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에는 나도 꽤 행동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수요집회를 비롯해 이런저런 ‘운동’에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사회운동에 회의감이 들어 이제는 그냥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처지, 방관자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무리지어 모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면서 더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의감은 살아 있는지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사회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점을 목격하게 되면 참지 못하고 욱하고는 한다. 예전처럼 거리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지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화면을 통해 그런 소식들을 접할 때면 ‘리트윗’을 한다거나 ‘좋아요’를 누른다거나, 그런 뉴스 링크를 내가 아는 이들에게 전해주면서 참여를 종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인권이나 동물권 등 약자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그 정도가 내가 여전히 할 수 있는, 사람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작은 참여 중의 하나이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책을 읽는 일도 어떤 의미로는 그런 참여에 속하기도 한다.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아직 이 세계에는 변화를 꿈꾸며 행동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그런 이들 때문에 세상은 좀 더 진보하고 있다고, 그 열정을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리고 그런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 책은 저자 매슈 대니얼스를 비롯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실려 있다. 그리고 그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오늘도 내가 익숙하게 사용한 평범한 기술을 이용해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매슈 대니얼스는 법학박사 겸 인권 운동가로 오늘날 자신의 목소리를 이렇게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위치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다. 뉴욕 할렘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퇴근길에 괴한의 공격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야 했다. 학교를 오가는 길, 그의 소원은 오직 하나. 강도를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흉기로 위협받고 헤아릴 수 없이 물건을 빼앗겼으며, 일상처럼 살인 현장을 목격하기도 한다. 칼로 난자당해 죽은 시체에서 흘려진 피는 그가 살던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그는 그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 지역을 벗어나도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그는 그 악몽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나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살피라는 명령’을. 악몽은 그에게 다른 삶을 살아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는 마침내 “아무도 혼자여서는 안 되며, 타인의 고통은 우리 자신이 고통만큼이나 중요하다.” 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실천하는 삶을 시작한다.
그토록 참혹한 성장 배경을 딛고 일어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는 저자의 이력도 감동적이지만, 이 책에 그려진 평범하지만, 세상에 큰 변화를 불러온 다른 이들의 삶은 더 큰 울림을 준다. 아프리카에 100여개가 넘는 우물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 꼬마, 모기장을 만들어 세네갈 가구의 80퍼센트를 살린 엄마와 딸, 히잡을 벗고 춤추는 동영상을 매주 올리는 여성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운전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여성 등등. ‘나’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많은 이들이 평등하게, 자유로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이들의 작은 저항이 일으킨 커다란 변화를 읽노라면 그들의 용기와 행동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에게 운전할 권리를 찾아준 ‘알 샤리프’의 이야기는 가장 인상 깊다. 2011년, 볼일 때문에 외출해야 했던 알 샤리프는 적절한 교통수단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대중교통 수단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럼 운전하면 되잖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 운전이 금기시된 나라이다. 더욱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법적 지위는 미성년자와 같기 때문에 가야할 곳이 있으면 무조건 남성을 대동해야만 했다. 그녀는 자동차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나 쓸 수 있는 국제운전면허증이 있는데도 이동의 자유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운전이 허용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곧 법 어디에서도 여성 운전이 불법이라고 명시되어있지 않음을 알게 되고 드디어 직접 운전을 하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직접 운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결과는 참혹했다. 그녀는 9일 동안 구금됐고, 일자리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욕설을 들어야 했으며, 감옥에 간 것으로도 모자라 태형에 처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형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그녀는 고국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고 페이스북을 통해 ‘우먼 투 드라이브(#Women2Drive)’ 운동을 이끌어 나갔고, 마침내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 운전을 허용하기에 이른다. 알 샤리프가 운전 영상을 올린 뒤 7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고국에 돌아갈 수 없으므로 이 소식을 나라 밖에서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런 조치는 여전히 남성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억압적 현실을 호도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이 운전해서 병원에 가는 것은 허용됐지만 여성은 남성 후견인의 허락이 없으면 의료보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여성이 운전해서 은행이나 직장, 공항에 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시설은 남성의 공간이므로 여성은 남성의 허락이 있어야만 시설을 쓸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알 샤리프는 이에 대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운전이 아니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남성 후견인 제도가 종식되는 것, 즉 여성이 완전하고 독립적인 시민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비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실은 아직도 답답하고 갈 길이 멀지만 여성들은 이제 운전하고 이동할 수 있다. 알 샤리프 같은 여성이 존재하는 한 저 드높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장벽도 조금씩 허물어지지 않을까?
우리와 밀접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북한 인권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탈북민인 태영호 전(前) 주영 북한 대사관 공사의 말을 빌려 북한 인권의 참혹한 현실을 소개한다. 태영호는 외교관 신분으로 다른 세계를 접하면서 북한이 얼마나 잘못된 체제인지 깨닫고, 자식들에게는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목숨을 걸고 탈북을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외부 정보에 철저히 차단되어 있어 자신이 사는 세계의 모순을 깨달을 기회가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이유로 북한 주민에게 다른 세계의 삶이 담긴 USB를 보내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인터넷이 차단된, 감시와 검열이 일상화된 세계에 내부 붕괴를 유도하는 이 방식은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밖의 생활을 알려주고 싶지 않으세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USB를 노 체인 포 노스코리아(no chain for north korea)에 기증하세요. 기증하신 USB는 대한민국에 보내져 드론이나 열기구, 물병 등을 통해 북한에 전달됩니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디지털 비디오, 위성 영상, 모바일 기술 등을 이용해 정부의 가혹한 억압과 검열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를 온 세계에 전하고 큰 변화를 일구어낸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기술은 선한 목적으로 싸우는 이들이 승리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해주었다. 때문에 저자는 ‘인터넷은 좋은 생각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보편적 인권 운동의 추진력을 마련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말한다. 물론 기술은 나쁘게 쓰일 수도 있다. 인터넷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해방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나쁜 선전을 퍼뜨리고 테러리스트를 모집하고, 사생활을 침해해서 국민을 억압할 때도 이용된다. 그래서 저자는 어떻게 ‘인터넷의 악용을 막고 선용을 늘릴’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보내기, 트윗하기, 게시하기, 게제하기 등의 버튼을 누르거나 마우스를 클릭해서 누구나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괴롭히며 따돌리는 사이버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은 행동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유를 선사하기도 한다. 꼭 거리로 나가서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자신의 집에서,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등등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악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훌륭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 짓는다. 폭로하는 사람이 없으면 계속해서 아동 노동 착취가 늘어날 것이고, 여성은 차별당할 것이며, 소녀들은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라는 그의 말, ‘타인의 죽음을 간과할 때 우리의 품격은 손상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는 그의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좀 더 열심히 인터넷으로라도 세계 변화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거리로 나가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지는 않더라도 손가락마저 침묵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