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좋아한다. 시대를 앞선 그의 음악, 독특함, 창조력, 늘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퍼포먼스, 어딘지 이단아 같은 모습 등등. 그를 능가할 음악가는 한동안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는 내게 록 스타 중의 스타이다. 2016년 그가 황망히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나 일찍 사라진 그 별을 안타까이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어쩌면 정말 이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그 별에서 편히 쉴 것이라고 그렇게 얼마나 나 스스로 위로했던가. <데이비드 보위의 삶을 바꾼 100권의 책>은 나와 같은 보위 팬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다. 게다가 그 보위 팬이 나처럼 책 덕후라면 더 눈이 뒤집힐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보위의 삶을 바꾼 100권이 궁금해서 목록부터 열어보았다. 100권 리스트를 보는 순간 와, 이 사람 대체, 진짜 하며 감탄부터 쏟아냈다. 100권 중에는 문학 작품이 많지만, 만화, 잡지, 미술, 역사, 건축 등등 소설과 논픽션, 고전과 현대, 외설적이고 인습타파적인 작품과 그와 정반대의 작품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마치 그의 음악과도 같다. 평소 보위 스스로 책을 즐겨 읽는다고 말했기에 이런 책을 읽었구나 얼마쯤 예상 가능했던 목록도 있었지만, 아니 이런 책까지 읽었단 말이야? 대단한데! 깜짝 놀랄 책들도 많았다. 그 100권의 목록 중 문학 작품만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시계태엽 오렌지>, <이방인>,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롤리타>, <허조그>, <바보들의 결탁>,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1984>,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서커스의 밤>, <핑거스미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 <길 위에서>, <플로베르의 앵무새>, <화이트 노이즈>, <한낮의 어둠>,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인 콜드 블러드>, <맥티그>, <거장과 마르가리타>, <패싱>,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등등. 놀랍기 짝이 없다. 그중에서도 <바보들의 결탁>, <서커스의 밤>, <플로베르의 앵무새>, <패싱>,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같은 책을 목록에서 발견했을 때 나의 놀라움이란! 심지어 그는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100권 목록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의 끊임없는 창조력과 약자(또는 이방인 또는 소외된 이들)에 관한 관심이 어디서 나왔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리스트이다.
과연 이 100권의 목록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학업 성적이 좋지 않았던 보위는 1963년에 학교를 중퇴했다. 딱 한 과목, ‘예술’에서만 대학 입학 가능한 레벨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발적으로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습득했다. 어릴 때부터 독서 습관을 갖추고 있었고, 음악가로 성공한 후에도 강박적으로 책을 읽었다. 비행기 여행을 싫어했던 보위는 미국에서 대부분을 기차로 이동하면서 특별한 여행 가방에 책들을 넣어 다녔다고 한다. 가방을 열면 모든 책이 선반 위에 말끔하게 꽂혀 있는 이동식 도서관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이동식 도서관은 무려 1,500권까지 담을 수 있었다. 보위에게 이북리더기를 선물하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는 왠지 종이책을 더 선호했을 것 같다. 대부분의 책 환자들이 그렇듯이…. 아무튼 이 이동식 도서관 무척 탐이 난다. 2013년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는 <데이비드 보위 이즈 David Bowie Is> 전시회가 열렸는데, 회고전 형식으로 무대 의상, 그림, 손으로 쓴 노랫말, 영상, 스토리보드를 포함한 개인 물품 500점으로 그의 가수 경력을 돌아보았고, 기록적인 관객 수를 기록했다. 이 회고전은 5년 동안 전 세계를 돈 후, 뉴욕의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대장정을 마칠 예정이었는데, 캐나다 온타리오 전시회 때 처음으로 이 책의 바탕이 된 목록을 발표했다고 한다. 보위가 평생 읽었던 수많은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다고 생각한 100권’의 목록으로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삶에 크게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았다는 것은 곧 그가 그만큼 좋아하고 아끼는 작품이라는 소리가 아닐까.
목록을 살펴보면 그의 예술적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책들과 그의 성장과 관련된 책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이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아이에서 사춘기 소년, 약에 취한 슈퍼스타에서 사색적이고 은둔적인 가정적인 남자로의 변모하는’ 보위의 생애가 자연스레 그려진다. 보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그의 이부(異父) 형 테리 번스가 비트 문학의 고전인 잭 캐루악의 <길 위에서>를 소개해준 것이다. 열두 살 어린 나이의 보위에게 그의 형은 케루악의 비트 고전을 소개함으로써 그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고향 브롬리에 대한 보위의 문화적 환멸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보위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아버지에게 색소폰을 배우게 해달라고 조른다. 1999년 보위가 영국의 음악 매거진 <Q>에서 밝혔듯이 <길 위에서>는 그에게 “나도 저렇게 (미 대륙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했으며, “브롬리 사우스 역에서 망할 기차를 타고 빅토리아 역까지 가서 지긋지긋한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하는 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했다. 또한 케루악의 책은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자유와 탈출, 자발성과 창조성(약물과 섹스) 등 비트 문학과 보위의 삶은 참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 소외, 다른 세상에 대한 보위의 강박적인 관심은 그의 초기작 <Space Oddity>에서 만년의 <Blackstar>까지 일관되게 이어진다. 그는 성장기에 탐독한 과학소설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장 인상적인 페르소나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그의 첫 히트곡인 ‘Space Oddity’가 스탠리 큐브릭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음은 보위의 팬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텐데, 스탠리 큐브릭의 다음 영화인 <시계태엽 오렌지>와 앤서니 버지스의 동명 소설이 보위에게 끼친 영향은 더 엄청났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버지스의 이 책을 읽고 매료된 보위는 1972년 으스대고 못된 짓을 일삼는 이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경력의 전환점이 되는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를 창조한다. ‘지기’는 불안정한 요소들을 취합해서 만든 캐릭터로 데이비드 보위를 상징하는 아이콘과도 같다.
보위를 상징하는 이 독특한 캐릭터인 ‘지기’는 어떤 면에서는 소외된 이방인이자, 사회에서 왕따로 취급받기 쉬운, 이해할 수 없는 괴짜이기도 하다. 보위는 성장 과정에서 분명 자신을 그렇게 이해했을 터이고, 때문에 평생 그런 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독서 목록을 보면 그 심증이 더 굳어진다.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의 ‘오스카’는 똑똑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심각하게 뚱뚱한 도미니카계 미국 이민자이며, <바보들의 결탁>의 주인공은 인종차별주의자에 대한 비판과 중세 철학에 대한 현학적이고 박식한 사색을 공책에 빼곡하게 적어 내려가는 인물로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보위는 이런 사회 부적응자에게 매료되었다.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1967년에 발매한 그의 첫 솔로 앨범에 수록된 엉뚱한 매력의 ‘Under Arthur’는 바로 이러한 캐릭터를 묘사하고 있는데, 30대 초반의 주인공은 여전히 만화책을 읽고 배트맨을 추종하며 일과가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온다. 한편, 어릴 때 브릭스톤에서 보드빌 쇼를 보고 록 스타로 투어를 다니면서 퇴폐적인 무대를 꾸미기도 했던 보위는 분명 유랑 서커스단과 프릭쇼(기형의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볼거리로 내세운 쇼)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가 가장 과소평가된 1980년대 영국 소설 가운데 하나인 <서커스의 밤>을 칭찬한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보위가 이 책을 100권에 꼽았다니, 당장 읽어야겠다 싶어서 드디어 어젯밤 이 책을 펼쳐들었다.
그의 정체성과 관련 지어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되는 책들도 보인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나 트루먼 카포티의 작품. 또 미시마 유키오의 책도 눈에 띈다. 보위가 <Heroes> 앨범을 녹음할 때 살았던 베를린 아파트 침실에는 그가 직접 그린 미시마 유키오의 초상화가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보위가 미시마 유키오의 마초적인 무사 정신, 그중에서도 그 퍼포먼스에 매료되었으리라고 분석하는데, 나 또한 어느 정도는 그 평가에 동의한다. 또 보위의 베를린 3부작과 이기 팝의 <The Idiot> 앨범에 나오는 기계 소리들은 알프레트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보위는 오웰의 <1984>에도 크게 영향을 받았는데, 어느 정도이냐면 1973년에 <1984>를 뮤지컬로, 그 후에는 텔레비전 쇼로 만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판권을 관리하던 오웰의 부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보위는 이미 어느 정도 녹음 해놓은 곡들이 많아서 그 곡을 어디에 써야 할지 난감했다. 그 고민의 결과물이 1974년 앨범<Diamond Dogs>인데, 2013년 NME는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중 하나로 선정했다.
<1984>처럼 전체주의 사회에 반대하는 생각은 보위의 초창기 곡인 ‘We Are Hungry Men’, ‘1984’, ‘Scream Like A Baby’에 계속 모습을 드러낸다. ‘Scream Like A Baby’에는 게이 평화주의자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그는 친구 샘과 함께 눈가리개를 하고 쇠고랑을 찬 채 어디론가 끌려가서는 정부의 구미에 맞게 사회에 통합되는 법을 배울 때까지 약물을 주입당한다. 여기에서 <시계태엽 오렌지>와 <1984>, <한낮의 어둠>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보위의 관심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읽은 목록 가운데 넬라 라슨의 <패싱>이 눈에 띄는데, 보위는 인종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소말리아 출신의 무슬림 아내와 혼혈 딸을 둔 그였기에 인종 정체성 문제에 마땅히 예민했던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보위의 목록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을뿐더러 정보가 되는 책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는 보위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꼽는다. 인종에 대한 보위의 관심은 ‘Black Tie White Noise’ 같은 음악에 드러났고, 보위는 <NME>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서로의 차이를 알아보고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모두에게 백인과 똑같은 특징을 찾지 않는다면, 진실하고 의미 있는 통합을 이룩할 가능성이 훨씬 커질 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보위의 삶을 바꾼 100권의 책>을 읽노라면, 이런 책을 읽었기에 그가 그토록 혁신적이고 자유로운 음악 세계를 죽음을 앞둔 직전까지 펼칠 수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으로 알게 된 진실은 대부분의 책 환자들이 그렇듯이, 보위 또한 책을 통해 끊임없이 위로받았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보위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쳤던 그의 형은 조현병을 앓다가 자살로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 이 정신병력이 모계로부터 유전되는 것임을 알고 있던 보위는 자신에게도 그런 증상이 나타날까봐 평생 두려워했다. 많은 이들이 보위의 지칠 줄 모르는 창조성은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광기로 표출되었을 수도 있는 조증을 슬기롭게 활용했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했는데, 보위는 중년에 이르러 이런 생각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 1993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은 광기에 집어 삼켜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와중에 심리적으로 어마어마하게 망가집니다. 나는 (우리 가족 중에) 행운아였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이니까요. 나의 심리적 과잉을 모두 음악에 쏟아 부을 수 있었고, 그런 다음에는 항상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런 일이 내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은 거죠.”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도 언젠가 형처럼 광기에 집어 삼켜질 수 있다는 공포에 평생 시달렸던 그가 정신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책이었다. 보위에게 책은 세상과 만나는 통로이자 피난처였고 그의 예술 세계를 넓혀준 바탕이자 그 자신의 삶의 지도였다. 이 책의 저자는 서문에서 ‘독서는 뭐니 뭐니 해도 도피’라고 말한다.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으로 다른 관점으로, 다른 의식으로 도피한다. 그러고 나면 한없이 풍요로워진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16쪽) 말한다. 보위는 책을 통해 자신에게서 벗어나 한없이 풍요로워진 모습으로, 음악으로 돌아왔다. 이 100권의 목록이 그 증명이다. 보위의 100권에 견줄 나의 100권, 그리고 책을 읽는 우리, 당신의 100권 목록도 궁금해지는 순간이다.