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요즘 들었던 생각.
서른에 독립해 줄곧 TV 없이 살면서 별 불편함을 모르고 지내다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거실에 텔레비전이라는 것을 놓게 되었다. 올해로 12년째 나와 함께 살면서 덩달아 텔레비전 없는 삶에 익숙해진 집사2가 어느 날 “텔레비전 없이 사는 건 좋은데 안 보니까 사람들하고 진짜 가벼운 대화도 못 하겠어. 사람들이 하는 말 못 알아들어서 약간 별종 취급까지 받잖아!” 말했고 그 이야기에 조금 고민했다. 그러다가 결국 둘 다 영화를 좋아하니까 집에서 영화는 큰 화면으로 보자! 그래서 텔레비전을 놓게 된 것이다. 그 후로 나랑 집사2가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 서비스를 보기 위한 게 아닌, 공중파를 보려고 텔레비전을 켠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둘 다 기계하고 친하지 않아서 텔레비전 켜는 방법도 잘 모른다(우리 집 TV는 케이블 모드를 좀 다르게 작동해야 켜지는데 이게 영....어려워! 설치 기사가 알려주고 갔으나 까먹은 지 오래). 언젠가 한번은 둘이 산책하는데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무슨 날이야?” (폰으로 검색 후) “축구 한일전 한다는데?” “그럼 후반전이라도 볼까?” 집으로 돌아와 그제야 텔레비전을 켜보려고 애쓰던 우리 둘은....... 텔레비전 켜는 데 실패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드디어 켰더니 후반전 40분이었다. 그러니까 40분 넘게 TV와 씨름을 벌인 우리 둘...... -_-; 그것도 벌써 언제였던가.
그날 이후 텔레비전은 다시 잠들었다. 그러다 내가 TV를 다시 켰던 날은 2022년 10월 29일이다. 이태원 참사가 있던 그날. 집사2는 일찍 잠들었고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트위터를 훑던 나는 기묘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핼러윈이라 이태원에서는 이러고 노는구나, 싶었는데...아무래도 이상했다(골목에 정신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누워있고 여기저기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던 그 영상). 장난이라고, 핼러윈 코스튬 플레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기괴해서 트위터를 검색하다가 이태원 사고 소식을 접하고는 텔레비전 뉴스를 켰다. 그날 밤새 뉴스를 봤다. 나는 아직도 그때 본 이미지들을 잊지 못한다. 여전히 이태원 그 근처를 지날 땐 소름이 끼친다. 이 나라와 그 정부에 대해서. 그들 중 아무도 처벌받은 이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내가 다시 텔레비전을 켠 것은 2024년 12월 4일 저녁이다. 12월 3일 밤 10시부터 잠들었던 나는 그날 10시 이후로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하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윤 씨가 12월 3일 밤 10시 22분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6시간 만에 계엄 해제를 선언했음을 알게 되었다. 출근 이후 종일 뉴스 사이트를 들락거리던 나는 퇴근 후 텔레비전을 켰다. 그런데 뉴스는 내 기대치에 한참 부족했다. YTN 뉴스의 패널로 나온 어떤 이는 윤 씨의 내란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나라에서 이런 쓰레기 같은 뉴스를 도대체 왜 지켜보고 있을까. 텔레비전을 껐다. 텔레비전은 과연 어떤 정보를 내게 주는가? 볼 가치가 있는가?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어본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다. 언젠가 은곰탱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만추”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이상했는지, 그 말을 쓰는 내가 신기했는지, 그 말을 쓰는 맥락이 이상했는지, 은곰탱이가 물었다.
은오: 그 말 어디서 배웠어?
자냥: 텔레비전에서
은오: 무슨 뜻으로 쓴 거야?
자냥: 자고 나서 만남 추구 아니야?
은오: (빵 터짐) 텔레비전에서 그렇게 썼다고? 무슨 프로그램인데?
자냥: SNL코리아라고.. 쿠팡플레이인가 거기서 하는 건데, 신동엽이 진행해. 맨날 섹드립하는 방송이긴 한데... 거기서 그러던데?
은오: ㅋㅋㅋㅋㅋ 어쩐지... 근데 그런 것도 봐? 신기하네...
자냥: 집사2가 볼 때 몇 번 봤어.
은오: 근데 아무튼 그거 아니야!!!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야. ‘자만추’ 어디 가서 그렇게 쓰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아!!!!!!
아..........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와’ ‘자고 나서 만남 추구’............ 똑같은 “자만추”인데 의미는 이렇게나 다르다. 은곰탱이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으면 나는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배운 이상한 용어를 쓰면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있을 게 아닌가..... 텔레비전은 과연 어떤 정보를 내게 주는가? 볼 가치가 있는가? 또 다시 고개를 가로저어본다.
2022년 내가 뉴스를 보며 밤을 지새우게 했던 그 정부는 2024년 다시 나를 TV 뉴스 앞으로 이끌었다. 벌써부터 피로감이 든다. 윤 씨의 혐오스러운 얼굴을 더는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이번 사태로 다시 텔레비전 뉴스를 볼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럼에도 내가 다시 뉴스를 켜게 되는 일이 있다면 그때는 윤 씨가 그의 사기꾼 와이프와 함께 감옥에 갇히는 장면 때문이기를 빌어본다.
텔레비전보다 책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이 인생, 나름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죽음 :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가까운 이들이 이런저런 질병을 앓고, 그런 까닭에 어느 해보다 자주 병원을 드나들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한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삶 쪽에 더 많은 생각을 기울였다면 이제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나이가 되었구나........ 그런 즈음에 출간된 이 책은 눈길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죽음 사유에 대한 기념비적 저작”이라는데.
앙리 라보리, <도피 예찬>
도피하라! 말 그대로 도피를 예찬하는 책이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사실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책읽기를 무엇보다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거지같은 현실이나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인간들로부터 도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날 때부터 도피 환자로서 도피 예찬자를 만나다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피터 싱어, <기근 풍요 도덕>
피터 싱어의 새 책이 나왔다. 그는 말한다. 눈앞의 어린이가 물에 빠져 죽게 내버려 두는 것과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는 아이를 방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말이 되느냐고? 피터 싱어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또 그는 말한다. 도덕적으로 살기는 쉽지 않다고, 지금 당장 실천하라고. “많은 이들의 삶의 방식을 바꾼 현대 윤리학의 고전”- 책이 얇아서 다 읽고 이미 100자평 남김.
토마 피케티, <평등의 짧은 역사>
피케티의 두꺼운 책을 읽자고 벼르기만 하던 중 이 책이 나왔다. 그의 <21세기 자본>이나 <자본과 이데올로기> 등의 요약판 같은 책이라고 하기에 이 책부터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 책을 비롯해 <21세기 자본>도 밀리의 서재에 있.........-_- 이 사실을 이미 종이책을 구입하고 난 후 알게 된 나는 아뿔싸! 했으나. 이런 책은 사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으로 읽어야 제 맛 아닌가.
우치다 타츠루,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타자성의 철학’ 레비나스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 알고픈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완전 내 취향이야....). 이 책은 일본에서는 레비나스 연구 대가로 알려진 우치다 타츠루의 레비나스 연구가 집약되어 있다. 다른 책보다 일단 재밌을 거 같아서 구매.
에마누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그러니까 잠자냥은 한국의 방구석 레비나스 연구 대가가... 되겠다능...(응?)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쓰인 책으로 “타자(他者)를 동일자(나)로 환원하려는 서양 존재론의 전체주의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을 배경”으로 한다.
파스칼 메르시어, <자기 결정>
존엄성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방식에 관한 책. 행복까지 추구하지는 않더라도 존엄성은 지키면서 살고 싶구나. 페터 비에리, 아니 파스칼 메르시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2011년에 열린 3일간의 강연을 토대로 쓴 책-
토니 모리슨, <토니 모리슨의 말>
닥치고 사요. 출간 알림 보자마자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계속 출고일이 미뤄져서 아 답답해! 아 답답해! 외치던 중 드디어 내일 오전 7시 도착!! 떠서 바로 구매.
멀리사 피보스, <내 어둠은 지상에서 내 작품이 되었다>
출간 알림 설정해놓고 기다리던 책이다. 부제는 “여성의 몸, 자아, 욕망, 트라우마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 현대의 페르세포네들을 위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텍스트”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논픽션 글쓰기 교수인 멀리사 피보스의 대표작. “‘잡년’ 취급받으며 괴롭힘당한 청소년기와 도미나트릭스로서 성노동에 종사한 20대 초반 시절을 주로 다루면서 가부장제 체제가 여성의 10대 시절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자아 형성과 인간관계 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날카롭게 분석”한다고. 어떤 의미에서는 레이첼 모렌, <페이드 포>와 비슷할 것 같기도.
이민주, <페미사냥- 젠더 정치 탐구>
이 시리즈가 종종 밀리의 서재에서 발견된바, 이 책도 곧 올라오지 않을까 싶어서 기다려보려고 했으나 종이책으로 읽고 싶어서 급박하게 주문해서 급박하게 읽고 급박하게 100자평도 남김. 일단 저자 자신이 ‘서브컬쳐 오타쿠’로서 내부 분석이 흡인력 있었고 나처럼 그 세계 문외한인 이들에게 그 세계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을 주었다....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페미사냥이 그 오타쿠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니 에르펜베크, <카이로스>
요즘 소설이 재미가 없다.... 문학이 잘 안 읽히는 때가 있는데 요즘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그런 중에도 눈에 들어온 이 책. 12월에 문학은 아마 이 책이 유일하게 지른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념의 세계가 무너지며 펼쳐지는 격정 로맨스”! ㅋㅋㅋㅋㅋㅋㅋ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역사의 격동기를 무대로 펼쳐지는 한 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다고.
2024년의 책탑은 이것으로 끝.....! (징짜?!)
그나저나 윤 씨 내란 사태 때문에 트위터를 훑다가 엥?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건데....? 싶었더니! 아하! 내가 남긴 100자평이 마음에 들었는지 반비 출판사 관계자(이 책의 편집자 또는 마케터가 아닐까 추측 중)가 리트윗을 한 게 내 트위터 타임라인까지 온 것이었다..... 저기요, 그 100자평 쓴 거 저랍니다. 저 잠자냥이 바로 저에요. 할 수도 없고. 아무튼 이 책은 훌륭하다. 제가 이 책 두 권이나 샀습니다. 한 권은 알라딘에서 한 권은 교보에서. 아무튼 이 책 읽고 리뷰 남겨서 ‘이달의 당선작’에 꼽히기도 했었으니... 뭐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내 책도 팔고 남의 책도 팔아주는 열일 편집자냥.... 이 책은 바로 이거랍니다.
마지막으로 고냥이 사진- 내 껌딱지. 우리 3호 좀 보세요. 혼자 너무 어두운 방에 있지 말라고 알라딘 램프 켜주고 난 후 넘나 조용하기에 뭐하는지 몰래 가 봤더니... 꺄아아아 아 ㅏㅏㅏㅏㅏㅏㅏ ㅏ 너무 귀여워. >_< 저러고 한참 쳐다보고 있떠라고요?! 뭘 보니?! 내 사랑!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