망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면 실패한 선택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타인이 보기에 명백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내가 조금은 겸손해졌으리라... 조금 더 나은 늙은이가 되기 위한 과정이리라.. 스스로 위로하고 달래며 살곤 합니다. (실패자의 정신승리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요 ㅋ) 잠자냥님을 종종 절망하게 만드는 과거의 어떤 선택도 분명 당시 잠자냥님께는 최선이었을 거예요. 수준 높고 재밌기까지 한 리뷰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

잠자냥 2019-05-10 14:07   좋아요 1 | URL
저도 돌이켜보면 가장 적당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해 온 것 같아요. 그런데도 결국 그랬기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가끔 있고요. 그런데 케이 님 말씀처럼 결국 그런 선택을 한 것도 나 자신이고, 그때는 아마 그 선택 말고는 다른 길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살아갈 나날 중에서도 또 그런 일은 있겠지요. 그래도 정신승리하면서 살아가는 게 최선의 인생이 아닐까요. ㅎㅎ 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케이 님의 댓글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백년보다 긴 하루 열린책들 세계문학 44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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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정말 아름답다. 이런 작품을 만나기 위해 나는 문학을 읽는다. 등장인물 가운데 그 누구하나 애정과 연민이 가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전혀 상관없을 것 같지만 날줄과 씨줄처럼 촘촘히 연결된 여러 개의 이야기들... 인간이, 인생이 무엇인지 책을 덮고도 먹먹한 마음으로 한참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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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0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예~ 잠자냥님이닷~~

저도 읽어볼게요! (불끈!)

잠자냥 2019-05-08 12:14   좋아요 1 | URL
안 읽었으면 후회할뻔 했던 책이에요. ㅎㅎ 언젠가 꼭 한 번 읽어보세요.
그나저나 아침부터 디저트로 징거버거 먹으면 어떤 기분인가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5-08 12:33   좋아요 0 | URL
그것은 그러니까,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기분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님, 저도 잠자냥님 트윗 계정 알려주세요!

잠자냥 2019-05-08 12:44   좋아요 0 | URL
트위터로 디엠 보냈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9-05-08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도요! 저도 읽어볼래요!!

잠자냥 2019-05-08 16:25   좋아요 0 | URL
ㅋㅋㅋ 다락방 님과 함께 ㅋㅋㅋㅋ

coolcat329 2019-05-10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 보고 싶네요. 아름다운 작품이라니...

잠자냥 2019-05-10 17:39   좋아요 1 | URL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참 주관적인 단어이긴한데.... ㅎㅎ 아무튼 누군가에게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쏜살 문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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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긴 시와도 같은 글쓰기에 관한 뒤라스 사유의 흔적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굴속에, 굴 깊숙한 곳에, 거의 완전한 고독 속에 자리 잡고, 글쓰기만이 구원을 주리라는 것을 깨달아야‘한다는 말과 그 ‘고독은 만드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다. 책상에 앉아 뭐라도 끼적이고 싶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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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4-2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찌찌뽕이요! 저 요즘 이 책 읽고 있는데 뭐랄까..... 글쓰기에 대한 새삼스런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본다랄까요.
작가로만 알았던 뒤라스가 정말 다양하게 예술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덤! ^^

잠자냥 2019-04-26 11:45   좋아요 1 | URL
앗! 그렇군요! ㅋㅋㅋ 이 책 짧은데 참 오래 읽게 되더라고요. ㅎㅎㅎ 전 이 책 읽으니까, 뒤라스가 아들과 같이 살았다던 그 집이 ‘갖고‘ 싶어지더라고요. ㅋㅋㅋ
 
바벨탑 공화국 -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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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이 줄곧 이야기해온 승자독식, 서울중심 사회가 불러온 폐해의 또다른 버전.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이 땅의 욕망 바벨탑이 무너지는 날이 과연 올까? 글쎄 매우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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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 -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과 산문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지음, 이재경 옮김 / 에이치비프레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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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의 표지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젤다’의 이름 뒤에 그녀의 결혼 뒤 성(姓)인 피츠제럴드가 희미하게 지워졌다. 젤다 피츠제럴드. 그녀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이다. 많은 이들이 젤다를 피츠제럴드의 아내, 그러나 스콧에게 그다지 긍정적인 영향은 주지 못한 여인으로 기억한다. 나 또한 그랬다. 피츠제럴드 부부의 삶을 다루거나 그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젤다로 유추할 수 있는 인물은 늘 부정적이었다. 이들과 가깝게 지낸 헤밍웨이는 또 어떤가, 그는 ‘젤다’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 파리에서 머물던 몇 년 동안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집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노라면 젤다는 한마디로 끔찍한 여자이다. 언제나 방탕하게 돈을 쓰고, 줄곧 징징대며, 파티에 취해 스콧의 삶을 망치고 결국 그의 창작력을 갉아먹는 존재로 그려진다. 물론 헤밍웨이는 치졸하게도 스콧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묘사를 멈추지 못한다. 아마도 자신보다는 일찌감치 인정받고 성공한 스콧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헤밍웨이의 글은 이 부부에게 애정이 있는 듯 꾸미고 있지만 사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저열하기 그지없는 질투 또는 시기심 같은 게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나 또한 이제까지는 ‘젤다 피츠제럴드’를 그런 사람으로 봤다. 사치와 낭비를 일삼고, 성공한 남편 덕분에 편하게 살면서도 그의 창작력을 갉아먹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여인. 그러나 매력만큼은 다분해서 스콧을 미치게 만들고, 스콧이 그녀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면에서는 귀여운 팜 파탈 같은 여자로 생각했다. 한편, 스콧의 단편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주인공 캐릭터는 젤다를 묘사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관된다(실제로 스콧은 젤다의 모습에서 자신의 여주인공들을 창조해냈다). 이런 가운데 몇 달 전 이 책《젤다》가 출간됐을 때 조금 놀라웠다. 젤다 피츠제럴드도 소설과 산문을 썼다고? 정말? 하는 심정. 어떤 작품을 썼을지 호기심에서 책 소개 페이지를 읽어봤다. 아주 잠시 접한 내용임에도 가히 충격적이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가 그러했듯이 젤다 또한 작가인 남편에게 얼마쯤 재능을 ‘착취’당하고 있던 것이다.

《젤다》를 읽는다. 이 책의 앞부분은 그녀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다. ‘어?’ 하고 다시 한 번 놀란다. 입맛이 씁쓸하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무언가가 일어난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우며 쓸쓸하고 애잔한, 그러면서도 재기발랄한 그런 글들. 젤다 피츠제럴드의 글 또한 그렇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스콧은 이야기를 엮어가는 능력 또한 대단한데, 그에 비해 젤다는 스토리보다는 묘사에 탁월하다고나 할까. 이런 표현을 쓸 수도 있구나, 이렇게 장면을 그릴 수도 있구나, 감탄스러운 대목이 종종 눈에 띈다. 그런데 전체적인 느낌은 스콧의 작품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혼란스러웠다. 젤다가 스콧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일까? 아니면 스콧이 젤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이 둘은 애초에 완전한 소울메이트라 작품마저도 이토록 닮은 것일까?

책을 읽노라면 조금씩 진실을 알게 된다. 스콧은 아내 젤다를 소유하려 애썼고, 그녀의 재능마저 갈취했다. 내가 좋아했던 스콧 피츠제럴드의 낭만과 애수, 위트 그 모든 것들이(아니, 모두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많은 것들이 타인의 재능을 착취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씁쓸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책을 통해 젤다를 발견한 기쁨보다도, 그녀를 새롭게 알게 된 사실보다도 이런 씁쓸함이 더욱 컸다. 그럴 만큼 나는 스콧의 수많은 단편과 몇몇 장편을 아끼고 좋아했다. 지금도 책꽂이에는 아직 읽지 않은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의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을 비롯해, 이런저런 책들을 바라보는 심경은 당혹감 그 자체이다. 앞으로 내가 이 작품들을 읽는다면, 예전처럼 감탄하면서 읽을 수 있을까? 예전처럼 좋아할 수 있을까? 많은 작품들을 ‘피츠제럴드 부부 공저’로 생각하고 읽어야 하는 건 아닐까.

젤다의 에세이 <친구이자 남편의 최근작>에는 이런 구절이 엿보인다. 스콧의 작품인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서평이다. 젤다 전체적으로 이 책을 칭찬한다. 그런데 이런 구절을 보라. ‘어떤 페이지에선 결혼 직후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제 옛날 일기의 일부가 보여요. 꽤 편집되어 있지만 편지글들에서도 어쩐지 낯익은 내용이 있고요. 아무래도 피츠제럴드 씨는 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봐요.’(《젤다》, 118쪽). 스콧의 재능 도둑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에세이 <F씨 부부를 방으로 모시겠습니다>에서는 이런 구절이 보인다. ‘우리가 날밤을 세우며 단편을 마무리하던 웨스트포트의 하숙집 근처에서는 동틀 때에 라일락이 피었다.’(《젤다》, 155쪽), <경매>라는 에세이에서는 ‘지난 15년간 우리가 글로 어렵게 벌어서 말로 쉽게 써 버린 40만 달러가 남긴 물리적 잔재들. 이것들을 결국 모두 이렇게 간직하게 되는군요.’(《젤다》, 201쪽)라는 구절도 볼 수 있다. 젤다는 ‘내’가 썼다고 하지 않고 ‘스콧’이 썼다고도 하지 않는다. 줄곧 ‘우리’가 썼다고 말한다(스콧은 젤다의 <F씨 부부>의 원고에서 ‘I’를 전부 ‘We’로 바꿨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젤다가 출산 직후 했던 “이 애가 아름다운 바보, 작고 예쁜 바보로 자랐으면 좋겠어.”라는 말은 나중에 스콧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여주인공 데이지의 대사로 등장한다. 그래, 사람들의 대사를 엿듣고 그걸 소설화하는 일은 다른 이들의 작품에서도 비일비재하니까 그렇다 치자. 그렇지만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922년부터 젤다는 꾸준히 에세이와 단편을 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사장되거나 부부 공저, 또는 스콧의 작품으로 발표된다. 젤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Girl 시리즈’ 단편들이 1929년에서 1931년 사이에 차례로 발표되었는데, 그중 다섯 편은 스콧과 공저자로, 한 편은 스콧의 작품으로 실렸다! 그것도 모자라 신경쇠약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젤다가 쓴 자전적 소설 《왈츠는 나와 함께》는 스콧이 읽고는 자신이 쓰려고 한 《밤은 부드러워》와 내용이 겹친다고 분노한다. 스콧은 젤다에게 수정을 요구하고, 그의 바람대로 대폭 수정된 상태로 출판된 그 책은, 출간 당시 혹평을 받는다. 그런데도 스콧은 젤다의 인생 전체가 ‘그의 글감’이며 그녀가 부부의 인생 경험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것을 훔쳤다고 여겼고 그녀를 “삼류 작가이자 삼류 발레 댄서”, “쓸모없는 사교계 여자”라고 비난하기에 바빴다(《젤다》, ‘서문’, 13쪽). 이렇게 젤다의 작품 대부분이 남편의 이름이나 부부 공저로 발표되어 그녀는 생전에 작가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낭비벽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남편의 재능을 갉아먹어 그를 알코올중독으로 몰아넣은 정신이상자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 그런데 그렇게 흥청망청 파티에 취해 살았다는 그녀의 삶 또한 가히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책 뒷부분에 실린 짧은 연보에서도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유추할 수 있다. 젤다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이혼을 요구했을 때도 스콧은 그녀를 집에 가두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런 주제에 두 사람이 할리우드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스콧이 17세 신인 배우 로이스 모런에게 반해 젤다와 그녀를 비교하면서 젤다에게 상처를 주다가 급기야 이렇게 말했단다. 자신이 로이스를 흠모하는 이유는 “적어도 그녀는 재능에 노력을 더해 무언가를 이룬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오마이갓! 도대체 그들 부부 사이에 어떤 일이 있던 것일까? 젤다가 발레 레슨을 받으며 또 다른 재능을 발견, 발레단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을 때도 그녀는 결국 입단을 포기한다. 가족 때문에. 이런 와중에 서서히 그녀는 신경쇠약을 겪게 되고, 조현병 진단을 받는다(이 또한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녀의 증세는 조울증이며, 병의 주된 원인은 가정 문제였다). 신경쇠약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때마다 스콧은 좀더 저렴한 병원으로 그녀를 옮겼으며, 그런 와중에도 쉴 새 없이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이런 상태에서 의사들은 젤다에게 ‘순종적인 아내와 엄마의 위치’를 재교육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에게 발레와 글쓰기를 금지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스콧 피츠제럴드의 알코올중독과 정신적 슬럼프를 모두 젤다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재능을 착취당하고, 출구처럼 찾은 발레를 통해 입단 기회가 찾아왔어도 가족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젤다. 정당한 이혼 요구에도 감금당하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화재로 세상을 떠난 젤다 피츠제럴드. 그녀의 삶에 한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녀가 만일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남편의 미완성인 작품을 위해 자기의 완성작을 수정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써서 출간하고, 자신의 또 다른 재능인 발레와 회화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었다면, 그녀가 과연 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갇혀 불길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갔을까? 그렇게 죽고도 스콧 피츠제럴드의 재능을 갉아먹은 ‘나쁜 아내’ 이미지를 뒤집어쓴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겨졌을까? 절대로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억압당한 젤다의 삶은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녀의 단편들은 대개 여성들이 자신의 재능 또는 커리어를 펼치려고 애써 노력하지만 이런저런 벽에 부딪혀 좌절되고 만다. 여자의 삶에서 결혼과 일은 양립할 수 있는지 묻기도 하며(<오리지널 폴리스 걸>), 가정을 버리고 꿈에 가까이 다가갔으나 성공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여자가 등장하기도 한다(<재능 있는 여자>). 순수했던 영혼이 타락해 망가지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도 있으며(<미스 엘라>), 성공의 환상을 좇다가 그들을 소비하던 사람들에게 무참히 버림받는 이야기인 <미친 그들>은 젤다와 스콧의 삶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보인다. 이렇듯 그녀의 단편은 주로 그녀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바탕으로 그려진다. 뒷부분에 실린 에세이에서 젤다는 결혼과 연애를 논하고,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자유연애와 댄스홀, 방종 등 부정적 의미로 쓰였던 미국의 신여성 ‘플래퍼(flapper)’의 삶을 예찬하기도 하고, 화장에 빗대 여성의 자기표현 욕구를 위트 있게 쓴 에세이 <연지와 분>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 에세이 또한 스콧의 이름으로 발표됐다고 하니, 참으로 통탄스러울 뿐이다.



그 많은 이름들과 번호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대체로 외롭게 살았고, 혹독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얼마 안가 한꺼번에 여러 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 년을 런던 무대에서 보내는 동시에 파리의 스위트룸과 뉴욕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당시 그녀에게서 풍기는 긴박함과 미스터리의 분위기는 그녀를 매우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오리지널 폴리스 걸>, 26쪽)

미스 엘라의 이야기도 여자들의 이야기가 다 그렇듯 러브스토리였고, 러브스토리가 대개 그렇듯 과거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에게 사랑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잼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다. 어제의 잼, 내일의 잼, 하지만 오늘의 잼은 없다. 여하튼 미스 엘리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그녀는 ‘과거 언젠가’의 잼 위에서 그저 명목적으로 살았다. 날개로 허공에 눈부신 물보라를 뿌리며 물 위를 나는 새처럼 인생의 희로애락을 스쳐 지나면서. (<미스 엘라>, 81쪽)

내가 말하는 권리는 내일이면 죽고 없을, 속절없기에 더 애틋한 자기 자신을 실험할 권리를 말한다. 여자들은 열에 아홉은 일생을 임종 분위기로-그 분위기가 최후의 발버둥이냐 순교자의 체념이냐의 차이일 뿐- 살지만 내일 죽지는 않는다. 그 다음날도 죽지 않는다. 그들은 여러 가지 쓰라린 최후 중 하나를 맞을 때까지 쭉 살아야 한다. (<플래퍼 예찬>, 125쪽)

목청이 좀 죽기는 했지만 여전히 도덕군자들은 얼굴 윤색은 도덕성이 의심스러운 여자의 증거이고, 부끄러운 돈 낭비이고, 그럴 돈이 있으면 중국에 기독교와 라디오와 세계대전을 전파하는 데 쓰겠으며, 그것은 부자연과 죄악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번영과 힘이 있으면 거기에 예술과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과 장식을 바라는 취향이 따르기 마련이다. 미국 전체가 할리우드가 되고, 극장에서 비너스가 좌석 안내를 하고, 살로메가 코트보관소에서 일하는 그날까지, 예쁜 처자들이 더 많아지고, 이미 예쁜 처자들은 더 예뻐져라. (<연지와 분>, 149쪽)


《젤다》를 덮고 나니, 앞으로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읽을 때 더 이상 예전처럼 열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비판의 눈으로 읽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는 젤다의 향기가 느껴지는데? 생각할지도 모른다.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는 이 책 《젤다》를 읽음으로써 스콧 피츠제럴드를 잃어버렸다. 어떤 면에서는 그에게 상처받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젤다 피츠제럴드라는 한 작가를 새로이 얻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비롯해 젤다의 평전도 이 땅에 소개되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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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4-25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콧을 잃고 젤다를 얻다 ...너무 의미심장한 제목과 글입니다 우리 발군의 문필가, 잠자냥님을 어찌 따라가나 ㅜㅜㅎㅎ

잠자냥 2019-04-25 12:27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런 과찬을! ㅎㅎㅎ 덕분에 오늘 점심이 더 맛있겠어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9-04-25 12:32   좋아요 0 | URL
책만 읽으세요??? 늘 이런 질문을 합니다 글만 적으세요??? 그런데 이렇게 멋진 문장과 함께!!! 덕분에 전 맛없는 점심을 먹겠군요 ㅜㅜ비교불가 잠자냥님 엉엉엉~

다락방 2019-04-25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피츠제럴드를 얼마나 사랑했다구요. 그의 단편들을 얼마나 사랑했다구요. 특히나 <컷 글라스 보울>은 압권인데. 단편의 왕은 피츠제럴드라고 생각했단 말입니다.
그런 제게도 이 책, [젤다]는 아프게 읽히겠네요. 그렇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테구요.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님. 정말이지, 늘 감탄하고 갑니다. 부지런히 써주세요!

잠자냥 2019-04-25 14:06   좋아요 0 | URL
<컷 클라스 보울>은 저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저 또한 피츠제럴드 단편을 무척 좋아하고요. ㅠ_ㅠ 그가 자신의 모든 단편을 젤다와 같이 쓰지는 않았겠지요. 흐흐흑... 그럼에도 왠지 이 씁쓸한 기분은 떨치기 어렵네요.

항상 칭찬과 응원의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독서괭 2019-04-26 0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젤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얼마전 <더 와이프>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피츠제럴드 부부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 2019-04-26 08:40   좋아요 0 | URL
더 와이프도 읽어봐야겠네요. 아 왜이렇게 읽을 책이 많은거죠..

잠자냥 2019-04-26 09:5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독서하시길~!

다락방 2019-04-26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자냥 님 리뷰 너무 좋아요! 어떻게 이렇게 리뷰를 잘 쓰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진짜 못하는 거거든요. 한 권의 책을 읽고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줄거리를 정리하고 그에 대한 감상을 적는 거요. 뭐랄까, 체계적으로 잘 정돈된 글이랄까요? 그래서 잠자냥 님 리뷰를 볼 때마다 엄청 감탄해요. 어쩌면 이렇게 잘쓰실까, 이게 어떻게 될까... 하고 말이죠. 전 요즘 잠자냥 님 리뷰 읽는게 너무 좋고!! 부럽고!! 질투도 나고!! 즐겁고!! 그렇습니다. 전 잠자냥 님이 요즘 알라딘을 날아다니시는 것 같아요. ㅎㅎ

잠자냥 2019-04-26 16:17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제가 이 댓글에 활짝 웃습니다. ^_______^

저는 오히려 다락방 님처럼 완전 솔직하고 자기를 거의 숨김없이 다 드러낸 그 가감없는 글이 부러울 때가 많던데요. 그런 용기는 진짜 쉽지 않거든요. 언제나 유머러스하고요. 암튼 제 리뷰를 그렇게 잘 읽어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다락방 님의 글도 늘 응원합니다~!

케이 2019-04-29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참. 스콧 피츠제럴드 세상 낭만적인 척은 다 하더니, 젤다에겐 정말 호로자식이었네요. (죄송합니다 험한말) 저 정도면 한 여자의 인생을 완전히 망친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젤다가 정신병원이 불타서 죽은 건 처음 알았는데 너무 끔찍하고 가엾네요. 세상에나..사실 전 스콧 피츠제럴드 책은 ‘위대한 개츠비‘ 밖에 안 읽어봤답니다. 남들이 다 좋다 하는데 저는 영 감흥이 없어 다른 책은 찾아 읽지 않았는데... 나중에 혹시 그의 다른 책을 읽게 된다면 잠자냥님 리뷰가 생각날 것 같네요.
P.S 이번에 나온 젤다라는 책은 책 디자인이 잘된 것 같네요. 전에 ‘아작‘에서 나온 어처구니 없는 책디자인 보고 잠자냥님게서 아작내고 싶다고 한 리뷰 생각나서 또 웃었습니다. 푸하하하.

잠자냥 2019-04-29 14:51   좋아요 1 | URL
ㅎㅎ 그래도 둘이 서로 좋아할 만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만났으려니 싶어요. 근데 정말 정신병원에서 죽은 건 너무 충격적이지요. 스콧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보다는 단편 중에 더 좋은 작품이 많은 것 같아요. 전 <위대한 개츠비>는 좀... 개츠비 캐릭터가 볼수록 너무 싫어서;;(순애보라고 하지만 제 눈에는 스토커 같아요;;;) 이 작품은 이상하게 정이 안가더라고요.

ㅎㅎ 아작에서 나온 그 책은 표지 덕분인지 아직까지도 읽지 않았어요..; ㅋ

diary 2020-09-06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부사이의 일은 부부만 알지 않을까요..

잠자냥 2020-09-06 09:41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바로 그 부부 중의 한 사람이 쓴 책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