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어나서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책 읽기뿐이라 그 시절에도 책 읽기가 가장 쉬웠고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라 유치원이고 학교고 단체 생활을 하러 집을 나서서 어딘가로 가야한다는 것 자체가 어린 시절부터 극한 스트레스였다. 그럴 때 책은 유일한 위로이자 도피처였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걸어 다니면서도 책을 읽었다. 당연히 등하교 때도 친구와 같이 다니기보다는 혼자 책을 읽으면서 학교를 가고 집을 오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학교 앞 문방구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쟤는 오늘도 저렇게 책을 읽네...” “쪼끄만 게 책을 항시 손에 들고 있어.” 뭐 이런 류의 칭찬 비슷한 소리가 귀에 날아와 꽂히는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아니, 아줌마 제가 읽는 책은 공부 책은 아니라서.... 하고 속으로 좀 민망했던 기억도 난다.
그 시절에 한번은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따로 불러 묻기도 했다. “자냥아, 너는 책이 그렇게 재밌니?”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 책만 보고 있는 걸 지켜보다 보다 하신 말이었다. “네.” 선생님은 “책도 좋지만 그래도 친구들하고도 놀아야지.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참 재밌을걸.”라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는 ‘아닌데, 책이 더 재밌는데....’ 하면서도 “네.”하고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책 읽는 게 문제인걸까 싶으면서도 아니 내가 너무 애들하고 안 어울려서, 문제라는 것이로구나, 근데 난 애들이랑 놀기 싫은데, 지루한데.... 하, 이젠 책도 몰래 봐야 하는가 보다.... 이런 생각을 했다.
실제로 나는 책이 인간보다 더 좋았고, 좋고, 좋을 것이다. 웬만한 인간과 같이 시간을 보내느니 내 방구석에 홀로 앉아, 아니 누워서 책을 읽는 게 더 좋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다수 인간과의 대화는 무의미하고 머릿속으로 딴 생각을 하게 되며 기어코 하품이 나올 때가 더 많다. 중고등학교 때도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었다. 그놈의 연예인, 누가 누굴 좋아한다, 어떤 선생님이 좋다...... 거의 대부분은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좋아하는 이야기- 인간은 짝짓기의 거대왕국 속에서 짝을 찾아 헤매며 일생을 보내는구나 하품- 대학교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뇌가 자라고 성장을 해도 그놈의 짝짓기 왕국을 못 벗어나는구나 하품- 그래도 빙고! 대학교에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에 앉아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1, 2학년을 보냈더니 어느 날인가 과에 이런 소문이 나 있더라. “자냥이, 쟤 편입시험 공부한대.” 에에에엥? 그럴 리가 내가 미쳤다고 다시 입시 공부를 하니.

이와중에 KDB생명클린센터 뭐니....
아무튼 이런 인간이다 보니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학창 시절 친구들도 다 연락이 끊겨서 현재 내 아이폰8 연락처에 등록된 32개의 연락처 중 가족, 회사 및 일 관련 연락처 빼고 오롯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딱 8명이다. 그 친구들도 내 나이 서른 넘어 대부분 온라인으로 알게 되었고 나이도 각양각색 공통점이라면 다들 어쨌든 책을 좋아하고, 한둘을 제외하곤 비혼에, 대한민국 인구 소멸에 기여하고 있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처럼 사람 만나는 걸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우리끼리도 일 년에 한 서너 번 볼까말까. 어쩌다 좀 자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우리 요즘 너무 자주 본 것 같다. 치즈 곰팡내 난다.”라는 말과 함께 만나는 횟수를 확 줄이기도 했다. ‘치즈 곰팡내’ 발언은 소로우의 <월든>에서 밑줄 그어놓은 부분인데, 소로우도, <월든>도 좋아하지 않지만 이 구절만큼은 진심 명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사람들의 사교는 값이 너무 싸다.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만나서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치즈를 서로에게 맛보인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어 서로 치고 받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예의범절이라는 일정한 규칙들을 협의해놓아야 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195쪽, 은행나무
이렇게 뜬금없이 구구절절 ‘인간관계’ 이야기를 늘어놓는 까닭은 어제 은오 님 서재에, ‘알라딘 북플(서재) 친구 신청’에 관해 몇 자 댓글을 남기다가 든 생각 때문이다.

위와 같은 댓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어느덧 7~8년째 알라딘 서재를 내 블로그처럼 이용하고 있는 나- 처음에는 그저 리뷰 몇 개 올렸더니 이달의 당선작이라면서 적립금을 주기에 아니, 책 사볼 공돈 욕심에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어느덧 댓글 놀이 그 맛에 빠져서 이것도 회사 일의 하나라며(시장 조사/소비자 니즈 조사?), 나는 월급 루팡이 아니라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척척 자진해서 하는 훌륭한 사원이라면서 출근 전부터 퇴근 전까지 거의 상주하고 있는 이곳-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게 친구 신청을 막 여러분이 하시던데 이게 참- 온라인이면 그냥 다 받아줘도 될 텐데, 이놈의 현실에서도 친구 없는 성격은 가상(?)은 아니지만 아무튼 온라인에서도 괜히 꼬장꼬장해서 막 다 위 아더 월드하게 되지는 않더라. 오프라인에서도 그 어린 시절부터 타인에게 먼저 친구하자고 말하지 않듯이(친구의 필요성 잘 모르겠,,,,) 온라인에서도 잘하지 않는데(먼저 신청하는 경우는 정보 취합에 도움될 거 같을 때만), 이곳 분들은 덥석덥석 참 친구신청도 잘 하시더라.
그래도 그걸 다 받아주긴 그렇지 않은가? 아닌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 경우에는 현실에서나 이 온라인에서나 아무나 다 친구한다는 게, 팔로우/팔로워 수 많다는 게 허상같이 느껴져서(내 기준엔 현실에서 인맥 자랑하는 사람처럼 공허하고 못나 보이는 사람 없다) 나름 기준을 세워서 받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잠자냥에게 친구 신청은 했으나 친구(?)가 되지는 못한 239명의 분이 계시는데..... 그분들 중엔 속으로 아 저 인간 뭐라고 여태 안 받아줘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자면 제가 잘나거나 뭐 그래서가 아니라 오히려 못나서 그 많은 인간들을 관리(?)할 자신도 기운도 의지도 없어서 그런 것이다 하고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그런데도 억울한 분이라면 혹시 본인의 프사가 (트위터로 말하자면) 달걀귀신, 혹은 유령처럼 실체가 없는 상태는 아닌지(유령하고 친구할 순 없잖아요?), 아니면 이와 달리 너무 본인 얼굴에 자신이 넘쳐서 실제 본인 얼굴을 프사로 한 건 아닌지(이런 분들이 좀 있었는데 타임라인이라고나 할까 북플 ‘나의 뉴스피드’에 그 실제 얼굴이 자꾸 뜨니까 너무 깜짝 놀라가지고 그냥 친구를 끊었다.........) 확인해주시기 바란다. 인간의 얼굴을 프사로 했을 때 내가 용납할 수 있는 건 다락방 그 인간처럼 ‘안젤리나 졸리’라든가, 이제는 개구리에서 유령으로 변했지만 한때 ‘공유’에서 ‘이동욱’ 얼굴을 프사로 한 물감 님 정도가 친구신청 했을 때 받아주기 편하다(만 물감/잠자냥은 친구 사이 아님).
현실 세계에서도 친구는 생각이나 취향이 어느 정도 맞아야 우정이 성립한다. 그래서 나는 친구 신청을 받았을 때 일단 그 신청한 사람의 북플을 좀 훑어보는 편인데, 나만의 저 ‘벡델자냥테스트’에 따르자면 북플에 최근 읽은 책이 온통 자기계발서이면 일단 받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만났는데 부동산투기, 스팩쌓기, 인맥쌓기, 주식투자, 이런 이야기만 하는 친구 만나요? 전 안 만나요. 저리 가 제발. 이 문장만 쓰는데도 갑자기 피곤해진다. 절레절레. 그 다음은 BL/GL/로판 등의 책으로만 도배된 분도 받지 않는다. 내가 BL/GL/로판을 싫어해서가 아니라(동물성애자도 이해하는 마당에 이런 장르와 이런 장르를 보는 분들을 이해 못할 게 뭐가 있는가) 그 책 이미지들이 내 북플 스피드 라인에 뜨는 게 싫다. 특히 BL........... 성애적인 느낌의 그 표지가 내 북플 스피드 라인을 점령하는 게 그저 싫을 뿐(정리의 달인 TJ라 어쩔 수 없음). 이런 기준에서 친구 신청 한 분의 북플이 온통 ‘읽었습니다/읽고 있습니다/읽고 싶어합니다’ ‘밑줄긋기’로만 도배된 경우도 받지 않는다. 최소한 내가 판단할 수 있는 100자평, 리뷰, 페이퍼 등이 몇 개는 있어야 한다. 친구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이 너무 심하면 좀 그렇지 않은가? 니 이야기도 들려줘야지 내 이야기만 들을 거니? 아마 이런 기준에서 은오 님을 판단할 수 없어서 며칠 동안(?)이었나 아무튼 한동안 친구 신청 안 받아줬었다. ‘얜 뭐야? 아무것도 없네. 그냥 나 따라다니다 맘에 안 들면 가던가.........’ 라고 생각했다는.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추가된 기준은 다락방 그 인간을 친구로 삼고 있는가. 팬도 많지만 안티도 많은 이 인간은 이 인간을 좋아하고/싫어하는 사람들의 기준이 나름 선명한지라 판단하는 데 아주 좋은 기준이 된다. 책 좀 읽는 사람들이 모이는(???) 아니 주고받는 온라인 댓글들 보다 보면 알라딘은 페미 친화적이다, 페미가 점령했다 뭐 이런 댓글도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알라딘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인간들도 있더라(!) 아무튼 그 알라딘의 페미화에 앞장선 다락방, 다부장 그 인간은 여성주의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1순위로 친구 추가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여성주의를 싫어해서 1순위로 친구 추가에서 제외하는 인물이기도 하다(고 잠자냥은 판단). 그래서 다락방의 친구이면 일단 벡델자냥테스트에서 1점 상승.

자냥의 벡델테스트로 활용되는 다락방 그 인간.....
근데 이 인간은 알라딘 서재의 완전완전 고인물이라 친구가 너무 많아. 초창기에 이 인간을 이웃으로 둔 분들 중엔 꼭 이 인간이 페미여서 추가한 건 아닌 것 같더라. 그냥 책(특히 소설)을 무쟈게 많이 읽고 많이 먹고 많이 써대니까 친구 추가한 분도 많은 것 같아서 언제부터인가 내 기준으로 삼기엔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그래서 거기에 한 번 더 거르는 용도로 ‘공쟝쟝’을 팔로우하고 있는가를 추가했다. 이 사람은 일단 알라딘 서재 고인물은 아니고, 최근 유입된 터라 친구 수가 다락방만큼은 많지는 않을 것 같고, 특히 요즘은 아주 대놓고 극렬하게 남성 혐오를 외치고 있어서 안티페미니즘이나, 여성주의 혐오자들을 거르는 용도로 아주 훌륭한 잣대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친구 신청 받아서 친구로 지내다가, 끊었거나 아예 안 받은 분들 중엔 서평용 책만 공짜로 받아서 리뷰하거나, 리뷰 대회용으로만 리뷰 쓰는 분들도 있다. 리뷰 대회에 참여하는 건 반대하지 않는데(나도 종종 한다), 리뷰 대회용! 으로만 글을 쓰는 건 뭐랄까 그 사람의 글에 대한 신뢰도를 팍 떨어뜨린다. 믿을 수가 없잖아요... 믿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친구로 삼아요?
아무튼 그런데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에휴, 자냥 니 따위가 뭐라고 친구 신청을 받아주고 말고 하냐, 걍 다 그냥 받아..... 그리고 정리되지 않아서 어지러운 북플을 니가 보지마, 하면서 막 받아줄 때도 있으니 별 기준은 없는 것인지도. 아무튼 친구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잖아요?
마무리는 내가 좋아하는 인간관계에 관한 띵구절로!
내가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기준이 대체로 이렇다. 사람 자체보다 그가 하는 짓을 따진다. 그가 나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서로를 이용할 것인지 등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난 소위 ‘인간적 관계’로 얽힌 사람이 별로 없다. 담담하게 사람을 만날 뿐이다. 정이 별로 없다. 누구를 특별히 미워하지도 않으며 각별히 아끼는 사람도 없다. 하는 짓이 미워서 멀리하던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이쁜 짓을 하면 이뻐한다. 한국 사람은 정이 많다고 하니 난 그런 종류에 속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사람 자체에 집착한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뽑을 때도 ‘인물’보고 찍는다. 인물을 보고 찍는다는 건 그가 했던 짓을 고려하는 게 아니다.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채 자기 맘에 들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이러다보니 한번 그 사람과 엮이면 쉽사리 그 관계를 끊지 못한다. 하는 짓이 달라졌어도 여전히 사람 보고 쫓아다닌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사람 사는 도리에 합당하다고 여기는 거 같은데, 그런 건 도저히 못하겠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하는 짓 봐서 자를 건 잘라야 한다. -강유원, <몸으로 하는 공부>, 160~161쪽, 여름언덕
나는 고독을 싫어한다. 그러나 친밀한 사이가 되는 것은 두렵다. 나의 생활의 본질은 자기 스스로와 사사로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고, 그것을 다른 누군가와의 문답 형식으로 바꾼다는 것은 자살 행위와 진배없을 것이다. 내게 필요한 친구는 술집이나 카페에 가면 어울릴 수 있는 그러한 친구다. 영혼의 교류를 바란 적이 나는 없다. 자기 스스로에게 진실을 얘기한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다. -아이리스 머독, <그물을 헤치고>, 54쪽,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